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
시편 62:1-12 2021/11/28 대림절 제1주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62: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62: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62: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2022년 교회력’이 시작되는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그 여정을 따라 구성된 것이 교회력인데,
구주강림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그 출발이자 시작입니다.
1) 대림절(구주강림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의 절기
2) 성탄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는 날
3)주현절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기념하는 절기.
4)사순절
속죄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가 40일간 고난당하심을 기념하는 절기.
5) 부활절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절기
6) 성령강림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탄생한 절기로 그리스도의 영이 보혜사로 함께하는 절기
7) 왕국절(성령강림 마지막 주)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절기
이렇게 일곱 개의 절기가 교회력인데, 그 시작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가 마치면,
교회력이 기록된 2022년도 달력을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가져가셔서 하나님과 늘 함께 하시는 복된 2022년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대림절이 시작되면, 항상 저는 찬송가 98장을 펼칩니다.
채희동 목사님이 노랫말을 짓고, 한양대학교 교목이신 이천진 목사님이 가락을 붙인 98장으로 4주간의 대림절 여정을 시작합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1.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이곳에 오셔서 기도 들어 주소서
능하신 주께서 크신 일을 행하사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보좌를 떠나서 사람 몸을 입었네
높은 자 낮추고 비천한 자 높였네
만민 위해 오셔서 사슬을 풀어주소서
3.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죄악 된 세상에 속죄 주로 오셨네
주린 자 먹이며 병든 자를 고쳤네
천하 만민 돌보사 빛의 길 가게 하소서 아멘
둘째 아이가 태어난 어느 날, 목사 채희동은 이런 글을 남깁니다.
나의 따님에게
알몸으로 오시었군요, 나의 따님
아무것도 쥐지 않고 빈 몸으로 오시었군요, 나의 따님
이 세상 오자마자 자연바람 맞이하셨군요, 나의 따님
이 세상 오자마자 먼저 비우셨군요, 나의 따님
이제 곧 아기 예수님도 이렇게 오시겠지요.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알몸으로 오셔서 빈 몸으로 살다가
겨울 나무 십자가에 달려 세상을 구원하신 나의 주님
알몸이 되겠습니다, 나의 주님
아무것도 쥐지 않고 빈몸으로 살겠습니다, 나의 주님
이 세상 사는 동안 자연바람 맞이하겠습니다, 나의주님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비우며 살겠습니다, 나의주님
어떤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던가요?
저는 ‘알몸’ ‘빈몸’ ‘비우며’라는 단어들이 눈에 박힙니다.
‘알몸이 되겠습니다.’
‘빈몸으로 살겠습니다.’
‘비우며 살겠습니다.’
이런 다짐들로 대림절 4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62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히브리어 'ak‘입니다.
우리말로는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부사 ‘오직’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어떤 사물을 단독적으로 일컬을 때 사용하는 조사 ‘~만’으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ak)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ak) 나오는도다
62:2 오직 그만(ak)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5절과 6절에서 한 번 더 반복됩니다.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ak)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2:6 오직 그만(ak)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ak‘
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오늘 본문의 시인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희망 우리의 행복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ak)’ 나온다는 것입니다.
돈(경제)이 아닙니다.
건강(육체)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영)만(ak)’입니다.
진정한 행복
우리의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과 잇대어 살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이고 주장입니다.
새62:1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림은
나의 구원(희망, 행복, 건강, 물질)이 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나의 구원, 나의 희망, 나의 행복이 어디서부터 나온 다구요?
‘나의 구원(희망, 행복)이 그에게서만’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 참된 희망, 참된 행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잠히 기다려 보라’는 것입니다.
잠잠히 기다려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세 가지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반석입니다.
‘나의 반석’ 다시 말해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은 존재의 근원(이유)’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황하고 유리하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에게 ‘살아가야할 이유, 즉 존재의 가치를 찾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구원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실제적인 구원자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피시고 살리시는 구원자입니다.
그렇게 우리 하나님은 살아가야할 이유뿐만 아니라 ‘살아갈 힘’까지 넉넉히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잠잠히 기다려보다 보면, 하나님이 나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영원한 피난처이지요.
그렇게 우리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나를 아무리 흔들고 공격해도 결코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입니다.
새62:2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멋진 신앙 고백입니까?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 고백 속에서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요.
이 담대한 신앙 고백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나온 줄 아십니까?
역설적이게도 ‘고난 가운데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이 멈추었다’는 ‘원수들의 비난 가운데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첫째 시인의 상황입니다.
새62:3 기울어 가는 담과도 같고 무너지는 돌담과도 같은 사람을, 너희가 죽이려고 다 함께 공격하니, 너희가 언제까지 그리하겠느냐?
흔들리는 담을 자꾸 흔드는 것처럼
연약한 시인의 믿음을 세상이 자꾸 흔들어 대는 것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신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있기는 하는가?
둘째 시인이 처한 상황입니다.
(새)62:4 너희가 그를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릴 궁리만 하고,
ak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희망을 이 땅이, 이 세상이 자꾸 겪으려 든다는 것입니다.
‘좌절, 주저앉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뭔데?’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주저앉게 하지요.
셋째 이 부분이 가장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인데 이런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저주를 퍼 붓을 일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짓말만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저주를 퍼붓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고집스럽게 선택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5절과 6절에 나옵니다.
(새)62: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62:6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요즈음 ‘교회의 가치’가 참 말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의심을 넘어,
다소 과격하지만 교회 무용론(폐지론)까지 이야기 합니다.
흔들리는 교인들의 믿음을 세상이 더욱 흔듭니다.
교회의 가치와 희망을 세상이 자꾸 겪으려 듭니다.
교회를 향한 비난과 저주,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이 옳은지 교회가 옳은지
논쟁을 벌여볼까요, 아니면 진검승부를 겨루어볼까요?
시인의 선택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논쟁도 진검승부를 겨루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시인의 선택은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권능)과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새62: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62:11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권능)는 하나님의 것'이요,
62:12 '한결같은 사랑(헤세드)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니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세상의 도발에 마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품성을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믿는 자를 흔들고 교회를 공격하고 불의 한 세상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헤세드’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흔들리는 우리 믿음 안에
추락하는 교회 안에
여전히 반석과 같이 구원과 같이 요새와 같이 존재하는 ‘헤세드,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비난과 저주, 믿지 않는 이들의 손가락질을 힘들어 하지 말고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를 잠잠히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ak 오직‘ 우리의 구원(희망)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