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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219년 칭기즈칸은 몽골 사신과 상인들을 죽인 호라즘 왕국을 공격한다. 철수하라! 순식간에 초토화된 호라즘 왕국, 국왕 무함마드 2세는 수도를 버리고 서쪽 카스피해로 도망친다.
무함마드/국왕: 오~ 알라신이여, 도와 주십시오, 날 버리지 마십시오, 오~ 알라 신이여
해설: 이에 저항을 용서치 않는 칭기즈칸의 추격명령이 내려진다.
칭기즈칸: 누구든 감히 칭기즈칸에게 저항하면 그 결과는 죽음 뿐이다! 킵차크를 정벌하고 그들에게 북로를 통해 곧장 몽골 초원으로 돌아오라고 하게~
해설: 몽골 최고의 장수 제베와 수베데이는 3만명의 정예 병을 이끌고 무함마드를 뒤쫓는다. 이후 몽골군은 카스피해 서쪽을 돌아 조지아와 크림반도 그리고 러시아 남부까지 휩쓸어 버린다. 이 추격전은 훗날 몽골제국이 유럽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이 된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지난 주 칭기즈칸이 도망간 왕을 쫓아가라는 그 순간, 우리 이야기가 끝났죠.
이시원/배우: 딱 재미있어지려는데~
최태성/한국사 강사: 칭기즈칸이 이렇게 명령을 내립니다. 호라즘 왕을 추격하라 그를 손에 넣을때까지는 돌아오지 마라. 누구라도 반역하고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제압하라! 이 일을 3년 안에 완수하고 킵차크 초원을 경유해서 돌아와라.
이시원: 무슨 추격전을 3년이나 해요. 3년 동안 달리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잖아요.
최태성: 그것도 말 타고~
최원정: 끝까지 쫓아가라는 칸의 명령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경북대학교 최윤정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교수님, 반갑습니다, 성함이 제 이름과 한 글자 차이인데~ ~최윤정~아까 보니까 추격전이 유럽으로 가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하는데 맞는 얘기예요?
최윤정/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사라는 게 정말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 흐름이 바뀌기도 하는데 1차 유럽 원정 역시 칭기즈칸의 개인의 어떤 집념과 여러 사건들이 만나서 발생하게 됩니다. 무함마드 왕의 추격전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오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최원정: 일단은 우리 궁금증은 방송을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시원: 지금 딱 꽂힌 말이 있어요. 칭기즈칸의 집념~
이익주: 하나의 원칙이죠. 저항하면 안된다. 본보기를 계속 보여주는 건데 술탄 무함마드가 사마르칸트에서 패배하고 도망을 가요. 아까 지도에서도 본 것처럼 서남쪽으로~
최태성: 사실 저는 이 추격 장면만 영화 한 편을 찍어도 되겠다, 제목 <도망자> 그가 어디서 하루만 묵어도 몽골군은 그를 추격해 왔다. 어디서 잤어 자야 될 것 아네요 그러면 또 쫓아 오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추격~추격~ 추격~ 하다가 도망가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지도를 통해서 한번 확인시켜 드릴게요. (테이블에 거대한 중앙 아시아 지도)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 사마르칸트 이쪽부터 추격전이 계속되는 거예요. 계속 쫓아 가는데 어디서 막혔나요?
이시원: 카스피해~
최태성: 그렇죠,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방법은 저쪽에 섬~ 우리 고려시대에 1322년에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강화도로 피했잖아요. 그래서 무함마드는 카스피해 섬으로 피신한 거에요. 그런데 몽골군이 여기 섬까지 쫓아갑니다.
허준: 몽골군은 단단히 무함마드가 싫었나 보네요. 몽골군은 고려 강화도까지는 안쫓아갔잖아요.
최태성: 그런데 그 섬에서 이 추격과 도망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정답은 바로 그 마지막 섬에서 무함마드가 그냥 죽었어요.
이익주: 8개월 동안 도망을 하는데요. 결국에는 병에 걸려 죽습니다. 풍토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마 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망이었을 거예요. 이 무함마드의 죽음으로 한 때 그 지역에서는 가장 강한 나라 호라즘 왕국은 멸망을 합니다.
이시원: 그런데 무함마드가 죽긴 죽었는데 제베와 수베데이가 잡아서 죽인 건 아니잖아요. 칸의 명령은 이행한 걸까요 안한 걸까요? 이건 약간 애매한데요.
최태성: 이런 상황 속에서 제베와 수베데이 같은 경우에는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흩어볼까 하는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칭기즈칸이 뭐라고 명령을 내렸죠?
이시원: 잡고나서 돌아오라고~
최태성: 초원을 돌아가지고 몽골로 오라~ 저쪽 카스피해 위쪽에 킵차크 초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쪽으로 올라가지고 쭉 해서 몽골로 오면 되겠죠. 이게 바로 유럽원정의 도화선이 되는 겁니다.
허준: 유럽 동쪽을 슬쩍 건드리는구나
최원정: 이번에 여기까지 온 거 깊숙히 들어가 보자 한게 즉흥적인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칭기즈칸의 큰 그림 이었을까요? 어떻게 봐야 될까요
최윤정: 왜 칭기즈칸이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왜 제베와 수베데이가 서쪽으로 갔는지 거기에 대해서 사실 현재 학계 정설은 없습니다. 몽골사람들도 왜 갔는지 기록한게 없고 상대 국가에서도 왜 왔는지 잘 모릅니다.
이익주: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네~ 그랬겠지요.
최윤정: 당시 몽골군 병력이 3만 정도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지역정벌을 하겠다는 목적보다는 일단 약탈품이나 전리품을 더 많이 챙겨가고 싶은 의도였을 것입니다. 사실 지나간 곳을 다시 또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반대로 지역에 있는 국가들 중에 그루지아 왕국, 조지아 왕국이라고도 합니다. (조지아 왕국(1008년~1490년)-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킵카스 지역에 위치 오늘날의 조지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건국된 중세 왕국).
허준: 그런데 조지아는 3개가 유명해요. 첫번째는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에요, 두번째는 소련에서 제일 귀한 손님이 오면 접대하는 음식이 조지아 음식입니다.
최원정: 조지아 커피가 유명하고 인류 최초의 와인 생산지가 조지아 라고 합니다.
허준: 세번째는 싸움(?)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왕이 미치면 킵차크로 가서 전쟁한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최태성: 몽골도 잘 싸우는데 (연전연승) 조지아도 잘 싸운다면 (주특기 싸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익주: 이 시기에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예요. 지금까지 몽골이 싸운 나라들은 전부 이슬람 국가였습니다. 처음으로 기독교 국가를 만난 것이고 조지아란 나라가 그 지역의 맹주(킵카스 지역) 였는데 이 전투에서 생각 밖으로 세계 최강 몽골군이 대승을 거둡니다.
최원정: 조지아 왕국이 싸움을 잘 하는 나라라면서 왜 져요?
허준: 제가 싸움을 잘 한다고 했지 더 싸움 잘 하는 나라라고 안했어요.
