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가 되면 생각나는 노래 ◈
해마다 6.25 전쟁일이 가까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요 6·25전쟁의 비극을 잘 드러낸 노래 두 곡이지요 ‘전우여 잘 자라’(박시춘 작곡, 유호 작사)와 ‘굳세어라 금순아’(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이지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국군과 유엔군은 수많은 전우를 잃은 낙동강 전선을 뒤로 하고 추풍령을 넘고 한강을 건너 38선에 이르렀어요 진격하면서도 그 참혹한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꽃같이 별같이 스러져간 병사들을 잊을수 없었지요.
1.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여 잘 자라.
2.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피던 /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여.
3.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는 /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여.
4.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그런데 38선에 다다른 유엔군에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이 내려졌지요 그들은 거기서 전쟁을 끝내려 했어요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38선을 ‘국경’으로 인정할수 없다고 했지요 소련이 불법으로 막아놓은 경계선이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이 나라의 최고 (군)통수권자이니, 나의 명령에 따라 북진을 개시하라. 晩”(晩:만은 이승만의 서명)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현 청와대)로 불러들인 정일권 국군 총사령관에게 품 안에서 꺼내 건네준 명령서의 이 내용은, 북한의 남침으로 38°선이 무너졌으니 이제 우리가 남침한 저들을 응징하며 북진하여 분단된 조국을 통일할 때가 온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의 확고한 “북진통일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이는 그 당시 국민일반의 생각에도 부합하는 것이었어요
이 대통령의 과단성 있는 태도는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금지한 미국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기도 했지요 그의 불만은 9·15 인천상륙과 9·28 서울수복 후 사기충천한 국군과 UN군이 일사천리로 북진을 계속하여 38°선에 다가가자 UN군 총사령부가 모든 부대에 38°선에서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린 데 대한 것이었어요
그는 군 수뇌들 앞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맥아더냐 아니면 이 나라 대통령이냐? UN은 우리가 38°선을 넘어 북진하여 국토를 통일할 권리를 제약할 수 없다”고 단독북진 의지를 피력한 다음 군 수뇌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어요 이에 국군 총사령관 정일권 소장이 대답했지요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미 (7월14일) 대통령 각하께서 서명하신 문서에 따라 UN군총사령관에게 이양되었으므로 지금 다시 이중으로 명령을 내리시게 되면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북진에 관해서는 UN에서 곧 결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좀 더 형세를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 의견은 단지 군사지휘계통을 기준으로 말씀드린 것이고 대통령 각하께서 국가의 대계로 보아 꼭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명령을 내리신다면 저희들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38°선 이북으로의 단독북진 명령서를 정일권 총사령관에게 건네주었던 것이지요 그 당시(7월14일 이후) 지휘계통상 UN군 총사령관 (구체적으로는 맥아더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미 제8군사령관)의 지휘 하에서 작전하도록 되어있는 국군 총사령관으로서는 두 상관의 각기 다른 내용의 명령을 받아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정일권 소장은 우선 동부전선의 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 소장을 찾아가 의논했어요 그런 다음 묘안을 가지고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을 찾아가 협의했지요 “동해안을 따라 38°선까지 진격한 국군 제1군단 예하 제3사단이 그곳에서 바로 코앞에 있는 (38°도선 이북의) 고지로부터 치열한 사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우선 이 고지를 점령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이렇게 협의를 끝낸 정일권 총사령관은 다시 국군 제1군단장을 찾아가 공격명령을 하달했지요 그리하여 제1군단 제3사단 제23연대(김종순) 3대대가 마침내 38°선을 넘어 13km 전방의 양양을 향해 적을 추격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3사단장은 참군인으로 이름 높은 이종찬이었지요 곧이어 38°선의 동쪽 끝이 무너지면서 모든 부대들이 경쟁적으로 38°선을 넘어 북으로 북으로 진격 패주하는 적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했어요 국군이 진격해 들어가는 곳마다 그곳 주민들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적들은 계속 투항해왔지요 그 후 정부는 국군이 단독으로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한 10월1일을 기념하여 국방부는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제1173호에 의거 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제정하게 되었어요
사실 최초로 38선을 넘은 3사단은 백골부대로 상징되는 신화적인 부대 이지요 공산당의 만행에 참고 견디다 못해 월남한 서북청년회 출신 청년들이 자진 입대하여 주축을 이룬 당시 수도사단 소속 제18연대 병사들이 죽어서 백골이 되더라도 공산당과 싸워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의미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넣었는데 이 제18연대가 백골부대가 되었지요
북한에서는 "백골부대 놈들은 미국 놈들보다 더 악독하여 사람만 보면 죽인다"고 선전하여 국군을 보면 '백골부대'는 지금 어디쯤에 있냐며 걱정했다고 하지요 또한 국군 포로 중에 백골부대원이 있으면 무조건 총살했다고 하지요 북한군 내 백골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1950년 11월 22일~24일 주을 전투 중에서 너무 치열한 교전에 질린 하사관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이 새끼들아! 백골부대다!"하고 외치며 뚜벅뚜벅 걸어나가니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북괴군이 삽시간이 무너졌다는 일화도 있어요 그 외에도 많은 신화적인 전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다급해진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어요 국군이 평양에서 승전을 기념하던 그날, 30만명이나 되는 중국 공산군은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지요 중공군은 소리 없이 한반도에 들어왔어요. 10월25일 국군과 UN군이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숨어 있던 중공군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지요 중공군의 제1차 공세였어요 크게 패한 국군과 UN군은 더 많은 중공군이 내려오기 전에 서둘러 전쟁을 끝내기로 했지요 그래서 11월24일 ‘전쟁을 끝내기 위한 총공세’를 개시했어요 이에 맞춰 중공군도 제2차 공세를 벌였지요 커다란 손실을 입은 국군과 UN군은 중공군의 병력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11월 말에는 모든 전선에서 중공군에게 밀려 후퇴하게 되었지요 서부 전선의 미군은 12월 말에 38선 부근까지 밀려 내려왔지요. 그런데 동부 전선에서 장진호 전투라는 격전을 치른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에 막혀 육지 길로 내려올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후퇴하는 계획을 세웠지요
미군의 군함에는 민간인을 태울 자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자유 대한민국을 따르는 피란민 30만명이 흥남 부두로 몰려왔지요. 국군의 김백일 소장과 현봉학 통역관은 “미군이 피란민을 버리고 간다면 국군이 피란민을 엄호하여 육로로 후퇴하겠다”며 민간인을 배에 태워달라고 요청했어요 이들의 굳은 의지에 감명 받은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민간인의 승선을 허락했지요 군함들에는 정원의 열 배가 넘는 피란민이 올라탔어요. 이 철수 작전 덕분에 9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지요
그 중 최대 승선 인원이 3000명인 메러디스빅토리아호라는 화물선에는 무려 1만4000명의 피란민이 탔어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던 장비와 무기를 바다에 버렸지요 3일의 항해 끝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을 때 피란민의 숫자는 다섯 명이 더 늘어나 있었어요 아수라장 같은 배 안에서 새 생명들이 태어난 것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인도적인 철수 작전으로 불리는 "흥남 철수 작전"은 12월25일에 끝났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하지요 부산 등지에 내린 피란민들은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처럼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지요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2.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3.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 통일 그날이 오면 /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흥남 철수 작전
▲부산 영도다리. 큰 배의 통행을 위해 하루에 한차례 들어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다리는 피란민의 고달픈 삶을 떠올리게 하지요
▲전쟁 피란민의 애환을 상징하게 된 부산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 영화 ‘국제시장’에 소개된 뒤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