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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고향친구들과 나들이==
1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만으로 행복한 요즈음,
오늘은 고향 친구모임에서 1박2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기다림은 언제고 희망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여행이주는 설렘으로 소풍가는 아희처럼 들뜬 마음에 부지런히 서둘러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가까이 있는 부재가 오히려 한참을 기다려서 나타났다.
우리 일행이래야 점검해 볼 숫자도 못 미치는,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단출한 인원이다.
우린 한계령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고, 편리하게 자리를 몰아서 위치 선정을 끝낸 후,
들뜬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 우리들만의 작은 천국을 만들어 간다.
장거리 여행에 대비해서 이약 저 약 먹어둔 것도 있지만,
화기애애한 오늘의 분위기가 내 몸의 컨디션을 상승시켜 주리라는 좋은 예감에
힘을 싣는다.
부재가 방금 솥에서 꺼낸 덧 한 따끈한 옥수수로 배급을 돌렸고, 오늘의 기분까지
가미되어 더욱 맛있는 간식이 된다.
우린 그간의 근황이며 오랫동안 쌓아둔 정담들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우정을 확인한다.
오늘의 준비물이자 여행의 묘미인 정성보따리, 간식들을 풀어놓으니 갖가지 메뉴들로
다양하고도 푸짐했다.
새벽부터 설치느라 다들 빈속, 허기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든가~그 중 손수 수확
했다는 친구네 단골메뉴 삶은 풋콩 꼬투리를 까서 입 속에 넣으면
아련한 향수까지 덤으로 묻어와 단순한 간식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동심의세계로 돌아가 더 없이 즐거운 망중한의 여유속으로 흠뻑 빠져든다.
한 고을에서 나고 자란 죽마고우들이라 정서적 공감대도 돈독한, 그야말로 막역지우가
아니던가! 우리가 교감을 나누는 동안에도 차는 쉼 없이 달려 어느 호숫가에 다다랐고
차창 밖에 스치는 운치 있는 풍경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뽀얀 물안개가 한가득 피어 드넓은 호수를 덮었고 수면 위를 노니는 한가로운 물새의 날개 짓
또한 한 폭의 그림인양 아름다워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대작을 놓고 마음껏 감상 해본다.
어느 화가의 그림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아무리 빼난 솜씨라 해도 인위적인 것은
자연의 섬세함을 흉내 낼 수 없는 것, 자연은 언제나 가식되지 않은 소박한 본 모습 그대로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크나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행운유수, 그 호연지기를 바라보며 참으로 평화로운 안락감에 젖어본다.
이 벅찬 감동은 우리들 가슴, 가슴마다 잔잔한 영상으로 새겨지리라. 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우리는 어느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진풍경들을 놓칠 새라, 이쪽저쪽 도리질을 해가며
한껏 업 된 기분에 여행이 주는 즐거움으로 가슴가득 氣기를 충전해 본다.
그리고 얼마를 더 달렸을까 지금 막, 절정에 오른 원색의 단풍들이 시월의 붉은 열정을 분출하며
우리들을 유혹했고 요염한 그 자태에 시선을 뗄 수 없어 이에 보답고저 우리도 크게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낸다.
풍경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부푼 풍선처럼 내 마음도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우리를 실은 버스도 쉬엄쉬엄 발길을 더디 하고.....
지금의 나는 벅찬 자족감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고픈
넉넉한 감동이 인다.
혹여 이 순간이 꿈은 아닐까.....?내가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幸福행복이란 단어와
친숙하질 못해서 일까, 지금의 이 소중한 행복을 금방이라도 누군가 앗아 가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그리고도 얼마를 더 달렸을까? 버스가 한계령 준령을 따라 더 높은 고지에 다다르자 거기엔
상상을 불허하는 빼어난 경관이, 아~차라리 나를 경악케 했다. 마치 고압전류에 감전된 사람
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잠시 아뜩한 현기증이 일었다.
장엄하리만큼 위엄을 지닌 풍광들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경지를 떠나 경이롭기 까지 하고
그 어떤 중압감마져 느껴져 흐트러진 나의 매무시를 고쳐 세우게 했다.