이시원: 도대체 몽골군이 얼마나 강하길래~
이익주: 조지아 왕국이 이때 거의 멸망 수준으로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시원: 그러면 소문이 팍 퍼졌겠어요. 우리 근처에서 싸움을 제일 잘 하는 나라가 당했다~
최태성: 아래 쪽에 있었던 아제르바이잔은 더 무서운 거예요-항복,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더 서쪽으로 올라가서 심지어는 크림반도 일대까지 휘젓고 다닙니다. 그리고 나서 북쪽 지금의 러시아 공국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최윤정: 러시아 공국의 수장격인 키예프 공국을 중심으로 8만명의 연합군이 지나가는 몽골군의 후미를 공격해서 1천명 정도 전멸시킵니다.
허준: 천명이나 죽였다구요?
최태성; 몽골군을?
최원정: 천명을 잘못건드렸네.
허준: 사신 몇 명 죽였다고 카스피해 섬까지 쫓아갔는데~ 몽골군 천명을 죽였으면 이건 이제 큰일이다.
최태성: 러시아 공국 연합군 8만과 몽골군 3만이 칼가강 전투에서 붙게 됩니다. 칼을 간거지;~
이시원: 지금 몽골군 보다 훨씬 많은 거잖아요. 2배 이상인데~
최태성: 결과가 궁금하시죠? 러시아군은 전멸되다시피 합니다. 이때 기록이 뭐라고 되어 있느냐면 그들 지방의 대부분에서 인적이 사라졌다. 소름이 돋지 않아요?
이익주: 그 당시에 유럽의 기독교 문명 생각을 해보면 최대의 적이 자기들 동쪽에 있는 이슬람 세계였거든요. 소문에 저 멀리 동쪽에서 어마어마한 군대가 이슬람을 공격하고 있대! 이렇게 소문이 돈 거예요.
최태성: 우리 편인가?
이익주: 그렇죠, 아주 옛날 동쪽으로 건너간 우리 기독교 세력이 유럽을 도와주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 군대가 이슬람 세계뿐 아니라 자기들까지 공격을 하잖아요. 이때 몽골군의 실체에 아주 경악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정체불명을 알 수 없는 부족이 찾아왔다. 그들이 누구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타르타르 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타르타르 라는 것이 재미있어요. 몽골 부족중의 하나인 타타르가 있는데~ 이 타타르가 중앙 아시아를 통해서 일찍이 알려졌던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몽골을 타타르 혹은 타르타르 라고 불렀던 건데 마침 라틴어로 지옥이란 말이 타르타로스(Tartarus)~
최원정: 어쩜 그런 우연이~
이익주: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다.
최원정: 타르타르가 달그락~달그락~그 말 발굽 소리와 비슷해 가지고~
이시원: 그런데 조지아나 러시아 민족들도 보통 민족들이 아닌데 졌잖아요. 도대체 몽골군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최원정: 특급 군사전문가를 모시고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박금수/무기 및 전술전략 군사 전문가 무대등장------------
이광용/아나운서: 여러분, 창기즈칸의 몽골군이 1차 유럽원정에서 승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궁금합니다. 이분 아시죠, 오늘도 어김없이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박금수님~
박금수: 빈손으로 오지는 않습니다. 이게 진짜 몽골의 활입니다. 복합궁(複合弓)이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재료가 함께 쓰인 거죠. 중간에 나무가 있죠 안쪽에는 소의 뿔이 있어요. 바깥쪽에는 소의 힘줄이 있어요 (나무+소의 뿔+소의 힘줄). 이걸 당기게 되면 안쪽에서는 눌리니까 밀죠. 바깥쪽에서는 당기니까 당기죠 (활의 탄성을 높인 제작방식). 합쳐져서 탄성, 강한 탄성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최원정: 과학적이다.
최태성: 당겨 볼 수 있어요?
박금수: 빌려 준 곳에서 당기지 말랍니다. 이런 복합궁은 사거리와 정확성도 뛰어나게 만든 활이되겠습니다.
이광용: 올림픽 양궁은 표적거리가 70m 이거든요. 복합궁은 사거리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박금수: 한 500~600m
일동: 네~? 진짜 500~600m를 날아 간다구요?
박금수: 네~ 실제 기록에도 530m까지 뭘 맞추었다는 사료가 있습니다. (칭기즈칸 돌(Genghis Khan’s Stone)-1224~1225년 사이 칭기즈칸의 조카 이숭게가 화살로 약 335야드(약530m) 거리의 과녁을 맞혔다고 새겨져 있음).
최원정: 눈이 워낙 좋기 때문에 앞이 보이는 거예요. 난 지금 100m 앞도 안보이는데~
최태성: 500m 거리가 보인다고?
허준: 이 정도면 대청 마루에서 식사하다가 성 밖에서 쏜 화살이 들어온 거야.
이시원; 유럽에서는 너무 무서워서~ 같이 싸우는데 어디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는다니~
이광용: 13세기 몽골군은 소가죽으로 된 전투복(갑옷)을 입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상대 무기에 다 뚫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심히 듭니다. 몽골군 관계자님~
박금수: 소가죽 갑옷이 가벼워요. 겹쳐놓으면 방어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여기는 없지만 저는 후방에서 활을 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한가지 비법이 더 있습니다. 이 안에 있습니다. (이광용 아나가 박금수씨의 품에서 비단 천을 꺼낸다).
이광용: 이게 뭐야, 왕서방이 팔았다던 비단? 대국(大國)이라 취향도 고급인 거지~전투를 하면서 군인들이 승리를 기원하며~
박금수: 취향이나 미신,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은 생존을 위해서 입었던 것입니다. 갑옷을 뚫고 내복을 뚫고 내 몸에 화살촉이 박힐려고 할 때 요게(비단천) 하나 있으면 관통을 막아주는 거예요.
최원정: 저도 비단 옷이 소재인데 실크 옷이 얼마나 얇은데~
박금수: 진짜 한번 쏴 볼까요? 제가 화살로 한번 쏴 볼까요. 화살로 한번 쏴 보겠습니다.
박금수: 화살을 쐈다 (비단이 뚫렸음).
이광용: 몽골군 A병사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화살을 비단이 살짝 감싸요. 그리고 우리 제작진! 앞에 소가죽 갑옷을 대줬어야지! 소가죽 갑옷을 뚫었다 할지라도 안에 비단이 있기 때문에, 이중방어효과가 있습니다. 저희가 말씀 들였잖아요. 마지막 화살촉을 살짝 감는다 (소가죽 갑옷+비단=이중 방어효과).
허준: 여기는 거리가 실제 3m 이상 거리에서 쐈는데~ 실제 100m 이상 거리에서 쐈는데 그게 회전하면서 오거든요. 날라갈 때 회전을 더 많이 하면서 오거든요. 그러면 뚫고 들어갈 때 상처를 벌리면서 들어간다구요. 저 비단 속옷은 저걸 감싸 주니까 상처가 뚫리는 걸 막아주는 거죠(화살촉의 회전을 감소시키는 비단).
이광용: 갑옷 그리고 아래에 비단, 비단이 화살촉의 회전율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최원정: 굉장히 과학적인 원리가 있네요.
박금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몽골군의 비장의 무기는 또 하나 있어요. 그것도 여기 저한테 있습니다(갑옷을 입고 있음).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든 것). 바로 이것입니다.
일동: 뭐예요? 그게~육포?
박금수: 네, 보르츠라고 부르는 몽골식 육포가 되겠습니다. 원정을 떠날 때 먹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대규모 보급부대가 함께 이동하기 마련인데~이 몽골군에게는 보르츠가 있었어요. 그래서 때로 보급부대 없이 단독으로도 움직일 수가 있었던 겁니다.
