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45세부터 급사가 시작되지만, 여성은 50세부터 급사 위험이 있다.
조선왕조 (부귀와 비운의왕)
조선 역대王들의 사망원인
제1대 태조 청심원을 다 삼키지 못하고, 중풍으로 74세에 승하. (아들 태종과의 마찰로 인한 홧병도 그 원인 중 하나) 능은 건원릉 동구릉안에 있다.
제2대 정종 오복(五福 ; 수,부,강녕,유호덕,고종명)을 다 갖추고 63세에 승하. (상왕으로 물러난 후 편안하게 살면서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임) 조선역대왕 중, 유일하게 북한에 있는 후릉(경기도 판문군 영정리)
제3대 태종 상왕으로 물러난 후 태종은 폐렴으로 56세에 승하. 부인 민씨도 학질로 56세 졸. 능은 헌릉
제4대 세종 대식가로 당뇨병으로 54세에 승하. (고기를 매우 즐긴 왕.. 식단에 항상 고기가 있었음, 그래서 종기가 많이 났음) (그리고 여러 부인을 둔 만큼 성병도 있었다고 함) 소헌왕후 심씨와 합장함으로써 조선최초 합장릉 능은 영릉
제5대 문종 등창으로 39세에 승하, 아버지 세종을 닮아 몸이 허약했음 능은 현릉
제6대 단종 수양대군의 '계유정란'으로 17살때 서인(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서 사사됨 숙종때 단종으로 복위. 능은 장릉 단종의 비는 송씨 정순왕후는 경기도 구리시 진건면 사능에 모셔저 있습니다.
영도교(영영교에서)늘 불럿다는 시
천만리 머나먼길 나에 고운님 떠나보내고 내 마음 둘곳 없어 내가에 앉지니 저 물길도 내마음 같이 슬퍼 밤길가는구나 유명한 시가 생각나는군요.
정순왕후 집안은 단종 복위사건으로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다고 알려저 있습니다. 장능은 엄복길에 의하여 단종이 강물에 떠내 려가는 것을 양지바른곳에 묻은것이 오늘 날 장릉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7대 세조 악업으로 문둥병과 불면증으로 52세에 승하. 능은 광릉
제8대 예종 20세에 복상사 하여 승하. 안순왕후 한씨 정사를 즐기다 승하했으며, 형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 덕종)도 20세에 급사. 능은 창릉
제9대 성종 등창과 폐병으로 38세에 승하 28명의 자식을 두었고 주색을 즐긴 카사노바였다. 임진왜란때 왕릉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에 태워지는 수모를 격는다. 능은 선릉
제10대 연산군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후, 강화도로 유배 강화도에서 괴질로 31세 졸. 아들 넷은 강화도에서 사사됨 묘는 서울 방학동
제11대 중종 거머리로 등창을 치료하다, 울화병과 노환으로 57세에 승하. 재위 39년 능은 정릉
제12대 인종 이질로 31세 승하(문정왕후에 의한 독살설도 있다.) 하늘이 낳은 효자로 알려져 있으며, 후사가 없다. 능은 효릉
제13대 명종 지나친 방사로 34세에 승하 문정왕후의 아들로 마마보이 로 성장 하였으며, 무수리출신 장씨와 지나친 방사로 인한 졸지에 승하. 어머니 문정왕후한테 회초리도 맞았다고 함. 능은 강릉
제14대 선조 임진왜란 이후 중풍으로 57세에 승하. 영조 다음으로 41년간 재위 능은 목릉
제15대 광해 가장 불운한 왕, 인조반정으로 물러난 후 유배. 그 뒤 십수년을 더 살다가 제주도에서 67세로 졸. (유배 생활 중에 시중 드는 사람이 '영감'이라고 불러도 꿋꿋하게 견뎠다 함) 이때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옴
