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업계의 별종, 복순도가
복순도가는 별종이다. 그 별종이 막걸리 시장에 파고들어왔다. 뒤돌아설 수도 없는 좁은 틈새를 지나, 선배들이 내놓은 큰 길에 빚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면서, 당당히 막걸리 시장의 복판으로 들어왔다.
손막걸리 방식의 샴페인 막걸리
복순도가의 복순은 술을 빚는 박복순씨의 이름이다. 양조장을 경영하는 남편 김정식씨는 손님들이 왔을 때 내놓았던 집안 술을 상품화했다고 말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두 아들, 건축가인 큰아들은 양조장 공간 구성과 디자인, 대외홍보를 맡고, 수학도인 작은아들은 술 품질 연구와 매장 관리를 맡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 아들이 벌인 일을 돕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식구 모두가 역할을 달리하여 대표 노릇을 하니 도가(都家)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전통 방식으로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흔적은 오래된 항아리와 고유한 밀누룩에 담겨 있고, 손으로 빚는다는 '손' 막걸리라는 표현에도 담겨 있다. 소독하기 힘들다고 일반 양조장에서는 뒤집어놓거나 처분해버린 300~400ℓ의 대용량 술독을 사용하고, 쟁반처럼 얇고 넓적한 사각 누룩을 직접 디뎌 쓴다. 누룩의 두께나 넓이는 부산 금정산성 누룩을 닮았는데, 울산 인근에서도 사용하던 형태라고 한다. 부산과 울산으로 이어지는 경상도 동남부 해안 지역에서 나타나는 누룩 문화로 여겨진다.
복순도가는 2010년 창업하면서 샴페인 막걸리를 들고 나왔다. 일반 막걸리의 매력은 탄산이 들어있어 청량감이 좋다는 점이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이 탄산감을 극대화시켜 샴페인에 견줄 정도로 강력한 기포를 생성한다. 그래서 흔들지 않고, 술병을 따는 것만으로도 탄산이 용솟음쳐서 앙금이 저절로 섞인다.
때로 탄산압이 강해 술이 넘쳐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아, 막걸리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술이 넘치지 않게 병을 따는 것이 술자리의 놀이이자 세련된 솜씨가 되었다. 이 놀이를 본 옆 탁자의 주점 손님들이 신기해서 '저 술 주세요!'라고 따라서 주문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주점에서는 일반 막걸리보다 10배나 비싼 프리미엄 막걸리를 굳이 설명하지 않고도 팔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또 용솟음의 탄산 효과를 관찰하기 좋게 목이 긴 투명 병을 쓰고, 압력에 견딜 수 있게 몸통이 두껍고 밑둥이 굴곡진 병을 썼다. 처음부터 모두 기획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얻게 된 조합도 아니다.
양조장으로 사람을 부르는 복순도가
▲ 울산시 울주군 향산마을에 있는 복순도가. 검은색 양조장 건물 옆으로 새로 목재로 주막을 지었다.
복순도가 양조장은 2015년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 마을로 이사오면서 새 건물을 지었다. 건축가인 큰 아들 민규씨가 대학 졸업 때 발표한 발효 건축 논문을 바탕으로 지었다. 건축 미학이 담긴 양조장이라니! 요사이 지어지는 양조장들은 건축비가 적게 들고 천정이 높은 철근 패널 구조이기 일쑤라, 기능성만 살렸지 미학은 담겨있지 않아 삭막하다.
그런데 복순도가는 별종이다. 양조장은 시옷자형 지붕의 천정이 높은 창고형 구조물인데, 벽면에 볏짚 새끼줄을 넣어 황토로 마감하고, 짚을 태운 재로 검게 칠했다. 논의 황토, 벼의 짚, 아궁이의 숯의 이미지를 건물에 담았다. 건물 중앙에 통로를 내서 시음 카페와 제조장을 분리하고, 황토 벽돌 사이로 유리창을 내고 항아리 발효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통로에는 술독에서 뽀글거리는 탄산 기포 소리를 배경음으로 틀어두었다.
▲ 중앙 통로의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황토 발효실 모습.
▲ 양조장 중앙 통로에 놓인 오래된 항아리들.
복순도가는 샴페인 막걸리와 양조장 건물이 특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2018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한국관광공사와 연계해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의 해돋이 역사 기행의 경유지에 들어갔다. 농업, 양조, 관광, 식도락을 연계시킨 좋은 지역 자원으로 성장했다.
사무실을 겸한 시음장 카페에서는 막걸리 무료 시음이 가능하고, 15분짜리 간결한 술빚기 체험 프로그램이 인터넷 예약을 받아 진행된다. 막걸리 부산물로 만든 6만 원대의 화장품을 팔고, 복순도가 술병 모양의 기념 배지도 만들어 5천 원에 팔고 있다.
손님들이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도록 빈대떡을 만들어 파는 주막 건물도 2019년 겨울에 새로 지었다. 찾아오는 손님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푸념하는 양조장들이 있는 반면, 복순도가에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어떻게 더 오래 체류하게 할 것인가 고민하며 주막까지 만든 것이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알코올 6.5%인데, 탄산과 앙금이 많은 편이라 입안에 머금었을 때의 질감이 묵직하고,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오래 지속되는 단맛을 따라 자두나 살구에서 느껴지는 신맛이 상큼하게 돈다. 얇고 넓적한 복순도가의 누룩이 금정산성 누룩을 닮아있듯이,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금정산성 막걸리의 신맛을 세련되게 닮아있다.
프리미엄 막걸리만의 전략
복순도가는 온라인 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양조장으로 꼽힌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BOKSOONDOGA)을 잘 활용하고, 네이버, G마켓, 옥션, 우체국 쇼핑몰, 카카오 선물하기, 카카오 쇼핑하기를 통해서 젊은 소비자들과 만나면서 막걸리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양조장이다. 현재 양조장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온라인 매출이 거두고 있다고 한다.
또 부산 수영구에 복순도가 F1963 레스토랑을 내고,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뮤직라운지를 내서 복순도가를 판매하고 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가 1병에 1만2000원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병에 1200원하고, 20병 1상자에 2만4000원하는 일반 막걸리로는 성취할 수 없는 유통이고 매출이다.
잠시 복순도가 시음 카페에 앉아 있는데, 친구들 세 명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손님들이 들어왔다. 한번 찾아온 사람이 친구 둘에게 양조장을 보여주기 위해서 카페처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샴페인 막걸리를 소개하는 것은 이끌고 온 친구의 몫이었다.
시음 카페에 놓인 두 대의 모니터에서는 막걸리 빚기 동영상과 양조장 홍보 동영상이 연신 펼쳐지고, 시음장 안쪽 사무실에서는 택배 주문 발송 프린터기가 찌지직 찌익직 쉼없이 주소를 긁고 있었다. 양조장을 가지고, 막걸리를 가지고, 그것도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울주군 시골 마을에서 이런 변주를 해대다니, 복순도가는 별종이다.
허시명 기자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