이시원: 보급이 따로 더 필요가 없는~기동성이 좋은 병사들이었네요.
이광용: 아~ 이~ 보르츠 제가 좀 알죠~ 제가 누굽니까. 매일 토요일 아침 세계여행가는 남자 아닙니까. 제가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보르츠 라고 한다. 보르츠는 양이나 소고기를 초원의 바람에 건조해 만든 몽골음식이다. 이렇게 잘 말린 고기를 소의 방광에 넣어서 말 안장 밑에 넣고 다닌다. 그럼 계속 고기가 눌리니까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먹고 육포 가루가 남으면 물에 불려 먹는다. 포만감 때문에 전투식량으로 그만이란다.
최윤정: 몽골이 호라즘 원정을 나갈 때 군인 10명을 기준으로 해서 양 3마리에서 3마리 반정도를 저렇게 해서 육포를 만들어서 출정을 나갔고요. 병사 한 명당 실제로 장거리 이동에서는 자신들이 데리고 가는 말젖을 병사 한 명당 5~8 마리의 말젖을 계속 섭취를 하고 겨울에는 풀이 없어서 말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분말 마유(馬乳)를 오전에는 물에 불려두면 저녁엔 죽이되는 것을 먹었습니다.
최원정: 전쟁 중에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는게 힘든 일인데 몽골군은 계속해서 육포에 마유에 단백질을 계속 섭취했어요.
이시원: 800년전 몽골군은 이미 전투식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네요.
박금주: 이런 점들이 바로 몽골군들이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가 되겠습니다.
이광용: 장거리 원정에 특화된 식량과 실용적인 무기,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유럽에서도 그 악명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박금수~이광용~ 이었습니다----------------
최원정: 아무튼 몽골군의 승리의 기법을 알아 보았는데 무엇보다도 적을 끝까지 쫓는 칭기즈칸과 몽골군의 집념이 아닌가 싶어요
이익주: 그래서 제베와 수베데이의 3만이 3년 동안 1만km를 돌파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때의 경험이 10년 뒤 몽골이 동유럽을 침공할 때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이 지역이 전부 점령 당하는데 여기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이때 획득하게 됩니다. 지형이 어땠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어떤 생산품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한번 보고 오게 되는 거죠. 이제 뭔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벌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최원정: 호라즘 왕국을 정복하고, 1차 유럽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오는데 1년뒤 또 다시 정벌에 나서는 상황이 생깁니다.
해설: 호라즘 왕국 정복 1년 뒤인 1226년 칭기즈칸을 분노케 한 소식이 들려온다. 복속되어 있던 서하의 배신이었다.
군인: 대칸, 대칸이 원정을 하자 (서하가) 바로 금나라와 결맹을 맺고 나서 초원 각 부족들과 대칸에 맞서겠답니다!
칭기즈칸: 서하가 또 배신했군. 서하 왕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해설: 배신을 절대 용서치 않던 칭기즈칸,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최원정: 또 끝까지 가는 상황이 생겼어요. 서하의 배신! 제일 싫어 하잖어요. 서하는 몽골의 속국이 아닌가요?
최윤정: 이미 1218년에 몽골의 원정으로 서하는 힘의 굴복으로 항복을 했습니다. 근데 이 직전에 호라즘 원정이 있었는데 여기에 군대를 지원해라 라는 요구를 했는데 서하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이시원: 배신을 한 두번 한 게 아니에요. 동맹군도 안 보내고 거기다가 금 나라와 손잡고 대항하겠다고 했지 도대체 뭘 믿고 한 건가요?
이익주: 그런데 우리는 서하가 몽골을 배신했다고 말 하지만 서하의 생각은 전혀 달랐어요. 왜 우리가 그걸 해야되지 당장 몽골군이 코 앞에 있을 때는 그것을 하겠다고 해서 평화를 유지하지만 몽골군이 먼 지역에 가서 전쟁을 하고 있을 때 그 약속을 내가 왜 지켜야 하지 당연히 생각하는 거죠. 우리 고려도 마찬가지 였죠. 서하의 그 판단은 어찌보면 옳아요. 칭기즈칸이 호라즘에 가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죠. 당연히 그렇게 했던 것인데 뜻밖에도 또는 불행하게도 호라즘이 멸망하고 칭기즈칸이 돌아오는 일이 생긴 거죠. 그러면서 서하에 대해서는 배신에 대한 보복, 2배의 보복이 가해지는 겁니다.
최원정: 이때 칭기즈칸의 나이가 60이었다면서요. 보통 우리 60이라고 하면 耳順 이라고 귀가 순해진 다고 하는데 성격 아직 안 죽었습니다. 몽골군을 이끌고 서하로 갔는데 이때 몽골군의 역사를 뒤흔드는 아주 큰 일이 생깁니다.
해설: 칭기즈칸이 서하 원정 중이던 1227년 칭기즈칸에게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칭기즈칸이 달리던 말에서 낙마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죽음이 임박해 오자 칭기즈칸은 자신의 아들과 장수들에게 마지막 뜻을 전한다.
칭기즈칸: 서하 왕이 시간을 정해 투항하러 오면 다시는 돌려 보내서는 안돼. 다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만 한다. 그리고 ????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 됐어…이젠 다 됐어…
해설: 인류 최대의 정복군주, 칭기즈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최원정: 칭기즈칸이 말에서 떨어져서 죽는다구요?
허준: 걷기 전 말부터 탄다라는 칭기즈칸인데~
최원정: 칭기즈칸의 죽음과 관련해서 몽골 비사에서는 한 줄로 기록하고 있다. 서하 탕구트 사람들에게 칭기즈칸이 두번째로 원정하여 무찌르고 돌아와 돼지해 (1227)에 하늘로 올랐다 <몽골비사> 제12권中. 구체적 사유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낙마로 인한 사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화살에 맞았다 독살 당했다 라는 여러설이 있는데 60대에 전투에 참전하다가 화살을 맞았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낙마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한데 그러면 왜 이걸 숨겼을까. 몽골 유목민들은 걸음마를 배우기 전에 말을 탄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낙마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이 아닌가~
최태성: 서하 원정 승리를 불과 며칠을 남겨둔 상태였다. 당시 서하 왕은 투항을 밝혔고 시간을 주면 도시로 나온다 라는 얘기를 한 상태예요. 그런데 이때에 칭기즈칸이 유언 속에 XXXXXX(삐리 삐리 삐리)
최원정: 묵음처리 됐어요. 그걸 우리 보고 맞추라고 하는 거죠?
최태성: 과연 칭기즈칸은 유언으로 어떤 말을 했을까요?
허준: 서하인을 나와 같이 다 묻어버려라 서하에 있는 수십만 국민을 다 내 무덤에 묻어 버려라.
최태성: 정답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유언-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일동: 그건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죠.
칭기즈칸: 나의 죽음을 적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최태성; 그리고 절대로 애도 하거나 곡을 하지 마라 이유를 아시겠어요? 감이 오세요?
허준: 그러면 항복하기로 했던 서하 왕이 항복을 안 할 수 있어요.
최태성: 그렇죠,
이시원: 제갈량도 비슷하게 했잖아요. 자기 죽음을 알리지 말고 끝까지 전투가 계속 되게 했잖아요.
최태성: 그렇지~ 칭기즈칸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죽었지만 기다리고 있으면서 나오면 어떻게 하라? 다 죽여라.
