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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상글 (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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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군중들은 예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분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하늘의 표징을 보이라고 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짓부순다는 사실을 알라고 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면”(20절) 여기서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을 뜻한다. 그러면 팔은 누구를 말하는가? 아드님이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모든 일을 하신다. 몸-팔-손-손가락은 한 몸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쫓아내시는 일은 하느님한테서 오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행위이다.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성령 안에서 이루신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분이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영 안에서 마귀를 쫓아낸다면, 인간 본성이 그분 안에서 먼저 하느님 나라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 본성이 사탄의 힘을 꺾고 더러운 영들을 꾸짖음으로써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하신 것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21-22)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사탄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하느님의 것인 양들을 멋대로 끌고 다니며 자기 우리에 가두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자 사탄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전리품이 되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사탄에게 매여 불경과 잘못을 저지르던 자들을 구원하시어 진리 안에서 아들에 대한 믿음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 때문에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23절) 사탄은 예수님 편이 아니고, 그분을 반대한다. 예수께서 모으신 것을 흩어 버리려 하는 사탄이 예수님을 도와 자기를 무너트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더러운 영이 우리 안에 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비로 우리를 받아주셨고, 우리 마음의 집은 모든 죄가 깨끗이 치워졌다. 그 안에는 성사들이라는 가구로 채워졌다. 그 집은 어떤 집이어야 하느냐? 하느님께서 사시는 성전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면 또다시 더러운 영이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26절)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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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이에 대한 유대인들은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서 놀라워하는 이들이요, <둘째>는 예수님의 권위와 권능을 의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들, 곧 예수님에게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뒤집어씌우는 이들이요, <셋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사가의 말대로 그들은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요한 3,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두 가지 논거로 반박하십니다. 첫째는 만일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결국 베엘제불이 자신의 세력을 제거해버리는 것이기에 모순이요, 둘째로는 자신들의 아들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것 역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이기에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비방은 완전히 부정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비방과 모함에 대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이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사실이 단지 하나의 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탄을 쫒아낸 자리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사탄이 쫓겨난 ‘빈자리’에 예수님으로 채워져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더 세고 맹렬한 힘을 갖추고 떼로 몰려올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영혼은 임자가 있어야 하는 집과 같습니다. 만약, 집이 비어 있고 임자가 없으면, 마땅치 않는 자들이 침범해 들어와 살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집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집을 빚으로 채우는 일인 것입니다. 만약 죄나 어둠을 비우고 깨끗해지고도, 그냥 그대로 있게 되면 그 자리는 즉시 또 다시 어둠이 찾아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어둠과 악이 동료들을 데리고 떼거리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함으로 채워져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주인을 모시는 일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한 분의 성전’이 되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감실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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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마귀를 물리치는 방법
마귀라는 말은 ‘중상자’, ‘고자질쟁이’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느님에 대적하는 이 세상의 왕 또는 악한 세력입니다(루카4,6. 2코린4,4). 그래서 하느님을 사칭하고(2테살2,4), 하느님 일에 반대하며(마태16,23), 악인을 조종(에페2,2)합니다. 인간을 모함(욥기1,9-11)할뿐 아니라 유혹(2코린11,3)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유혹(루카4,5-7)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좆아 내셨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했고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군중의 반응은 이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일을 하고도 뺨 맞는 격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귀의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 안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지만, 마귀는 선한 것 안에서 악한 것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악한 영은 더 큰 악을 불러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참과 거짓의 대립을 놓고 심판관을 자처한다면 아마도 그곳은 지옥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 중상, 모략의 마음을 버리고 사랑이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는 상태는 이미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천국을 생각하면 이 지상의 집착과 애정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가슴 안에서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지 내 뜻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루카4,1-14)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12장 28절에는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가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에페4,26-27)…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 하십시오”(에페6,1)하고 권고합니다. 묵시록에서는 “우리 형제들은 어린 양이 흘린 피와 자기들이 증언한 진리의 힘으로 그 악마를 이겨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묵시12,11).고 말합니다. 결국, 마귀를 물리치는 길은 말씀과 성령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며 살고 있다면 그를 천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흉보며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선을 선으로 볼 수 있고 악을 악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길 희망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사람 되시길 빕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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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습관은 가장 좋은 하인이거나 가장 나쁜 주인이다.”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게 가장 좋은 하인이 되고 있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하루를 풍요롭게 하는 좋은 습관입니다. 매일 2시간 이상을 걷는 것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습관입니다. 덤으로 건강에 보탬이 되는 좋은 습관입니다. 책을 가까이 하는 것도 인생에 거름이 되는 좋은 습관입니다. 매일 아침 묵주기도를 하는 것도 영혼을 지켜주는 좋은 습관입니다.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고,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은 날려버리고 지금 현재를 기쁘게 지내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할 수 있는 부탁은 기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제가 31년 사제생활을 큰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저에게 좋은 하인이 되어준 습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저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친교를 나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음주를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습관입니다.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지나치게 많은 일에 관여되는 것도 저만의 시간을 빼앗기는 나쁜 습관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저만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도 나쁜 습관입니다. 꼼꼼하고 신중하게 일을 하면 좋은데 대충, 건성으로 일을 하는 것도 그래서 실수를 반복하는 것도 나쁜 습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진다고 하셨는데 31년 사제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나쁜 습관입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타인에게 의탁하려는 것도 나쁜 습관입니다. 이렇게 나쁜 습관인줄 알면서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나쁜 습관입니다.
