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문 앞에 앉은 덕분에 얼른 운동화를 신고 반점을 나왔습니다.
제 옆자리 앉았던 용기가 금방 따라 나오고, 그 뒤를 이어 호, 택이, 준태 순... 마지막으로 도덕책 섭이와 훈이가 따라 나왔습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구미역을 향해 걸어갑니다.
"용기야~"
옆에 따라붙은 용기를 낮은 소리로 부릅니다.
"와?"
"니 냈나?"
"내가 돈이 어데 있노...?"
"그라마 누가 냈노?"
용기가 태에게 묻습니다.
"태야~ 니가 냈나?"
"어언지... 내 돈 없다~ 니 알잖아."
서서히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우리들은 도덕책 섭이와 훈이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물었습니다.
"섭아~ 훈아~ 너거 혹시 돈 냈나?"
"어? 너거가 앞에 나왔잖아~"
"잉? 너거들 마저!"
다들 눈이 동그래집니다.
"너거들 안 냈어~!"
"누구 낸 사람 없나~?"
침묵 속에 긴장감이 돌면서 모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튀자~"
용기의 마지막 결단을 시작으로 친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린 바람같이 역을 향해 달려갑니다.
숨을 헐떡대며 역에 도착한 우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그만 하하하하~ 깔깔대며 배를 잡고 넘어집니다.
그 순간에도 훈이는 혹시 중국집에서 누가 따라올까 봐 역 앞에 붙어 서서 망을 봅니다. 아버지가 경찰관이니...ㅎㅎ 오죽했겠습니까.
예비고사를 치르고 나니 학교에서는 오전 수업만 하고 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이미 2학년 때 3학년 공부를 마친 우리들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본고사 대비에 싫증이 날대로 나있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도서관에 책가방을 던져두고 우리 일곱은 대구역으로 모입니다.
각자 호주머니에서 기본적인 돈을 추렴하고는 시간에 맞는 완행열차 중 아무 열차나 찍어서 목적지를 정합니다.
그날은 구미. 최종 목적지는 금오산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기차를 타면 기차 맨 뒷칸으로 몰려들 가고... 혹 예쁜 통학 여학생이라도 있으면 눈여겨봐 둡니다.
담배를 일찍 배운 용기는 친구들 앞에서 멋있게 도넛·칙칙폭폭 온갖 재주 다부리며 멋있게 한 대 피우고... 우리들은 존경하는 눈길로 우러러봅니다.
실패가 뻔한 작업을 용기는 싫증도 내지 않고 돌입합니다. 미리 점찍어둔 여학생에게 접근해서 불량학생의 표본처럼 작업을 합니다. 당연히 퇴짜~.
머리 긁적이며 돌아 나오면 용기의 쉼 없는 용기에 우리 모두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보니 구미역에 도착했고 보무도 당당하게 금오산을 향합니다.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았던지 가는 길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폭포에 동굴까지 구경 다하고 돌아오는 길, 겨울 초입이라 춥고 슬슬 배도 고픕니다. 구미역을 10분쯤 남겨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중국집으로 들어가 골방 하나에 척~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짜장면 곱빼기 일곱~"
게눈보다 더 빨리 짜장면을 배에 감추고, 오찻물로 뜨뜻하게 몸까지 데우고... 중국집을 나오다 일어난 일입니다.
뒤에서 내겠지... 앞에서 내겠지...
다들 너무나도 당당하게 걸어 나오니 주인 양반 뭔가 착각을 하셨나 봅니다. 누군가 이미 받았으리라...
그날의 무용담, 아니 도둑질은 우리들 사이에 오래도록 회자되었습니다.
사장도 되고 교수도 되고 기술자고 되고 의사도 되고... 다들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고 점잖은 척 폼 잡고 살았지만,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하면...
"어이~ 짜장면 도둑놈~"
그 한마디에 우리는 언제나 세월을 격한 친구가 되곤 했습니다.
주말 집에 돌아와 한국 뉴스를 보는데, 학폭이니 엄석대니 소란스러운 뉴스들이 있어 옛 학창 시절이 떠올랐고, 우리 때도 그런 일이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그땐 약한 친구를 여럿이 괴롭힌다는 것은 아주 비열하고 치사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해서인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세상이 많이 변했나 봅니다.
추억 필름을 돌리다 보니 옛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집니다.
이젠 사라진 완행열차 기적 소리와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와우!~~~
글을 읽어가는데
세상에나 제 친구들 몇명이
제주도 여행 중에
캬바레 갔다가 재미나게 먹고 마시고
놀았는데 어찌하다보니
숙소까지 들어와,정신 차리고
누가,계산,했느냐 물었더니
아무도,계산을 않고 나왔는거 알게 되어
캬바레,전화해서 우리팀 담당 서비스맨
바꿔달라 하고,
다음날 ,계산을 했던,추억이
마음자리님 글 위에 쫘악,펼처지네요.
