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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 땅굴, 부산 거제도까지 내려와 있다]
가. 남침땅굴 현황
현재 한국 전지역의 지하는, 북괴군의 남침땅굴에 의하여 점령된 상태라고 판단된다.
서부, 중부, 동부를 막론하고 북괴군의 남침땅굴이 온통 깔려있다.
북괴는 1950년대 후반부터 남침땅굴을 파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약 50년간 총력을 기울여 남침땅굴을 파왔으며, 각종 땅굴 징후로 보아 전방 휴전선 지역은 1960년대에 이미 남침땅굴이 통과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전방의 아군후방에 남침땅굴 출구가 다수 마련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과 원주-강릉선 지역은 1970-1980년대에 걸쳐 남침한 것으로 보여지며, 대전지역과 대구 지역은 1980-1990년대 초에 이미 통과하여 현재는 부산-거제도 지역까지 남침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북괴는 1960-1970년대에 걸쳐 스웨덴, 스위스 등으로부터 300대의 자동굴착기(TBM)를 수입하였으며, 자동굴착기 한대는 하루에 땅굴(폭2.5m, 고 2.5m)을 약 30m씩 굴착할 능력을 갖고 있다.
월맹이 약 40-50년 전에 낙후된 장비와 기술을 갖고도 250㎞나 되는 땅굴을 팠었는데, 북괴가 고성능의 자동굴착기와 고도의 땅굴기술을 갖고 장거리 남침땅굴을 못팠겠는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대남적화통일을 함에 있어서, 기습공격에 의한 속전속결 전략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 남침땅굴이다.
그리하여 이미 1950년대부터 남침땅굴을 파기 시작하여 50년 동안을 계속 파고 있는 것이다.
나. 화성 (수원) 남침땅굴
(1)화성남침땅굴 탐사경위
1999년 9월경 우물시추업자인 최병대씨(인천거주, 40세) 가 경기도 화성시송산면 지화리에서 우물시추작업을 하던 중,
지하 30-40m사이에서 시추기가 3m가량 뚝 떨어지고 콤푸렛샤로 에어를 한참동안이나 주입하였으나 전량 지하로 유입되는 현상을 확인한 바 있었다.
위 사실을 알게 된 민간탐사자들은 1999년 10월 중순 다우징 탐사를 통해서 그 지역이 남침땅굴 지역임을 알게 되어 청음활동을 한 결과, 동년 11월 7일 15:00경 기계소음이 녹음되었고 고압전기 유도음이 발생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 화성 남침땅굴 발견
이 지화리 탐사를 계기로 다우징탐사 결과, 지화리-양노리-천천리-수원비행장으로 남침땅굴선이 어어져갔다.
절개를 통한 남침땅굴 확인을 위하여 절개장소를 물색 중, 천천리에 있는 51사단 공병대대 앞에 잇는 국유지와 화성시유지가 적합하다고 판단되어 2002년 9월에 그곳에서 남침땅굴 탐사작업을 시작하였다.
먼저, 그 일대를 다우징 탐사를 한 후 26개공을 시추하였고 매개공마다 녹음장치를 한 결과 5개공에서 남침땅굴 징후를 포착하였고 그 중에서 1개공을 선정, 절개공사를 실시한 결과 2002년 11월 20일,
20m 지하에서 절단된 철와이어, 북한산 호미, 밧데리, 특수 시멘콘크리트가 부착된 비옷, 와셔, 시멘콩크리트조각, TBM 흔적이 부착된 암석, 인공적으로 다듬은 각종 암석등과 함께 사람목소리와 기계음이 녹음된 테이프 등 10여가지의 증거물이 나왔다.
(4) 화성시장의 불온한 행동
경기도 화성시장은, 남굴사가 화성남침땅굴 발견을 위하여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지역에 있는 국유지와 화성 시유지를, 사용신고만 하고 허가를 받지 않고 절개작업을 함으로써 토지관계법을 위반했다고 하여, 남침땅굴 현장을 메워 원상복구하라고 독촉을 한 바 있다.
사전에 허가를 받아 남침땅굴 탐사 작업을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현재 경기도 심판위원회에 심판청구중이니 심판이 끝날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간청을 했으나
화성시장은 이를 불응하고 지난 10월 21일-25일까지 남침땅굴 현장을 행정대집행을 통하여 메워버림으로써, 여러 가지 증거들이 다 은폐되고 말았으며,
동 지역에 있는 징후가 뚜렷한 곳에 대한 추가 절개작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동지역 지하에 있는 북한군에게 도움을 주는 등 이적행위를 하였다.
