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데스하임2 - 뤼데스하임 게르마니아 여신상에서 독일제국을 회상하다!
6월 11일 마인츠 를 떠나 라인강을 건너 로마 시대 부터 내려오는 온천 도시 비스바덴
Wiesbaden 을 보고는 다시 기차로 라인강 우편에 뤼데스하임 Rudesheim 에 도착합니다.
내일 아침에 이 도시에서 라인강 유람선 을 타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하니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로프웨이 를 타고 게르마니아 여신상 이 있는 산으로 오르기로 합니다.
경사진 뒷골목을 올라 로프웨이(곤돌라) 정류소 를 찾아가는데, 여기
거리에 나무로 된 예쁜 목조주택 에는 꽃 들이 많아 볼만합니다.
거리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기념품 숍 이 많은데 대낮인데도 거리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술 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관광지 답네요?
여기 라인강변 의 뤼데스하임 은 구릉이 많고 기후가 좋은지 포도밭 이
많은 관계로.... 독일에서는 드물게도 유명한 와인 산지 입니다.
해서 와인 가게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プロスト 프로스트”라는
이름의 와인바 는 일본인 관광객 을 목표로 하고 있나 봅니다?
7유로에 왕복표를 끊어서는 곤돌라 를 타는데 저만치 라인강변에 위치한 도시를
보자니.... 또 발 아래로 푸른 포도밭 이 무한히 펼쳐지네요?
강변의 예쁜 집들을 내려다 보는 재미에 빠져있는중에 저만치 고성 이 보이는걸 보니
저긴 아마도 브룀저 성 으로.... 지금은 와인 박물관 으로 변신했다고 합니다?
여긴 완만한 구릉 이라 포도밭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워낙 넓다보니 중간에
가로질러 도로 가 나 있고 거기 걸어가는 사람이 참 여유로워 보입니다.
이 구릉 은 옛날에 기마병 들이 언덕을 넘어 달리기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는중에 곤돌라 는 언덕 위에 위치한 상부 정류소 에 멈춥니다.
밖으로 나오니 나이든 "백인 남성이 젊은 흑인 여성" 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더니 여성이 벽에 등을 기대니 사진 을 찍어주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며칠전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아비뇽역에서 흑인 청년과 백인 여성 이 진하게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내가 고정관념 에다가 너무 편협한 것일까요?
그러고는 니더발트 Niederwald 언덕에 비스듬히 난 오솔길 을 걸어가는데
해발 225미터 저 아래 라인강 에 떠 가는 유람선 이 한폭의 그림이네요?
언덕을 비스듬히 걸어 모퉁이를 돌자마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만치 거대하고 웅장한 청동 구조물 "게르마니아 여신상" 이 보입니다!
평야지대인 라인강변에서도 여긴 높은 언덕이라 저런 거대한 구조물 이 우람하게
서 있으니...... 배를 타고 라인강을 지나는 사람들 눈에는 잘 뛰겠네요?
여기 언덕 주변에는 보랏빛 라벤더 가 많이 자라고 있어 더욱 풍치 를
더하는데 여신상 을 한바퀴 돌면서 청동구조물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게르마니아 여신상 은 보불전쟁 승리 후 1,871년 "독일 통일과 독일 제국" 건설을 기념해
3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상 을 세웠는데 통일 6년 뒤인 1877년에 완성되었다 합니다.
여신상 을 세운 독일 황제 빌헬름 1세 는 1,861년에 프로이센의 국왕 이
되어 국력을 키우고 군대를 조련하여 10년후인 1,871년
마침내 보불전쟁의 승리 를 쟁취하고는 독일제국 황제 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군국주의로 프로이센을 일등 국가로 만들려고 생각하였으니 형을 이어 왕위에 오른후
비스마르크 를 수상으로 몰트케 를 참모총장으로 등용하여 독일 통일 을 꾀하였습니다.
그런중에 1864년 프로이센 - 덴마크 전쟁과 1866년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전쟁,
그리고 1870년 마침내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에서 차례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1,870년 보불전쟁 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는 다음해에 파리 베르사유 궁전 에서
나폴레옹 3세 로 부터 항복을 받은후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 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스마르크 를 신임하였으며 내외 정치에 수완을 보여 독일을
유럽 제일의 강대국 으로 만들었으니 독일국민의 영웅 이라!!!
빌헬름 1세의 가계를 호엔쫄레른 이라고 하는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이자 프로이센
공작 프리드리히 1세 가 1,701년에 프로이센 왕 이라고 칭하면서 왕조가 시작됩니다.
손자인 프리드리히 2세 는 오스트리아 공주인 마리아 테레지아 가 왕위에 오르자 남자만
왕이 될수 있다는 게르만 살리카법 을 내세워 침략전쟁을 일으켜 술래지엔 을 차지 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가 절치부심해 작센, 스웨덴에 프랑스와 러시아 연합 을 결성한후
프로이센을 포위 하자 프로이센은 1,756년 작센을 선제공격하니 7년전쟁 인데
1759년 8월 전투 패배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프리드리히는 자살 까지 생각합니다!
