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씩 사람들한테 "제가 예전에 조계종 스님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말은 내가 그만큼 특별하고 뛰어난 사람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불교도 별 것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말을 합니다.
제가 스님과 목사님들을 다 겪어보면서 아는 건데 ... ...
그냥 일반인으로 열심히 먹고 사는 삶이 제일로 훌륭하고 양심적이고 멋있어 보입니다.
2.
조계종은 행자 --> 사미승 --> 비구승
이런 식으로 올라갑니다.
일반적으로 사미승도 중취급은 받지 못하고 비구승을 달아야 스님소리를 듣습니다.
투표할 때도 비구승이어야 투표권이 주어지고요.
그런데 이것은 중놈세계의 법칙이고,
일반인 기준에서는 승복 입고 머리를 훌떡 깎아놓으면 그 놈도 중이고 딴 놈도 중이고 다 중놈입니다.
개신교로 치면 행자는 교육전도사, 사미승은 전임전도사, 비구승은 담임목사
이렇게 풀어보면 비슷할 겁니다.
3.
류상태 목사님이 크게 한 건 터트린 것이,
기독교 목사들은 모두 사기꾼이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평신도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밥그릇때문이다.
동귀어진, 자폭 비슷한 개념으로 폭로했는데 이 말 아주 양심적인 말입니다.
역사적예수연구에서도 예수가 살아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자료는 1건도 없습니다.
가장 최초의 기록이 유대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유대고대사>인데,
요세푸스가 B.C 37/38년에서 A.D 100년 이후의 사람이니까,
가장 최초의 기록도 예수가 죽고 나서 수십년 뒤의 기록입니다.
여기서도 그랬다더라 기록만 있고 이조차도 후대에 기독교인에 의해서 가필되었다는 학자들의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복음서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그래서 후대의 첨가가 가장 적은 것이 마가복음인데 이 역시도 역사적가치는 적습니다.
제가 아주 유익하고 좋은 정보 말씀드려드릴게요.
오강남 교수저(길벗들의모임의 물소리님) <예수는 없다>
티모시프리크, 피터갠디 공저 <예수는 신화다>
게르트타이쎈, 아테네메르츠 공저 <역사적예수>
얼도허티 저, 강경수엮음(예수동아리 강경수 이 분임.) <예수퍼즐>
존쉘비스퐁 저 <예수를 2000년 동안의 오해로부터 해방시켜라>
존도미닉크로산 저 <예수는 누구인가?>
홍정수 박사/목사저(갈릴리교회 대안신학원 홍정수 목사님 그 분임.) <베 짜는 하나님-이단자를위한한국신학>
이 책 다 사도 돈 10만원이 안됩니다.
신학에 관심있거나 학자가 될 게 아니면,
아무거나 골라서 한 권만 읽어도 됩니다.
그러면 '예수천국불신지옥! 나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섬기며 기도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죽어서 천국에 가리'
이런 가치관은 확 깨집니다.
4.
1 -3 번 왜 썼냐면 불교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썼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을 정리하면,
깨달을 것이 처음부터 없다가 되겠습니다.
무슨 신비로운 게 있고 굉장한 것이 있고 초능력도 막 쓰고 깨닫기만 하면 이 세상에 내 손에 있고 그럴 것 같지만,
그런 거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여열반이 답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을 숭상하는 종교가 아니라 일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지양하는 종교입니다.
일상에 충실해지기 위해서는 열심히도 살아야하지만 집착도 내려놓아야 하지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사후세계라는 것이 가장 정직한 답은 <모른다>가 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의 솔직하고 상식적이고 정직한 답이 <죽으면 끝이다> 이게 맞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 영원히 살아있는 것 아니니 태어났으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건데,
욕심 부리지 말고 삶에도 과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영원히 사는 게 아니고 때가 되면 무덤으로 가든지 화장터로 가든지 다 가니까요.
대승불교는 자기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원시경전을 최대한 구라로 뻥튀기를 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불/법/승> 삼보를 앞세워서 제도종교 불교를 옹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목사들이 목회자는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니까 나한테 개기지도 까불지도 말고 헌금이나 잘내라,
그 시커먼 속셈하고 동일한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한국사찰에 있는 '산신각' 하고 '천도제'입니다.
