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달마 넷,
아비달마불교의 발달 (1)_아비달마

부파불교의 문헌을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라고 한다. 아비달마란 ‘법의 연구’라는 의미이며 ‘대법(對法)’이라고 번역한다. 직접적으로는 붓다가 설한 교리를 말하지만 동시에 그 가르침에 의해 드러나는 진리나 실재를 의미한다. 즉 교법(敎法)의 연구를 통해 실재나 진리를 발견하는 일을 아비달마라고 부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이미 근본불교시대부터 행해지고 있었지만 체계화되지는 않았다. 제1결집을 통해 형성된 경장(經藏)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체계화시키는 작업이 부파불교의 논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부파불교의 논사들에 의해 연구되고 체계화된 일련의 가르침이 하나의 문헌으로 성립되었는데 이를 아비달마장(藏)이라고 하며 줄여서 논장(論藏)이라고 한다. 논장(論藏)은 경장(經藏)이나 율장(律藏)과는 달리 그 원형이 초기교단시대에 형성되지 않고 부파 교단이 성립한 이후에 형성되어서 논장(論藏)의 내용이 각 부파마다 다르다. 논장(論藏)의 제작은 대략 기원전 250년 경, 근본분열 이후부터 시작되어 기원전후까지 완성되었다고 보여진다.
부파불교의 논사들은 기존의 가르침을 보다 심화시켜서 발전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분석적 경향으로, 아함의 가르침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여 각각의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고 나름대로의 주석을 붙인 것이다. 둘째는 종합적인 경향으로 아함에 수록되어 있는 여러 교설을 정리하고 일정한 체계로 분류하는 것이다. 일정한 체계없이 산재되어 있던 교설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배열하였다. 즉 수와 관계된 교설을 그 수에 따라 병렬시키거나 가르침의 내용에 따라 배열하는 방법이다.
아비달마불교의 발달 (2)_아비달마 논서의 성립

아비달마(阿毘達磨) 논서(論書)의 전개과정에는 일반적으로 세 단계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단계는 아함(阿含) 경전 안에 있는 교법(敎法)을 정리, 조직하기도 하고 해설이나 주석하는 아비달마적 경향을 띤 시기이다. 그러나 그것이 발달하여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아비달마 장(藏) 즉 논장(論藏)으로서 경장(經藏)에서 독립하는데, 거기에서는 교법(敎法)의 조직이나 해석이 더욱 더 정교해진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교법의 해석이 정교해진 결과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함경(阿含經)>을 해석하거나 조직하는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그러한 기초 위에서 각 부파마다 독특한 교의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아함 경전은 붓다가 입멸(入滅)한 후 정리하여 전승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짧고 단편적인 경(經)의 집성이다. <아함경>은 일정한 체계없이 붓다의 설법을 집성한 것이기 때문에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이렇게 비체계적인 <아함경>의 설이 점차 정리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교의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아함(阿含) 가운데 나타나는 아비달마적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교설 속의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갖가지 교설을 정리하고 배열, 조직하는 것이다. 붓다의 설법은 일반적으로 쉬운 말로 이야기되며 특이한 용어나 난해한 어구가 사용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붓다가 입멸한 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또 불교가 전파된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교설 속의 어떤 어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아함경>에는 붓다가 주석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설법을 마친 후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그것을 해설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두 사람의 유력한 제자가 서로 대론(對論)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설명과 해석을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훗날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함경>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설명과 해석 모두가 붓다 당시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중 상당부분은 붓다가 입멸한 후 승단 내부에서 점차로 발전한 아비달마적 연구에 의해 첨가된 해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첨가된 부분이 점점 더 많아져 본래의 <아함경> 안에 포함시킬 수 없었을 때 <아함경>에서 분리되고 독립되어, 아비달마(阿毘達磨)라는 새로운 형식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교설이 정리되고 조직되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방식은 숫자와 관계있는 교설을 그 숫자대로 정리하여 일법(一法), 이법(二法), 삼법(三法)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방법과 교설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구별하여 동일한 주제를 가진 것들을 모아 한 곳에 정리,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법수(法數)’에 의한 정리라 하고, 후자를 ‘상응(相應)’에 의한 정리라고 한다. 각각의 짧은 경 가운데에는 법수(法數)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몇 개의 짧은 경을 모은 경전군(經典群)에 그러한 방법을 적용시킨 것도 있다. 또 다수의 경전군(經典群)을 모아 동일한 방법으로 전체를 정리한 것이 <증지부(增支部)>, <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상응(相應)에 의해 정리하는 방법은 짧은 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경전군(經典群)에 적용시킨 예는 많은데, 다수의 경전군을 이러한 방법으로 정리한 것이 <상응부(相應部)>, <잡아함(雜阿含)>이다.
