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승의 禪, 세상과 만나다
‘최중’으로 사는 금강경 지혜
9. 〈반야심경〉과 선 下
연기 사상과 과학적 입증
‘나’란 실체, 무상 드러나
물질 공함을 보면 지혜가
보시에 개인·사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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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반야, 큰 지혜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건너
영원한 행복을 누린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반야심경〉은 큰 지혜의 핵심을 말한다.
중도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반야심경〉에서는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고 말한다.
참 어려운 말이다.
많은 불자들이 이 구절에서 막힌다.
물질과 공이 다르지 않다.
물질이 어떻게 공인가?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불교의 지혜에 눈을 뜨니
어렵더라도 이해할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물질(色)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일체 만물을 말한다.
공(空)은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말하는데
일체 만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을 뜻한다.
흙, 물, 산, 바다 등 일체 물질은
고정된 실체가 없이 인연하여 존재한다.
이것을 연기(緣起)라 하고,
세상 만물이 실체가 없이
인연에 따라 존재하니
‘나’라고 할 것이 없어 ‘무아(無我)’라 한다.
이 우주 만물 중에 고정 불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지구와 태양계를 밝게 비추는
저 거대한 태양도
시시각각으로 불타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에서
당신의 깨달음을 중도라 선언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도법문을
다섯 수행자가 알아듣지 못하자
팔정도, 사성제, 연기, 무아 등
다양하게 표현하셨다.
이것을 눈높이에 맞춘 설법이라 하여
대기 설법 또는 방편 설법이라 한다.
부처님 열반 이후 상좌부승가에서는
중도보다 팔정도와 사성제, 무아법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견해가 편향되어 갔고
대중의 고통을 외면했다.
수백 년이 지나 대승운동을 일으킨
대중부승가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 중도를 복원시키고
연기, 무아를 ‘공(空)’이라 표현한다.
상좌부 승가에서
불교의 근본 중도를
팔정도, 사성제, 무아라는
개념으로만 공부하고 설법하여
법이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자
이를 비판하면서
법조차 공(空)하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이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영원히 해탈한 깨달음은 중도가 근본이고,
그 내용은
팔정도, 사성제, 연기, 무아, 공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이것은 모두 하나다.
성철 스님은
이것을 동체이명(同體異名),
같은 몸으로 이름이 다를 뿐이라 하였다.
이 시대에 불자들이 불교를 공부하여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대자유를 누리려면
불교의 중도, 팔정도, 사성제, 연기,
무아, 무상, 공이
이름은 다르나 하나라는 이치를
바르게 아는 정견을 세워야 한다.
불교의 정견이 서게 되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이 정립되어
비로소 깨달음의 지혜도 나오고
믿음과 발심으로 정진하는 힘이 저절로 난다.
불교 연기·공 세계관과 힉스의 발견
부처님이 깨친
중도, 연기, 무아, 공의 세계관은
현대 과학의 연구 성과와 비슷하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스위스 지하에 거대한 터널을 만들어
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한 결과
‘힉스(Higgs)’라는 물질을 발견했고
2012년 발표했다.
이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물질에 대한 최고의 연구 성과다.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최소 입자의 존재를 주장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1929~)는
이 연구로 2013년 노벨상을 받았다.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힉스는
‘신의 입자( particle)’라고도 하는데,
서양에서 신이 창조한
우주를 이루는 기초물질로 보기 때문이다
(교황청에서는
힉스를 ‘신의 입자’로 부르는 것에 반대하였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힉스는 물질이면서 물질이 아닌
‘반물질(半物質)’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도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와
연기, 공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현대 과학은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힉스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실체가 없으며
여러 최소 입자의 인연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 연기, 무아, 공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현대 과학의 연구도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진리는
현대 과학의 연구와도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연구가 진전될수록
그 진실성이 더 증명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야심경〉으로 돌아와
“물질이 공이고, 공이 물질이다”
는 불교의 진리는 힉스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나와 우주 만물은
여러 물질이 인연으로 연기로 존재하니
고정된 실체가 없어 무상(無相)이고
무아(無我)이며, 그것을 공(空)이라 한다.
나라고 할 실체가 없는 것이다.
무아·공이라고 허무주의는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교를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불교의 공을 허무주의로 보는 견해이다.
중국의 근세 지식인으로 유명한
임어당 같은 분도
불교의 공을 중도로 보지 못하고
허무주의로 오해하였다.
불자들 중에서도
공을 허무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법사나 참선 수행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공을 허무(虛無)로 보고 설법하니
불자들의 가치관에 혼란이 적지 않다.