부처님 말씀 어디에도 출가수행자들이 천도제 지내주면서 돈 받아 먹으라는 말이 없고,
산신각에서 신령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거 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56억 7천만년후에 미륵불이 오시네 이런 것도 불교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고,
이런 걸 진짜로 믿으면 문자주의신앙이 되는 겁니다.
윤회업보사상은 원래 힌두교의 것입니다.
그리고 힌두교는 윤회업보사상을 지배계급의 논리로 써먹었습니다.
하층민들이 반역을 하지 못하게 찍어누르는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니가 거지인 이유는 니가 전생에 거지같이 살았으니까 그런 거니까 불만 품지 말고,
이번 생에 착하게 살아서 다음 세상에서는 거지가 되지 말거라,
니가 소백정인 이유는 니 아버지가 소백정인 이유도 있지만 니가 전생에서 사람답게 살지 못해서 소돼지나 잡는
백정이 된 것이다, 그러니 까불지 말고 소돼지나 열심히 잡아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불교의 태생배경 자체가 힌두교의 관습적이고 교리적인 악습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깔끔하게 정리하면,
기독교를 요약하면 <이웃사랑> 불교를 요약하면 <자비심> 이렇게 됩니다.
엎어치나 메치나 똑같습니다.
그리고 뭔 종교가 돈 내라고 헌금함이 왔다가 갔다가 하는 건 다 똑같은 부류입니다.
불교의 것이 따로 있고 기독교의 것이 따로 있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딴 거 없습니다.
원시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수타니타파>인데,
이건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운율이 있고 읽어보면 반복되는 구절도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살펴보면 <사성제>를 깨닫고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시불교의 인간관은 부처님의 말씀도 방편일뿐 오직 자기자신을 등불로 삼고 깨달음을 이뤄라 이겁니다.
참된 불교는 자비심의 실천입니다.
5.
한 가지만 더 ... ...
온라인에서의 글과 댓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시시껄렁한 이야기하더라도,
내가 시시껄렁하게 느끼면 사람 사는 거 느끼는 거 비슷해서 남들도 시시껄렁하게 느낍니다.
모른 척 해주는 어른의 성숙함도 갖추고,
말 한 마디를 해도 상대방 자존심과 기분은 배려하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죄를 저지르지 않고 하얀 백지처럼 사는 인간도 없고,
거짓말 안하고 사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분별력없이 아무렇게나 살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로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내 마음과 같지 않은 불쾌한 일도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만남 자체를 접을 수는 없는 겁니다.
대화의 장을 언어폭력으로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막 미친듯이 세상을 정의롭게 살고 싶고,
불합리한 세상에 울분이 차오르고,
이 세상을 위해서 뭘 하고 싶으시면 ... ...
부산에 김진숙씨가 180일째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고공농성 투쟁하고 있는데 거기 가서 거들거나,
재산 정리해서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눠주시거나,
관악동/봉천동 이런 곳에 달동네 가서 거기 학생들 국/영/수/사/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봉사하세요.
우리들 다 생각은 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
겁나고,
귀찮고,
손해보기 싫고,
상황도 여의치않고,
가족이 걸리고 ... 그렇죠?
그래서 키보드나 두들기고 있는 겁니다. 키보드는 편하니까.
우리 그런 사람들입니다.
너나 나나 ... ...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기 일만으로 허덕거리고 바쁩니다.
그게 우리의 실체고 본질입니다.
그러니 괜히 오버하지 말고 ... 남들과 잘 지내면서 잘 놀고 잘 살자는 겁니다.
적극적인 이웃사랑과 자비심의 실천은 힘들어도,
공짜로 노는 온라인에서 작은 관용은 상대방에게 베풀 수 있는 거고,
그런 게 서로간에 배려심이 되고 성숙함이 되는 게 아닐런지요 ... ...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원거사님 사랑하니까 피씨방알바한테 악플 쓰지 마세요. ^^ ;;;
피씨방알바 사는 거 매우 고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