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둘레산길 트레킹
진안 고원길 6구간(전주가는길)
2022년 02월 18일, 셋째주 토요일
진안고원길 6구간(전주가는길)
산행출발 : 전북 진안군 부귀면 모래재로1073 (장승삼거리)
산행도착 : 전북 진안군 부귀면 부귀로 305-7(부귀면사무소)
코스 : 장승삼거리->장승초교->우정교->메타쉐콰이어(인증장소)->신덕마을->
크터골마을->적천->모래재휴게소->모래재->주화산(인증장소)->임도사거리->
부천->신촌마을->사인암->부귀면사무소.
거리 및 시간 : 18km / 4시간 50분 / 난이도(中)
날씨 : 미세먼지와 안개가 많이끼였었고, 산행후 가랑비
▣ 오늘은 둘이서 잰틀맨님 차량으로 이동후 6구간을 시작하고,
점심은 산행후 부귀면사무소앞에서 동태찌개
산행안내 팀장 : 젠틀맨
안내지기 : 청마(靑馬)
사진 청마(靑馬)
오늘은
잰틀맨 님하고 둘이서 장승삼거리에서 부귀면사무소 까지 가야한다.
거리도 멀고 금남정맥/호남정맥 분기점인 주화산을 오르는일이 오늘에 하이라이트 길인듯하다.
오래전에 금남정맥을 다닐때 생각이 많이 나는 주화산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설랜다.
부귀면 메타세쿼이아길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잠동에서 모래재 휴게소까지 메타세쿼이아가 식재된 도로이다.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잠동~큰터골의 1㎞ 구간에 메타세쿼이아가 집중적으로 식재되었고, 2008년에 모래재 휴게소까지 구간이 확장되었다. 다양한 광고,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는 아름다운 길이다.
웅치전적지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말한다. 음력 1592년 4월 13일 조선에 침략한 왜군은 6월 말경에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선조가 왜군을 피해 북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순신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혀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왜군들은 전라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592년 7월 8일 새벽, 왜장 고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끄는 왜군이 전주로 진출하기 위해 웅치를 공격해 왔다.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군은 진안 세동리부터 완주 산촌리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쳐들어오는 왜군과 혈전을 벌였다.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왜군의 지속적인 공격에 조선군의 1차`2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최후 방어선인 웅치 정상부에서 정담을 비롯한 많은 장정들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당시 전투가 끝나고 왜군들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조선군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조조선국충간의담’이라고 쓴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7월 9일 웅치를 넘은 왜군은 안덕원 근처까지 진출했지만, 웅치 전투에서 입은 전력의 심각한 손실과 안덕원 전투에서 황진에게 패배. 이정란 장군의 전주부성 방어태세 등 때문에 전의를 잃고 7월 10일 진안으로 철수함으로써 전주부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웅치전적지 일원에서 일어난 격전은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후 웅치전적지 일원에서 활약한 조선군이 이치 전투에도 참전하여 승리하면서 왜군의 전라도 점령 의욕은 꺽이게 된다. 결국 웅치`이치전투가 있었기에 전라도가 지켜졌고, 이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승기를 잡는 요인이 되었다.
구름재 박병순
춘당 박종수, 김성녀의 맏아들로 1917년 12월23일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적내마을 1245번지에서 출생하셨다. 2008년 12월 3일 정오에 서울 송파구 가락동 삼환아파트 10동 304호 자택에서 9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모래재휴게소를 끼고 오르면 호남정맥 모래재를 만난다
주화산에서 금남정맥/호남정맥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6.25의 참상 잊을 수 없는 민족의 "한"과 "상처"인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었으며, 동족상잔의 피 비린내 나는 참화로 인해 45%에 이르는 공업시설이 파괴도는 등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 되었고 한국 민간인 인명피해는 990,968명(사망 244,663명, 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이며 한국군 및 유엔군 인명피해는 전사 178,569명, 부상 555,022명, 실종 28,611명, 포로 14,158명 등 총 776,360명에 달한다. 전라북도의 인명피해는 사망 40,462명, 학살 14,162명, 부상 15,364명, 납치 7,210명 행방불명 14,609명 등 총 91,807명이다.
진안군 백운면의 경우 1951년 3월 14일 백암리 덕태산에서 빨치산 충남도당위원장이 인솔하는 빨치산 20여명의 공격을 받아 백마성 청방부대 부대원 수십명이 전투 중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1951년 9월 6일에는 전북북부도당 및 충남지역 빨치선 500여명이 보급투쟁을 위하여 진안군 백운면 반송마을과 근처 5개 마을을 기습 유린하였다. 이를 파악한 진안경찰서 백운지서장은 9월 7일 4개 분대 49명의 병력을 편성하여 빨치산 70명을 사살하고 1명은 생포하였으며 박격포 3문, 소련식 장총 3정, 각종 소총 32정을 노획하였으나, 아군도 2명이 행방불명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1951년 3월부터 1953년 3월까지 덕태산과 선각산 일대에 은둔하고 있던 빨치산과 전투에서 백암리 연두골과 바위골, 노촌리 비시랭이, 신암리 원적골 등에서 경찰 및 주민 80여 명이 전사하거나 학살 당했고 야밤을 틈 탄 빨치산의 노략질로 농가의 소 수십마리와 쌀을 비롯한 많은 생활용품을 강탈 당했다.
부귀면사무소 입구에 있는
청마루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동태당으로 마무리한다.
보시느라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