준령을 따라 빼어난, 웅장한 기암괴석들은 철갑을 두르고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용맹한 위용은 마치 서슬 돛인, 도도한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주위엔
천태만상의 물상들이 마치 장군을 호위하듯 중무장에 호령만을 기다리는
사기충천한 군사의 기백을 연상케 했고 그 용감무쌍한 기세가 나를 압도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곳에 와보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을 남겼으리라.
두 발이 있어 걸을 수 있고, 두 눈이 있어 이 아름다운 사물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삶이 축복이란 긍정의 의미 또한 얼마 만에 가져보는 감정이던가!
벅찬 환희의 고동릴 들으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파라다이스에서
높이, 높이 띄워 올린 애드벌룬처럼 내 마음이 둥실둥실 구름 위를 날고 있을 바로 그때,
누군가 나의 뜨거운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幻影환영이 있었으니, 그는 이 기쁨 함께 하지 못하고
너무나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난 바로 그 친구였다.
뜨겁게, 뜨겁게 달아오르던 가슴에서 일순간 검은 먹구름이 내려와 앉는다.
지금처럼 고향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때면 어김 없이 그 친구는 나를 찾았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喜悲희비의 쌍곡선에서 갈등하곤 했었다.
내가 살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은, 나의 어머니와 그 친구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일이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야 영원한 이별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때는 곧 돌아올 것만 같아서 亡者망자라는 생각은 추호도 할 수가 없었고 이승과 저승 간에
交通교통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수많은 날들 절규하고 오열했다.
生과 死를 생각하니 체한 듯 가슴이 먹먹하고 부질없는 인생사가 뜬구름만 같아
냉각된 가슴에서 소리 없는 우수가 내린다. 그러나 또 한껏, 육신의 문을 닫는 날까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불투명 속에 살아가는 풍전등화 같은 삶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니던가,
이승에서 짧은 연이 다하면 누구나 저 세상으로 가야하는 것을, 그곳은 어떤 비리도 특혜도 없는
만인이 평등하고 공평한 곳이 아니던가!
착잡한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불변의 원칙론을 명분 삼으며 허탈한 마음 달래며 어둡고 긴~
고뇌의 터널을 빠져 나오고 보니, 어느 새 우리들의 종착지 설악동에 당도하고 있었다.
잠시 후,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으며 차에서 내리려는데 내가 서있는 地面지면이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하지만 멀미 심한 내게 이런 고통쯤은 가벼운 증상에 불과한 것이다.
특별한 날이라고 정신력이 크게 선심을 쓰 준 것 같기도......
우린 먼저 투숙할 숙소를 물색하던 중,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서 우리의 시선을 잡는
동화 속 풍경 같은 집이 있었고, 그 집이 우리가 예약 하려던 그곳이란다.
하룻밤 숙박비로만 지불하기엔 가격이 센 곳이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분위기연출을 해보고픈
잠시의 유혹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현명한 판단으로 경제적 실리도 챙기면서 기분도
다운되지 않는, 양립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을 본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그 집도 충분히 넓고 깨끗하고 넓고 좋았다. 허기야, 잠시잠간 눈만 붙일 공간
인데, 눈 감으면 세상은 공평하지 않던가? 그리고 우정의 결정체로 맺어진 우리 사이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떠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음이 최대의 바람이고 즐거움이지 않던가.
우린 숙소에다 여장을 풀어놓고, 신선한 공기도 마실 겸, 산책을 즐기다 아예 저녁을 먹고 들어갈 요량
으로 곧바로 바깥으로 나왔다. 한가로운 산촌의 저녁나절, 깊은 산 속의 청량감은 더할 나위없었고
우리들 마음도 나를 듯 상쾌했다.
길 양 사이 식당이 마주하고 있었고,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걷다 오른편에 자리한 음식집으로 들어갔다.