신학생 때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Consuetudo est altera Natura!(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능력과 재능은 타고 날 수 있지만 습관은 노력하면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사제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저녁기도가 끝나면 연학실에서 공부하도록 하였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연학실에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제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아침미사, 양심성찰, 묵주기도, 저녁기도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기도는 사제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글은 어쩌면 오래된 라틴어 격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습관은 계속 지켜가고, 나쁜 습관은 과감하게 버리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묵주기도의 신비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의 역사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환희의 신비에서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의 탄생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고,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종이 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께서 제정하신 ‘빛의 신비’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음을 묵상합니다. 고통의 신비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을 묵상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피, 땀을 흘리시고, 매를 맞으신 주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영광의 신비는 주님의 부활을 묵상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모님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들도 충실하게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묵주를 손에 들고 다니시는 분들은 하느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는 분들입니다. 오늘 하루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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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대학 입시에서 수학을 120점 만점 중 딱 1점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는 과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도저히 갈 수 없어서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학에서 19점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입시를 준비했고,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가 힘들게 졸업했습니다.
이제 졸업 후 회사 입사 시험이 문제였습니다. 30번의 입사 시험을 봤지만 모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KFC 매장 직원 채용에 응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원자 24명 중 유일한 탈락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키도 작고, 형편없는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눌한 말투 역시 탈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어디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업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8번이나 연거푸 실패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입니다. 그의 재산은 한화로 약 58조라고 하지요. 모든 조건이 좋지 않은 상태를 극복하고 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가 그의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꼽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자기 미래에 대해 결코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성공할 수 있고 잘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부정적 표현을 써야 할 때도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좋은 말과 생각이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자기 말과 생각에 대해 늘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좋은 결과는 여기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도,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또 어떤 행적을 보여주셔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판단을 해버리니 하느님의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과연 하느님 나라가 와 있게 될까요?
주님을 믿지 않는 곳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이 쫓겨난 깨끗한 곳에서만 하느님 나라가 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마귀들이 쫓겨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귀들과 함께하면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일을 축소해 마귀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긍정적인 생각으로 주님과 언제나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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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만들어진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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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7.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라아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영적승리
-하느님 중심의 삶-
“저의 입은 당신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온종일 당신 영광을 찬미하나이다.
당신께 노래할 때, 제 입술에 기쁨이 넘치리이다.”(시편71;8.23)
엊그제와 어제 양일간 강론 주제는 “기도”였습니다. 오늘 역시 영적승리에 기도가,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이고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나 원래의 명칭은 ‘승리의 성모 축일’이었습니다. 참 오늘 축일의 유래는 대단합니다.
정확히 지금부터 451년전 오늘, 1571년 10월7일 레판토 해전이 벌아졌던 날입니다. 유럽의 운명이 달린 절체절명絶體絶命의,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해전이었습니다. 스페인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아 공국, 구호기사단, 토스카나 대공국, 시칠리아, 나폴리 왕국, 성 라자루스 기사단, 우리비노 공국, 교황령등 11개국이 연합한 신성동맹 함대와 오스만 제국이 벌인 해상전투로 오스만이 참패했습니다.
1543년 콘스탄니노폴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며 급속히 세력이 팽창하였고,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서서히 점령하며 유럽을 향해 전진하면서 동지중해를 장악한후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가던 중에 격돌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전투는 15세기부터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던 오스만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혔고, 기독교 세계에겐 “기독교의 영원한 적”으로 여긴 투르코족의 몰락이라는 염원을 고취시켰습니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함선의 대부분과 3만명의 병사 대부분을 잃었고, 서구 역사가들은 이를 기원전 31년의 악티움 해전이래로 가장 결정적인 해전으로 여깁니다. 유명한 <돈키호테> 소설을 쓴 스페인의 보병 연대장 세르반테스는 이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었다 합니다. 역사가 파울은 말합니다. 역사가 파울은 말합니다.
