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깜깜하다. 아버지가 밟고 있는 탈곡기 소리는 여전한데 몸은 무언가에 눌려 답답하고 주위는 어두워 덜컹 겁이 났다. 주변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볏짚단이다. 그렇지, 짚단으로 집을 지었지. 들어가서 놀다 잠이 들었지.
일어나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 없다. “엄마, 아버지, 누나”라고 소리쳐도 대답은 없고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만 줄기차게 들린다. 한참을 소리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여름 동안 온 힘을 다해 키워온 오리 두 마리가 날아가려고 날갯짓한다. 오리를 잡으려고 허둥대다가 잠에서 깼다. 다시 깜깜하다. 탈곡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엄마”라고 부르고 또 불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가을밤의 싸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인 줄 알았는데 밤이라니.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난 뒤 타작한 볏짚을 보니 집채만큼 크고 높았다. 저 속에 내가 있었다니.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누나는 볏짚을 계속 쌓아 올렸나 보다. 따뜻한 내 집이 저 안에 있구나.
아버지의 꾸중에는 구수한 쇠죽 냄새가 묻어 나고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눈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 같았다.
가을걷이에는 곡물, 밭작물과 과일 등도 있지만 우리 밥상의 주인공인 밥을 제공하는 벼수확이 대표적이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 마님이 나막신 들고 나선다.’라는 속담이 있다. 농기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시대에는 더했다.
아버지는 입추부터 상강까지의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가을비를 피해 벼수확 일정을 잡는다.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논에 도랑을 내어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리기 시작한다. 도랑을 따라 중태기와 미꾸라지를 잡기도 하고 황금빛 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메뚜기도 잡는다.
서리가 내리면 가족이 총동원되어 벼를 벤다. 부모님이 묶어 놓은 볏단을 누나와 나는 논두렁으로 옮겨 놓는다. 벼 베기가 끝나면 어머니와 누나는 저녁밥을 준비하러 가고 아버지와 나는 논두렁에 줄가리를 친다. 서산에 해가 지고 저녁놀이 물들면 줄가리는 만리장성이 된다.
줄가리의 볏단이 가을바람에 바짝 마르면 리어카로 실어 와 마당에 낟가리를 쌓고 타작 날을 잡는다. 타작 전날에는 낟가리의 큰 단을 탈곡하기 좋은 작은 단으로 만든다.
드디어 타작하는 날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탈곡기를 번갈아 밟아가며 탈곡한다. “윙윙 촤르르, 윙윙 촤르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와 나락이 볏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아버지는 손과 발로 지휘를 한다. 그리고 탈곡한 볏짚을 힘껏 뒤로 던진다. 누나와 나는 볏짚을 들고 뒤뜰의 감나무 옆에 차곡차곡 쌓아 짚가리를 만든다.
탈곡한 나락은 가을 햇볕에 말려 마당의 나락두지에 넣고 짚가리는 비가 들어가지 않게 단단히 덮는다.
가을걷이를 마친 가을 논은 외롭지 않다. 이삭 줍는 아이들, 논도랑을 헤집어 미꾸라지 잡는 아이들, 숨구멍을 찾아가며 논고디를 잡는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요즘의 추수를 마친 가을 들녘은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서늘한 가을바람만 놀다 간다. 간간이 하얀 덩어리의 원형곤포 사일리지만 보인다. 멀리서 보면 공룡알 같기도 하고 마시멜로 같기도 하다.
자율주행 이앙기가 모내기하고 드론이 농약과 비료를 살포하며 백 명 이상이 매달려 하던 가을걷이를 콤바인 한 대가 서너 시간 만에 끝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씻나락은 물에 넣으면 볍씨가 되고 모판에서는 모가 된다. 논에서는 벼가 되고 탈곡하면 나락이 되며 정미소에서는 쌀이 되고 우리 밥상에서는 밥이 된다. 그리고 볏짚과 등겨와 왕겨를 덤으로 준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가을은 겨울을 위한 준비의 계절인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이제라도 따뜻한 집을 생각하며 땔감을 준비하고 김장도 해야겠다.
2024.9.13. 김주희
첫댓글 가을 시골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글이 일취월장 합니다. 더욱 빛나는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