독일왕 프리드리히는 자살 직전 에 1762년 주전론자인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타 가
죽고 친독파인 표트르 3세 가 즉위해 러시아군이 물러가자 화의가 성립되는데...
표트르 3세는 친독일 성향과 정교회 탄압 등으로 아내와 귀족의 불만을 사니 불과
186일 재위후 궁정 쿠데타 가 일어나 아내 예카테리나가 러시아의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우연치 않게 러시아 황제가 죽고 독일에 우호적인 표트르 3세가 등극해 한숨을 돌린
프로이센 은 슐레지엔 의 합병에 따르는 영토 확장과 1740년의 200만 에서 1752년에
400만 으로 늘어난 인구 증가로 8만명이던 병력이 1756년에는 15만명 으로 증가 합니다.
100년후인 1866년 6월말에 프리드리히 2세의 증손자로 빌헬름 1세 의 프로이센 군대 는
오스트리아로 진격해 Sadowa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독일을 사실상 통일" 합니다.
이후 프로이센의 지도하에 통일 독일 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 과 저지하려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정책 이 충돌하면서 전쟁이 벌어지니... 바로 보불전쟁 입니다.
교활한 비스마르크의 술책 에 넘어간 프랑스 나폴레옹 3세 황제 는 1870년
7월 먼저 독일에 선전포고 를 하는데... 군비가 우세한 프로이센은
북독일 연방 뿐만 아니라 남독일 제국의 지지 까지 얻어 프랑스로 진격 합니다.
몰트케와 참모본부는 프로이센군의 속도를 이용해 신속히 공격하는 것이었으니 프로이센군
동원 시간을 5주에서 18일로 단축 시키고 "현장 지휘관에게 재량권" 을 부여 합니다.
8월 초순에 라인 지방에 집결한 프로이센군 은 프랑스군 3개 군단 을 맞아 몰트케 는
3군을 국경 넘어 알자스 북부로 진격 시킴으로써 프랑스군 우익을 포위 합니다.
프로이센군의 포위는 계획만큼 순조롭지는 못했으나 프랑스군은 당황해 더 허둥댔고 무엇
보다도 그들의 방어망이 무너지고 있는 데 대한 불안 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수비위주로 하려했으나 프랑스 국민들의 성화에 너무 진격한게 허점 이라!
프랑스와 독일군 지휘부 모두 전선을 통제하지 못하는 혼란 속에 프로이센군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어려운 전투를 치르기도 했으나.... 자기들이
이기고 있고 프랑스군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 에 차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퇴각한 프랑스군 주력부대 는 9월 1일 스당 에서 프로이센군에 포위 되었으니
프랑스군 소총 사정 거리 밖에서 퍼붓는 대포 공격을 받고 사면초가에 빠지게 됩니다.
해전이 대포 사정거리에 따라 승패가 나는데 이때는 소총 보다 대포 사정거리가 길었네요?
아군의 소총은 적을 죽이지 못하는데 적의 대포 포탄으로 아군진영이 쑥대밭 이
되자 혼란에 빠진 프랑스군은 견디지 못하고 이튿날 결국 항복 하는데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 3세 국왕 을 포함한 무려 104,000 명의 포로 를 잡습니다.
스당 함락 소식과 함께 파리에서는 혁명 이 일어나 제3공화국이 선포
되고 내무장관 강베타 는 파리를 끝까지 사수할 것을 선언 합니다.
이후에도 프랑스인들은 파리와 메츠 포위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 했으나.... 9월 말에
스트라스부르, 10월 말 메츠 요새에 이어 파리도 1871년 1월 28일 마침내 성문을 엽니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항복 조건에 승복하지 않고 3월 18일 궐기해 주민 선거를 통해
"파리 코뮌" 을 결성후 저항했으나 프로이센군의 지원을 받는 프랑스 정부군의
공격 으로 5월 28일 굴복하니 2만명이 죽고 4만명이 체포되는 비극을 낳는데...
1894년 동학군 이 공주에서 일본군의 지원을 받는 조선군에 의해 몰살된 것과 같습니다.
굶주림에 지치고 병마로 시달리다가 죽은자 들이 전사자들 보다 많았으니...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 대관식" 을 올린후 독일제국
수립을 선포 하고 이후 독일제국 군대는 파리에서 개선행진 을 벌였던 것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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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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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늘... 고맙게 느낍니다!
한가위 풍성하게 잘 보내기를 빕니다!
즐거운 추석되세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아... 고마운 말씀입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861년에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타가
죽지 않았다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프랑스와 작센 및 스웨덴군과 싸우던
신생 프러시아는 패배하고 망했을 것입니다.
그럼..... 독일 통일은 없었을 것이고
세계 역사는 많이 달라졌겠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고맙지요?
썬찮은 글에 댓글까지.....
풍성한 한가위가 되길 빕니다!
뤼데스하임하면 포도밭과 와인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보불전쟁에 관한 내용도 잘읽어봤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오래전에 알사스를 놓고 대립을 했었죠
위도가 상당히 높은데도.....
포도 농사가 되는게 놀랍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