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허무야! -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을 기리며 -
ㅡ 수필의 진미를 만끽케한 나의 수필 대표작 중 하나 ㅡ
*표천 오성건
1950년대 중반 명성을 날렸던 시인이요 수필가 공초
오상순은 본명이 오성해(吳星海), 본관은 해주(海州)
오씨 사인공파(舍人公派)로 필자 오성건(吳星鍵)과
같은 파,학열이기에 문단 등림 75세 늦깎이인 나는
감회가 새롭고 조금은 오금이 저린다.
내가 "오, 허무야!" 를 발표한 시기는 지금은 이승의
남의를 훌훌 벗고 영광의 성의로 갈아 입으시고 홀연
히 하늘나라 하나님 품에 안기신 고 강석호회장님의
수필 지도를 받고 월간 수필문학 천료등단 5년이 되
던 2019년 5월호 수필문학에 실린 수필이다. 작품
발표후 문단 몇몇 선후배 문인들의 독후 벅찬 추임새
전화에 나는 힘을 얻어 수필의 진미를 만끽했다.
한국 모든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건전
한 문화창달을 위하여 방송정책과 방송심의를 통해
방송의 순기능으로 질을 높여 삶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온국민이 웃다가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세워진 법정기구인 일명 방송의 사령탑 방송위원회
방송심의실장으로 있던 1988년5월24일 방송위원
회 회의가 있던날,
시인 김남조 방송위원께서
"바람 세례" 시집에 "吳星鍵先生 惠存 金南祚"
친필 서명후 건네 주시며 "오늘 발간된 저의 시집
입니다" 그 조용한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며 현재
한국원로 작가중 가장 연세가 높으신 김남조시인께
요즈음도 전화로 안부 여쭙고 있고, 근간 출간한 시집
"사람아,사람아" "충만한 사랑"등 세권의 신간 시집을
보내 주셔 높고 깊은 시향에 흥건히 잠기고 있다.
또 지금은 이생에서 만나 뵐수없는 예술원회원이였고
소설가로 방송위원이셨던 이호철방송위원께서 1997
년9월 어느날 새로 출간한 -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
"이호철의 소설창작 강의"를 친히 서명해 주시여 밤
늦도록 읽고 또 읽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정한
세월은 많이도 흘러갔고 지금도 가까이 놓고 조곤
조곤 읽으며 배우고 있다.
필자의 33년 평생 직장이였던 방송위원회는 한국
문단의 기라성 같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시인이며 수필가, "불꽃"선우휘 소설가이며 언론인,
"꽃"의 김춘수시인 등 수많은 문학 거장들의 집합
활동무대였고 그분들과 가까이 함께 건전한 한국
방송의 방향 제시와 순기능을 위해 노심초사 젊음의
열정과 혼신을 다 쏟았던 그때의 기억이 오늘따라
새록새록떠오른다.
방송은 문학으로 빚어내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나의 지금의 시와 수필의 허허로운 문학성도
그때 그시절 잉태된 산물이라 생각되며 나를 다시
태어나도 가고 싶은 그길로 인도하신 창조주께 무지
감사의 정 금할수가 없다.
이제 내 스스로 지난 세월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 나
아갈 이정표를 살피면서 그리 길지 않게 남은 나의
날들을 심오한 통찰력과 생생한 묘사를 담아 시와
수필로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만고에 길이 남을
불멸의 명작을 오늘도 감히 꿈꾸어 본다.
자유시인이며 무소유 공초거사 오상순시인이 남긴
"나는 밤마다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깐다.다음 날 다시 눈을 뜨면 나의 생은 온통 기쁨과
감사감격으로 가득하다" "고맙고 기쁘고 반갑다" 며
너털 웃음을 웃던 그를 생각하며 서울 수유리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공초 오상순의 묘비, 글씨는 박고석이
구성하고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 쓴 공초 오상순의 시
"나와 시와 담배" 로 끝을 맺는다.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표천(瓢泉):조롱박으로 퍼서 먹는 옹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