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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첫 번째 유월절 사건
요한복음 2:12-25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갈릴리 가나에서 표적을 행하신 우리 주 예수님은 그 후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주께서 머무시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공적인 사역을 위해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시고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여러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기에 율법을 지키려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 명절은 모세의 출애굽 때에 생겨났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제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pass over, 즉 유월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5 …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를지니 …
11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출 12:1-3, 5-7, 12-14)
그러나 피가 없는 애굽의 집의 맏아들은 다 죽었습니다.
[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출 12:29-30)
이후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기념해야 하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첫 번째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려주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목적은 자기 백성을 위해 십자가 속량을 치르시고 그 후 부활하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의를 전가해 주시며 성령으로 영생을 주시는 영원한 중보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의를 이루시기 위해 둘째 아담이신 우리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호흡을 마칠 때까지 율법에 대해 의식법이든, 도덕법이든, 사회법이든 그 어떤 것도 범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생애 중에도 우리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공생애 첫해에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없이 선하시고 온유하신 분이지만 또한 지극히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이신 한없는 사랑과 자비의 모습이 아니라 지극히 분노하시는 엄중하고 의로운 재판관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토록 우리 주 예수님의 마음에 분을 일으킨 것입니까? 그 요인은 예수님의 입술에서 정확하게 발설되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내 아버지”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소유물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히 3:3-6)
사실 예루살렘 근처에서 소와 양과 염소를 파는 것은 성전이 서기 전부터 법적으로 허락되어 있었습니다.
[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예루살렘)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라
](신 14:23-26)
따라서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는 순례자들은 먼 여행 길에서 동물이 죽기도 하고 병에 들기도 하는 문제와 자기들의 동물이 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사장이 보니 흠이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탄생 당시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들레헴에는 유월절 양을 따로 키우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목자들이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다가 천사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8-11)
즉, 유월절 양을 따로 키우는 목자들이 있었고, 그 양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멀리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흠 없는 유월절 양을 공급하기 위한 양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멀리서 오는 순례자들은 열심히 수고하여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 양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흠 없는 동물들은 주로 감람산에서 구입할 수 있었고 구입한 동물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며 정결하게 씻겨진 후에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근처의 동네에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팔고 사는 것은 폭리가 아니라면 합법적이고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물들은 제사 용으로 흠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들이기에 제사를 돕는 제사장들이 볼 때 하자가 없었습니다.
돈을 바꾸는 환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환전상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 세금은 오직 성전 통화인 세겔로만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
13 …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릴지라
](출 30:11-14)
그러므로 성전세는 우상이나 그림이 그려진 일반 세상 돈으로는 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통화는 신으로 불리는 가이사(시저)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덫에 빠뜨리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눅 20:22-26)
그러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가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오는 유대인들을 위해 환전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환전상들은 로마, 그리스, 이집트 및 기타 통화를 성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성전 통화로 교환해 주었습니다. 물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도움을 주고 적절한 수고비를 받는 것이 합당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 들어와서 유대교의 부패가 심해졌습니다. 예수님이 공사역을 하실 때 유대교의 부패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면서 언약궤는 사라졌습니다. 그 후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2의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지만 초라했습니다. 그 후 로마 제국 때에 헤롯이 왕이 되면서 46년 동안 스룹바벨 성전을 보수하여 헤롯 성전을 지었습니다. 물론 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만은 못해도 다시 장려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헤롯 성전 안에는 여러 종류의 뜰이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었고, 이스라엘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여자를 위한 여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들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싶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14절에서 “성전 안에서”라고 한 것은 “이방인의 뜰”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제사로 사용할 동물을 사기도 하고 성전 세를 내기 위해 환전상에게 가서 그들의 사용하던 통화를 성전 통화로 바꾸었습니다. 문제는 “이방인의 뜰”은 성전 영역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매매가 허락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물 매매와 환전소가 허락된 것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된 이후였습니다.