(5) 남굴사 회원의 순국과 희생
안보당국이 민간 탐사자들의 철저한 조사 및 절개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무유기를 한 까닭에, 남굴사 요원 2명이 적성 세력에 의하여 테러를 당하여, 1명은 순국하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가 생명을 구하여 현재 치료중에 있다.
즉, 화성남침땅굴 탐사에 주동적 역할을 하던 고 정지용씨가 2002. 12. 5. 적성세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하여 순국하였다.
고 정지용씨는 기무사 대공수사관으로 있을때, 남침땅굴에 대하여 알게 되어 기무사를 사직하고 14년 동안 오로지 남침땅굴 탐사에 전념하여 수억원의 가산을 다 팔아 남침땅굴 탐사에 사용하였다.
또한 부상을 입은 최민용씨는, 권위있는 다우징 탐사 기술자로서 남침땅굴 탐사 및 발견에 고 정지용씨와 더불어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다. 김포, 연천, 동두천, 의정부, 철원 등지에서의 탐사 활동
장거리 남침땅굴은 약 15년 전부터 (고) 정지용씨를 비롯한 민간탐사자들에 의하여 누차에 걸쳐 발견된 바 있으며, 국방당국은 일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괴가 50년동안이나 땅굴을 파왔는데 안보당국이 이를 한건도 적발하지 못하였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1) 10여년에 걸쳐 각 지역에서 100여m-수십m 지하에서 북괴군이 남침땅굴을 파는 소리, 폭파소리, 갱차가 지나가는 소리, 자동굴착기 소리, 인민군 목소리 등이 녹음되어 그때마다 민간탐사자들이 국방당국에 보고하였으나 일체 부정하여 왔다.
(2) 1998. 10. - 2000. 2.에 걸쳐 연천군 구미리에서는 두곳에서 남침땅굴이 발견되었는데
첫 번째 것은, 1998. 10. 하순 구미리 임진강변에서 절개작업을 실시한 결과 지하 암반층에서 남침땅굴을 발견하였고,
두 번째 것은, 1998. 12. - 2000. 2. 민간탐사자들이 연천군 구미리 이승환씨 집 마당에서 시추작업을 한 결과 36m 지하 암반속에서 남침땅굴을 발견하였으며,
2000. 3. 2.「연천에서 남침땅굴 발견」이란 제하에 SBS는 정규뉴스 시간에 보도하였고, 3일 후 뉴스추적 시간에 별도로 특집방영한 바 있다.
(3) 북괴가 남침땅굴을 판지가 50년이나 되며 고가의 자동굴착기 수백대를 스웨덴, 스위스 등지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남침땅굴이 아직도 전방에만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한 일이다.
(4) 북한은 김일성 시대나 김정일 시대나 시종일관 유일한 국가목적이 대남적화통일이며, 이를 위하여 모든 국가 역량을 전쟁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5) 김일성은 남침땅굴 1개는 원자탄 10개보다도 더 효과적임으로 남침땅굴을 파라고 명령한 바 있고, 1970년대 초부터는 자동굴착기(TBM)를 수백대나 구입하여 본격적으로 남침땅굴을 파왔다.
그리하여 각종 징후 및 증거 등으로 미루어 추측컨대, 이미 이 나라는 온국토 지하는 남침땅굴로 뒤덮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땅굴에 관한 한, 북한은 세계 선수권 보유자이다.
김정일은 이 남침땅굴을 통하여 기습코자 하는 것이다.
(6) 가상 시나리오
남침시, 3일전쯤에 특수전부대 10만명을 중심으로 수십만명이 국군 복장으로 위장하여 이 나라
전지역 남침 땅굴 출구 부근에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시간에 맞추어 일제히 돌출하여 각 지역에 잇는 군부대를 기습한다면 하루밤 사이에 이 나라는 점령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이 땅굴은 미 증원군이 오기 전에 기습점령한다는데 그 주안점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2-3일이면 끝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침땅굴이상 두려운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국방부는 북한이 장거리 남침땅굴을 파내려오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를 세가지 들고 있다.