여기는 지금,비가 내립니다.
남편이랑 쇼핑나가려고 준비 중에
재미나게 글을 읽고
제, 청춘의 시간 걸었습니다.
ㅎㅎㅎ
조윤정님도 그런 추억이 있으시다고요?
잘 안 믿어집니다만 청춘의 시간 걸으셨다니 믿어드려야겠네요.
ㅎㅎ
그 중국집 사장님이 그냥 눈감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짜장면 곱빼기 일곱이면 적은 돈도 아니었는데 나중에 알고 달려오는 기척도 없었던 걸 보면... 우리들끼리 나중에 우리 학교 선배님이 아니셨을까 하고 말하곤 했지요. ㅎㅎ
혈기 왕성한 고교시절,
지금은 해 볼 수 없겠지요.
타국에 계시니
가끔 떠오르는 친구를 못 만나는 게,
살아가는 아쉬움 중에 하나일 것 같네요.
저는 어제 40여년 만에 동창을 만나
점심을 하고 서울숲을 거닐고
벤취에 앉아 반나절을 보내고 왔습니다.
혹시, 마음자리님의 향수병에
불을 내지르진 않았을런지
죄송합니다.^^
예전 가람형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편지 하나 부치면 보름 걸려 가고, 답장 받는데 보름, 도합 한달이 걸리더군요. 그때라면 향수병도 심하게 걸렸을 것 같은데 다행히 시대를 잘 타고나서 마음만 먹으면 멀리 있어도 곁에 있는 듯 얼굴 마주보며 대화 나눌 수 있는 세상을 사니 향수병이 걸릴 여지도 없습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그 거리감으로 가끔 애써 그리움에 빠져드는 사치를 누리는 거지요. ㅎㅎ
40년만에 동창분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궁금하네요.
@마음자리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 다행스럽습니다.
여러 친구를 만난게 아니고 짝궁이었지요.
오랫만이어도,
헤어질 땐 아쉬워서 다음을 약속을 했습니다.
나이 들어가니까
친구와의 대화가 격이 없어 좋았습니다.
@콩꽃 짝궁을 40년만에 만났으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옛 친구가 좋은 점은 언제 만나도 격의 없이 만나진다는 것이지요.
어제 만났다 헤어진듯 말이지요.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먹튀)를 본의
아니게 하셨네요 ㅎㅎㅎ
그 시절엔 애교로 넘아가 주기도 했었나 ..
생각 해 봅니다 .
저는 한번도 안 해본 일이라서요.
내일부터 또 썸머타임 시작이군요
건강 하세요 마음자리님
그렇네요. ㅎㅎ
제목을 먹튀 사건으로 바꾸어야겠어요.
학창시절에 얌전하셨을 아녜스님은 절대 해볼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ㅎㅎ
깜빡 잊고 있었는데 섬머타임 시작이군요.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문자 그대로 먹튀이네요?
내주위에도 이런 이야기는 별로 안 들어봤는데?
요새는 이런 무전취식 중류의 범죄가 형벌이 세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맞습니다. 먹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중에 어른돼서 누구든 그 반점을
지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갚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구미에서 직장을
다녔던 택이가 갚았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그 반점 사장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마음자리님도 악동의 시절이
있었다니 의외입니다.
그 중국집, 그 날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네요.사장님 속을 어지간히
긁어 놓으셨습니다.ㅎㅎ
ㅎㅎ 사고뭉치는 아니었지만 십대엔
호기심에 저지른 자잘한 악동 추억은
많이 있지요.
아셨으면 그 사장님, 그 날 장사 공쳤다며 많이 속상해하셨을 것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사장님...
의외의 악동들이셨습니다.
그 중국집 그날 공친건가요?
부디 중국집 쥔장께서 선배였길 바랍니자.
저희도 그렇게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선배님이거나
우리 나이 때 그런 사고를 자주 쳐서
우리에게 그 빚을 갚으신다거나
우리만한 동생들이 혹은 아들이
있다거나... 등등
우리 양심이 찔리니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서 선심썼기를...
그렇게 소망했었습니다.
ㅎ
그런 일들 가끔 있었지만
약한 아이들 괴롭히는, 요즈음 처럼 학폭은 없었던 같은데
예비고사 세대인가요? 예비고사가 언제까지 시행되었는지 가물가물 하네요
짜장면값 떼먹는 나쁜짓을 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예전 제 고딩시절에도 저희 고등학교에 '뗏목'이라는 주먹패들이 있긴 했는데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던 것 같고, 반 친구들을 괴롭히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요. 가끔 십대들이라 서로 일대일로 힘자랑을 하기도 했고, 학교간 패싸움 같은 건 있었지만 같은 학교 안에서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폭력은 들어본 적이 없었네요.
저도 예비고사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