이시원: 결국은 배반한 나라를 끝까지 처단하기 위해서 칭기즈칸은 죽음까지 숨겼어요. 그리고서는 결국 서하, 얼마나 싸그리 쓸어 버렸는지 그 후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들었거든요.
허준: 정말 끔찍하게 서하 쪽을 싹 쓸어 버리라 는 유언도 남겼지만 또 다른 유언이 있습니다. 자식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유언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일년이 걸릴 수 있는 광활한 땅을 너희 자식들을 위해 내가 남겨둔다. 그렇지만 우리는 불효자가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한 10초 걸리는 거리 정도의 땅만 남겨 주신다면~
이시원: 육상선수들은 10초면~
최원정: (허준씨를 향해) 욕심이 많네, 10초씩이나
최태성; 칭기즈칸 사망 당시 몽골제국의 영토가 황하 이북에서 카스피해 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영토인데 말 타고 일년은 걸릴 거예요.
허준: 보통 사람은 1년 안에 못가요. 몽골 사람이나 말 타고 1년 안에 가지~
최태성: 그러니까 칭기즈칸의 2세들은 정말 몽골의 금수저 출신이다.
최원정: 칭기즈칸은 정말 고생 고생 하다가~ 유년기 때 그렇게 어려웠지~ 통일하고 나니까 정복전쟁 했지~ 허망하게 죽은 거 아네요.
이시원: 그리고 애도도 못받고 대우도 못받고 죽은 느낌이에요.
최원정;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칭기즈칸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면서요.
최태성: 그게 진짜~
이광용: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칭기즈칸의 이 유언 때문에 지금 까지도 그의 죽음에 관련해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단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몽골의 성산이라고 불리는 부르칸 칼둔산이 있는데요. 거기라고 그냥 짐작만 할 뿐입니다. (부르칸 칼둔산-몽골 헨디 지방에 있는 해발 2,445m의 산, 칭기즈칸의 출생지이자 몽골인들에게는 전설의 산으로 알려짐). 그리고 정복으로 얼마나 많은 보물을 얻었겠습니까. 그 보물들이 칭기즈칸과 함께 묻혀 있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나요. 그래서 세계의 여러 고고학자들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겠다고 나섰는데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최태성: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구나.
이광용: 라시드 붓딘의 집사에는 칭기즈칸의 관을 운반할 때 마주친 모든 피조물을 다 죽여 버렸다.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시원: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게 할려고요?
최원정: 비밀에 부칠려고~ 사람들도 다 죽였다구요, 사람+동물 모든 피조물을 살육.
이광용: 그리고 무덤을 조성한 뒤에 수백 마리의 말을 달리게 해서 그 위를 평탄하게 만들고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들어 버렸데요.
최원정: 그러니 못찾지요.
이시원: 그럼 숲을 찾으면 되는 건가요?
이광용: 심지어 장례식을 지켜본 사람들을 다 죽였구요 그 사람들을 죽인 친위대 50명을 다른 친위대 50명이 죽였구요. 그 친위대를 또 다른 친위대가 죽였구요. 왜? 무덤의 위치를 그 누구도 모르게 하려고~ 개미 한 마리도 모르게 하려고~
허준: 두번째 친위대 부터는 억울한데요
이시원: 이게 진짜 그렇게 했다고 숨겨질까요?
최원정: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어요. 누군가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분을 모셨습니다. 비밀의 문을 열어주세요.
--------------과연 비밀의 방에는 누가 있을까?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에서 왔습니다. 저는 토리입니다. 토리/학생--------------------
최태성: 아니 어떻게 무덤 위치를 알려 주러 오신 거예요?
토리/학생: 저희도 정말 몰라요. 예전에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탐사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그리고 1992년 미국의 유명한 변호사 모리 크라비츠는 20년 동안 약400만 달러(50억)를 투자를 했는데 그것도 결국 못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 탐사 대원 중에서 많은 사고로 병 걸리고 해서 칭기즈칸의 저주가 있나 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최원정: 투탕카멘의 저주처럼~ 무령왕릉 발굴 때도 죽음의 기운이~ 으스스한 거~
이광용: 제가 몽골 사람이면 칭기즈칸이 몽골의 가장 위대한 조상이잖아요. 그러면 찾아볼 것 같애요.
토리: 근데 사실 몽골 사람들이 못찾는게 아니라 안 찾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애요. 친근한 저희한테는 완전히 신적인 존재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분 죽기 전에 무덤을 숨겨 달라고 했으니까 저희도 그 유언을 지킬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이광용: 칭기즈칸은 몽골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어느 정도의 크기에요?
토리: 너무 커요!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의 기마동상 등장). 몽골의 자랑이죠, 완전 자랑이고 Pride of Mongolia 저희는 어렸을 적부터 역사서 <몽골지사> 있잖아요. 그걸 다 외우고 살아요.
이광용: 그럼 한번 보여 주실 수 있으세요?
토리: 하늘에서 태어난 칭기즈칸의 뿌리,
부르테 치노 (잿빛 푸른 이리)와
그의 아내 코아이 마랄 (흰 암사슴)은
바다 (텡기스)를 건너와
오난 강의 발원인 부르칸 성산에 터를 잡으면서
바타치 칸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이광용: 다 알아들으셨죠? 그리고 토리씨가 특별한 물건을 가져왔다고 하거든요. 이것은 무슨 노트 같기도 하고? 책 같기도 하고?
토리: 이거는 저희 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 교과서예요. –몽골 10학년 역사 교과서--
이광용: 여기 보면 몽골영토 나와 있고
토리: 표지에 칭기즈칸~
이광용: 그리고 지폐가 이게 다 똑 같아요. 5장의 서로 다른 지폐, 다 칭기즈칸 초상화가 똑 같아요. 똑 같은 거 아녜요?
토리: 아녜요, 여기 500투그륵(화폐단위), 1000, 5000, 10000, 20000
이광용: 색깔이 좀 다르고요. 모든 지폐에 다 칭기즈칸 모습이 계셔가지고~ 모든 지폐를 칭기즈칸으로 통일했어요.
이시원: 몽골은 국제공항 이름도 칭기즈칸 국제공항 이라면서요?
토리; 맞아요.
이시원: 온갖 훌륭하고 중요하고 위대한 건 다 칭기즈칸 이름을 부치는 것 같애요.
토리: 네, 몽골사람에게 칭기즈칸이 이런 의미인 걸 잘 알겠지요.
이광용: 오늘 칭기즈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몽골에서 오신 토리씨 감사합니다.
해설: 호라즘 원정을 떠나기 전 칭기즈칸은 후계자 논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예수이 카툰/칭기즈칸의 세번째 부인: 대칸, 세상 그 누구도 불로장생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장생신만이 가능해요.
장수: 대칸은 불로장생하실 거야!
예수이 카툰: 대칸, 60 고령인데 원정에 오르시면 뒷일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을 떠나시기 전에 후계자를 정해야 나머지 자식들과 모든 백성들, 그리고 저희도 대칸의 뜻에 따를 수 있습니다.
칭기즈칸: 좋아, 그러지, 조치, 넌 장남이니 어디 네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봐라.
조치/칭기즈칸의 장남: 네~
차가타이/칭기즈칸의 둘째 아들: 아버지! 조치를 불러낸 것은 몽골을 이 메르키트 잡종에게 물려주려는 겁니까?