홀 안으로 들어서자 약초 뿌리들로 담근 즐비한 술병들이 눈길을 끌었고 그 숫자를 혜릴 수 없을 만큼
넓은 식당 양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산촌의 분위기가 더욱 진하게 풍기는 듯 했다. 장식품으로도,
트레이드마크로도 아주 훌륭해보였다. 우린 소고기버섯전골 정식을 주문했고, 기다리는 동안도
진한 향미가 미각의 촉수를 끌어 당겼다. 깔끔한 밥상에 음식솜씨 또한 썩 좋았고. 특히나 도토리묵과
겉절이무침은 일품 중에 일품이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란? 흠잡을 데 없이 풍성한 만찬을 풍미면서도 어느, 어느 방송국에서 방영된 집이란
현수막을 걸고 손님 유치작전을 하는 맞은편 집에다 호기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도.....
훌륭한 음식솜씨 덕에 우리는 밥한 공기를 추가하며 후한 점수를 매기고 있었는데,
밥한 공기 까지 충실히 챙기는, 조금은 인색한 주인을 보면서 단돈 천원가치에 자고 갈 묵객을 쫓아버
리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센스 없는 주인의 경영철학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우리는 개운하게 온천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느긋한 마음으로 내일 날에 우리의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될 사연들을 엮어간다. 그런데 옛날부터도 잠꾸러기로 공인받은 부재. 영자는 역시나 오늘도
그 전통 깨지 않고 일지감치 꿈나라 행차시다, 그런데 모처럼 주어진 소중한 이 순간이 아쉬워 잠 못
드는 탓도 있지만, 오면서 휴게소에 들려 가볍게 마셨던 한 잔의 커피 영향이 한몫을 톡톡히 하는 듯,
른 새벽부터 설친, 긴 하루의 피로가 밀려오는 밤늦은 시각에도 통 잠을 이루질 못한다.
우리가 얘기꽃을 피우는 시각에도 항상一心일심하지 않고 등 돌려 배신행위를 하는,
의리 없는 두 친구가 얄미워 몰래 골탕도 먹이곤 했었는데, 오늘따라 세상모르고 단잠에 취해있는 두
꾸러기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잠시나마 수면을 취해둬야 하는데, 한사코 달아나려는 잠과 엎치락 뒤치
락 씨름하다, 끝내 눈 한번 부쳐보지 못 한 채 낯선 창가엔 어느 새 여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 세운 무거운 눈꺼풀이 뒤 늦게 자꾸만 내려앉으려는데 일찌감치
산부터 갔다 와야 한다고 서두는 바람에 게으름 펴볼 여지도 없이 기상이란다.
전혀 충전되지 못한 무거운 몸으로 비몽사몽간에 따라 나서고 본다,.
그런데 의외로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약수터가 있었고 어귀라 그런지 계곡이라고 하기엔
파장이 무척이나 넓었다. 편편한 개울바닥에 질펀하게 깔려있는 커다란 바위들도 무척 신기했지만
그 중, 바가지 하나를 엎어놓은 크기의 옹달샘이 마치 붙박이처럼 바위에 박혀있어서 더 더욱 신기했다.
그런데 그 작은 표주박으로도 물이 고이길 한참을 기다려야 간신히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아주 감질 나는 물이었는데, 그 귀한? 약수를 한 모금 맛보는 순간, 우왕~나는 기절할 번 했다..
그 맛과 냄새가, 독특하다기 보다는 아주, 아주 고약한 그런 맛이었다.
그 약수 마시고 무병장수, 아니 천수를 누린다 한들 결코 욕심낼 수 없는 참으로 괴이한 맛이었다.
“오색약수" 그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 이름이던가!? 오색 무지개가 드리운, 동화 속 같은,
그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그러나 그 이름이 지닌 신비의 이미지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참으로 기이한 약수가 사람 여러 번 놀라게 한다.
우린 다시 산으로 향하는 숲길로 접어들었고 눈앞에 펼쳐지는 갖가지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며
계곡을 따라 오르려니, 온갖 현란한 풍경들이 마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고 지금 우리들을
환대하는 성대하고도 특별한 향연이 베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빼어난 경관에 도취되어 정신 줄을 놓고 한걸음, 한걸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함께 가던 친구들이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 좋은 풍광을 눈앞에 가득 펼쳐놓고 나 혼자서
바라보고 느끼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커서 어서들 오라고 오라고 하였건만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아예 그 자리 고수하고 만다. 모든 것을 함께 향유하고 싶었지만, 간절한 나의 바람과 달리 이제
부터는 어쩔 수 없는 나만의 단독 레이스가 시작되고 말았다.
