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비하히롯이 아카바만 누웨이바가 아닌 이유 14가지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출 3:18)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바다를 건너기 위해 마지막으로 집결한 장소가 비히히롯입니다. 그런데 이 비하히롯의 위치에 대하여 3가지 설이 있습니다. 먼저 70인역에 따른 홍해입니다. 그 다음이 갈대 바다가 있는 수에즈 지협,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아카바만 누웨이바입니다. 일반적으로 홍해는 중심부에 깊은 해구 절벽이 있어서 바다가 기적으로 열려도 해구를 건너지 못합니다. 갈대 바다는 위치로는 적절하지만, 습지대가 많아서 애굽 군대가 수몰 당할만큼 깊은 곳(갇힌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호수의 수심이 20m가 넘는 곳도 있기는 함). 그래서 최종 집결지 비하히롯의 위치를 멀리 떨어진 아카바만 해역에서 찾는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는 비하히롯이 갈대 바다로 알려진 팀사, 비터 호수가 있는 곳으로 봅니다. 그리고 비하히롯은 70인역이 "양의 우릿간"으로 번역하였으므로 인공 수리시설(운하, 해자, 수로, 제방 등)로 보았습니다. 비하히롯이 인공 구조물인데 애굽 군대가 수장을 당하였기 때문에 수리시설로 보는 것입니다. 갈대 바다(얌 수프)를 잘못 번역하여 오해가 생긴 홍해는 비하히롯 해변이 될 수가 없다는 점을 10여 가지 이유로 근거를 밝혔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이 건넌 바다 해변의 집결지 비하히롯(출 14:2,9)은 누웨이바가 될 수 없는 이유를 10가지 정도의 근거로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① 누웨이바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출애굽 사흘길 구원과 일정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납니다(출 3:18, 5:3, 8:27). 사람의 생사가 갈려지는 장소인 비하히롯은 사흘길 거리 안에 있어야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 계획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누웨이바는 아카바만(Gulf of Aqaba) 서쪽 해안의 좁은 협곡과 평야이며, 출발지 고센 땅에서 300~400km 거리로 2주일은 소요되는 먼 거리입니다.
② 연속되는 행진에는 출발지와 구간별 도착지가 일정한 거리에서 연속(또는 연접)되어 있어야 합니다. 고센 땅에서 출발하여 1차 집결지 숙곳, 숙곳에서 출발하여 2차 집결지 에담은 서로 지리적 연속성이 있습니다. 1차 집결지 숙곳 또는 2차 집결지 에담에서 그 이후의 집결지인 비하히롯은 가깝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하히롯이라고 말하는 아카바만의 누웨이바는 고센 땅에서 300키로 이상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지 고센 땅과 아카바만 누웨이바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상호 연속성이 없는 지역입니다. 비하히롯을 누웨이바라는 주장에서도 숙곳이 고센 땅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인정을 합니다. 그러므로 누웨이바는 고센 땅과 지리적 조건에서 연속성을 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날아다닐 수가 없는데 어떻게 2차 집결지 에담 또는 3차 집결지 비하히롯을 고센 땅에서 300~400km나 떨어진 누웨이바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취할 수가 없는 가설입니다.
③ 누웨이바설의 최초 주창자는 미국의 아마추어 성경 탐사자 Ron Wyatt(1933–1999)입니다. 그는 전문 고고학자는 아니었지만, 성경 유적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여러 곳에서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주장들은 ㄱ. 홍해 도하 지점인 해저 육교 발견, ㄴ. 아카바만 누웨이바 넓은 해변, ㄷ. 바다 속 병거 바퀴 발견, ㄹ. 솔로몬 기둥 발견 등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근거가 입증 자료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의 주장이 다큐멘타리로 방영되어 세상에 알려지면서 홍해 도하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웨이바를 대체 장소로 관심을 가졌을 뿐입니다.
④ 누웨이바설 주장자들은 애굽의 국경을 애굽 하수가 있는 곳, 곧 시나이반도와 가나안 땅이 연접한 지역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이집트의 행정력이 실제로 미치는 국경지대는 수에즈 지협이었습니다. 국경을 통하는 관문, 국경을 지키는 요새는 국경지대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시나이반도 북부나 와 홍해 해변이 그 당시 국경이긴 해도 그곳은 사막지대나 넓은 바다입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국경지대라면 자연스럽게 갈대 바다라고 하는 팀사 호수나 비터 호수가 있는 수에즈 지협을 말하고 있습니다.
