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는 어떻게 현재가 되는가
-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으로 읽는 송정자의 「하심주」(Ⅵ)
권대근
문학박사,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Ⅵ. 풍류는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
- 「하심주」의 문학적 성취와 현대수필의 의의
문학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쓰기와 다르다. 정보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문학은 존재를 변화시킨다. 독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했던 세계를 새롭게 보게 되었을 때 감동한다. 이 점에서 도피의 문학이 아니라 생활의식의 반영을 노래한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는 풍속이나 역사,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수필의 범주를 넘어선다. 이 작품은 풍류라는 전통문화를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함으로써, 문화적 지식을 존재의 체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1. 정보는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
수필의 문학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에는 적지 않은 역사적 정보가 등장한다. 다산 정약용의 죽란시사, 하심주의 유래, 청개화성, 절기 문화, 복달임 풍속, 이러한 소재만 놓고 보면 자칫 교양 칼럼이나 역사 에세이에 머물 위험도 있었다. 실제로 현대수필에서 가장 흔한 한계는 자료가 작품을 압도하는 경우이다. 지식은 풍부하지만 정작 독자의 마음속에는 아무 장면도 남지 않는 글이 적지 않다. 그러나 송정자는 이러한 위험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한다. 그 이유는 자료가 작품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송정자는 문학도 생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 작가다. 예를 들어 다산의 하심주를 길게 설명한 뒤, 작가는 곧바로 자신의 체험으로 이동한다. 원주에는 그녀 절친의 세컨하우스가 있다. 정독반 다스림서울에서 필드스터디 차눵에서 1박2일로 묶었던 적이 있는 곳이다. 붉은 색 지붕이 이국적인 풍경을 나타내는 전원주택은 시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원주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갔을 때다." 이 한 문장이 작품 전체의 방향을 바꾼다. 여기서부터 역사는 현재가 된다. 자료는 체험으로 변하고, 체험은 다시 사유로 발전한다. 좋은 수필은 자료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료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이것이 「하심주」가 교양수필을 넘어 문학수필이 되는 첫 번째 이유이다.
2. 체험은 어떻게 존재의 사유가 되는가
좋은 수필은 사건을 기록하지 않는다. 사건을 통해 존재를 성찰한다. 「하심주」에서 실제 체험은 매우 단순하다. 친구가 연잎을 준다. 연잎으로 삼계탕을 끓인다. 맛이 좋아진다. 이것만으로는 하나의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묻는다. "연꽃 터지는 소리가 날 때, 연잎에 구멍을 뚫어 하심주 한잔 나누고 싶은 친구를 나는 가졌을까." 이 질문은 작품 전체를 존재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처음에는 연잎 이야기였다. 다음에는 풍류 이야기였다. 마지막에는 친구 이야기이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이처럼 소재가 존재의 질문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현대수필이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미학이다.
3. 줄리앙과 바슐라르가 만나는 지점
이 작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프랑수아 줄리앙과 가스통 바슐라르는 서로 다른 철학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심주」에서는 두 철학이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줄리앙은 말한다. 익숙한 삶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감각이 열린다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공간은 인간의 상상력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송정자의 수필에서는 절기가 감각을 깨우고, 연못이 상상력을 키우며, 연잎이 기억을 저장하고, 친구가 존재를 완성한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사물과 기억이 하나의 유기적 세계를 이룬다. 이것이 「하심주」의 가장 깊은 철학적 성취이다.
4. 문체의 미학
이 작품은 문체에서도 장점을 지닌다. 첫째, 감각적 동사가 풍부하다. '흐른다.' '굴러 떨어진다.' '일렁거린다.' '숨을 죽인다.' '피어난다.' 이러한 동사들은 정적인 설명을 살아 있는 움직임으로 바꾸어 놓는다. 둘째,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꽃을 본다. 꽃 피는 소리를 듣는다. 연향을 맡는다. 삼계탕을 맛본다. 이러한 공감각적 문장은 독자의 몰입을 높인다. 셋째, 사색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철학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삼계탕을 끓이며 철학이 생긴다. 친구를 떠올리며 존재를 생각한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좋은 수필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미덕이다.
5. 현대수필에서 「하심주」의 의미
오늘날 수필은 두 가지 극단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일상을 단순히 기록하는 생활수필이다. 다른 하나는 지식을 나열하는 교양수필이다. 생활수필은 사유가 부족하고, 교양수필은 체험이 부족하다. 「하심주」는 이 두 한계를 동시에 넘어선다. 생활은 역사와 만나고, 역사는 체험으로 다시 태어나며, 체험은 존재의 사유로 확장된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수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서사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전통문화를 박물관 속 유물로 다루지 않는다. 풍류를 오늘의 삶 속으로 데려온다. 복날의 삼계탕과 다산의 하심주가 하나의 시간 속에서 만나고, 연꽃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전통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이 점에서 「하심주」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Ⅶ. 로그아웃
풍류는 기억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신선하고 맑은 영혼을 채워주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는 연잎을 소재로 한 생활수필이 아니다. 또한 다산의 풍류를 소개하는 문화수필도 아니다. 이 작품은 사라져 가는 풍류를 현재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존재론적 수필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는 이 작품이 왜 독자의 감각을 새롭게 여는지를 설명한다. 절기는 달력의 이름이 아니라 몸의 시간이 되고, 하심주는 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완성하는 삶의 방식이 된다. 익숙한 복날은 풍류의 시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독자는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살아갈 가능성을 발견한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층위를 밝혀준다. 죽란은 배려의 공간이 되고, 서련지는 기다림의 공간이 되며, 친구의 연밭과 부엌은 기억과 우정이 거주하는 시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상력을 생성하는 존재의 터전이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연잎이라는 하나의 사물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성장시킨 데 있다. 연잎은 술잔에서 시작하여 자연과 인간을 잇는 매개가 되고, 친구의 마음을 간직한 기억의 저장소가 되며, 끝내 세속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의 윤리로 승화된다. 하나의 사물이 이처럼 의미를 확장하며 작품 전체를 통합하는 경우는 현대수필에서 흔치 않은 성취이다.
비움의 철학을 통해 한 편의 완벽한 서정을 직조하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는 풍류를 회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풍류를 현재화하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을 삶의 감각으로 전환하고, 일상의 체험을 존재의 성찰로 심화하며,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시적 세계 안에서 조화롭게 통합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심주」는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의의를 넘어, 현대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풍류는 과거에 머무는 문화가 아니다. 함께 기다리고, 함께 나누며, 함께 기억하는 삶의 방식이다. 송정자는 「하심주」를 통해 그 오래된 풍류를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연잎 한 장 위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품격과 우정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