“이 오스만의 패배는 지중해에서의 오스만의 확장을 저지시켰고, 서부의 주도권을 유지하였으며, 예전에는 저지할 수 없었던 오스만을 격퇴할 수 있다는 서방의 자신감을 신장시켰다.”
1571년 10월7일은 10월 첫주일이었고, 오전부터 시작된 해전은 오후 4시쯤 서방의 승리로 결판이 납니다. 신성동맹을 성사시킨 분은 당시 교황 비오 5세였고 이날은 로마를 비롯한 신성동맹국들은 온종일 로사리오 기도를 통해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하느님께 승리를 빌었습니다. 교황 비오 5세는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려고 묵주기도의 성모를 칭송하는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고, 후에 명칭은 오늘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바뀐 것입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의 유래는 바로 여기서 유래합니다. 가톨릭교회의 보편적 신심기도가 “성로신공” 십자가의 길 기도와 “묵주신공” 묵주기도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도 마지막 감각있을 때까지 바칠수 있는 묵주기도요, 묵주는 천국 입장시 패스포드라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묻힐 때 손에 묵주기도를 쥐어 줍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로마에서 연수때 어느 수녀님이 선물한 묵주반지를 끼고 묻혔습니다. 제가 어머니 임종전 방문했을 때 다 돌려 주었지만 묵주반지는 그대로 끼고 돌아가셨습니다.
영적승리를 위한 하느님 중심의 삶에 묵주기도는 물론 공동전례기도 및 모든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기도는 간절하고 한결같아야 하고 끊임없이 바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탁월한 하느님의 전사이자 기도의 전사이기도 했습니다.
문득 어제 떠오른 다시 확인하여 나누고 싶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것은 “병”이 아니라 “죄”요, 정말 두려워할 것은 병으로 인한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죄로 인한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섬기는 중에 얻은 병고나 어려움은 영적전투중 영적부상으로 잘 받아들여 보속이나 대속으로 여겨 주님의 수난에 합류시킴으로 주님을 닮는 계기로 삼는다면 축복이자 감사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섬기는 일상생활에 충실하는 것이겠습니다.
요즘 특히 강조하는 것이 선택의 은총입니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것은, 바꿀수 없는 것은, 관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삶의 중심 으로 선택하여 기쁨과 감사, 희망과 평화의 낙관적 긍정적 하느님 중심의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래서 살 줄 알면 행복이요 살 줄 모르면 불행이라는 말도 유래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천국도 지옥도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니 참 좋은 선택을 위한 간절하고 한결같은 기도입니다.
여러모로 힘들어도 더욱 열심히, 겸손하고, 자비롭게 살아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어떤 상황중에도 열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겸손과 자비의 수행으로 삼을 때 비로소 주님의 전사요 영적승리의 삶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마귀들의 전투를 묘사합니다.
영리한 마귀들에게 자중지난은 없다는 것이며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턱도 없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이어 주님은 가장 힘센자로 견주며 영적전쟁중 승리의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있는 것이다.”
어떤 힘센 마귀들도 가장 힘센 하느님의 전사인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양자택일을 요구하십니다. 영적전쟁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며, 주님은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전사인 당신 편에 설 것을 촉구합니다.
“내 편에 서지 않은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것이다.”
주님 반대편에 서서 흩어버리는 분열이 아닌, 주님 편에 서서 하느님 중심의 모아들이는 일치의 삶에 온힘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마귀들의 온갖 침입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복음 후반부도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회개로 깨끗해진 마음안에 성령의 주님을 모셔야 악령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갔던 악령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음으로 그 사람의 끝은 처음보다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진공을 좋아합니다. 하느님 중심 자리를 진공으로 비워두면 악마가, 우상들이 그 자리에 자리 잡습니다. 이래서 성 베네딕도는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라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부지런한, 열심한, 겸손한, 자비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전사인 바오로가 강조하는 바도 하느님 중심의 믿음과 성령의 삶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삽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으로 살 때 성령의 선물이요 성령의 은총이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화해 주고 하루하루 날마다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어제 성 브루노 기념 미사때 기도문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저희가 번잡한 이 세상에서도,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절제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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