조치/칭기즈칸의 장남: 아버지도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네가 뭔데,, 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메르키트 족의 핏줄이 섞인 잡종이라는 거야!
차가타이: 네 출생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 직접 들은 거야!
부르테/칭기즈칸의 첫째 부인: 차가타이, 닥치지 못해! 그게 무슨 헛소리냐!!
조치: 차가타이! 너 방금 한 말의 대가를 치러야 해
차가타이: 좋아 덤벼라! 누가 겁날 줄 아느냐!
칭기즈칸: 그만 해!
최원정: 굉장히 살벌한 가족회의 예요. 출생의 비밀이 나오고~
이익주: 호라즘 원정을 가는데 그때 이야기 입니다. 1217년에 죽으니까 8년전 이지요. 아직 칭기즈칸이 건강할 때 이니까 죽기 8년전 일입니다. 이건 사실 우리로서도 금기사항이고 그 당시 몽골에서는 더 그랬을텐데 누군가는 이 말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세번째 부인입니다. 예수이 카툰 (타타르부 출신의 칭기즈칸의 세번째 부인) 이라고 하는 그 당시 칭기즈칸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인데 이 부인이 저 말을 한 거예요.
이시원: 제가 알기로는 칭기즈칸의 부인이 500명까지 됐다. 요즘 유전자 조사를 해보면 몽골제국의 남자의 8%가 후손 정도는 칭기즈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익주: 칭기즈칸의 아들이 넷이 있었어요.
이시원: 왜 네명 밖에 없는 거죠?
이익주: 첫째 부인 부르테 카툰이 낳은 아들이 넷인데 그 넷 중에 한 명을 후계자로 결정을 할려고 하는 거죠 (칭기즈칸과 부르테의 가계도/장남 조치, 차남 차가타이, 3남 우구데이, 4남 툴루이). 그러다 보니까 예수이 카툰은 아주 부담없이 저 얘기를 꺼낼 수 있을 겁니다.
이시원: 정실의 아들만 왕위 계승이 가능~
최태성: 부르테의 아들들을 보면 첫째 장남 조치, 차남 차가타이, 3남 우구데이, 4남 툴루이 인데요. 지금 싸운게 장남하고 차남하고 싸우고 있는 거에요. 예전에 얘기했지만 장남 조치 같은 경우는 칭기즈칸의 아픈 손가락이잖아요. 엄마가 납치되었다가 구출되어 낳은 아이이기 때문에~ 넌 누구니? 할 때 항상 상처를 받을 수 있는~
허준: 그걸 저 위엄한 자리에서 둘째가 위험한 발언을 해서~
최윤정: 그래서 납치되었다가 아내를 찾아와서 낳은 아들인데 메르키트의 사생아가 아닐까 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이 아들을 차별한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원정: 아버지는 첫째 아들을 인정하고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둘째가 나서서 이야기 하는게 이해가 안가요.
최태성: 그런데 이 싸움은 두 아들의 싸움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몽골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굉장히 큰 싸움의 출발이 됩니다. 여기에서 조치와 차가타이의 싸움, 이것이 손자대에 까지 계속 몽골제국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내분과 내전을 겪게 되는 그런 출발이 돼요.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시원: 칭기즈칸은 정말 차별 없이 키웠고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아들 둘이 아버지 앞에서 싸웠으니 화가 엄청나서 엄히 꾸짖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나요?
이익주: 가만히 두고 보죠. 칭기즈칸은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차가타이가 갑자기 그러면 우구데이로 합시다. 이러구 나온 거예요. 우구데이야 말로 온후합니다. 우구데이를 지명합시다. 갑자기 이렇게 제안을 해요. 이 우구데이 셋째는 온화해요. 그래서 우구데이가 어부지리를 차지하는 거잖아요.
칭기즈칸: 우구데이, 칸을 계승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구데이: 아버지께서 저를 지명하신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일동: 웃음
이익주: 이래서 은연 중에 차가타이와 우구데이가 손을 잡고 툴루이가 두 사람에 반대하면서 조치와 뭔가 연결이 되는 이런 네 아들이 둘로 갈라지는 일이 이 자리에서 생깁니다.
이시원: 셋째 우구데이는 은근히 능글맞기는 하네요 이렇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진짜 운이 너무 좋은 거 같애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는데 이건 이 큰 제국을 얻게 되었는데~
최태성: 고래 싸움에 고래 둘 다 죽어서 먹이가 많이 생겼어
최원정: 두번째 대칸으로 즉위한 우구데이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전쟁을 시작하는데요. 어떤 유언이었을까요?
해설: 임종 직전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에 대한 유언을 남긴다.
칭기즈칸: 첫째로 금나라는 남쪽은 산이고 북쪽은 강이라 치기가 어려우니, 송나라와 금나라는 서로 견원지간이니 송과 타협해서 북쪽을 통해 진격하면 동관은 와해될 것이고 우리 선조이신 암바가의 칸의 유물을 찾아올 수 있을 거야 흠~흠~
해설: 몽골 제국의 두번째 칸 우구데이는 아버지 칭기즈칸의 뜻에 따라 숙적 금나라로 향한다. 칭기즈칸이 남겨둔 마지막 정복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최원정: 금나라는 역시 몽골의 속국이 아닌가요? 이미 한번 짓밟아버린게 아니었어요?
이익주: 넓은 땅을 짓밟을 수는 없었고요. 칭기즈칸이 살아 있을 때 금 나라를 한번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 중도(베이징)를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내요 (1215년).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몽골의 전쟁이 약탈을 위한 것이었잖아요. 금 나라로부터 황금, 비단, 인질, 말 등을 제공받기로 약속을 하고 철수를 했어요 몽골에서는 항복이라고 생각을 했을 거고 금 나라에서는 화친 또는 강화 정도로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몽골군이 돌아가자 마자 금 나라가 수도를 황하 이남으로 지금의 개봉(카이펑)으로 옮겨 버립니다. 황하를 방어선으로 해서 싸우자는 이야기 잖아요. 칭기즈칸도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합니다. 배신했다. 그래서 다시 공격을 해야 되는 데 그때 호라즘에서 상인이 죽은 거예요. 그래서 칭기즈칸의 군대가 금 나라를 다시 공격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가서 금 나라 공격할 새가 없었던 거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서하, 또 거기를 공격하다가 전장에서 죽은 거죠. 다시 얘기 해서 칭기즈칸 때 금 나라를 손 봐야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이시원: 근데 반항하면 칭기즈칸이 봐주지 않찮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기침 쿨럭 쿨럭 하면서 까지 자식들한테 금나라 정복을 완수해라 명령을 내렸잖아요.
최윤정: 이 단계에 금은 황하와 동관이라고 하는 지리적 이점에만 의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알려진 전략이 남송과 연합할 수 밖에 없는 동관을 우회하려면 송의 영토를 지나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송 입장에서 봐도 금 나라가 자기네 영토를 빼앗은 원수였기 때문에 능히 협의가 가능한 상태였죠.
이시원: 남송하고 금은 견원지간 이었으니까 꿀팁을 자식들한테 알려주었군요.
최원정: 동지다 잘 활용해라.
최태성: 금나라를 치기 위해서 남송과 연합을 해가지고 북, 서, 남 세 방향으로 협공해서 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금군이 굉장히 우왕좌왕 하고 밀리죠. 1232년 2월 몽골군과 금군이 삼봉산 전투에서 맞붙습니다. 그리고 삼봉산에서 금군 주력 15만을 전멸시킵니다. 이렇게 되면서 금 나라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금의 마지막 왕 애종은 자살을 하죠. 1234년 금의 역사는 이렇게 무너지게 됩니다.