더 없이 소중한 이 순간을 맞이하고도 유쾌할 수 만도 없는 고적한 심사.......!
이 좋은 날, 가슴 터질 듯 찬란한 풍경을 한 가득 펼쳐놓고도 함께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사람이 없
다는 것이 너무나 허전하고 쓸쓸했다.
지금 이 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마음 나눌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기쁨도 감동도 배가 될 텐데.....
혼자서 씁쓸한 독백을 뇌인다. 그런데 혼자라는 허전함도 잠시, 눈가는 곳 어디고 현란한 풍취에 매료
되어 무엇에 홀린 듯 감탄과 탄복의 연속이었고 저만치 어디선가 천사의 음성이 들리는 듯, 환청이 느
껴졌다.
그렇다면 인간태초의 조상이라는 아담 이브가 함께 지냈다는 그 에덴의 동산에 들어온 건가?
그렇다면 정녕 이곳이 그 지상낙원이더란 말인가!? 아님 불가에서 말 하는 그 극락의 세계에 들어온
건가? 마치 내가 초인이 되어 영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기도...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눈앞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실상들이 현실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나의 존재감에 마구마구 혼
선이 오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이것이 정녕 꿈이라면 굳이 그 꿈은 깨어 무엇 하리,
영원한 꿈속이면 족할 것을.....!
참으로 불가사이한 점입가경의 신비 속으로 빠져들었고, 어디선가 선인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여 가던 발길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쫑긋 두 귀를 세워 본다.
아! 이 아름다운 자연에 순화되면 누구나 시인이 되리라.
나 또한 흥에 취해 유유자적, 어느 풍류시인의 시조 한편을 읊조려 본다.
“가을 구름 막막하고 산은 둘러 적적한데
지는 잎 소리 없이 땅에 가득 붉어라.
시냇가에 말 세우고 돌아 갈길 묻노라니
모르겠네. 이 몸 있는 곳이 그림 속은 아닌지”
이 시 속 그림이 여기에 있고, 그 풍경 속에 이 시가 있었으니 아마 그 풍류시인께서도
필시 이곳에서 그 시상을 떠올렸으리라. 속세를 떠나 속박 없는 이곳에서 몸과 맘이 한가하니
모든 인생사가 가물가물 아득해져 진다.
빼어난 풍광에 넋을 놓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오르다 보니 이무기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용이 되어 승천
하고, 오르지 못한 한마리는 탄식을 하다하다 그 자리에 굳은 채로 돌이 되었다는 전설의 바위가 있고
거기서 좀 더 오르니 선녀들이 노닐었다는 선녀탕이, 그런데 그 탕의 물빛이 얼마나 짙은지, 검푸른
색채감으로 수심을 가늠해 볼 뿐, 그리고 신선바위, 등등~시선이 가는 곳 어디고 신비 속에 빠져들어
친구들의 존재조차 희미해지는데, 그러나 내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여
초조하고 송구하고.....쫒기는 그 상황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편했다.
지금 심정 같아선 그 무엇에도 매이고 싶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한, 나만의 자유, 나만의 공간이
너무나 절실했지만, 처져있는 친구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 마음 편히 충족하지 못하고 생략, 생략하며
안타깝기 그지없는 발걸음을 내 딛다보니 언 새 정점에 다다랐고, 그 곳이 어제 우리가 굽이굽이 돌아
오던 그 찻길과 맞닿는 곳이었다. 참으로 명산 중에 명산이요, 절경 중에 절경이라, 이 곳 한계령의
비경은 그 어디도 비할 바가 없고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을 담아낼 수 없었다.
아!~천년을 머물어도 아쉬울 이 땅을 두고서 어떻게 발길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돌 하나 까지도 이렇듯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데.....
아~어느 임과의 작별이 이토록 애틋할까? 차라리 이 몸마저 돌이라도 되어 저 자연의 품에 동화하며
생사고락 함께하고 싶은데......
끝없이 밀려드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지부진 돌아서 오는데 이 가을 날씨만큼이나 청아한 물소리가
나를 불러 돌아보니, 수정 같이 맑은 물 위에 빛깔고운 단풍이 갈 곳 몰라 표류한다.
