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움과 고아한 정취가 가득한 세자의 공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한 정당(正堂)인 중희당(重熙堂) 동편으로 제법 규모가 있으면서도 단청이 없는 사대부 주택과 같은 모습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건물 앞으로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아래의 행랑채와 용마루 높이를 동일하게 이어 설치한 녹색 문 위로 적힌 ‘학금(鶴禁)’은 이곳이 왕세자가 거주하는 장소임을 명시한다. 학금은 “태자(太子)가 거주하는 땅이 백학인데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기에 학금이라고 이른다”라는 중국 한나라 궁궐소(宮闕疏)의 글에서 나온 용어이다. 이 문을 지나면 연분홍 꽃나무가 있는 터가 나오고, 곧이어 팔작지붕을 한 솟을대문이 나타난다.
화청관(華淸觀)이라 이름 지어진 이 문의 지붕 아래로는 단청을 칠하지 않았지만 궁궐 정전에서 임금의 자리를 장식한 당가(唐家)처럼 동·서·북 삼면에 연꽃 봉우리 장식을 끝에 단 기둥 및 풀과 잎 무늬[초엽(草葉)] 조각 장식판을 달아 해당 공간의 위엄과 격을 높였다. 또, 문의 좌우 기둥 앞으로 넝쿨과 같은 문양 장식을 날개처럼 세워 화려하게 꾸몄다. 이 화청관 문을 지나면 바로 효명세자의 처소인 연 영합(延英閤)이 마주한다.
연영합은 대청과 방, 누(樓)로 구성되었는데, 대청 가운데 연영합 편액의 동·서로 천지장남지궁(天地長男之宮)과 학 몽합(鶴夢閤) 편액이, 서쪽의 누에는 오운루(五雲樓)로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연영합 건물 안에 공간별로 달리 지은 집 이름[堂號]들은 효명세자의 다양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천지장남지궁’은 천하의 장남인 ‘세자’가 사는 거처임을 나타내고 ‘다섯 가지 구름의 누’인 오운루는 세자가 거처하는 공간의 상서로움을 강조한다. 또, ‘학을 꿈꾸는 집’인 학 몽합은 비록 궁궐이지만 산에 은거하고자 하는 문인으로서의 지향을 보여준다. 학몽합과 오운루의 정면으로는 화청 관문의 좌우로 한 쌍의 구리 학(銅鶴)과 괴석이 나란히 마주 서 있고, 서편 괴석 앞으로 살포시 솟은 꽃나무 가지가 정취를 더한다.
효명은 유난히 학과 돌을 좋아해 본인의 호를 학석(鶴石)으로 삼고 자신의 시집을 ‘학석집’이라 했으며, 누각의 이름을 ‘학석루’로 이름 짓기도 했다. 그런데 《동궐도》에 묘사된 연영합에서 ‘오운루’란 편액이 걸린 누각이 한때 ‘학석루’로 칭해졌음을 효명이 지은 「학석루의 작은 모임의 짧은 서문(鶴石小會小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문고와 술동이가 자리에 어지러운데 홀연 난정(蘭亭)의
계회(契會)요, 글과 그림이 서가에 가득하니 흡사
서원(西園)의 우아한 모임과 같도다. 쌍학(雙鶴)은
선회하여 뜰에 있고 늙은 바위는 문 앞에 있어 이 때문에
학석(鶴石)으로 명한 것이 마땅하도다.”
-『경헌집』 권8, 「학석루의 작은 모임의 짧은 서문」-
(‘이종묵, 「효명세자의 저술과 문학」, 『한국한시연구』 10(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을 참조해 옮김)
뜨락의 학 두 마리와 우뚝 선 노석은 바로 연영합 앞마당을 장식하는 구리 학과 괴석을 지칭한다. 효명세자는 이 한 쌍의 구리 학에 대한 시를 짓고 ‘귀신이 새긴 듯’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졌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청나라 문화에 대한 동경과 문예적 취향의 반영
서쪽 담장에 난 ‘비단 향의 문’인 수향경(繡香扃)은 연영합을 완연한 중국식 벽돌집 형식을 한 5칸의 건물로 이어준다. 이 건물의 처마 아래에는 문화각(文華閣)과 수방재(漱芳齋)가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문화각은 중국 청나라 때 자금성 안 황제의 경연이 이뤄진 공간이며, 수방재는 건륭 황제가 연회를 열고 연희를 즐기던 건물의 이름이다. 문화각과 수방재 모두 청으로 사행을 다녀온 여러 문인들의 문집에 종종 언급되던 장소다. 당시 막중한 책무로 궁궐을 떠나기 어려운 효명이 궁궐 내에 중국식 전각을 짓고 자금성의 문화각과 수방재에 비견해 이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각 맞은편 마당에는 그림과 서책을 보관한 2층 누각인 도서루(圖書樓)가 동쪽으로 우뚝 솟아 있고 서쪽에는 다각형의 정자인 해당정(海棠榳)이 자리해 있는데, 이곳이 한가한 때 효명이 독서와 그림을 감상하며 휴식하던 공간임을 시사한다. 마당 남쪽 가운데로 수석과 작은 관상용 소나무를 배치해 운치를 더하였다. 전반적인 건물 배치와 조경은 효명이 지은 『정심실기(靜心室記)』의 내용과 부합한다. 또, 작은 두 그루의 소나무 옆에는 선송(仙松)과 장춘(長春)이란 이름이 적혀 있어 『정심실기』에 묘사된 효명세자가 직접 심은 소나무의 특별한 위상을 강조해 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효명세자의 사적 공간에 묘사된 아취 넘치는 건물들, 직접 심은 소나무, 즐겨 완상한 구리 학 등은 효명세자의 탈속적이고 아취로운 문예적 취향과 청 문물에 대한 동경, 그리고 산거를 꿈꾸는 문인으로서의 지향과 이상을 드러내며, 고아하고 맑은 그의 기풍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글. 손명희(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1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