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 골프 여행
이용만
부부 스포츠 댄스 동아리 '파라'의 해외 골프 투어! 댄스 클럽에서 골프 모임도 있다니. 5월 부처님 오신 날 휴일을 맞아 칭다오 골프 나들이다. 행여 늦을까 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큰 딸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고 자기들만의 시간이 허락 됨을 알았는지 흔쾌하게 잘 다녀 오란다. 모두 19 커플로 적지 않은 인원이다. 골프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댄스 탓이다. 기량이라 할 것도 없으니 단체 수업 외에도 개인 레슨이 늘고 언제부터인가 골프는 뒷전이 된 지 오래 아니던가! 골프 백에 댄스화와 무대 의상으로 늘어난 짐을 밀며 끌며 시끌벅적한 데, '블랙풀'에 세 번이나 참가했다는 선배 회원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고 잠이 다 깨었다. 그런 세계도 있나 싶었다. 블랙풀은 댄스 본고장인 영국의 서해안 끝에 있는 댄스 경기의 성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영국문화원 비디오 교재를 통해서 블랙풀 홀을 만나보고는 골프의 성지라는 세인트 루이스 코스와 함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1시간 남짓 날아온 칭다오는 쾌청하고 따뜻했다. 공항에서 리조트로 향하는 버스에서 사무총장의 일정 소개가 있었다. 골프의 10도(道) 중 첫 번째 : 버디birdie와 파par를 사랑하기 이전에 동반자를 먼저 사랑하라. "이를 인(仁)이라 한다"는 준비된 말에 게임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절로 추슬러진다. 댄스 10도(道)는 없는지 묻고 싶었으나 매너와 미소가 제일의 덕목이다. 골프장을 탓하랴? 스코어는 나쁠 수 밖에 없다. 동반자인 치과 원장은 어금니 2개로 만든 것 같은 퍼터로 정교하게 홀인 하니 우린 충치 뽑힌 환자 꼴이다. 패배한 골프 게임을 만회하고 싶어 당구장도 들러보았다. 당구 경기라도 잘 하고 싶었다. 쓰리쿠션을 제일 먼저 끝내고는 마사지 받는다며 빠져나왔다. 숙소에서 아내와 함께 받는 마사지. 낯설지만 기분은 좋았다.
오후 문화 탐방 시간이 있어 시내 관광을 나섰다. 칭다오는 100 여 년 동안 독일, 스페인, 러시아 등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작은 도시처럼 예쁜 집들과 건물들이 많았다. 마을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명품을 본 따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니 호기심이 발동해 먼저 눈 요기를 하기로 한다. 골목을 돌고 돌아서 남대문시장 같은 건물에 들어가 혹시 하며 돌아보지만 건질만한 물건은 역시 없었다. 칭다오의 항일 운동을 기리기 위한 5.4 광장에 하루 종일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미처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각자 손수건이나 방금 산 실크 머플러를 머리에 썼다. 히잡을 쓴 중동의 여인들이 된 양 까르르 마냥 즐겁다. 바다를 끼고 돌아오는 길, 그 아름다운 광경이 잔잔하게 눈에 아른거린다.
저녁 식사와 함께 댄스는 기본! 댄스화도 준비 해오지 않았던가. 아니 그런데 카펫에서는 어찌 춤을 춰야 하나? 테이블에 폭이 넓은 스카치테이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잘 미끄러지도록 구두 바닥에 붙이고 춤을 추라는 메시지다. 처음 댄스화를 신었을 때 밑창에 붙어있던 비닐을 떼어내지 않았다. 왜 그리 미끈거리는지도 모른 채 춤추었던 황당한 추억이 떠올랐다. 이번엔 반대로 황당하게 해야 정답이다. 순발력과 재치가 무도장 분위기를 띄웠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역시 골프 건 댄스 건 오랜 경력에서 나온 거다. 남녀 골프 우승자의 리딩 댄스는 테이프를 붙이지 않고도 출중했다. 몇 분은 신발 밑창에 테이프를 붙였으나 숙녀 분들은 아예 맨발로 추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카펫 위에서 '스위블' 같은 회전 동작을 하면 카펫이 꼬이던가 자칫 엉덩방아를 찧을 일이다. 파라 클럽 숙녀 분들 파이팅. 숙녀의 맨발은 용서되는데다 섹시하기까지 하니 맨발이 낫다. 신사의 맨발은 느낌이 달라도 엄청 다른 것은 왜 일까? 카펫 위에서 추는 불르스와 탱고는 남성 분들을 조심스러운 신사로 만들었다. 신사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끝내 양말은 안 벗는다. 신사 체면에 어찌 훌러덩 양말마저 벗고 춤을 출 수 있겠냐 싶었다. 아니 맨발로 춤을 추는 숙녀 분 발을 밟기라도 하면? 내 춤 솜씨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익살 꾼 회원의 자이브 춤에서 '스톱 앤 고 Stop & Go' 피겨는 폭소를 자아냈고 춤에 대한 영감도 불어넣어 주었다. 언제쯤에나 근엄한 표정이 아닌 미소로 춤을 출 수 있을런지. ‘많은 것을 바라지 마세요. 우린 60세에 시작했어요' 라던 또 다른 선배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날은 상쾌하게 개었다. 아카시아 향이 퍼진 골프 코스에는 푸르름이 돋보였다. 자칭 중국 통이라는 회원이 어설픈 중국어로 캐디의 가족 사항을 설명해 준다. 이쪽 캐디는 아들이 둘 이고 저쪽 캐디는 다섯 이다. 아니 몇 살인데? 스물 여덟. 그런데 애가 다섯명이야? 마음속으로 '아니 언제부터 애를 낳기 시작한 거야?' 2살 터울이면 10년은 걸리지 않나. 연신 손바닥 다 펴 보이며 '다섯이 맞아?' 놀라 물으니 부끄럽다는 듯 '맞다' 는 캐디 언니. 나중에 알고 보니 다섯 명이 아니라 아들의 나이가 다섯 살 이다. 댄스던 골프던 집중하기도 바쁜데 이런 엉뚱한 농담에 정신 팔리더니 게임을 또 졌다. 신입 회원으로서 여행 후기도 써보라니 회피하기 어려웠고 클럽의 일원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춤을 배워 상상도 못한 일이 떠가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파라 잡지에 ‘영원하고 파라! 사랑하고 파라!’라고 제목을 붙여 보냈다.
≪파라 잡지 2010. 5.≫
한국산문 등단(202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