한편 유대 땅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어느덧 주전 36년 경에 로마는 대제사장을 세우는 일에 관여하게 됩니다. 그 예가 로마로부터 왕권을 받은 헤롯 왕이고, 그후 주후 7년에는 수리아의 총독인 구레뇨가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웁니다. 그후 로마의 그라투스 총독은 주후 15년에 안나스를 대제사장 직에서 파면하고, 주후 18년에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런 식으로 대제사장 직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세워지기보다 로마 제국의 권력에 의해 세워집니다. 그러면서 유대교는 급격하게 부패하게 됩니다. 제사장들과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던 사두개인들은 로마 당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로마 당국은 제사장들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안나스와 가야바는 온 가족이 제사장을 해 먹으면서 로마 당국에 거대한 돈을 바쳤습니다. 이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은 대제사장들이 돈을 걷어들이는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제물로 드리는 동물을 비싼 가격에 팔면서 폭리를 취하였고 환전상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벌게 하면서 갈취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안나스 일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대제사장 직분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며 자신의 배를 채울 돈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야 하는 명절만 되면 대제사장들은 신이 나서 그들의 탐욕을 채우곤 하였습니다.
이런 악행은 환전상들을 통해서도 저질러졌습니다. 즉, 환전상들은 대제사장에게 거액을 주고 성전 안에 환전소를 차려놓고 폭리를 취한 것입니다. 이처럼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그들의 일가 친척들은 성전을 관할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를 돈 버는 수단으로 바꾼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바로 예수께서 그의 공사역 중에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의 배경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서 이러한 모든 부패를 한 눈에 보시고 분노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유다 지파에 속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은 후 예루살렘 성의 부패를 막기 위해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느 13:10-22)
그러니 하물며 우리 주 예수께서 영원하신 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는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하셨겠습니까? 이때 우리 주 예수께서 발하신 분노는 말라기서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
1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 3: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성전에서 일어나는 그릇된 일을 올바르게 고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 아버지의 존엄과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지금 그의 아버지는 그분의 거룩한 집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부패한 인간들에 의해 모욕과 멸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부패한 인간들에게 성전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며 더욱 권력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장소나 기도 장소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쌓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을 쌓기 위한 대제사장들에게 속아서 철저하게 착취 당하는 희생자들이 되었습니다.
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는 권력과 돈에 맞물리면 반드시 부패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것은 주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인간들이 찬탈한 후 그곳을 권력 및 재물을 쌓는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그토록 분노하신 이 일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권력 및 장사와 연관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용도와 상관없는 부패가 가득하니 하나님의 어린양은 거룩한 심판자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 아버지의 명예와 영광을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과 명예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열정은 한없이 컸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은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탄이 뱀으로 가장하여 침투하는 것을 허락함으로 에덴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성전을 거룩하게 보호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과 돈이라는 세속적인 것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성전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독히 더럽혔습니다. 이 역시 아담과 하와처럼 뱀을 성전에 들여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더럽혀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성전과 성전에 속한 자들을 멸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하지만 이제 둘째 아담인 하나님의 아들이 등장하셨습니다. 그분은 구약 시대 내내 기다려 왔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집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성전을 가장 거룩하게 지키십니다. 그러하기에 성전을 더럽히는 요소를 당장 아버지의 집에서 몰아내십니다. 이는 아버지와 교통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주의 백성을 위해 친히 거룩한 분노를 가지시고 더러운 것을 향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성전 청결을 위해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시며 친히 행동으로 옮기시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약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
이 말씀은 시편 69편에서 다윗이 원수들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입니다. 다윗에게는 그를 너무나 미워하며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런 미움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참되고 순수하게 경배하려는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주 여호와를 향한 급진적인 열심을 가졌고, 그것은 다윗의 그 씨인 메시야 예수님의 열심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10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11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 거리가 되었나이다
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비난하며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하나이다
](시 69:7-12)
이러한 다윗의 열심은 골리앗과 싸울 때부터 특별했습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삼상 17:32).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골리앗)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골리앗)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그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골리앗)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삼상 17:45-49)
하나님의 명예와 그분께 속한 주의 백성을 위한 이러한 거룩한 질투가 다윗의 열심이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열심은 훨씬 이전에 아론의 자손 비느하스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모압 땅을 지날 때 모압 왕 발락은 발람 선지자가 알려준 대로 모압 여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며 바알브올에 제사 지내는 일에 동참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 25:1-3).
