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풍기읍 폐가에서
글/김덕길
살을 에는 칼바람이 설날을 하루 앞두고 몰아칩니다.
앙상한 가로수 가지에 바람이 머물지 못하고 돌아나갑니다. 바람은 형체도 크기도 없이 함부로 달려와선 여린 볼을 할퀴고 달아납니다. 얼얼해진 볼을 손으로 감싸봅니다. 손조차 얼어붙어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인삼과 사과로 유명한 풍기는 그래도 사람들의 왕래가 북적거리는 소도시였습니다. 20년 전 처음 아내의 집에 인사를 오던 그해는 가을이었습니다.
과수원마다 붉은 사과가 알알이 단물을 가득 안고 터질듯 풍만했습니다. 과수원집 둘째딸을 아내로 맞으러 인사를 온 나를 장모님은 딸이 선택한 길이니 딸이 알아서 잘 살기를 바랐고 장인어른은 우야 둥둥 같이 살기로 했으니 딸에게 잘 대해주라는 어쩌면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술에 기대 밤새 했던 말을 또, 하곤 하셨습니다.
이십년이 지난 풍기는 지금 겨울의 한복판에 와 있습니다.
우야 둥둥 잘 살기를 바란다는 장인어른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채 저세상으로 떠나셨고 장모님은 처남의 아이들을 돌보며 소일하고 계십니다.
용인에서 부산 큰형님 댁에 가야하는데 길이 너무 멀어 이번엔 처가댁인 이곳 풍기만 다녀오자고 아내와 이야기했습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없이 맞이하는 설이 장모님께는 너무도 쓸쓸하실까 봐 선택한 나의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철부지 처남들은 이미 장성하여 장인어르신의 차례 상도 손수 준비합니다.
아이들 먹을 뻥튀기와 감자깡, 한과와 햄선물세트를 사서 처가댁 문을 두드립니다.
텔레비전의 게그프로에서는 설 선물로 뭐가 제일 좋냐면 현금이라고 해답을 알려줍니다.
한참 덕담을 나누다 나는 풍기 읍내를 구경할 겸 혼자 길을 나섭니다.
풍기는 한집 건너 한집이 인삼가게입니다. 그리고 사과판매점입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인삼과 사과를 사려고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듭니다. 그러나 쓸쓸한 이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은 거리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상점은 설을 쇠러 철수한 상태였으며 슈퍼와 떡방앗간만 정신이 없습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마다 빈집이 눈에 보입니다. 주인 없는 빈집은 비바람에 정신없다가 서까래가 넘어가고 지붕이 넘어가고 담벼락이 넘어가면서 풀썩 주저앉습니다. 주저앉은 자리에 잡초가 무성합니다. 장사를 하는 몇몇 가게만 화려할 뿐 그 이면의 동네는 쓸쓸함만 앙상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풍기역을 건너 철길 건너 마을로 터벅터벅 걷습니다.
근처 농기구 수리 센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당에 가득 경운기의 잔해가 널브러져있습니다.
통통통 경운기의 맥박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데, 경운기의 대가리들은 수십 대가 아무렇게나 마당 바닥에 처박혀있고 땅바닥을 힘차게 굴러야 할 경운기의 바퀴는 허공을 향한 채 벌러덩 나자빠져있습니다.
부러진 경운기 수리 센터 간판만 을씨년스럽게 바람에 흔들립니다.
주인은 이미 이사를 갔는지 수리 센터가 아니라 폐차장 같습니다.
한때는 저 많은 경운기가 통통통 소리를 내며 이과수원 저 과수원, 이 삼밭 저 삼밭을 누비며 과일과 인삼을 실어 날랐겠지요.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하고 끝내 병이 들어 더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이곳 마당에 처박혀 남은 생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어쩌면 사람의 생명도 경운기와 같은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다시 방향을 틀어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멀리 동양대학교 간판이 보입니다.
개울을 건너고 가로수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대학교입니다. 시골 들판 한복판에 학교가 세워져있습니다. 그 학교 언덕 아래에 조그만 들판이 있는데 들판 한 귀퉁이에 집 한 채가 달랑 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앞에 두고 외딴 집 한 채가 텅 빈 채 놓여있고 그 뒤로 높은 언덕이 있고 언덕위에 대학교가 휘황찬란합니다.
내 발길은 그 폐허가 된 집으로 향합니다.
유리창은 부서지고 창틀만 바람에 삐거덕거립니다.
전깃줄은 있는데 두꺼비집은 이미 망가져있습니다.
형광등 스위치는 있는데 형광등은 빈 갓만 있을 뿐 어디에도 불빛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학교 언덕이 뒤를 바치고 있어서 바람한 점 없습니다.
이런 곳에 머물며 글을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폐가에 앉아 폐가처럼 된 농촌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농촌이 위로받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갈수록 농촌의 인구는 줄어들고 사람들은 도시로만 향합니다.
아이들을 교육시킬 엄두가 나지 않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평균 가정 인구가 2,9명인 지금 머지않아 그것도 무너져 한 집에 한 명이 사는 가정이 대부분이 될 거라는 통계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무엇이 그렇게 살도록 바꾸어놓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해마다 명절만 되면 나는 현실의 삶에 부대끼느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 농촌의 안쓰러움이 마치 나의 삶처럼 아프고 쓰라립니다.
위로가 위로로 끝나지 않고 다시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는 날을 나는 꿈꾸어 봅니다.
젊은이 여러분! 우리 시골로 내려갑시다. 그래서 이 낡아가는 시골을 활기차게 살려봅시다.
첫댓글 부인의 대한 배려가 지극하심이 크시네요 잘 하시는거예요 변함없이 배려해 드리세요 언젠간 시골로 내려가는게 생각중에 있는데 왜 나이가 들어서 내려가게 되는지 ....
젋어서는 살기바빠서 그럴거예요 휴가잘보내시고 ㅎ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하는 우리세대 라도 있는 지금은 그나마 다행 이지만 -
그이후 를 생각해 보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