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0일(일) 맑음
백두대간 남진(南進) 10차 원정으로,
21구간 은치재-장성봉-버리미기재를 어제(11월 29일) 끝내고,
11월 30일, 22구간인 버리미기재-대야산-늘티구간을 진행하는 날이다.
일기예보로는 전혀 언급이 없었는데,
어제 은치재-장성봉-버리미기재 구간에 많은 눈이 내렸다.
기상청 일기예보를 전부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금요일인 11월 28일 오후 2시 예보에서 문경, 괴산 지방에
눈이 온다거나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다.
곰넘이봉을 넘을 때까지는
적설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촛대봉을 넘어서면서 슬슬 걱정이 된다.
대야산 직벽에 눈이 많이 쌓여 있음을 보았고,
기온이 낮기 때문에 밧줄도 얼어 있을 것이다.
급경사면 (내려보기)
직벽 완경사면까지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았다.
밧줄이란 밧줄은 모두 얼어 있고,
바위면이 붙어 있는 얼음은 미끌미끌하다.
그 위에 어제 내린 눈이 덮혀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다시 직벽 앞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하여, 스틱을 접어 배낭에 수납한다.
대야산 직벽은 대략 4포인트로 나눠져 있다.
바위 절벽의 전체 길이는 30m정도로 긴 편이지만,
중간 중간에 쉬는 포인트 4곳이 있으므로 조심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다.
위험하고 불안한 가운데,
직벽을 올라 마지막 포인트에 당도했다.
맨 마지막 바위의 높이는 약 7m.
역시 밧줄은 얼어 있다.
바위 틈 사이로 발을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다.
손에 힘이 딸려서 한 번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다행으로 몸의 균형을 잃지 않아 넘어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판단 착오를 한다.
직사면의 바위에 발을 의지하기 곤란한 상태임을 감안하면
아이젠을 벗었어야 했다.
다시 기어 오른다.
역시 발을 의지하기 어려우니 팔의 힘으로 올라야 한다.
당연히 손의 힘이 모자랄 수 밖에.....
혼자 생각한다.
'배낭을 먼저 던져 올려 놓고 올라볼까?'
위치로 볼 때 그 것도 쉽지는 않으리라.
밧줄의 맨 마지막 매듭을 오른 손으로 잡고,
왼 손으로는 바위 위에 간신히 붙어 있는 나무 뿌리를 잡았으나,
나무뿌리를 믿을 수는 없다.
나무 뿌리가 뽑히면 곤란하다.
바위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이제 이 바위만 오르면 된다.
왼손의 나무뿌리는 믿을 수 없어 힘을 줄 수 없는데,
오른 손의 힘이 점점 딸린다.
밧줄의 굵기가 직경 4㎝ 이상이 되니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왼손에 잡고 있던 나무 뿌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른 손에 점점 더 힘을 주려 하지만 이제는 손아귀에 힘이 없다.
.
.
.
.
"아~~~"
몸이 허공에 떴다.
왼손의 나무 뿌리가 뽑히고 나니,
오른 손에 부하가 갑자기 크게 전달되어 견디지 못하고 손을 놓고 만 것이다. 추락하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죽음이다.
"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
미련도 많지만 후회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산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
"그런데 어째서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떨어지면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뜰 용기가 없다.
다만 떨어지는 시간이 너무나 길다고 느껴질 뿐이다.
중간에 배낭으로 두어번의 충격이 느껴졌지만,
머리나 팔, 다리에는 다른 충격이 없이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
지금 떨어지는 자세는 뒤로 누운 상태이다.
마침내 착지를 했다.
등으로 둔하게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몸이 정지했다.
몸을 일으킬 수 없다.
다행히 정신은 잃지 않았다.
사고 장소의 그림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
배낭 위에 누운 상태로 주변을 돌아보니,
직벽이 시작되는 곳의 나무기둥에 몸과 배낭이 걸쳐 있다.
균형이 조금만 흩어지면 다시 낙하를 할 것이다.
일단 손으로 나무를 잡고 의지하여 몸을 일으키려니 쉽지않다.
온 몸이 정상은 아닌 듯 싶다.
우선 몸을 간신히 일으켜 보니 다리부분은 괜찮은 모양이다.
얼굴에 뭔가 느낌이 있어 손으로 만져보니 선혈이 쏟아진다.
우선 핸드폰을 배낭에서 꺼내 살려보니 안테나가 희미하다.
두어 걸음 자리를 옮기니 안테나가 뜬다.
'통화'버튼을 투르니 어제 민박을 했던 '대야산장'의 번호가 뜬다.
"아! 어제 민박을 했던 사람인데요.
촛대재에서 대야산 오르다가 직벽에서 떨어졌는데,
'119' 신고 좀 부탁해요.
지금 피가 많이 흘러서 언제 정신을 놓을지 모르겠는데,
핸드폰을 켜 놓을 테니 참고하라고 전해 주십시요"
그렇게 전하고 나서 배낭을 뒤진다.
구급의료품 중에 압박붕대를 찾아야 한다.
머리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는데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일단 압박붕대로 오른쪽 눈위 부분을 지혈하고,
다시 살펴보니 그래도 계속 피가 흐른다.
휴대용 수건으로 머리 위를 다시 감싸고 나니 피가 줄어 들기는 했는데,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계속 흐르고 있다.
배낭이며, 주변의 땅바닥까지 선혈이 낭자하다.
10:33시.
054-555-9798
소방청 접수확인 전화
10:55시.
