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ent in the Rockies, 1916
John Singer Sargent(1856~1925)
위 그림을 보니
갑자기 어디 외진 곳에 스며들고 싶다.
격리 욕구가 폭염 탓만은 아니다.
푸른 하늘과 태양만 있었다면
뫼르소처럼 짜증났을지도 모르지만
떠다니는 흰 뭉게구름들이 있어
뇌를 꺼내 그에 실어 보내니 마음은 가벼운 편이다.
나의 휴가는 사람을 피하는 게 핵심이다.
세상 모든 번뇌의 근원, 얽힌 인연으로부터의 해방..
도회적 루틴에서 벗어나
다른 체험과 활동으로 기분전환해 보거나
방전된 심신 휴식과 충전을 위해
게으름을 누려 보자는게 휴가 아니던가.
그러기엔 위 로키산맥 같은 곳이 딱이겠지만
땅 좁고 인구 과잉인 한국에서는 망상일 것이다.
도시의 호캉스, 휴양림 속 통나무 오두막
카라반, 캠핑카, 글램핑, 차박 등
취향껏 누릴 수 있는 휴가 소재는 많은데
도회적 삶의 연속 같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극도의 편리함을 추구하니 말이다.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돈을 물쓰듯 해야
즐거운 휴가가 보장되니
자본이 낳는 화려한 휴가라고나 할까.
요즘 예전 방식의 텐트캠핑은 시들한 듯하다.
배낭지고 걸어 들어가 몽땅 DIY 중노동,
그 얼마나 불편한가.
그림에서 처럼
주변 나무 줏어다 삼각기둥을 세워 텐트 묶고
생존필수품 만으로 생활하면
전과는 확연히 다른 자신을 발견할 같다.
원시적 텐트 또는 그 유사 상황, 즉
사회로부터의 간격은 본질로 다가갈 좋은 수단이다.
한창 때에는 오지 캠핑도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위 그림을 보다보니
예전 서늘했던 기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개울물의 좔좔 자장가 소리에 잠들었다 싶었는데
고라니 처절한 울음소리에 잠을 깨곤
어디 덫에라도 걸렸나, 가슴 졸였였다.
고라니의 울부짖음이 영원 같이 느껴지며
후회막급의 오지 캠핑으로 여겨졌는데
한 30분 후 고요해 지고 나의 고통도 잠잠해지며
간사하게도 다시 별을 헤다 잠들었다.
해가 뜨자마자 혹시 고라니 주검이 있을까 걱정하며
숲 속을 헤매 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엄마가 그리워서 또는 배고파서 울었던 걸로...
이젠 나이들어 그런지
오지 캠핑 같은 건
젊었던 시절의 추억으로만 소환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