이시원: 그런데 참 어떻게 보면 이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참 잘 따른거 같아요. 칭기즈칸이 어떻게 보면 금을 약탈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우구데이는 금을 멸망시켜 버렸어요.
최윤정: 그래서 금나라가 만약 칭기즈칸 때 멸망을 했더라면 사실 또 어떻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 볼 수도 있는데 우구데이 아들이 금을 멸망시키는데 20년이 넘게 시간이 걸렸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게 칭기즈칸의 칸(Qan)에서 우구데이는 카안(Qa’an)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합니다. 길게 카안~우구데이의 카안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칭기즈칸은 유목민의 군주이데 우구데이는 농경민을 아우르는 보편군주 유일무이, 칸 중의 칸, 카안의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라고 학자들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이 몰락하고 화북을 다 점령하게 되었는데 베이드 라는 몽골 귀족이 한인들을 다 쫓아내고 목장을 만들자. 그런데 야율초재 라는 사람이 이걸 말렸어요. 한인들을 살려두고 세금을 걷자. 그러면 더 이득이 된다.
허준: 사실 칭기즈칸이 정복전쟁을 할 때 문명을 싸그리 밀어내고 다 태워버리잖아요. 그게 목축지대 만들려고 그냥 말 먹이 풀만 있으면 되니까 야율초재는 이거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선 안 된다. 어떻게 보면 금 나라 백성을 구한 몽골판 쉰들러 리스트 같은 느낌이 들어요. 주민 수십만을 살린 거예요.
이시원: 몽골 제국 자체를 업그레이드한 느낌이에요.
이익주: 우구데이 시대부터 몽골의 국가적인 성격이 달라져요. 그 이전에는 약탈하는 유목국가였다면 이때부터는 정주지역까지 정복하고 통치하는 국가 그래서 농경정주 지역과 초원 유목지역이 두 개의 바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이전에는 유목 초원의 하나의 바퀴로 가는 나라였다면 이제 두 바퀴로 굴러가게 되는 나라가 된 거죠. 이렇게 되는 데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어요. 거란 사람이죠. 야율초재는 정부지역에서는 통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몽골 사람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야율초재 (1190~1244)-거란 출신의 몽골제국 정치가이자 지식인). 위구르 사람들을 비롯해서 색목인들은 몽골에게 돈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줍니다. 재정이라는게 중요하고 이 재정을 어떻게 계획해 나가고 운영해 나가는지를 알려주고 직접 자기들이 그 역할을 해요. 여기서 대단한 것은 배척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갔다 쓸 줄을 알았다는 것인데 몽골이 이제 두 바퀴로 굴러가는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이시원: 말을 아무리 잘 타도 자전거를 따라 갈 수가 없잖아요. 자전거가 얼마나 뻗치게 될지 다음에 기대가 돼네요.
최원정: 오늘 아무튼 칭기즈칸에서 우구데이로 넘어가는 몽골 제국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소회 한 마디씩~
허준: 아까 농담삼아 얘기했지만 칭기즈칸은 아들에게 일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대한 영토를 나눠주겠다고 말했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어떤 주제를 던져 주던 간에 일년은 떠들 수 있는 머리와 입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습니다.
최원정; 속으로는 지금 아이 부러워~ 아이 부러워~
이익주: 저는 몽골의 전쟁을 이야기 하면서 그 침략을 우리도 받았어요 라고 하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어요. 몽골의 고려 침략이 시작되었던 게 바로 우구데이 카안 때에요. 이래도 우리가 몽골의 이 행동을 정벌, 응징, 원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역사를 볼 때는 우리 입장, 상대방의 입장 그리고 이 두개의 입장을 포괄하는 객관적인 입장,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면서공부를 해야 되는게 아닌가.
최원정: 용어 정리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녹화해야 될 것 같애요. 2대 카안 우구데이의 몽골제국은 본격적으로 유럽을 향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으로 이어 가도록 하죠. 끝. (KBS 역사저널 그날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3편 칸의 명령, 끝까지 추격하라 에서 인용).
① 1219년 칭기즈칸은 몽골 사신과 상인들을 죽인 호라즘 왕국을 공격한다. 철수하라! 순식간에 초토화된 호라즘 왕국, 국왕 무함마드 2세는 수도를 버리고 서쪽 카스피해로 도망친다. 누구든 감히 칭기즈칸에게 저항하면 그 결과는 죽음 뿐이다! 킵차크를 정벌하고 그들에게 북로를 통해 곧장 몽골 초원으로 돌아오라고 하게~ 몽골 최고의 장수 제베와 수베데이는 3만명의 정예 병을 이끌고 무함마드를 뒤쫓는다. 이후 몽골군은 카스피해 서쪽을 돌아 조지아와 크림반도 그리고 러시아 남부까지 휩쓸어 버린다. 이 추격전은 훗날 몽골제국이 유럽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이 된다. 칭기즈칸이 명령을 내립니다. 호라즘 왕을 추격하라 그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돌아오지 마라. 누구라도 반역하고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제압하라! 이 일을 3년 안에 완수하고 킵차크 초원을 경유해서 돌아와라.
② 몽골군은 무함마드를 추격해 갔다. 어디서 잤다 그러면 추격 이렇게 추격~추격~ 추격~ 계속 도망갔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사마르칸트부터 계속 추격전이었는데 어디서 막혔나. 카스피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방법은 저쪽에 섬~ 1322년 고려시대에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강화도로 피했다. 무함마드는 카스피해 섬으로 피신하였다. 몽골군이 섬까지 쫓아갔다. 그 섬에서 이 추격과 도망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마지막 섬에서 무함마드가 그냥 죽었다. 8개월 동안 도망 갔는데 결국에는 병에 걸려 죽었다. 풍토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아마 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망이었다. 이 무함마드의 죽음으로 그 지역에서는 가장 강한 나라 호라즘 왕국은 멸망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베와 수베데이는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흩어볼까 하는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칭기즈칸이 명령을 내렸다, 초원을 돌아가지고 몽골로 오라, 저쪽 카스피해 위쪽에 킵차크 초원을 돌아서 올라와 가지고 쭉 몽골로 오면 된다.. 이게 유럽원정의 도화선이 되었다. 유럽 동쪽을 통과하게 되었다.
③ 여기까지 온 거 깊숙히 들어가 보자. 왜 칭기즈칸이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왜 제베와 수베데이가 서쪽으로 갔는지 거기에 대해서 학계 정설은 없다. 몽골사람들도 왜 갔는지 기록한게 없고 상대 국가에서도 왜 왔는지 모른다.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당시 몽골군 병력이 3만 정도였기 때문에 지역정벌을 하겠다는 목적보다는 약탈품이나 전리품을 챙겨가고 싶은 의도였다. 지역에 있는 국가들 중에 그루지아 왕국(1008년~1490년) 오늘날의 조지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건국된 중세 왕국과 전투에서 몽골군이 대승을 거둔다. 이 시기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다. 지금까지 몽골이 싸운 나라들은 전부 이슬람 국가였다. 조지아는 그 지역의 맹주(킵카스 지역)였는데 생각 밖으로 세계 최강 몽골군에게 대패를 했다. 도대체 몽골군이 얼마나 강하길래, 조지아 왕국은 거의 멸망 수준으로 타격을 입었다. 소문이 팍 퍼졌다. 우리 근처에서 싸움 제일 잘 하는 나라가 당했다.