제16대 인조 청나라에게 항복한 후, 홧병 걸림 신하들 손아귀에서 울화병으로 55세에 승하.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한(?) 왕으로 보고있으며, 재위중 늘 그것때문에 신하들에게 시달려 왔으며 능은 장릉
제17대 효종 봉림대군 수전증있는 어의의 실수로 출혈사로 41세에 승하. 강한의지의 북벌정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승하했으며, 능은 영릉
제18대 현종 청 황제에게 벌금형을 받은 임금으로 학질과 과로로 34세에 승하. '하멜'에 의해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 했다. 능은 숭능
제19대 숙종 어릴 적 천연두 후유증, 노인병, 등창 심한 당파 싸움으로인한 스트레스로 60세에 승하. (인현왕후, 장희빈과의 문제도 있었을 듯) 풍류를 즐겼던 숙종은 봄이면 3000 후궁을 거느리고 큰잔치를 벌렸다 함. 능은 명릉 (숙종때 단종을 복위시킴 김구 좌의정에 의해 190년 후)
제20대 경종 게장을 먹다 급사하여 37세에 승하. 장희빈이 사약을 받기전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하자 거절하다 인정에 끌려 세자를 데려오자 갑자기 경종의 하초 잡아당겨 성기능을 잃어 내시와 같았다 한다. 능은 의릉
제21대 영조 장수하였으며 치매로 83세에 승하. 세자를 폐위하여 서인을 강등 한후 뒤주속에 가둬굶어죽게한 일과 늙어 노망 부린것이 오점으로 남았으며, 일본에서 '조엄'이 고구마를 처음 가져왔다. 능은 원릉
제22대 정조 개혁적인 군주, 사도세자(장조)의 아들 등창으로 49세에 승하 (독살설도 있지만, 최근 자료로 보아 등창으로 승하한게 맞다고 봄) 안경을 처음 쓴 임금. 능은 건릉
제23대 순조 매독 3기로 45세에 승하. 이때 나라는 콜레라가 창궐했으며, 안동김씨 세도가 시작되었다. 능은 인릉
제24대 헌종 23세에 술과여자로 보내다 폐결핵으로 승하. 능은 경릉
제25대 철종 세도정치에 의해 졸지에 왕이 된 강화도령 33세 폐결핵으로 승하. 강화도를 그리워 하며, 안동김씨 그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채 살았다. 능은 예릉 200년후에 이하응 대원군이되어 아들 고종황제을 만들음
* 제26대 고종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후, 1919년 일제에 의해 독살되어 67세에 승하. 능은 홍릉
제27대 순종 몸이 허약했고, 남성 구실을 못했다 함.. 1926년, 라디오 들으면서 심장마비로 53세 승하. 능은 유릉
- 의친왕 독립운동을 했던 고종의 아들, 순종의 동생, 영친왕의 형 그의 아들 이우 왕자가 얼짱 왕자로 유명해졌다. 현재 의친왕의 아들과 손자들이 다수 생존해 있다.
1955년, 6.25전쟁 중에 걸린 영양실조로 79세로 서거 묘는 홍유릉 내의 의친왕 묘(합장묘)
-의민황태자 영친왕 어릴 때 일제에 볼모로 잡혀간 비운의 황태자다. 1963년 뇌혈전증으로 귀국해 7년간 병상에서 생활하다가 1970년 74세의 나이로 서거.
왕비인 이방자 여사는 자선 활동을 하다가 1989년 서거. 능은 홍유릉 내의 영면하심 (합장묘) 현시대는 합장묘와 개인묘를 하는것으로 구분되어 간닺 저의 경우에도 할아버지 할머님은 봉분을 따로 만들어 드렸다. 그러나 부친과 모친은 합장하여 봉분을 하나에 두분을 모셨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봉분을 나지막하게 두개을 밀들어서 하나는 집사람것 하나는 내것으로 만들어 사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모든권한은 생이 끝날때 없어진다. 아들의 목이될것 같다. 다만 그것을 바랄뿐이다.
내용은 조선의 왕들 조선왕조 오백년 조선의 왕후들에서 발취한 내용을 원하연 본인이 정리 각색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