아! 이 가을도 벌써 또 우리의 곁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애잔하고 살뜰한
연민의 정은 더욱 깊어만 지고,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은 아쉬움으로 얼룩지는데, 못 내 못 내, 떨
어지지 않는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그제서야 친구들 모습이 나의 레이더망에 어렴풋 포착이 된다.
이 좋은 산책코스 조차 포기한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초라한 패잔병 같아 또 한 번 심
사가 씁쓸해 진다. 푸성귀처럼 풋풋하던 청춘은 어디다 보내놓고 낯선 초로의 인생만이 남아있더란
말인가?애달기 그지없다. 나이 들수록 친구의 중요성은 더해만 가는데~벌써도 저렇게 체력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가 있을 것인가!? 제 아무리 유중한 들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닿으랴.....!? 지금껏 신선세계에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몽중삼매에 충만해
있던 정결한 나의 영혼이 현실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그 충돌로 인해 극심한 분열을 일으키고, 그
여파인 듯 마구 뒤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과연 우리에게 남은 삶의 몫은 얼
마일까?
인생무상을 실감해야하는 착잡한 마음에선 만감이 겹쳐 우울한 마음 지우지 못하고 답답한 가슴 안
고 산을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플렌카드가 걸려있던 그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소문과 상반된,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절실하게 실감된다.. 음식솜씨로는 전혀 손색이 없던
어제 그 집에다 그 현수막을 걸어주고 싶었다.
우린 다시 오늘의 일정을 의논, 어제 하루는 산촌에서 묵었으니 오늘 하루는 바다 쪽으로, 두루 관광을
하자는 의견일치를 본다. 언제고 의기투합이 잘 되는 친구사이고 보니 여행도 더 즐거운 것이리라..
여행이란 고인 물을 갈아내듯, 갇혀있던 심신을 깨우고 환기하는 생활의 활력소이자 권태로운 일상의
탈출구로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서를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여행이란
어느 누구와 떠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묘미, 그 척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의 일정코스 속초 까지는 직행노선이 없어 양양을 경유 속초로 가고 있다.
다행히 해안선을 끼고 도는 노선이라 멀리 차창 밖으로 점점이 떠있는 바다풍경들을 엿볼 수가 있어,
잔뜩 침체된 무거운 마음이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침울했던 기분일랑 푸른 저 바다에 던져놓고
무상무아에 흠뻑 취해보리란 부푼 기대에 내 가슴도 다시 상승곡선을 긋기 시작한다.
산과 바다, 어촌과 산촌, 호수가 두루 공존하는 곳, 관광자원의 보고인 이곳은 정말 신의 축복이 내린
곳이란 생각에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속초 도착, 먼저 점심 예약부터 해 놓고 바다 쪽으로 성급한 발길을 옮겼다.
나는 자연을 숭상하며 인간의 대 스승인 자연의 이치에서 삶을 추구하며 가치를 배우고 싶은, 자연철
학에 무한한 의미를 두는, 자칭, 자연주의자지만 지리적 조건 상 산야가 아닌 바다를 접할 기회는 좀
처럼 쉽질 않아 늘 바다를 동경해 오던 터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눈이 시
리도록 바라보리란 기대감에 벌써부터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상쾌함이다. 산촌이 주는 정서가
정적인 거라면, 바다가 주는 정서는 역동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격정적으로 흔들리게 한다.
정물화 같은 산촌풍경에 젖어있다가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광활한 바다로 시선이 옮겨지자 솟구치는
생동감에 벌써부터 내 마음은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백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거품을 수없이 토해내는 하얀 파도와, 하늘과 맞닿
은 가물가물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아련한 그리움과 놓쳐버린 지난날의 회한 같은
안타까움들이 저 바다 깊은 곳에 용해되어 함께 출렁인다. 깊고 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아득
히 태고의 신비가 느껴지고 유구한 세월담은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
고 모순된 존재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그렇다. 자연 앞에선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속적 가치관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인간이 쌓은 욕망과 애착은 저 파도에 부서지고 마는, 한낱 물거품 같은 것을~!
