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놀던 어린 손숙오가 집으로 돌아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까닭을 묻는 어머니에게 아이는 “양두사(兩頭蛇)를 본 사람은 죽는다고 하는데, 제가 그 뱀을 만났어요.”라고 했다. “지금 그 뱀은 어디 있느냐?” “다른 사람이 다시 보게 될까봐 죽여서 묻어 버렸어요.” 남의 불행을 염려하여 남모르게 선행을 한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는 분명 초나라 최고의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초장왕의 재상으로 훌륭한 정치를 펼친 춘추시대 손숙오(孫叔敖). 어린 그와 어머니의 대화는 유향이 지은 『열녀전』에 처음 나온다. 훌륭한 인성의 아들에게서 최고의 자부심을 가졌던 어머니.
착해 보이게 만들어 드려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인성 평가에 대비하는 과외가 열풍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 법 ‘인성교육진흥법’이 대학입시에 직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인성에 등급을 매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 그리고 그사이에 많은 인간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짧은 시간에 잘 골라낼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인성이란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니 밖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평가하기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인성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이미지 메이킹이나 화술이 될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아나운서 출신이 강사로 나선다고 한다. 월 6회 6~70만 원. 착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인성’이라는 상업용 문구들은 인성으로 경쟁하고, 인성을 상품화하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 생각의 역사만큼 오래된 질문, 인성이 상품과 이렇게 적극적으로 연결된 적은 없었다.
동아시아 지성의 역사에서 인성은 늘 호황이었다.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어떻게 본성을 유지할 것인지 또는 변화시킬 것인지 등의 ‘인성론’은 고전 철학의 핵심 주제였다. 우리가 잘 아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도 그중 하나다. 이들 논의는 본성을 어떻게 보는가의 차이일 뿐 모두 ‘선(善)한 인간’을 추구하였고 ‘좋은 사회’를 꿈꾸었다. 그런데 ‘착한 인간’과 ‘좋은 사회’라는 이 명료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을 지나 아직도 계속되는 것은 ‘선함’과 ‘좋음’의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성의 강조, 위기의 사회
인성은 위기의 처방책으로 곧잘 활용되었다. 40년 전 1976년 1월, 문교부는 교육 정책의 방향을 “인성교육강화”와 “국민정신교육강화” 등으로 잡았다. 그 이유로 ‘물질 위주의 관념 팽배’와 ‘세대 간 언어의 단절’ 그리고 ‘공중도덕심 쇠퇴’ 등을 들었다. 이에 근검을 가르치고 이웃 사랑의 정신을 가르치며 국어순화 운동으로 교육 내용이 편성되었다. 그 교육을 받은 세대가 지금 사회의 중추로 있다.
약 1세기 전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도 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인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교육의 목적은 인성의 발전과 완성”에 있고, 인성은 개인의 인격적 가치의 표준이 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오늘날(1924.3.17)의 교육은 개인을 기계화하고 있으니’ 조선 청년은 반항적 정신으로 대하여 주인의 자리를 되찾을 것을 주문받았다. 여기서 인성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주체의 자각으로 이해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을 그 무엇의 노예로 방치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세기 전인 1558년(명종 13), 생원회시에 출제된 책문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하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었다. 최고의 답안지를 낸 조종도(趙宗道, 1537~1597)는 “교육이 글을 외고 읊으며 글과 문장을 다듬어 과거에 응시하고 녹봉을 구하는 방법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그에 의하면 교육이란 “처음에 효도와 공경과 정직과 신뢰를 가르치고 끝에 가서는 자신을 닦고 남을 대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시한 인성의 핵심 가치 8항목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다.
그러고 보면 인성의 핵심 가치는 5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다만 인성을 구성하는 모든 가치가 ‘자신에게로 수렴하여’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한 16세기의 인성 개념은 오늘날 화술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넘보는 그 인성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점수로 매기는 인성, 미래는 없다.
누가 훌륭한 인성을 가졌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조선 후기의 이덕무는 사람의 성품을 평가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공개하였다. 『소학』이나 『근사록』을 보면서 하품하지 않는가? 단정한 자세로 태도를 가다듬는 자를 보고 비웃지 않는가? 진실되고 도리에 맞는 말을 들으면 싫증을 내지 않는가. 이 세 가지를 듣고 기뻐한다면 ‘착한 인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인성 교육의 대상인 청소년들은 ‘진흥법’이 주문한 예(禮)나 효(孝)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 궁금하다. 1922년「신교육과 유림」이라는 제목의 신문 논설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인성의 근본은 인(仁)이다. 인이 발하여 충(忠)이 되기도 하고 효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발현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임금을 향한 과거의 충은 국가에 대한 의무로 바뀌고, 가족보다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효보다는 가정의 화목으로 변한다.’ 어떤 개념이나 용어가 갖는 의미는 그 시대의 변화와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인성을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 출처 실학산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