④ 아래 쪽에 있었던 아제르바이잔은 미리 항복을 했다. 더 서쪽으로 올라가서 크림반도 일대까지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북쪽 지금의 러시아 공국들이 많이 있는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러시아 공국과 키예프 공국의 8만 연합군이 지나가는 몽골군의 후미를 공격해서 1천명 정도 전멸시켰다. 몽골군 3만명과 러시아 공국 연합군 8만이 칼가강 전투에서 붙었다. 결과는 러시아군이 전멸되다시피 대패하였다. 이때 기록은 그들 지방의 대부분에서 인적이 사라졌다. 그 당시에 유럽의 기독교 문명의 최대 적은 동쪽에 있는 이슬람 세계였다. 소문에 저 멀리 동쪽에서 어마어마한 군대가 이슬람을 공격하고 있대! 이런 소문이 돌았다. 아주 옛날 동쪽으로 건너간 우리 기독교 세력이 유럽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군대가 이슬람 세계뿐 아니라 자기들까지 공격을 하니까 몽골군의 실체에 아주 경악했다. 그래서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정체불명을 알 수 없는 부족이 찾아왔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타르타르 라고 부른다. 그런데 몽골 부족중의 하나인 타타르가 있는데 이 타타르가 중앙 아시아를 통해서 일찍이 알려졌던 거다. 유럽은 몽골을 타타르 혹은 타르타르 라고 불렀는데 라틴어로 지옥이란 말이 타르타로스(Tartarus)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다.
⑤ 조지아나 러시아 민족들도 보통 민족들이 아닌데 도대체 몽골군이 어떻게 해서 강할 수 있을까. 창기즈칸의 몽골군이 1차 유럽원정에서 승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궁금했다. 몽골의 활을 복합궁(複合弓)이다. 여러가지 재료가 함께 쓰인다. 중간에 나무가 있다 안쪽에는 소의 뿔이 있고 바깥쪽에는 소의 힘줄이 있다 (나무+소의 뿔+소의 힘줄). 이걸 당기면 안쪽에서는 눌리니까 밀죠. 바깥쪽에서는 당기니까 당긴다 (활의 탄성을 높인 제작방식). 합쳐져서 강한 탄성을 만들어낸다. 과학적이다. 이 복합궁은 사거리와 정확성도 뛰어나게 만든 활이다. 사거리 한 500~600m까지 맞추었다.
⑥ 13세기 몽골군은 소가죽으로 된 전투복(갑옷)을 입었다 이게 상대 무기에 다 뚫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몽골군 소가죽 갑옷은 가벼워서 겹쳐놓으면 방어력이 만만치 않다. 여기는 한가지 비법이 더 있다. 비단 천이다. 생존을 위해서 입었다. 갑옷을 뚫고 내복을 뚫고 내 몸에 화살촉이 박힐려고 할 때 비단천이 있으면 관통을 막아준다. 소가죽 갑옷을 뚫었다 할지라도 안에 비단이 있기 때문에, 이중방어효과가 있다. 마지막 화살촉을 살짝 감는다 (소가죽 갑옷+비단=이중 방어효과). 실제 100m 이상 거리에서 쐈는데 그게 회전하면서 온다. 날라갈 때 회전을 더 많이 하면서 온다. 그러면 뚫고 들어갈 때 상처를 벌리면서 들어간다. 그때 비단 속옷은 저걸 감싸 주니까 상처가 뚫리는 걸 막아준다 (화살촉의 회전을 감소시키는 비단). 갑옷 그리고 아래에 비단이 화살촉의 회전율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굉장히 과학적인 원리가 있다. 몽골군의 비장의 무기는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육포 보르츠라고 부르는 몽골식 육포다. 원정을 떠날 때 먹어야 된다. 대규모 보급부대가 함께 이동하기 마련인데 몽골군에게는 보르츠가 있었다. 그래서 따로 보급부대 없이 단독으로도 움직일 수가 있었다.
⑦ 보르츠는 양이나 소고기를 초원의 바람에 건조해 만든 몽골음식이다. 잘 말린 고기를 소의 방광에 넣어서 말 안장 밑에 넣고 다닌다. 그럼 계속 고기가 눌리니까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먹고 육포 가루가 남으면 물에 불려 먹는다. 포만감 때문에 전투식량으로 최고다. 몽골이 호라즘 원정을 나갈 때 군인 10명을 기준으로 해서 양 3마리에서 3마리 반 정도를 육포로 만들어서 출정을 나갔다. 병사 한 명당 장거리 이동에서는 자신들이 데리고 가는 말젖을 병사 한 명당 5~8 마리의 말젖을 계속 섭취를 하였고 겨울철에는 풀이 없어서 말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분말 마유(馬乳)를 오전에는 물에 불려두면 저녁엔 죽이되는 것을 먹었다. 전쟁 중에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는게 힘든 일인데 몽골군은 계속해서 육포에 마유에 단백질을 계속 섭취했다. 800년전 몽골군은 이미 전투식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점들이 바로 몽골군들이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가 되겠다. 장거리 원정에 특화된 식량과 실용적인 무기,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유럽에서도 그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몽골군의 승리의 기법은 이것외에 적을 끝까지 쫓는 칭기즈칸과 몽골군의 집념이 있었다. 그래서 제베와 수베데이의 3만이 3년 동안 1만km를 돌파하였다. 이때의 경험이 10년 뒤 몽골이 동유럽을 침공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이때 획득하였다. 지형이 어땠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어떤 생산품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보고 오게 되었다. 이제 뭔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가지고 전쟁을 벌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⑧ 호라즘 왕국을 정복하고, 1차 유럽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오는데 1년뒤 또 다시 정벌에 나서는 상황이 생겼다. 호라즘 왕국 정복 1년 뒤인 1226년 칭기즈칸을 분노케 한 소식이 들려온다. 복속되어 있던 서하의 배신이었다. 대칸이 원정을 하자 서하가 바로 금나라와 결맹을 맺고 초원 각 부족들과 대칸에 맞서겠답니다! 서하가 또 배신했군. 서하 왕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배신을 절대 용서치 않던 칭기즈칸,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이미 1218년에 몽골의 원정으로 서하는 항복을 했다. 근데 호라즘 원정에 군대를 지원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서하가 이 요구를 거절하였다. 배신을 한 두번 한 게 아니다. 동맹군도 안 보내고 거기다가 금 나라와 손잡고 대항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뭘 믿고 있는가. 그런데 서하가 몽골을 배신했다고 하지만 서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왜 우리가 그걸 해야되지 당장 몽골군이 코 앞에 있을 때는 하겠다고 해서 평화를 유지했지만 몽골군이 먼 지역에 가서 전쟁을 하고 있을 때 그 약속을 내가 왜 지켜야 하지 당연히 생각한다. 고려도 마찬가지 였다. 서하의 그 판단은 어찌보면 옳았다. 칭기즈칸이 호라즘에 가서 이기고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불행하게도 호라즘이 멸망하고 칭기즈칸이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하에 대해서는 배신에 대한 보복, 2배의 보복이 가해진다. 이때 칭기즈칸의 나이가 60이었다. 칭기즈칸의 성격 아직 안 죽었다. 몽골군을 이끌고 서하로 갔는데 이때 몽골군의 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⑨ 칭기즈칸이 서하 원정 중이던 1227년 칭기즈칸이 달리던 말에서 낙마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칭기즈칸은 죽음이 임박해 오자 자신의 아들과 장수들에게 마지막 뜻을 전한다. 서하 왕이 시간을 정해 투항하러 오면 다시는 돌려 보내서는 안돼. 다 죽여서 후환을 없애야만 한다. 칭기즈칸의 죽음과 관련해서 몽골 비사에서는 한 줄로 기록하고 있다. 서하 탕구트 사람들에게 칭기즈칸이 두번째로 원정하여 무찌르고 돌아와 돼지해 (1227)에 하늘로 올랐다. 서하 원정 승리를 불과 며칠을 남겨둔 상태였다. 당시 서하 왕은 투항을 밝혔고 시간을 주면 도시로 나온다 라는 얘기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나의 죽음을 적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애도 하거나 곡을 하지 말라 고 유언하였다. 칭기즈칸은 죽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배반한 나라를 끝까지 처단하기 위해서 칭기즈칸은 죽음까지 숨겼다. 결국 서하는 그 후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들었다.