수억 년 지켜온 저 바다의 시각에서 보면야, 우리네 인생 눈 한 번 껌벅할 찰나의 순간인데
백수도 다못 채우고 갈 人生을 왜 필수도 아닌 과욕으로 갈증하며 헤어날 수 없는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며 집착하는가, 그 이기심이 또 다른 누구에겐가 상처를 주면서 말이다.
허수아비의 허상과 같은, 끝없는 욕망을 쫓는 우매한 중생들을 향해 저 바다는 말하리라, 통속적인
겉치레는 허울일 뿐이라고! 자연의 섭리를 쫓아서 순리대로 살아가라고.......!!
오늘도 자연은 인간을 향해 경종을 울린다.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 하면 심성이 고요하고 온유해져서 자신을 반추해 보는 여유를 얻게 되는 것
같다. 나이 먹어 잃는 것도 많지만, 연륜이 주는 성숙함으로 겸손과 지혜를 배워가는 것도
세월이 주는 보상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세상의 이치 속엔 양면성이 있는 것이리라.
바라보고만 있어도 벅찬, 광활한 바다를 마주하며 심오하고 허심탄회한 명상을 해보려는데,
느닷없이 빗방울이 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한 심술 꾼의 등장에 어이없게
쫒기며 황급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피우지 못한 미련의 한 자락을 앞 바다에 걸쳐 놓은 채......
아니 웬, 불청객이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황당하기가 그지없었지만 잠시도 지체하기 아까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비 피할 그 시간을 활용해서 점심부터 먹기로 한다. 잠시 후면 이 비도 지나 갈 거란
예상을 하면서...
앞 바다에서 갓 건져 올렸음직한 물 좋은 생선들이 구색을 갖추어 식탁에 올랐고, 즉석에서 소금구이
를 해서 즐기니 그 담백함이란, 바닷가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신선도 100%의 특별한 해물일색 밥상을
받고 보니 특별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 석연치 못한 날씨 탓에 안정을 취할 수 없어 초조한 시선은
자꾸만 바깥으로 향하는데~그럴 때마다 일보 후퇴일 뿐이라고, 부정적인 생각일랑 일축하려 하지만
얄미운 빗님은 더욱 기세등등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간절함이기에 요행을 바
래보며 절박한 심정으로 가슴 조였으나 간절한 염원도 소용이 없고, 우리의 갈망이 끝내 절망으로 회
색이 짙어갈 무렵 바람도 미련도, 부질없는 욕심이란 걸 깨달아 모든 걸 체념하고 철수 준비물로 우산
을 사 오는데, 그 짧은 순간에 벌써 옷은 다 젖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는 더욱 거세고, 금방
이라도 온 천지를 다 쓸어버릴 듯, 사나운 수마로 변해갔고 더 이상 어떤 변수도 기대할 수가 없기에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무장의 채비를 챙겨서 식당을 나왔다. 우산 위로 마구 퍼붓는 거친 빗줄기세례를
받으며 냇물을 방불케 하는 홍수 진 대로를 가로 질러 고속터미널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고 참으로
허탈한 정황에서 격의 없이 던지는 기사님 농담에 허탈한 웃음을 허공에다 날린다.
가뜩이나 심난한데 대구 가는 시간대가 맞지 않다며, 또 다른 우린 완전 다운된 기분으로 대합실에 앉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두 세 시간을 멍 때리고 앉아있다,
인천행에 친구도 떠나고, 대합실엔 세 사람만 남겨졌다.
우리가 모임을 결성한 유사 이래 날씨의 방해를 받아보긴 오늘이 처음이다. 비가 오다가도 활짝 개이고,
바람이 불다가도 온화해져 그럴 때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복 받는 거라며 들뜬 마음에 지네 인심까
지 얹어가며 자화자찬들을 늘어놓고 너스레를 떨어 폭소를 자아내곤 했었는데 오늘따라 원망스런 이 비가
말문을 닫게 한다. 천금 같은 이 시간을 훼방 놓는 심술궂은 비의 횡포가 야속했다.
이별이란 언제고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의 심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준엄한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보며 해소되지 못한 여운들을 이 곳 동해바다에
뿌려놓은 채 아쉬운 우리들의 여정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
어느 10월 가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