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도 집이 없어 / 조미숙
저녁을 먹는데 뭔가 입안에 걸린다. 꺼내 보니 이빨 씌운 것이다. 이게 왜 빠지지? 이리저리 살펴보니 하나가 시커멓다.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인데, 왠지 불길하다. 다음 날 아침에 치과에 가서 한 시간 기다린 뒤에 얻은 결론은 임플란트 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썩어서 뿌리만 남았고 그 옆 어금니도 아직은 괜찮긴 하지만 너무 낮아서 씌워야 할지 말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여러 번 고개를 갸웃거린 뒤에 한번 해보자고 했다. 이래저래 견적이 백오십만 원으로 나왔고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남편은 나보다 앞서 몇 개를 심은 상태다. 돈과 시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룬 탓인지 나빠질 대로 나빠져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안쓰러운 마음보다는 화가 나니 술과 담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타박만 했다. 남편 친구가 치과의사인데, 결혼 초에는 큰돈이 들어가는 일에만 가고 자잘한 치료는 동네에서 해결했다. 그러다 왠지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할인 받으려고 찾아간다는 게 구차하여 발길을 끊었다. 가끔 병원 다녀오면 친구가 의사 될 동안 뭐 했냐고 농담도 던질 만큼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말이다. 사는 게 달라지니 가까이하기 힘들어지는 일이 가끔 있다.
남편이 다니는 병원으로 갔다. 마찬가지 결과인데 훨씬 싼 가격을 제시한다. 남편 덕에 남편 가게가 있는 ‘동부시장’과 협약을 맺어 그렇다나. 아무튼 한시름 놓았다. 우선 발치부터 하자고 날을 잡았다. 예약 날짜 하루 전부터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며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 준다.
임플란트한다고 하니 내 나이가 실감 났다. 철이 없이 사느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문뜩 깨달았다. 언제 이렇게 됐냐? 참 낯설다. 내가 결혼하고 이듬해 아이를 낳을 때 산모수발하러 온 엄마가 귀가 어두워 답답해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내가 그 나이가 멀지 않았다. 늙으신 부모님이 눈앞에 어린다. 그보다 훨씬 젊지만 그래도 60년을 쓴 몸인데 여기저기 고장 난 것은 당연하지만 왠지 억울하고 서럽다. 벌써 이를 심어야 하다니. 이빨도 오복 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난 그 복도 타고나지 않았나보다, 누구에겐지도 모를 억하심정이 불쑥 튀어나온다.
주변에서 하나둘 아이 결혼말이 오간다. 늦게 결혼한 탓에 큰애는 지금 스물여덟이고 남자 친구도 있지만, 요즘 늦게 결혼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여태 변변한 직장도 없어 먼나라 이야기였다. 밑의 두 아이는 아직 학생 신분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게 최고의 목표이다. 그래서 아직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슬슬 피부에 와 닿는다. 인물이나 성격, 직업 등등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예비 며느리와 사위 얘기에 부러움이 일었다. 우리는 집도 아이들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데 걱정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또 어리석게도 애가 탄다. 남의 손에 든 떡이 호박만하게 보일 뿐이다.
가진 게 없으니 매사 주변인들의 삶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책에서 말했듯이 내가 아닌 남들의 기준으로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면 잘 살지 못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내가 그런 것 같다. 남과 같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나고, 내 인생으 내 것!’이라고 열심히 외치지만 늘 마음뿐이다. 모든 것에서 비교하고 낙담하고 불평한다. 난 그야말로 속물 중의 속물이다. 그걸 감추려고 아니 벗어나려고 이제껏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언제나 인간이 되려나? 마늘과 쑥을 더 먹어야 하나?
“강남에 집이 없어. 손목에 명품 없어. 그런데 제일 슬픈 건 드래곤도 없어.” 드래곤 모으는 게임 광고에 나오는 노래다. 물론 어떤 게임인지는 모르지만 춤도 익살스러워 재밌기도 하고 가사가 너무 내 얘기 같아 좋아한다. ‘너만 없냐? 나도 없어.’라며 자조한다. 17년 된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 신세를 져야만 했고 아직도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강남은커녕 목포에도 집이 없다고 자랑이라도 되듯 되받아본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날씨는 쾌청하고 따사로운 가을이다. 산에서 들판에서 어서 오라고 부른다. 각종 축제 현수막이 도시를 뒤덮는다. 갈 곳도 갈 일도 없는 나는 오늘도 카페에 앉아 있다. 떠날 수 있는 자들에게 부러움을 잔뜩 느끼면서도 애써 난 행복하다고 부럽지 않다고 힘차게 도리질한다. 쓰디쓴 커피가 맛있다는 우아한 거짓말과 함께 이 글쓴이 강력하게 외친다. "난 목포에 집 없이도 행복해!"라고.
첫댓글 치아는 하루빨리 치료해야 큰돈 들어가지 않지요. 여러 일중에 이 치료 맨 앞에 두셔야 해요. 65세 이상 건강 보험에서 두 개까지 치료해 준다는데 하루빨리 60세로 기준을 낮추면 좋겠어요.
예순여섯 살까지 잘 버티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하!
이 넓은 세상이 내 집이려니 하고 사시게요. 저랑 같네요. 저도 집도 없고.
법정스님 책 읽으니 소유한 게 너무 많아서 좀 버려야 하는거 아닌가 싶네요.
하늘을 지붕 삼고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기는 하지만...
그러면 너무 추울듯요.
임플란트 이제 하면 잘 사신 거죠. 저는 여러 갭니다. 하하.
오마나! 그렇군요.
선생님도 참 고장난 곳이 많네요.
하루종일 자연에서 지내는 선생님을 부러워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글까지 이렇게 잘 쓰시니 더 부러워요.
하루종일은 아니구요. 잠깐이예요.
밥벌이의 고단함을 느끼느라 정신 없어요.
글은 선생님도 잘 쓰시면서.
아무튼, 고맙습니다.
'마늘과 쑥을 더 먹어야 하나?'라고 하시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여유있게 세상을 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농담 아닌가요? 저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히히! 허세 좀 부렸네요.
제가 어찌 그런 경지에 도달하겠습니까?
이 치료는 잘 하신거죠? 제 마음을 들여다 보듯 글을 잘 쓰신 선생님이 정신 승리자 아닐까요? 누구와도 비교불가!!!
비교불가! 좋은 건데요.
미천하기 그지 없는 넋두리를 좋게 읽어 주니 고맙습니다.
웃음 전도사 아니세요? 밝게 웃으셔서 금방 전염되던데요. 하하. 선생님 크게 외치지 않으셔도 행복해 보입니다.
하하!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아무나 '글 쓰는 여자' 못 됩니다. 엄청 부러워하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히히! 그 소리가 듣고 싶었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진작 하나했어요.
'나는 나다.' 그럴 듯한 말이죠.
저도 마음뿐,
열등감에 찌들어 산답니다.
왜 그러실까?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데.
글솜씨며 시부모님과 남편 사랑 기타 등등
다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잖아요.
누구나 평소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옆사람과 나눌 것을 궁리하다가도 어느날 문득 묻어두었던 결핍이 솟구쳐 스스로 당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살짝 쏟고 나면 다시 삶이 즐거워지겠지요?
암튼 이 좋은 건 오복중 하나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