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친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예천 대창고 권기철 선생인데 날씨가 좋으니 놀러가자고 한다.그래...내가고 싶은 곳을 한번 가보자.맨날 내가고 싶은 곳으로 갑니다만...따뜻한 봄날씨인데 가슴에 봄바람이라도 깊이 들이키면 힐링이 되겠지요.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도령 계서 성이성의 계서당은 가봤는가?"
"전에 봉화 송이축제때 투어를 하면서 가봤네"
그래서 계서당은 건너뛰고 해저마을 만회고택과 남호구택은 올 때 시간나면 가보기로 하고 먼저 쌍벽당을 갔다.
쌍벽당 종손이신 김두순님은 내고향 예천 큰맛질 미산고택(항일의병장 박주대 할배의 집,저상일월 검색 참고)의 사위이다.전화를 드리니 마침 출타중이라면서 종부님께 전화를 하여 종부님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봉화 쌍벽당의 볼거리는 기둥이다.재질이 싸리나무라고 한다.수백년전에 어디서 저렇게 큰 싸리나무가 있었을까?어떻게 구했을까?아마도 태백산이 가까우니 태백산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저런 나무가 남아있지 못하다.박사만 수천,수만명이 사는 서울 잠실이나 한강변에 소나무 한그루 보존하질 못했으니...옛선인들의 인품이 더욱 그립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곳곳에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아 오는 분이나 가족들이 기념식수하고,서울대나 연고대 졸업기념으로 식수하고 고시패스기념으로 대기업에 취업기념,공무원임용기념으로 식수해서 가꾼다면 산림녹화는 금방 될터인데...서로 헐뜯는데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기념식수해도 될터이다.저상일월(보물 제1008호)에는 선비들이 송계(松契)를 한 기록도 있다.
1번이 우리가 있는 안채이고 2번이 사랑채인 쌍벽당.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에 위치해 있는 쌍벽당은, 쌍벽당 김언구의 아버지 김균이 풍산의 구담으로부터 이곳으로 이거하여 터전을 잡으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손님은 그냥은 못보낸다고 따뜻한 차한잔 건네시는 종부님과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ㅎ
쌍벽당은 이집당호 이며 사랑채 이름이다.
상벽당중수기
쌍벽당은 건축이나 고건물을 공부하는 분들의 답사처이다.
수서 박선장(水西 朴善長)이 쓴 '제쌍벽당'
水西 朴善長:조선 선조(宣祖)~광해군(光海君)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남몽오(南夢鰲)의 문인으로, 예안 현감(禮安縣監)ㆍ경상 도사(慶尙都事) 등을 지냄.
수서 박선장 선생과 어머니 울진출신 신안주씨 부인에 얽힌 이야기가 집안에 전해온다.
-남편이 꿈에 나타나“영주땅으로 가서 아들을 교육시키라”-
몽화부인은 남편 송파공(松坡公,박전)께서 서울집(京邸)에서 졸하자
천 리길 고향(영해)에 반장(返葬)하고 삼년상을 치른 뒤 아들 수서공(水西公, 박선장)의
교육이 걱정되어 울진 친정으로 가 오라버니께 청학 하였는데 어느날 송파공이 꿈에 나타나
“영천(영주)땅 산단화(橵丹花. 山棠花 명자나무)가 피는 마을을 찾아가 아들을 교육시키라”는
당부를 받고 울진에서 12령을 넘어 현 봉화군 봉화읍 화천리를 찾아 삼송(三松) 남몽오(南夢鰲)선생에게 아들(박선장, 당시 10세)을 교육시킴으로써 증손자까지 4대(남편 박전, 아들 박선장과 손자 박한, 증손자 박안복)에 걸쳐 연속하여 과거(문과)에 급제하여 맹모삼천지교의 표본이라 추앙받았다.
신사임당,경당 장흥효 선생의 따님이요 갈암 이현일 선생의 모친인 '정부인 장씨',대구서씨 약봉 서성의 모친인 '고성이씨 부인'과 닮은 대단한 분이시다.
동네 아주머니 분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들어 간 곳이 마을회관이다.마침 생신을 맞이한 두분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염치불구하고 배고파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ㅎ
권기철 선생은 '봄동'을 생전 처음 먹어본다고 한다.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에 있다.후손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 나의 16대조의 글씨가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는 것이다.봉화 청량산 박물관에 있는 것은 원래 크기의 70%라고 한다.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의 전면과 후면(아래).
옆면은 청량산 박물관에서 있었던 書聖 金生 특별전 도록에서 퍼왔다.파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의 박눌(朴訥,1448~1528)은 누군가 하면 나의 16代祖이다.휘(諱) 눌(訥) 할배는 바로 예천 금당실 마을 입향조인 휘(諱) 朴從鱗(박종린) (1496~1553) 할배의 부친이신데,안동 길안 묵계서원의 주인공인 보백당 김계행공의 사위이다.창락도(현재의 풍기역 북쪽 소백산 풍기온천이 있는 곳) 찰방(종6품)을 역임하신 분이다.그러니까 연도를 비교해보면 맞다고 확신한다.
보백당 김계행공의 첫째딸이 나의 16대 祖母이시고,둘째딸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증조모가 되신다.김씨 할머니가 낳은 아들이 다섯인데,五子가 문과급제했다.
낙서 이항(洛西 李沆,1474~1533)이 기문(記文)을 짓고 당시에 명필로 소문난 박눌(朴訥)할배의 글씨를 새긴 것으로 ,비의 유래와 이동경위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다.기문에 따르면 ,낙서 이항이 영천군수(榮川郡守)로 부임하여 봉화현에 있는 옛 절터(태자사지)에 김생의 글시를 집자한 비가 초목사이에 묻혀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을 사람 전 참봉 권현손(權賢孫)과 의논하여 비석을 동헌인 자민루(字民樓)아래에 안치하고,난간을 두르고 출입문을 만들어 보호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남구만이 쓴 약천집에 위의 내용이 자세히 있다.암행어사로 영남에 왔을 때 영주에 들렀고 그 때 기록을 해놓은 것이다.
http://cafe.daum.net/jangdalsoo/hwnN/611
청량산 청량사의 일주문 편액은 현봉 근일 선사의 글씨이다.
ㅊ청량산 청량사의 유리보전의 편액 글씨는 공민왕의 것으로 알려져있다.
겨울점퍼를 입어서 올라올 때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건너편 축융봉아래 북쪽 사면에는 내린 눈이 아직 안녹았다.
농암종택과 퇴계예던길.
농암 이현보는 조선시대에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정계은퇴식을 한 분이다.어부사를 지은 분으로 유명하다.
농암종손 이성원님과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의 옆면에 글씨를 쓴 나의 16대조 행정공 휘(諱) 눌(訥) 할배와 장인되시는 보백당 김계행공에 대해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퇴계 예던길을 잠시다녀오니 벌서 해가 진다.늦겨울 봄같은 날씨에 하루 답사를 아주 잘했다.
첫댓글 좋은 시간을 가지셨네요. 잘보앗습니다. 감사.
싸리나무가 혹시 느티나무입니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ㅎ
느티나무는 괴목이라고해서 옛날부터 귀하게 여겼다네요. 의정부의 3정승을 표현한다고도 합니다. 유명 고택지나 관아뜰에 많이 심었고 지금도 남아잇는 곳이 많습니다.
아이참내...지성룡 아저씨는 참...ㅎ
느티나무를 물은것이 아니고...싸리나무가 느티나무가 맞냐는 것이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