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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미(美)
1. 현대 미술의 난해함과 숭고의 필요성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과 같은 현대 추상화가 대중에게 난해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전통적인 미술의 미적 정보와 의미 정보의 조화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폴 세잔까지는 구도가 어긋나도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입체주의나 추상 표현주의 이후 현대 미술은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 수신이 어려워졌습니다. 대중은 현대 미술을 누리기 위해 단지 '미(美)'의 개념을 넘어 **'숭고(Sublime)'**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어쩌면 기술 복제 시대 이래로 미는 무의미해졌으며, 현대 미술은 미가 아닌 숭고를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2. 숭고의 정의와 역사적 논의
숭고는 단순한 미의 한 종류가 아니라 윤리적 맥락의 위대함이나 장엄함을 넘어, 혐오스럽거나 무서운 것, 섬뜩한 것까지 확장되는 별도의 미학 영역입니다.
롱기누스 (1세기): 최초로 숭고를 논한 수사학자로, 웅변의 덕목인 '설득'을 능가하여 독자의 영혼을 감동하고 고양시키는 **‘표현의 우수성이나 독특함’**이 숭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언어를 통해 얻는 쾌이지만, 언어로는 재현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부알로 (17세기): 롱기누스의 숭고론을 근대로 전달했으며, 가장 고급의 수사학적 기법은 **비확정성(非確定的, 애매모호함)**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확정적이지 않은 대상이 주는 설렘이나 막연한 불안감, 즉 미지의 영역에서 오는 강렬한 쾌감이 숭고입니다.
에드먼드 버크 (18세기):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연구』(1757)에서 미와 숭고를 처음으로 분리시켰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고통과 쾌가 혼합된 상태를 넘어 고통이 더 큰 쾌감을 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미적 쾌감은 직접적이지만, 숭고적 쾌감은 처음엔 고통이다가 쾌감으로 전환되는 간접적 쾌감이며, 고통과 결합되면 쾌감이 두 배로 상승한다고 보았습니다.
3. 칸트의 숭고: 이성의 승리
칸트는 숭고를 무한한 우주, 영겁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무한성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자연 현상에서도 찾았습니다.
숭고의 역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자연은 우리의 육체적 저항력을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 불쾌를 유발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숭고한 대상 앞에서 **이성(理性)**이 작동함을 깨닫습니다. 이 이성의 능력은 자연의 절대적 힘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나는 나의 내부에 있는 본능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나의 외부에 있는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쾌를 넘어선 쾌를 느끼게 됩니다.
숭고의 두 가지 유형:
수학적 숭고 (Mathematical Sublime): 피라미드나 성 베드로 성당과 같은 **절대적 크기(무한한 크기)**의 관념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오성(상상력)이 거대한 것을 한 번에 파악하지 못하는 '미적 총괄(comprehensio aesthetica)'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역동적 숭고 (Dynamic Sublime): 쓰나미나 압도적 힘과 관련된 경외감에서 나옵니다.
숭고의 주관성: 칸트에 따르면 미가 대상의 성질이라면, 숭고는 주체인 나의 상태입니다. 숭고는 자연의 사물 속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관조하는 나의 심성 속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숭고는 우리가 이해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느끼는 표현 불가능한(형언할 수 없는), 부정적(네거티브) 체험입니다.
4. 미(美)와 숭고(崇高)의 결정적 차이
미와 숭고는 모두 즐거움을 유발하지만, 그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양과 질: 미는 **질(質)**과 관련이 있고, 숭고는 **양(量)**과 관계가 있습니다.
쾌감의 성격: 미는 상상력과 오성의 결합으로 생명력을 촉진하는 직접적 쾌감이며, 고요한 관조(觀照)를 유발합니다. 반면, 숭고는 상상력이 좌절된 후 이성이 분출되면서 생명력이 일순간 억제되었다가 한층 강력하게 분출되는 간접적(네거티브) 쾌감이며, 역동적 관조를 이끌어냅니다.
관련 인식 능력: 미는 **오성(지성)**과 관련되지만, 숭고는 **이성(理性)**과 관련됩니다.
5. 현대 미술과 숭고의 현시(顯示)
현대 미술은 재현(Representation)을 포기함으로써 전통적인 예술의 존재를 거부하고, **'이 세계에는 예술로써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묘사의 포기: 현대 예술은 유한한 대상의 미를 재현하려 했던 과거와 달리, 무한한 대상의 숭고를 '현시(manifest)'하려 합니다. 형상을 지움으로써 말하거나, 보거나, 그릴 수 없는, 즉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숭고의 사건화: 낭만주의가 숭고한 대상을 그려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면, 모던의 아방가르드는 대상의 묘사를 포기함으로써 숭고를 **'사건(event)'**으로 제시합니다. 이로 인해 관습적 언어가 없는 작품은 관객에게 해석의 코드를 찾기 어렵게 만들어 '충격(쇼크)'을 주는 미적 범주가 됩니다.
관객의 역할: 현대 미술의 숭고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관객은 텅 빈 작품 안에서 고정된 해석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작품 앞에서 스스로 칭송하거나 비판하는 등 자신만의 해석으로 그 작품의 완성에 참여할 것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