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길을 묻다
"어떻게 해야돼?"
"글쎄 AI에게 물어봐!"
아내가 좀 회복되고 있는 주식에 대해 처분할지를 묻고 있다. 1년 넘게 속 끓이며 잊어버리듯 했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한가하면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채널을 찾다가 우연히 바둑채널에 눈이 멈췄다. 여자 기성전 결승대국이 벌어지고 있다. 대국자 '최정'은 死活위주로 공부한 전투기풍이고, 상대 '김채영'은 기보를 위주로 공부한 정석기풍이라고 해설자는 소개한다.
국내 여류 기사들의 바둑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최정은 올 4월 중국을 대표하는 남자기사 커제 9단을 인터넷 바둑에서 이기기도 있다. 김채영은 제1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 우승하여 특별 승단도 했다.
바둑을 얼마나 잘 두길래 바둑 이야기를 꺼내나 하실 수도 있겠다. 5급 정도? 아마 당구로 치면 150쯤? ㅎㅎ 바둑을 이해하는 정도다. 이십여 년 동안 삶과 다른 것에 매달려 잊고 지낸지 오래였다.
흥미로운 건 바둑 내용보다 한 수씩 놓일 때마다 유불리를 판단하는 AI 기사들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AI 기사 넷이 흑백의 판세를 읽고 있다. 그게 신기히여 한참을 따라가 봤다. 한수씩 진행될 때마다 흑백의 막대그래프가 좌우로 움직이며 유불리가 바로바로 판단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백을 쥔 김채영이 우변 흑을 마늘모로 어깨를 짚어간 장면이다. 흑이 밑으로 밀고나가기를 유도(강요?)하고 있다. 흑은 그렇게 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순간 우측 상단 AI 기사들은 판세를 거의 대등하게 보고 있다.
그런데 최영은 '네가 원하는 대로 둘 수 없지.' 하고 중앙으로 밀어올린다. 역시 싸움꾼이다. 백은 뒤로 물러서면 그만이다. 그러면 흑은 날日자로 변을 벌려가는 바둑이 될 거다. 그런데 정석바둑의 김채영이 왜 '내 의도대로 안 두냐'고 호통치듯 변으로 내려서 막아간다. 기세가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순간 나타나는 AI 기사들의 판단은 흑의 우세로 살짝 바뀌어 간다. 백의 차단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거다. 흑은 백의 두 점머리를 두드리며 차단해 간다.
백도 끊었고, 흑은 우변쪽 백 두 점머리를 제껴간다. AI 기사들 판세 변화는 아직 없다.백은 윗쪽으로 한 칸 벌리고 흑은 마름모로 달아나는 필연의 수순이다. 백이 우상단을 제껴 흑이 늘기를 강요하며 벽을 만든다. 그리고 우변을 제껴간다. 다음이 흑의 문제의 한수, 백의 쌍립을 방해하듯 날日자로 둔 수다.
백의 찬스다! 상변 가운데서 중앙으로 뻗어나온 네 점과 백을 끊어간 두 점을 차단하고 나선다. 순간 AI 기사들의 판세 진단은 백 우세로 급격히 바뀐다. 흑이 백의 쌍립을 방해한 날日자 수가 나빴다는 거다.
이어 흑이 우변을 잇고 한 칸 뛴 백돌은 위로 하나 늘어간다.
흑은 백의 호구를 방해하기 위해 억지로 비능룰적이라는 빈삼각을 두어야 했다. 백이 잇기를 기다려 중앙으로 한 칸 뛰어 달아나고 백은 중앙으로 밀어올려 흑의 위아래 연결을 차단하고 나선다. 흑은 상변 흑 넉 점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아래쪽으로 한 칸 뛰어 下右중앙 넉 점을 가둔다. 그러나 AI 기사들의 판세 분석은 여전히 백 우세다.
백도 내친김에 상변 흑 석점의 머리를 두드려 진로를 막고 흑이 마늘모로 째고 나오고 있다. 혼전.... 흑이 바쁜 모양새다. 여전히 AI 기사들은 백의 우세를 점치지만 전투에 강한 최영이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궁금하다.
치열한 접전끝에 대변화가 일어났다. 백이 점령했던 좌상귀가 흑의 수중에 떨어졌다. 백은 우변 빈삼각을 끊어갔고 좌변 영토를 조금 넓혔을 뿐이다. 백이 차단하려 했던 상변 흑돌은 하변과 연결해 갔다. AI 기사들은 역전, 흑이 절대적인 우세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흑, 최영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다음 날, 또 하나의 타이틀 대국을 관전했다. 남자 시니어 기사들과 정상급 여자 기사들의 연승대항전이다. 각각 12명씩인데 시니어 기사에는 이창호, 유창혁, 서봉수가 보이고, 여성 기사에는 윗 대국의 현재의 최정상급 최정, 김채영이 보인다.
시니어 기사 1번 타자는 AI를 통해 바둑을 배운다는 김기헌 7단이다. 한 수씩 두어질 때마다 그 수에 대해 AI의 평가 점수를 알 수 있단다. 좋은 점수의 수가 무엇인지 반복해서 찾아가며 배우는 거다.
1국, 2국을 승리했고 3국에서는 유리한 국면을 종반 끝내기 실수로 아깝게 졌다. 2국 과정을 지켜봤었다. 김기헌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세를 지켜갔다. 단 한번도 역전의 실마리를 주지않은 완벽한 승리였다.
우리나라 바둑에서 한동안 1인자로 군림했던 이세돌 9단이 은퇴기념으로 AI 기사 '한돌'과 대국을 벌였다. 대국 이름이 '치수고치기'다. 이미 AI의 우세는 입증돼 있다. 그 실력차이를 가늠해 본다는 거다. 이세돌이 두 점을 깔고 둔 1국에서는 이세돌이 이겼다. AI 측에서는 패인을 접바둑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라 말한다. 맞둔 2국은 AI의 완벽한 승리였다. 마지막 3국은 다시 이세돌이 두 점을 깔고 뒀는데 이세돌이 패했다. AI와 인간의 실력차이는 현재 두 점 접바둑을 넘어서고 있는 거다.
이미 바둑에서는 AI가 스승이 돼 있다. 놓여지는 한수한수에 대해 점수를 메기고 이기기 위한 최선의 수를 찾아간다. 상대방 손따라 무심코 두는 수는 있을 수 없다. '이거 심한 거 아냐?'하면서 응징하듯 두는 감정 섞인 수도 없다. 오로지 집에 효율적인 수를 찾아 계산해 갈 뿐이다. AI에 의해 그동안 없었던 정석도 생기고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우리 곁에 바로 와 있다. 가까운 미래의 인공지능은 어떤 모습일까? 무언가 판단이 어려우면 AI에게서 답을 찾는 일은 흔한 일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