사람은 태어나서 최소한 10~25년간 교육이란 과정을 통해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 공부의 댓가로 한평생을 직업이라는 굴레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교육의 중요성을 가로 늦게 인지한 것에 대해 심히 아쉽지만 그래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와 내 자녀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누릴 수 있었을 텐테....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난 우리 부모님을 잘 만나 친구들 보다 더 많이 배우는 기회를 얻었다. 어디서 얻은 지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모친께서는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남달랐다. 학교 근처도 가지 못하고 글자도 모르는 그분께서 6남매를 키우면서 아들들에게만 올인을 했다.
그 당시로는 딸들은 출가외인이라는 인식과 또한 자식들을 모두 일정수준의 학교까지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분의 잣대로 자식들을 선정하여 공부를 시킨 것이다. 지금도 형제들이 많이 후회를 하는 것은 딸 중에서도 공부머리가 있던 형제를 공부시켰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운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학생시절에 그분께서 왜? 내가 너희들을 공부시키는지에 대해서 한 말씀만 해 주셨더라면 의무 방어전의 공부가 아닌 자기계발의 공부를 했을텐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가 내 자식의 부모가 되었어도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그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부모의 역활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려면 자식이 해야 할 몫과 부모가 해 줘야 할 역활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부모의 역활은 고사하고 스펙이 필요없는 시대가 도래하기에 실력을 쌓는 것에 치중을 하라고 했다. 틀린 말을 아니지만 나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 가려면 몇배의 노력과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
서론이 길었는데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한다고 학창시절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로 나는 자유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탈피할 수 있었으니 세상이 온통 내것인냥 기쁘고 즐거웠다.
어떻게 운이 좋아 야간대를 졸업했지만 삶은 날이 갈수록 고달펐다. 우리가 수십년간 학창시절에서 배운 지식의 수명은 고작 3~4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금에는 이러한 사실을 책이나 영상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누가 얘기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자신이 시행착오를 통해 깨우치는 길 밖에 없었다.
운좋게도 한 5년전부터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평생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의 공부는 이론교육이 아닌 실전교육으로 삶에 필요한 인생공부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강요가 아닌 자율에 의한 공부를 하다가 보니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학창시절의 공부는 이론을 바탕으로 오로지 성적향상이 목적였다면 인생공부는 선현들의 경험을 받아 들여 나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삶의 질을 높혀 나가는 것이 긍극적인 목표이다. 때문에 단순한 머리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가슴에서 올라오는 심오한 환희를 느끼게 해 준다.
인간은 태초부터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모드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때문에 그 부정적인 모드를 긍정적인 모드로 바꾸기 위해서 바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에 귀의하거나 명상 등을 통해 수양을 하기도 한다. 방법이야 어떠하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 지속적으로 행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 했다. 동물들이 갖지 않은 부정적인 마인드를 긍정에서 절대긍정으로 끌어 올리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철이 늦게 들어 몸은 약간 고달프지언정 마음만은 수험생 못지 않은지라 앞으로 5년 후 다시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사뭇 긍금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