054-555-9798
부재중 전화
10:55시
054-555-9798
발신통화
10:56시
소방방재청 접수 확인 메세지
11:02시
010-4801-9119
수신 전화
11:18시
011-513-6119
부재중 전화
11:19시
011-513-6119
발신통화
11:35시
054-552-9119
수신 전화
11:39시
010-4801-9119
부재중 전화
11:40시
010-4801-9119
발신 통화
11:42시
011-878-9786
부재중 전화
11:42시
011-878-9786
발신 통화
11:43시
011-878-9786
수신 전화
11:46시
010-4801-9119
부재중 전화
12:18시
011-513-6119
부재중 전화
12:20시
011-513-6119
부재중 전화
수없이 통화를 시도하던 중,
사고가 난지 40분 쯤 지난 무렵에
촛대재에서 일단의 산객들이 올라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춰서서 뭐라고 물어본다.
대답하기도 힘들고 ,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음인지 체온이 급격하게 하강하기 시작한다.
손은 피범벅이라 장갑을 새걸로 꺼냈지만 끼울 수가 없다.
사고직 후 바로 털조끼를 쟈켓 안에 받쳐 입었지만,
체온의 저하를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얼굴 어느 부위에선가 계속 피가 흐르고 있으니
체온의 하강 속도는 빠르다.
2~ 3명의 산객이 다가오는게 보였지만,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다만 119에 구조요청을 했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손이 너무 시렵다.
쪼그리고 앉아 손을 허리춤에 끼워봐도
시려오는 손의 한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손이 조금 녹을 만하면 전화가 온다.
위치 확인과, 잠이 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전화받기도 귀찮다.
마침내 헬기가 떴는데 위치확인을 못하고 대야산 정상을 뱅뱅돌고 있다.
근처에 있던 산객이 신문지와 갈잎을 이용하여 연기를 피운다.
119구조대가 대야산 정상으로 하강하여 직벽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떨어진 위치가 워낙 직벽이라 헬기가 접근을 못하니,
조금만 이동하자고 한다.
양 손목과 왼편 가슴에 통증이 심하게 전달되어 걸을 수가 없다.
구조대원의 등에 업혀 보았지만 소용없다.
가슴의 통증이 워낙 강하다.
양편에서 부축하여 간신히 서너걸음씩 옮기는데,
가슴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전해온다.
배낭은 산객들이 챙기고 있다.
"대야산장에 갖다주면 좋겠네요."
그리 부탁하고 헬기에 오르자 마자 정신을 놓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점촌의 하늘이다.
누운 채로 밖을 보니 무슨 운동장 상부를 날고 있다.
운동장에 착륙하여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비몽사몽간에 CT도 찍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서
갈비뼈 사이에 뭔가 시술을 한다.
무지막지한 통증이 다가오지만 맨정신인지,
맛이 간 정신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허파에 뭔가를 질러 넣은 모양이다.
병원에서 우리 집전화를 물어 본다.
안식구와 통화를 하는데,
아마도 안양으로 후송해 달라고 한 모양이다.
점촌에서 응급조치를 마치고 안양으로 왔다.
점촌에서 구급차로 옮겨 탈 때 보니 문경제일병원이다.
일요일이라 길이 막히는 모양인데,
구급차에서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한다.
무척이나 춥다.
안양 한림대병원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와 있었나 보다.
다시 몇 가지 검사와 응급조치를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다친 곳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흉부외과
좌측 늑골 5대 골절,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 손상되었으므로,
갈비뼈 가운데 구멍을 뚫고 허파에 호스를 박아 고름과 피가 제거되도록 조치(문경 점촌에서 응급조치로 시술)
허파의 경우 최소 4주 진단이 필요하고, 진행정도에 따라 추가 진단 예정
정형외과
오른쪽 손목 부러짐.(깁스 처리)
12주 진단(뼈의 경우 보통 4주 진단이 보편적인데 복합 골절인 듯)
성형외과
안면부에 3개소 접합시술(약 45바늘)
오른쪽 광대뼈 골절로 호흡계통에 영향이 있다고 함.
구강외과
오른쪽 입술 위는 입안과 바깥쪽으로 맞창이 남(약 30바늘)
앞니 2개 부러짐.
일반외과
왼쪽 이두박근과, 오른쪽 엉덩이, 무릎, 정강이와 왼쪽 무릎에 찰과상
안과
눈 주위가 심하게 부어 검사하였으나 이상징후 발견 못함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배낭의 모습
지금에서야 돌아본다.
1. 추락시 배낭이 있는 등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부상의 부위가 크지 않았다.
2. 중간에 뭔가에 걸려서 몸이 옆으로 돌거나 앞으로 떨어졌다면 대형 사고가 될뻔 하였다.
3. 떨어지면서 머리나 팔, 다리가 바위 등에 부딪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4. 떨어지는 위치에 큰 나무가 없기 다행이다.
큰 나무에 몸통이 찔렸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5. 사고가 났을 때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119 구급을 요청할 수 있었고,
6. 핸드폰의 통화가 가능한 지역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댓글 겨울철 안전 산행하자는 경각심에서 올렸습니다 겨울에 단독 대간산행하는중에 사고 홀대모 회원이랍니다 우리 회원님들께서는 겨울에 혼자산행은 위험 합니다
에이고~`죽다 살았네...얼어서 미끄러운 동아줄에다, 손이 얼지 않으려면 장갑은 반드시 껴야 하니, 안미끄러지는게 이상하지, 암벽에 붙은 겨울철 작은 나무뿌리 조심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 때 하강을 했지요. 직벽이 판단이 안서면 우회로도 있고...죽다 살았어...과욕이 화를 불러 이제 몇 달 동안 산 못타게 됐으니... 하루 빨리 회복 하기 바람니다.
구사일생, 과유불급...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그나마 생명을 보존하셔서 다행.. 쾌유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