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은 크레이지 호스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전체 모습은 산 하나를 통째로 하기 때문에 높이가 엄청났다. 완성되었을 때의 규모는 조각 높이가 563피트로 대략 172여 미터라고 한다. 길이는 641피트로 190여 미터가 되는데, 완성이 되면 세계 최대 조각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크레이지 호스가 앞으로 내뻗은 팔의 길이만 해도 263피트, 약 79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말의 얼굴 크기만도 22층 높이의 빌딩크기와 같다고 하니 가히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조각상이 아닐 수 없다.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크레이지 호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미국 이주민들이 러시모어에 그들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은 조각한 것에 이곳 인디언들은 자극을 받아 자기네 또한 자랑스러운 인디언의 영웅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음은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일 것이다. 자기들이 바로 이 땅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러시모어의 대통령 조각상이 정부의 후원 하에 진행이 되었다면 이곳 크레이지 호스 조각은 처음부터 그런 지원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칫 정부의 간섭을 불러오고 마침내 정부의 의도대로 조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부 지원이 없다는 것은 사업 자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고 이는 다시 말해 작업 기간이 기약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인디언 추장을 기념하는 기념물 조각 사업에 정부지원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 여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사는 개인 재산이나 후원금으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예상한 바이겠지만 당연히 공사 진척은 더뎠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4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고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얼굴만 조각이 거의 끝났을 뿐이다. 그러나 기념관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공법과 장비의 발달로 작업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2030년 정도가 되면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전시관을 돌다가 조각상을 올려볼 수 있는 실내 전망대에서 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조각상 얼굴을 가렸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와 조각상 아래까지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버스는 초등학교 스쿨버스로 사용하던 것으로 여전히 버스 전면에는 스쿨버스라고 써져 있었다. 아마도 사용연한이 지나 폐기처분 대상이 된 것을 사들여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베트남의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에 우리나라의 현대백화점이니 서울시내버스 노선번호가 적힌 채였다는 자료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법적인 사용연한이 되었더라도 투어의 거리가 약 500여 미터 정도 될까 하는 거리니 충분히 운행이 가능할 것이다. 공사비를 한 푼이라도 아껴야할 것이기 때문아 아니었을까 싶다. 투어 비용은 일인당 4달러였다. 그 유명한 광고 카피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4 달라-
광고의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버스는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겨우 크레이지 호스 턱밑까지 가는 것으로 그치고 그곳에서 운전기사 겸 안내원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미국 관광객들은 그의 말에 웃기도 하였지만 난 그저 그 설명이 따분하고 지겹고 듣기 힘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들처럼 함께 웃을 수 없으니 더욱 그랬다.
간간이 아들이 통역을 해주었지만 그렇다고 혼자만 따로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동안이 설명이 끝나고 돌아 나오자 아들이 기왕이면 공사장까지 올라가보자고 했다. 버스 옆으로 미니 밴 같은 차량이 여러 대 도열해 있었는데 그 차량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그 투어 비용은 일인당 125달러란다. 그러니 둘이서 250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30만 원 정도다.
그렇게 비싼 이유가 그 돈을 투어비용이라기보다 이들은 기부금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투어 신청을 할 때 그 돈을 공사비로 쓸 것인지, 인디언 대학에 기부할 것인지 등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단다. 하기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둘러치나 매치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기막힌 상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기왕이 이곳까지 왔으니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올라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