경장(經藏)은 승단 안에서 전승되는 동안 아비달마적 연구가 고조됨에 따라 점차 부가, 증가, 정리, 안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경장(經藏)을 보면 그 가운데는 원형 그대로 간결한 교설을 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비달마적 경향이 진전되어 이제 거의 하나의 이비달마 논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부분도 있으며, 각 부파마다 약간씩 상이한 내용을 설한 부분도 있다. 이는 <아함경>이 한 부파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몇 개의 부파에 의해 전하는 아함이 따로따로 번역되어 우연히 하나로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경장(經藏) 안에서 점차 아비달마적 경향이 발달하여 마침내 독립된 아비달마 논서가 형성되었다. 즉 아비달마 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한 최초기의 아비달마는 주로 아함에 나타난 아비달마적 경향을 각 부파에서 그대로 연장,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각 파 사이에 공통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미 각 부파의 독특한 교의와 학설을 반영한 특수한 용어나 특수한 해석이 적지 않게 드러나 있다.
일단 독립한 아비달마 논서는 순조롭게 발달하여 마침내 아함 경전의 연장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논서를 만들게 되었다. 부파에 따라 점차 부파적 색채가 농후해지고 술어를 독특하게 해석하고 정의하였으며, 여러 가지 개념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자세한 분석적 고찰이나 개별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 등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아비달마 발전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교설을 조직적으로 구성한 논서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비달마불교의 발달 (3)_설일체유부의 논서의 발달

설일체유부는 상좌부 계통에 속한 부파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지말(枝末)분열하여 독립된 부파를 형성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일체유부는 여러 부파 가운데 가장 번영하였다. 초기에는 안드라 지방에서 번영하였으나 후에는 서북방의 카슈미르 지방을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설일체유부는 붓다 시대에 주로 사용하던 마가다어를 사용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였다.
설일체유부는 독자적인 논서(論書)를 발달시켰는데, 이러한 논서의 발달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즉 초기(初期)의 논서는 경장(經藏)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아비달마적 경향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보이는 것이고, 중기(中期)의 논서는 그 뒤를 이어 유부(有部)의 독특한 교설을 점차 발전시킨 것이고, 후기(後期)의 논서는 그렇게 발전된 교설을 조직적이고 일관된 체계로 서술한 것이다.
초기(初期)의 논서
초기의 논서로는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과 <법온족론(法蘊足論)>이 있다. <집이문족론>은 <장아함경(長阿含經)> 가운데 하나인 <중집경(衆集經>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아비달마적 색채가 농후한 경인데, <집이문족론>에서는 그 경에 열거되고 있는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 이는 아함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논장(論藏)이 경장(經藏)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원초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법온족론>은 특정한 경에 대해 주석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함에서 21가지 주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교설 하나마다 하나의 장(章)을 할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그 교설을 담은 경문(經文)을 첫머리에 게재한 다음 이것을 자세히 해석하는 방법은 최초기 아비달마 논서의 특징이다.
이 두 론(論)은 아비달마 논서로 성립하였지만 아직 경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전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논(論)’ 정도의 수준이다. 여기에는 이미 설일체유부 특유의 용어나 사상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부파들과 공통되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중기(中期)의 논서
그 다음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족론(施說足論)>에서는 아함 경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비달마 논서 특유의 색채가 짙게 나타난다. <식신족론(識身足論)>이나 <계신족론(界身足論)>에 이르면 법수(法數)에 의해 종합되고 정리된 술어는 매우 복잡하게 해석되고 각 술어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져 논의가 현저하게 정교해지고 번쇄해졌다. <시설족론>은 아비달마적인 우주론과 세계론을, <식신족론>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분석을, <계신족론>은 마음과 마음의 작용에 대한 해석을 각각 크게 발전시켜 설일체유부 교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바수미트라(Vasumitra, 世友로 한역)가 저술한 <품류족론(品類足論)>에서는 술어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 더욱 더 발전되었으며 동시에 오위(五位)설이나 구십팔수면(九十八隨眠)설 등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이론이 확실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이전의 논서들이 주로 각기 특정한 문제를 분담하여 고찰한데 반해 카트야야니푸트라(Katyayaniputra)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에서는 설일체유부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발지론>에 대한 매우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다. 이 논서가 나타남으로써 논의가 한층 더 세분화되었고, 더욱 더 정밀한 고찰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발지론>에 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하여 논의하고 있다. 또한 자파(自派) 내의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나 다른 학파의 학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어서 실로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석방법도 <발지론>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충실하게 해설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고 인정되는 부분에만 특별히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간략하게 취급하였다.
후기(後期)의 논서
법승(法勝)이 저술한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소론(小論)이지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였다. <아비담심론>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이는 앞서 <발지론>에서 이루어진 8장의 조직에 비해 훨씬 진보한 것이다. 제1~2장에서는 이 학파의 근본 입장인 法의 이론을 설하고, 제3~4장에서는 미혹한 세계의 실상을 밝혔으며, 제5~7장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와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다. 이러한 구성방법을 이후에 작성되는 거의 모든 설일체유부 논서가 취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논서 이후를 ‘후기의 논서’라고 한다.