⑩ 또 다른 유언이 있다. 자식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유언이 하나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일년이 걸릴 수 있는 광활한 땅을 너희 자식들을 위해 내가 남겨둔다. 칭기즈칸 사망 당시 몽골제국의 영토가 황하 이북에서 카스피해 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영토인데 말 타고 일년은 걸린다.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칭기즈칸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칭기즈칸의 이 유언 때문에 지금 까지도 그의 죽음에 관련해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칭기즈칸은 몽골의 가장 위대한 조상이다. 그러면 찾아볼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몽골 사람들은 못찾는게 아니라 안 찾는다고 한다. 칭기즈칸은 신적인 존재다. 그러니까 그가 죽기 전에 무덤을 숨겨 달라고 했으니까 몽골인들도 그 유언을 지킬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거다.
⑪ 호라즘 원정을 떠나기 전 칭기즈칸은 후계자 논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굉장히 살벌한 가족회의 였다. 아직 칭기즈칸이 건강할 때 죽기 8년전인 1217년의 일입니다. 이건 사실 금기사항이고 누군가는 이 말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세번째 부인인 예수이 카툰은 그 당시 칭기즈칸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인데, 이 부인이 후계자 말을 하였다. 칭기즈칸은 아들이 넷이 있었다. 첫째 부인 부르테 카툰이 낳은 아들들인데 그 넷 중에서 한 명을 후계자로 결정을 할려고 하는 거다. 칭기즈칸과 부르테 사이에서 장남 조치, 차남 차가타이, 3남 우구데이, 4남 툴루이, 그러다 보니까 예수이 카툰은 아주 부담없이 후계자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장남 조치는 칭기즈칸의 아픈 손가락이다. 엄마가 납치되었다가 구출되어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이 아들을 차별한 적은 전혀 없었다. 출생의 비밀이 나오고 장남하고 차남하고 싸우고 있었다.
⑫ 칭기즈칸은 자식들을 정말 차별 없이 키웠고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아들 둘이 아버지 앞에서 싸웠으니 화가 엄청났으나 가만히 두고 보았다. 칭기즈칸은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차가타이가 갑자기 그러면 우구데이로 합시다. 이러구 나온 거예요. 우구데이야 말로 온후합니다. 우구데이를 지명합시다. 갑자기 이렇게 제안을 해요. 이 우구데이 셋째는 온화해요. 그래서 우구데이가 어부지리를 차지하는 거다. 칭기즈칸이 우구데이, 칸을 계승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물으니 우구데이는 아버지께서 저를 지명하신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래서 은연 중에 차가타이와 우구데이가 손을 잡고 툴루이가 두 사람에 반대하면서 조치와 연결이 되는 네 아들이 둘로 갈라지는 일이 이 자리에서 생겼다. 고래 싸움에 고래 둘 다 죽어서 먹이가 많이 생겼다. 이 싸움은 두 아들의 싸움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몽골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싸움의 출발이 된다. 여기에서 조치와 차가타이의 싸움, 이것이 손자대에 까지 계속되어 몽골제국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내분과 내전을 겪게 되는 출발이 된다.
⑬ 2대 대칸으로 즉위한 우구데이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전쟁을 시작한다. 임종 직전 칭기즈칸은 금나라 정벌에 대한 유언을 남긴다. 송나라와 금나라는 서로 견원지간이니 송과 타협해서 금나라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대칸 우구데이는 아버지 칭기즈칸의 뜻에 따라 숙적 금나라로 향한다. 칭기즈칸이 남겨둔 마지막 정복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칭기즈칸이 살아 있을 때 금 나라를 한번 공격한 적이 있었다. 수도 중도(베이징)를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내었다 (1215년).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몽골의 전쟁이 약탈을 위한 것이었다. 금 나라로부터 황금, 비단, 인질, 말 등을 제공받기로 약속을 하고 철수를 했다. 몽골에서는 항복이라고 생각을 했을 거고 금 나라에서는 화친 또는 강화 정도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몽골군이 돌아가자 마자 금 나라가 수도를 황하 이남으로 지금의 개봉(카이펑)으로 옮겨 버린다. 황하를 방어선으로 해서 싸우자는 이야기다. 칭기즈칸도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합니다. 배신했다. 그래서 다시 공격을 해야 되는 데 그때 호라즘에서 상인이 죽은 거다. 그래서 칭기즈칸의 군대가 금 나라를 다시 공격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갔기 때문에 금 나라를 공격할 새가 없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서하를 공격하다가 전장에서 죽은 거다. 금나라를 치기 위해서 남송과 연합을 해가지고 북, 서, 남 세 방향으로 협공해서 밀고 들어오는 거다. 금군이 우왕좌왕 하고 밀린다. 1232년 2월 몽골군과 금군이 삼봉산 전투에서 맞붙습니다. 삼봉산에서 금군 주력 15만을 전멸시킵니다. 이렇게 금 나라는 무너졌다. 금의 마지막 왕 애종은 자살을 하였다. 1234년 금의 역사는 이렇게 무너졌다. 우구데이에 와서 금을 멸망시키는데 20년이 넘게 시간이 걸렸다.
⑭ 한가지 흥미로운 게 칭기즈칸의 칸(Qan)에서 우구데이는 카안(Qa’an)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합니다. 길게 카안~우구데이의 카안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칭기즈칸은 유목민의 군주이데 우구데이는 농경민을 아우르는 보편군주의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우구데이 시대부터 몽골의 국가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그 이전에는 약탈하는 유목국가였다면 이때부터는 정주지역까지 정복하고 통치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거란 사람 야율초재는 정주지역에서는 통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몽골 사람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위구르 사람들을 비롯해서 색목인들은 몽골에게 돈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줍니다. 재정이라는게 중요하고 이 재정을 어떻게 계획해 나가고 운영해 나가는지를 알려주고 직접 자기들이 그 역할을 했다. 여기서 대단한 것은 배척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갔다 쓸 줄을 알았다는 것이다. 몽골이 이제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이 시작되었던 데는 바로 우구데이 카안 때였다. 역사를 볼 때는 우리 입장, 상대방의 입장 그리고 이 두개의 입장을 포괄하는 객관적인 입장,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