첫째는 버럭처리가 곤란하며, 둘째는 물처리가 어려우며, 셋째는 공기조정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장거리 땅굴은 불가능 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이유가 못된다.
버럭처리는, 지금은 주로 각 지역에 많이 산재하는 폐광에 처리하며, 물처리는 암반 밑에서 나오는 것임으로 그 수량이 많치 않을 것이며 수맥을 따라서 처리하거나 기타 송수관 이용 등의 방법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공기조정 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며, 공기통 또는 폐광 지역과의 연결 또는 기타 방법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에 탈북해있는 전 북괴군 상좌(연천 북방에서 땅굴 책임자로 있었음)의 말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는 버럭처리는 폐광을 이용하며, 지하수처리는 수맥을 찾아 자연적으로 처리되며 어려운 일이 아니다.
(8) 10여년 전부터 (고)정지용씨를 비롯한 민간탐사자들이 남침땅굴을 다수 발견하여 수백개나 되는 남침땅굴 녹음테이프를 확보하고 있으며, 안보당국에 일일이 보고하였으나 일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요 군부대에는 전후방을 막론하고 남침땅굴이 침투한 것으로 판단되며, 서해 5도서에도 남침땅굴이 침투한 것으로 판단된다.
민간탐사자들은 자기 돈으로 탐사작업을 하였을 뿐, 국가예산을 사용한 일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9) 남굴사는 2002년 11월 20일 탐사작업 3개월 만에 남침땅굴을 발견하였다. 화성지역은 남침땅굴의 소굴이다.
70년대에는 자동굴착기를 300여대나 구입하여 남침땅굴을 파는데 사용함으로서, 남굴사에서 판단하기로는 수도권을 지난 것은 적어도 1980년대라고 보여지며, 현재는 이미 부산까지도 남침한 것으로 판단된다. 참으로 가공할 일이다.
이 나라는 지금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만일 안보당국이 계속 오판하여 장거리 남침땅굴 탐사에 적극성을 띄지 않는다면,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4. 주한미군과 남침땅굴
주한미군이 있음으로서 국방비를 절감하여 경제정책을 펼 수 있었고 경제부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한편 남침땅굴은 정반대이다.
김정일은 언제든지 기습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되었으나 주한미군이 있음으로 해서 남침을 하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미군역시 국방부의 오판이 작용함으로서 남침땅굴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함으로써 미군역시 고스란히 기습을 당할 우려가 다분하다.
남굴사에서 주한미군 측에 남침땅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바 있으나 국방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직까지 제대로 인식한 것 같지 않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굴사에서 탐사한 바로는, 이미 오래전에 수원비행장은 물론 오산 비행장에도 몇 갈래로 남침땅굴이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해 봄 미․북 관계가 북핵으로 인하여 긴박의 도를 더했을 때에는,
다수의 북한군이 수원비행장과 오산비행장지하 남침땅굴에서 대기상태에 있는 징후를 포착하였으며, 지금 현재에도 제반 징후로 보아 계속 상당수의 북한군이 대기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
작전계획 5027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이 계획에 의하면 한국에서 재차 전쟁이 발발 시에는 다수의 미 증원군이 오게 되어 있으나, 파견에 많은 시일이 소요되어 사후약방문 꼴이 되기 쉽다.
김정일은 1일 또는 3일 작전을 계획하고 있고 주로 남침 땅굴에 의한 기습남침을 생각하고 있는데, 2개월이나 걸려 수십만 명의 증원이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작전계획 5027도 북의 작전계획에 대응해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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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이신데.. 영 믿음이 안가는 내용이네요.. 발견되었다면 오히려 군과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하겠지 왜 쉬쉬할까요?? 어디서 발췌했는지 발견된 장소 구경이나 하게 올려주세요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퍼왔습니다.
이거야말로 한국의 과학기술과 군을 완전히 병신 쪼다 만들어 놓은 조갑제식 사기극이군
남침용 땅굴이 40여개 있다는 사실은 미국 CIA에서도 인정한 진실입니다. 여기저기에서 글 퍼와 나르는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말씀을 좀 삼가하시죠. 글 퍼나르느라 목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는데...
왜 이 사실을 남한 정부는 쉬쉬하는지 아십니까?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남한은 이 사실이 대내외적으로 공표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주가 폭락 등 경제가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위기에 빠집니다.
무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