⑤ 누웨이바는 좁은 협곡에 넓은 평원이 있어서 출애굽기 14:2가 말하는 지형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이 바다의 도하 추정지는 홍해처럼 깊지도 않고, 완만한 경사지이며, 해저에는 물길을 통과할 수 있는 육교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에즈 지협의 습지대는 군대가 수몰 당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그런데 비하히롯은 70인역에 따르면 인공 구조물로 보아야 하고, 애굽 군대가 이곳에서 수장을 당하였므로 수리시설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하히롯도 그 시대에 요셉의 운하가 있었던 파이윰 분지처럼 거대한 수리시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곳이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기에는 누웨이바보다 더 적절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하히롯 = 협곡처럼 갇힌 곳 = 농업 울타리(70인역 번역) = 에굽 군대가 수장을 당한 곳
⑥ 누웨이바설은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다는 갈라디아서 4:25에 근거를 둡니다. 그러나 시나이반도와 시내산은 어원이 같으므로 시내산(Jebel Musa. 모세의 산)은 시나이반도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시나이반도를 간혹 아라비아 광야에 포함시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를 시나이반도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내산은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시나이반도를 일컫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 < 김동문의 팩트체크 '아닌것은 아니다' < 목회와 신학 < 기사본문 - 미주뉴스앤조이
⑦ 미디안 지역도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족의 유래는 미디안 지역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들은 특정 지역에 상주하기보다 여러 곳에서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미디안은 지리적 의미보다 민족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미디안족인 장인 이드로와 함께 살았다고 그 곳이 아라비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려인은 혈통이 한국인이지만, 극동지방인 연해주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살고 있습니다. 미디안족도 이와 유사합니다.
⑧ 누웨이바에는 광야 끝, 곧 사막의 끝 지역을 말하는 에돔을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누웨이바는 협곡이 있는 산악지대이므로 넓게 보면 그냥 광야지대에 속합니다.
⑨ 누웨이바는 국경지대에 있는 믹돌 요새나 바알 신전의 위치와도 맞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해변은 육지의 국경지대와는 다르므로 요새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⑩ 누웨이바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면 이미 10일~2주일이 지난 시간입니다. 바로가 사흘길 요청을 알고 멀리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출 8:28) 왜 이렇게 2주일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서야 추격을 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⑪ 바로의 철병거가 굴곡이 심하고, 협곡이 있는 누웨이바까지 추격하기는 지리적으로 어렵습니다. 바로의 친위 군대가 멀리 누웨이바까지 원정을 가는 것도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⑫ 무엇보다도 누웨이바까지의 2주일 기간은 출애굽 구원 계획의 3일 여정과 십자가 구원의 3일 일정에서 구속사적으로 부합하지 못합니다. 출애굽 사건과 십자가 사건은 첫날 양의 희생, 둘째날은 죽음과 무덤을 의미하는 갇힌 곳에 있었고, 사흘째는 바다가 열려서 구원을 받거나 무덤이 열려서 예수님이 부활하십니다. 곧 3일 구원 사역이 각각 서로 짝을 이룹니다. 구원 사역의 예표와 성취, 모형과 실현(실제)이 정확한 대응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나 누웨이바는 이런 구속사의 대응관계, 특히 일정에서 서로 맞지 가 않습니다
⑬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은 블레셋 길을 포기하고, 광야길로 들어서게 하셨습니다(출 13:17,18). 그러나 누웨이바로 간 것은 방향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광야 길은 방향에서 45도 정도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누웨이바 가는 길은 블레셋 길로 올라가서 90도 정도의 방향 전환을 해야 갈수가 있습니다.
⑭ 누웨이바설은 기존의 홍해 도하설에 대한 불신에서 생긴 것입니다. 홍해는 바다가 열리는 기적을 고려하더라도 바다 중심부는 절벽 같은 해구(골짜기)가 연속되기 때문에 건너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갈대 바다인 수에즈 협지도 수심이 얕은 곳이 많아서 애굽 군대가 전원 수몰을 당하기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그래서 대체 장소로 찾은 곳이 누웨이바입니다. 그러나 비하히롯이 인공 구조물이며, 호수나 바다처럼 넓은 수리시설이었다면 이런 의문은 해소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적합지 가능성은 더 높습니다. 수에즈 지협은 전체가 저지대 습지이며,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하는 수로의 필요성이 있어서 BC 18세기 이전부터 이러한 수리시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은 해당 사건과 관련된 성경의 문자적 이해는 물론이고, 1천년 이상 되는 긴긴 시간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홍해와 나일강, 호수와 습지, 사막과 농경지가 구분되는 이집트의 지리적 이해와 사흘길을 조건부로 허가한 바로의 정치적 판단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리적, 정치적 인식이 있었다면, 300~400km나 멀리 떨어진 누웨이바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건넌 바다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면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보면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은 귀담아 들어보고, 눈여겨 살펴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간혹 의견이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각자의 의견들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 연구가 성경의 내용을 뒤집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정도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의문이 있다고 해서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까지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 일정을 연구하다 보니 어느 신학자가 생각 납니다. 