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곽 흥 렬
짜장면 그릇만 마주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군침이 돈다. 타래 틀어 놓은 사리 위에다 미리 볶아 둔 춘장 한두 국자 푹 떠서 끼얹으면 그것으로 끝이니, 요리 절차가 별반 까다롭지 않아 보이는 음식이 짜장면 아닌가. 그런데도 거기에 혀를 지배하는 무슨 비장의 무기가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자르르 윤기 흐르는 그 까무스름한 먹거리에 입을 가져가는 순간 내 혀는 단박에 허물어져 버린다.
짜장면은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더 맛있다. 자장면과 짜장면 둘 다 통용이 되긴 하지만, “자장면”으로 발음을 하면 어쩐지 싱겁다. 짜장면은 단지 ‘짜장면’이어야 제맛이 난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나는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었다. D시의 번화가인 중앙통 어느 2층 중화요리점에서였다. 군에서 휴가 나온 외삼촌을 따라 떠난 나들잇길이었다. 도회지 구경이라곤 가물에 콩 나듯 했던 시골 아이로서는 얼마나 매혹적인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혀끝에 착착 감기는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입가에다 숯검정처럼 잔뜩 묻혀 가면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웠던 그 짜장면의 기막힌 미감은 반세기가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세상 어떤 산해진미도 그때 먹었던 짜장면 맛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맛이라는 것이 단지 혀로만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음미하는 정서이기도 한 까닭에서다.
그렇게 처음 맛을 본 이후 퍽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짜장면이 아주 값비싼 음식인 줄로 알았다. 훗날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짜장면을 사 먹어 보고 나서야 그것이 가장 서민적인 먹거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말단 계급의 군인 신분이었던 외삼촌한테 무슨 지참금이 그리 넉넉하였겠는가. 다달이 몸으로 때워서 손에 쥐었을 쥐꼬리만큼의 봉급이 전부였을 외삼촌의 호주머니 사정이야 묻지 않아도 그림이다. 그런데도 짜장면이 꽤 고급 요리 축에 드는 음식일 것이라고 여겼으니, 그때 나는 그만큼 어린 나이였다. 아니 어리석은 아이였다. 아니, 아니 순진한 시골 무지렁이였던 게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어디 꼭 값 하나로만 따질 문제이던가. 그보다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제 시절이 변하면서, 꾸미고 내보이기 좋아하는 세태에 편승하여 짜장면에도 그 앞에 온갖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간짜장이니 삼선짜장이니 하는 고전적인 이름에서부터, 불짜장에 고추짜장에 육해짜장, 유니짜장, 유슬짜장 등등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해졌다. 마트에 가면 별의별 명칭의 봉지짜장이 진열대를 차지해 있고, 심지어는 물짜장이라는 희한한 종류까지 등장하여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아무리 특색 있는 짜장면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해도, 오십 년 전 생애 처음으로 먹었던, 시골 아이를 닮은 그 ‘옛날짜장’의 풍미에는 결코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음식의 맛이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먹는 것이어서이다. 게다가 거기엔 추억이라는 고명이 얹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 먹거리로 통하는 짜장면은 이런저런 수식이며 기교가 필요치 않다. 그저 짜장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수필은 어림잡아 15년 쯤 전에 쓴 작품입니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밀가루 음식이 체질에 맞지 않은 탓에 지금은 짜장면이라는 요리가 단지 추억의 먹거리가 되어 가고 있을 따름입니다.(곽흥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