<구사론(俱舍論)>은 <아비담심론> 등에서 맨 마지막 3장에 포함된 보유나 부록을 정리하여 앞의 7장 가운데 적당한 곳에 수록하고, 다른 새로운 1장을 추가하여 미혹한 세계의 현실을 밝히는 부분으로 삼아 모두 8장으로 구성하여 한층 더 정연한 조직이 되었다. 거기에 다시 론(論)의 말미에 특별히 독립된 1장을 부가하여 무아(無我)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 <법온족론(法蘊足論)>에서 시작하여 <발지론(發智論)>에서 학설의 대강을 드러내고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에서 그 조직적 논술의 정형을 갖춘 설일체유부 논서는 이 <구사론>에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구사론>은 체계적 논서의 완성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분량에 있어서도 <발지론>의 한 배반, <아비담심론>의 두 배나 되는 대작이다.
<구사론>의 저자는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이라고 한역)이다.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여 밝히고 있으며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하여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후 여러 지역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수많은 주석서가 작성되었다. 그러나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학설만을 충실히 서술하고 있지 않으며 때로 저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전통 학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다른 주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럴 경우 설일체유부의 정통설을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이 경량부(經量部)의 주장과 상통하기 때문에 단순히 설일체유부의 논서라고 단정짓는 것은 곤란하다.
<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이라고 한역)의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과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 부분에서 구사론의 게송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 부분에서는 바수반두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하여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기본골격은 <구사론>을 따르되 그 학설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순정리론>의 분량은 <구사론>의 두 배 이상이며 <현종론>도 <구사론>보다 많은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에서는 특히 그 예리한 비판과 상세한 반론이 두드러지며 후자에서는 비판보다 오히려 정통설의 천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개요 _부파불교

부파불교란 초기교단이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분열한 이후의 전통적인 교단의 불교를 말한다. 불멸(佛滅) 100년 경에 초기교단은 붓다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려고 하는 보수파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上座部)와 승단의 규율에 있어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대중부(大衆部)로 나뉘었는데 이를 근본분열(根本分裂)이라고 한다. 이 근본분열의 원인에 대해서 남방불교의 전통에 의하면 십사(十事)를 둘러싼 계율해석을 위해 바이샬리에서 모인 제2차 결집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며, 북방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아쇼카왕 때 마하데바라는 사람이 오사(五事) 즉 아라한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다섯 가지 항목을 주창한 것을 계기로 하여 분열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상좌부와 대중부 각각에서 다시 분열을 되풀이한 것을 지말분열(枝末分裂)이라고 한다. 상좌부는 7회의 분열에 의해 11부로 나뉘었고, 대중부는 본말을 합해 9부이기 때문에 상좌부와 합해서 20부가 된다. 그래서 근본의 2부를 제외하고 18부의 분열이라고 한다.
부파 교단의 불교는 붓다의 직계제자인 대가섭과 아난 등에 의해 전해진 불교가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계승되어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부파 교단의 불교는 ‘제자의 불교, 배우는 불교’이며 남에게 가르치는 입장의 불교는 아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불교였기 때문에 대승교도들로부터 성문승(聲聞乘)이라고 불렸다. 성문이란 불타의 말씀을 들은 사람, 즉 제자라는 뜻이다.
부파불교 교리의 특징은 출가주의라는 점이다. 출가하여 비구나 되고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한다.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출가자는 국왕이나 장자들의 지원 아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교리연구와 수행생활을 해 나갔다.
다음으로 부파불교는 은둔적인 사원(寺院)불교이다. 승가(僧伽)가 점차 조직화되고 안정된 경계적 기반을 갖춤에 따라 출가자들은 재가신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교화하고 걸식하는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사원에 안주하며 명상과 열반의 적정(寂精)만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고 학문과 수행에 전념하였다. 타인의 구제보다는 먼저 자기의 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때문에 대승교도로부터 소승(小乘)이라고 불리고 천시되었다.
이처럼 국왕이나 장자들의 경제적 지원에 의해 승단은 유행걸식하지 않으면서 출세간주의(出世間主義)를 관철하여 연구와 수행에 주력했으며 이로써 분석적이고 치밀한 불교교리를 완성시켰다. 이것이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법에 대한 연구) 불교이다.
첫댓글 정말 수고하셨네요
옆 방에서 대승경전 [비불설]이라면.. 초기경전인 아함경이나 니까야 역시 [비불설]이 아닌가.. 하는 논쟁의 글들이 있는데.. 그 내용의 진지함에 비해 [비불설]이라는 언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처럼 앞뒤 끊어 이해하는 시대에 결국 남는 것은 [불경 비불설] 아닐까요?.. 그것은 [비불설] 보다 더 큰 문제가 아닙니까?.. 불교 학인들의.. 남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자세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반론하신 분은 원글쓰시는 분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저도 너무 의아해서 토론방에 올려볼까했었는데 원글쓰신분이 다시 잘 지적해주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