그래서 전염병이 터져 이스라엘 백성이 2만 4천명이 죽게 됩니다. 그러한 무서운 때에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인 시므리가 바알브올의 신전 창녀인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이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민 25:6-9)
그리고 주의 백성의 거룩함을 위한 이러한 열심을 가진 비느하스에게 커다란 복이 주어집니다.
[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민 25:10-13)
여기서 비느하스가 가졌던 ‘질투’가 다윗이 성전을 향해 가졌던 열심이며, 그 열심은 그대로 부패한 성전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불일 듯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특심한 사랑은 종종 이 세상에 속한 부패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거룩한 질투와 열심을 한없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거룩한 영광을 지키려는 이러한 강력한 열심은 예수님을 삼켰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열심이 얼마나 컸던지 그 열심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Passion 은 열심인데, Passion 은 십자가 죽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전에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그분에 대한 순수한 예배를 다시 회복시켰을 때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한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특심이 다윗의 원수들의 미움을 일으켰듯이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곧바로 거짓 신자들의 미움과 적대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권력과 인기와 돈줄을 흔들어 놓은 예수님을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결국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이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리스도의 열심은 유대교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증오를 불러 일으켰고 우리 주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 십자가에 달려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속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 후 40년이 지난 때에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원수들의 손에 의해 죽게 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죗값을 속량하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영원한 성전이 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과 만나서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나님과 주의 백성 사이에서 성전 그 자체로 계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며 그들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로 구성된 새 언약 시대의 교회 역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한 성도로 구성된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함이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지금 그리스도는 그분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는 우리 역시 우리의 마음과 몸을 더럽히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주님과의 교제를 막는 모든 죄와 부정을 철저하게 제거해야 함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해 특별한 열심과 사랑과 충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가짜 신자들과 불신자들에게 많은 오해와 억울한 일들을 당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러한 거룩한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열심입니까? 나를 삼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즉, 그 열심이 내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과 타협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주께 기쁨은커녕 도리어 근심 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이는 교회 역시 철저하게 거룩하고 청결해야 합니다. 이는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부분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가 지향하는 목적과 교회를 운영하는 힘이 그리스도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과 권력과 거짓말과 정치와 세상 조건이 이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까? 참으로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보실 때 청결한 교회입니까?
그러한 청결한 교회가 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거짓과 수군거림과 비방과 미움과 시기와 음란과 혈기와 같은 더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모든 죄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나 …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19-21, 24)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무엇보다 청결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교훈입니다. 교회가 바른 교훈을 가르치려면 오직 성경에 서서 그리스도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할 때 교회마다 청결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4-17)
이렇게 우리 주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열심을 보이시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벌써 따지고 대듭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요 2:18).
이는 예수님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완고한 자들의 전형적인 요구입니다. 이런 불신의 상태에 있는 완고한 자들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가장 놀라운 표적을 언급한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은 그들에 의해 십자가에 죽을 것이지만,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진정한 저의는 바로 자신의 십자가 속량과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21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진의를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21).
즉, 예수님은 참으로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그 증거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죄와 탐욕과 부정으로 가득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고작 눈에 보이는 성전을 말씀하신 줄 착각하고 헛소리를 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이때 예수님은 이들 불신자들의 어리석은 질문에 답변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진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보았을 때 이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며 그는 참으로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신들도 주의 성전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의 공생애 가운데 첫 번째 유월절에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대한 권세와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이 될 주의 백성을 영원히 거룩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마음까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서로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의식하며 주께서 우리 마음을 낱낱이 다 아신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 생활하기 바랍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정직하고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중심을 아시고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더욱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철저하게 동행하며 주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