그는 마태복음 1장과 2장, 누가복음 1장과 2장이 기록한 아기 예수 탄생에 대한 연구로 1,200쪽이 넘어가는 방대한 책을 집필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연구결과는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보다도 근거가 약하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은 원래 복음서에 없었던 것인데 후대의 교부들이 끼워넣은 문서(편집)라고 보니 이렇게 엉뚱한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이것은 구속사를 담아놓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성경을 보기보다 성경 외의 민담이나 전승 자료를 더 중시하는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오늘 접한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탈출 사건에 대한 연구도 그러합니다. 출애굽 구원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흘길 여정에 들어있는 것인데 2주일이나 걸려야 하는 아카바만 누웨이바에서 찾고 있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성경 본문보다 애굽의 왜곡된 역사 자료나 빈약한 고고학적 흔적을 더 유력한 증거라고 과신할 때 이런 결과를 도출합니다. 여기에는 출애굽 사건이 BC 1446년보다 후기인 BC 13세기경에 있었다는 주장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출애굽 역사에서 이렇게 그릇된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연구나 주장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출애굽 사건이 말하는 사흘길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시 왜곡되면서 예수님은 죽어서 5일이 지난 다음 부활했다는 5일 부활설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환경이나 인과적 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신앙고백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역사나 생활은 필요가 없고, 성경 사건에 관련된 민담이나 전승 자료에서 신학적 본질이라고 보는 구원의 가치만 부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 가진 일반적 한계이자, 신학이 가진 보편적 약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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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AI가 낸 의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1
홍해는 중심부에 깊은 해구가 길게 있어서 바다가 열려도 해구를 건너지는 못합니다 갈대 바다는 늪지대가 있어서 애굽 군대가 몰사하기 어렵습니다 누웨이바는 출발지와 지리적, 시간적 위치가 너무 맞지 않습니다 고로 바다 같이 넓은 인공 수리시설 비하히롯이 애굽 군대 수장지로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AI의 의견을 말해 주셔요.
오후 12:59
흥미로운 주장이네요. 각 논점을 하나씩 검토해 보겠습니다.
제시하신 논거들의 평가
홍해 해구 문제에 대해서는, 아카바만(누웨이바 지점)은 실제로 수심 1,800m 이상의 깊은 해구가 존재하고, 수에즈만은 상대적으로 얕아서(평균 40~50m) 이 논거는 누웨이바 반박으로는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갈대 바다(얌 수프) 늪지대 문제는 타당한 지적입니다. 이집트 동쪽 국경 늪지대에서 군대 전멸이 일어나기엔 수심과 규모가 부족하다는 비판은 학계에서도 제기됩니다.
누웨이바 시간·지리 문제도 출애굽기의 진행 경로와 일수를 계산하면 누웨이바까지 도달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은 일정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비하히롯 = 인공 수리시설" 가설에 대한 의견
다만 이 결론 부분에서 몇 가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 가설을 더 강화하려면 해당 지역의 고대 수리시설 유적 증거나 이집트 문헌에서의 지명 대조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설득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깊은 해구는 홍해를 말하고, 누웨이바 해구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ㄱ. 비하히롯을 70인역은 "양의 우릿간" 또는 "농업 시설물"로 번역을 한 것이 가장 직접적인 근거 자료입니다. 그리고 ㄴ. 애굽 군대가 수장을 당한 곳도 비하히롯입니다. ㄱ과 ㄴ을 고려하면 비하히롯은 갇힌 상태의 바다(인공 호수) 같이 넓은 수리시설일 것이고 거기서 애군 군대가 수장 당했다는 추정이 다른 곳(홍해, 누웨이바, 갈대 바다 늪지대)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의견입니다.
논거를 더 명확히 정리해 주셨군요.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중요한 근거입니다.
제시하신 논리 구조는 타당합니다. 특히 70인역이 인공 시설로 번역했다는 점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고대 번역자들의 현장 이해를 반영할 가능성이 있고, 이것과 수장 장소를 결합하면 다른 세 가설보다 내적 정합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홍해와 나일강, 수에즈 지협의 저지대 습지 등으로 물관리와 이용 기술이 일찌기 발달한 나랍니다. 기원전 18세기부터 나일강 서편에는 파이윰 분지가 축조되었고, 동편에는 군사요새와 같은 해자(수중 방벽) 기능을 하였거나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시키는 수리시설이 있었으며 그 규묘도 지금의 수에즈 운하보다 더 넓었다고 합니다.
매우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추가해 주셨습니다. 이 부분을 검토하겠습니다.
고고학적 현장 조사가 뒷받침된다면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ㄱ. 홍해 중심부는 깊은 해구(골짜기)가 있어서 바다가 열려도 건너가기 어렵다는 것과 ㄴ. 아카바만(누웨이바 지점)은 실제로 수심 1,800m 이상의 깊은 해구라는 점을 설명하여 주셔요
좋은 질문입니다. 지형학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반면 **이집트 동부의 인공 수리시설(비하히롯)**은 이러한 지형적 문제가 없는, 평탄한 저지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