‘비워라’, ‘놓아라’, ‘이것 밖에 없다’,
‘뭘 그리 애쓰는가?’
심지어는
‘본래부처인데 화두를 왜 하는가?’,
‘화두 참선은 쓸데없는 짓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것을 떠나
고요한 그 자리가 삼매고 선정이다’
등등의 말을 한다.
불교의 공을 중도로 보지 않고,
‘있다-없다’의 없다는
무(無)에 떨어진 안목과 해설은
중도 공이 아니고 허무 공이다.
그런 견해를 부처님은
중도 정견이 아닌 외도(外道)라 하셨다.
중도 공은
‘있다-없다’, ‘시끄러움-고요함’,
‘소유-무소유’ 등 양변에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자유자재함을 말한다.
비우고 내려놓으면 지혜가 나와서
비움과 내려놓음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떠나 고요하고 편안한 것이
도, 공, 삼매라 하면
양변에 떨어진 외도가 된다.
중도 공은
시끄러움도 피하지 않고
고요함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도
고요와 평화가 함께 해야 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곳에서도
성성하고 활발발한 지혜가 나와야 한다.
중도 공은
자유자재함이지 허무주의가 아니다.
물질, 공으로 보면 지혜가 세상 밝힌다
‘물질이 공’이라 정견하면
물질에 집착하지도 않고
무에도 머물지 않는 큰 지혜가 나온다.
코로나 대유행과 지구 기후 이상으로
문명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에도
물질에 집착하여
탐욕스러운 투기를 일삼는 이들은
물질이 공하다는 지혜를 밝혀
‘공수레 공수거’
라는 말을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물질을 버리고
무소유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물질이 공하다는 큰 지혜를 밝히면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사업하고 일하며
그렇게 모은 물질을
세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쓸 수가 있다.
부처님 당시에 큰 부자였던 수닷타 장자가
바로 그런 분이다.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불자가 되어
자기 재산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데 크게 도왔다.
〈금강경〉을 설한 기원정사(제따와나)가
바로 수닷타 장자와 기타 태자가
공동으로 시주한 사찰이다.
우리는 〈금강경〉을 읽을 때마다
수닷타 장자의 시주 공덕을 떠올린다.
현대로 와서
애플의 창업자로 참선 수행자였던
스티브 잡스도 돈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라는 마인드로 사업을 하여
지금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선
동국제강그룹의 창업자
대원 장경호 거사 같은 분이 있다.
대원 거사는
참선을 하다가 큰 체험을 하고는
28세에 ‘사업보국’의 원력을 세우고
철강회사를 창업하여 큰 성공을 이루고
남산에 대원정사를 세우고 시민선원을 열었다.
말년에는
사재 30억 원(현재 시가 3천억 원 추산)을
불교 진흥을 위해 보시해
(재)대한불교진흥원이 설립됐고,
불교방송을 세우는 기반이 되었다.
또 대원 거사의 다섯 째 아들인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부친의 불사 원력을 이어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사재를 기부하여
신라 황룡사 구층목탑을 본떠
황룡원 중도타워를 세워
경주에 새로운 상징을 만들고
불교의 큰 지혜를 밝히고 있다.
1980~90년대
분당 일산 신도시 아파트 건설로
크게 성공한 건영그룹의 엄상호 회장도
서른 개나 되는 건영아파트 단지마다
포교당과 유치원을 건축하여
불교 전법에 기여했고,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
1000억 원대의 대원각을 보시해
길상사 건립을 이끈 길상화 보살도
보시하여 세상을 밝히는 큰일을 하였다.
이와 같이 물질이 공함을 보면
세상을 밝히는 지혜가 나온다.
물질이 공하다는 이치를
생활에서 행하면
무궁무진한 지혜가 나온다.
〈육조단경〉의 애독자인
허구연 프로야구 해설가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힘을 빼고”할 것을 권한다.
야구뿐 아니라
모든 운동도 몸에 힘이 들어가면
긴장되고 경직되어
본래 실력이 나오지 못한다.
몸에 힘을 빼고
평상심으로 연습한대로 하는 것이
제 실력이 나게 한다.
물질이 공함을 보는 큰 지혜는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
내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나와 남이 모두 잘 되게 한다.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74세 윤여정 배우의 언행이
세상에 화제가 되었다.
종교가 없다는 윤 배우의 말은
마치 고승의 법문 같았다.
그중 압권이 이 말이다.
“우리 너무
최고, 1등이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그냥 다 같이 ‘최중’으로 살면 안돼요?”
박희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현대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