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윤정열
우리 집 바로 앞에 ※※복지관이라는 복지관이 하나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진 않아서 참 깨끗하고, 또 각종 후원업체 물품과 재활용 물품을 파는 생활용품매장도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하는 쉼터? 특히 장애인들의 각종 편의시설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이 복지관에서는 동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점심을 제공해 주는 곳인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집 앞이어서 이용하기 정말 편하고, 밥이며 반찬도 신경 써서 잘 나오는 곳이다. 예전 같으면 그땐 활동하기, 수월했으니까, 밖에서 점심을 먹는 경우도 많았으나, 몸이 아프면서부터는 그런 외적인 일들이 아예 없어져서 점심때는 꼭 복지관에서 먹게 된다.
그렇게 복지관을 이용하는 거야 주로 점심 먹을 때만 갔었는데 한번은 복지관에서 연락이 온 거였다.
이런, 이런 평생 학습 프로그램이 있다고 안내 문자로 왔는데, 쭉 보니까 제가 참여하고 싶은 과목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도 작가입니다’라는 문예 창작을 한다는 과목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한다는 거였으나 솔직한 마음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전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제목과는 다르게 무슨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거여서 안 한다고 했었다. 근데 매일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는데 뭔가 한 가지라도 참여해 보자 하는 마음이 일었고, 내용을 보니 그때처럼 한글 가르쳐준다는 내용이 아니고, 작가 운운하는 거 보니까 기초적인 문예 창작 공부겠지 생각해서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이번만은 참여해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문학이라는 공부는 내가 어린 학창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틈나는 대로 글을 쓰고는 있어서 올 초에, 등록하고 매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듣는 중이다.
그런데...
수강생들이 주로 지역주민들이겠지 하고 갔으나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발달장애 청년들 서너 명밖에 없는 거였다. 수업 내용도 그 친구들 수준에 맞춰 진행하다 보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주로 동화책으로 수업을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가끔 새로 온 발달장애가 아닌 사람들은 뭔가 기대감을 갖고 나와서는 한번 듣고 그 다음부턴 안 나와버린다.
“에이, 뭐야~ 지금 얘네들하고 같이 동화책이나 읽는 수업인 거야? 시간 아깝게!”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가 본데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일이다.
근데 나는 원래가 내가 선택한 걸 굳이 후회되어 중간에 그만두는 그런 성격은 못 되는가 보다. 아무리 이건 아니야~ 하는 생각이어도 한편으로는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하는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는 편인가보다. 물론 지금 몸이 아픈데 이런 일이라도 하는 게 어딘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으나, 그런 생각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서도 반드시 뭔가 새로운 행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뭔가 남들에게 보이고자, 뭔가 잘난 척으로 보여지는 의도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글이 얼마나 남들이 볼 때 색안경을 쓰고 보는지를 잘 알기에 되도록 그런 얘기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그렇다. 지금 내가 일주일에 한 시간 나가는 그 수업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수업의 수준은 안 맞는 경향이 있더라도, 그 수업을 들으면서 예전 어린 시절의 나를 회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도 하고, 또한 같이 수업을 듣는 우리 어린 친구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이런 것도 나름 재미있다.
한번은 수업을 가르치시는 강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그러신다. 다른 멀쩡한 사람들은 한번 나오고 안 나오는데 매번 제일 먼저 나가서 조용히 수업을 경청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는지 “정열 님께는 미안한 부분이 많아요. 수업 방식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점 이해해 주시고, 우리 학생들 수업 듣는데, 큰형님처럼 중심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도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어요.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선생님 방식대로 하세요. 어떤 식으로 해도 저는 상관없어요. 무조건 따라갈 거고요. 한편으론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해서 좋네요.”
물론 나는 언어장애가 심하기때문에, 핸드폰 노트에 문자를 찍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하는데,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도 처음에는 좀 경계하는 눈으로 보더니 한 번 두 번 지나니까 아~ 저 할아버지는 원래가 저렇게 말을, 못하고 걷는 것도 저런가보다 하고 살갑게 대해준다.
대개들 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청년들이라 학습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수업 참여도나 성취욕 등은 일반 아이들 못지않다.
오히려 요즘 뉴스에 가끔 나오는 경계선 지능 장애 아이들보다 수업을 듣는 태도가 얘네들이 훨씬 낫다. 학습도 못 따라가고, 게임이나 온갖 이상한 데에 온 정신을 다 뺏긴 채 아까운 젊은 날을 사는 청년들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여태껏 뇌성마비라는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데, 어릴 때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학교엘 다니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휠체어도 없는 시절이라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여덟 살 나이에 맞춰 또래 친구들이랑 똑같이 학교에 다녔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를 지금, 이 학습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곤 한다.
암튼 배움이란 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거고, 한편으론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거다.
그리고 사람이란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문학 공부라서 더욱 좋다. 한편으론 예전 어릴 적 배웠던 거라도 다시 한번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이 문학 공부를 9품사 놀이라고 스스로 이름 지어 놓았다. 명사, 동사, 부사 등등을 문법에 맞게 가지고 노는 놀이...
이 몸에도, 이 나이에도 뭔가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젊다는 의미하고도 상통하는 걸 거다.
사실 중증 뇌성마비 몸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많지만, 이 프로그램 ‘나도 작가입니다’라는 문학모임에 참여하는 마음만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인 듯하다.
정말이지 공부할 때 행복한 사람들이 바로 나를 포함 우리들이 아닐까.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느 동화책의 주인공처럼 티 없이 맑게, 또 어느 땐 바보인 척 순수하게, 그리고 결국엔 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걸 안다.
누구도 자신이 있는 곳에 꾸준히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데... 여기서 공부하는 우리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이젠 늙어 불러주는 곳, 갈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