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가 되서도 나는 경품에 솔깃한다.
지금 정기구독하는 잡지 중의 하나도 곁들여주는 미니 배낭에 솔깃해서 신청한 것이다. 그 미니 배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받았을 때만 너무너무 흐뭇해하면서 두루 살펴봤을 뿐, 그리 쓸 일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다. 은행에서 여성지를 뒤적이다가 화장품 같은 경품이 걸려 있는 광고를 보면 내 마음은 설렌다. 내가 비교적 게으른 인간이었지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경품과 주문한 물건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응모하려고 항상 관제엽서를 몇 묶음씩 책상 서랍에 비치해 놓고 있다. 그렇게 경품을 좋아하건만, 주문한 사람 모두에게 주는 물건 외에 추첨해서 주는 경품은 별로 받아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수놓인 이태리 손수건 두 장을 받았다. 아, 20여 년 전에 달력을
받았었군.
나는 경품 복이 없다. 몇 년 전에는 '치토스'라는 과자를 죽자사자 사먹었는데 맛도 있었지만 봉지 안의 경품 딱지가 탐나서였다. 그런데 수많은 봉지에서 나온 딱지에는 모두 '다음 기회에' 라고 써 있었다. 내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그래?"하면서 핸드백을 뒤져 딱지 한 장을 꺼내줬다. 그 친구는 어쩌다 한 번 치토스를 삿는데 '한 봉지 더'라는 딱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감탄하면서 소중히 받아 넣었는데 며칠 후, 사용하려고 보니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내가 경품 운이 없구나, 허전하고 허무했다.
이런저런 그럴싸한 경품을 타는 사람들은 실존인물인가? 그렇다. 실존인물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내가 그 반열에 든 것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전 수도여고 운동장에서 고엽제 피해 불우 미망인을 위한 중소기업 박람회'가 있었다. 나는 가령 '전구가 달린 볼펜' 같은 특허품들을 팔지 않을까 해서 그곳에 들렀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런 공산품들은 적었고, 농수산물 코너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긴 연기가 나지 않는 고기구이판 등 편리한 주방기구들도 많았으니 중소기업 박람회라는 이름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런 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날 나는 황태채 한 봉지와 오징어채 한 봉지, 낙지 젓갈 한 병, 악취 제거 게르마늄 돼지 네 개, 바이오 수세미 두 개, 해바라기씨, 참깨, 들깨, 호박씨, 잣 등으로 만든 강정 2킬로그램을 샀다. 다 해서 7만 원쯤 했는데, 선물로 영지 꿀차 한 병, 식기세척제 한 봉지, 옥주걱 두 개를 주는 게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입이 함지박만 해졌는데 추첨권 두 장을 또 주는 것이다. 그 주 일요일에 추첨을 해서 푸짐한 상품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에 어슬렁어슬렁 박람회장에 갔다. 추첨을 시작하기 전, 간 김에 강정 4킬로그램과 토속된장 한 통을 사고 또 추첨권 두 장을 받았다. 운동장에는 동네 사람들이 쉰 명 남짓 옹기종기 서 있었다. 추첨권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추첨함에 넣은 다음 좀 멋쩍은 기분으로 사람들 속에 들어섰다.
"빨리, 시작해! 용달차 대기시켜 놨단 말이야!" 한 아저씨가 주최측에 성화를 해대고 사람들이 와그르르 웃고 한 끝에 추첨이 시작됐다. 내가 탐낸 물건은 '각질 제거기', '진드기 청소기' 같은 것이었다.
그런 소소한 경품 추첨이 끝나고 드디어 본선 추첨이었다. 3등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을 마구 부러워하면서 1, 2등 경품은 그리 탐나지도 않고, 차례도 오지.않으리라 생각돼서 심드렁히 서 있었는데 2등 옥매트 당첨자가 정해지고, 어이없게도 1등에 내 이름이 불린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뒤에 선 할머니가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죄송하기 짝이 없는 한편, 가슴이 정말정말 터질 듯이 기뻤다. 내가 김치냉장고를 탄 것이다. '그걸 뭐에다 쓰지?' 싶으면서도 '세상에, 나한테 이런 일이!'
경품에 대한 포한이 스러지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포한: 품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