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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의 현대문학
1.시인 김광회(1926- )
김광회 선생은, 1926년 예산군 광시면에서 출생하여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어떤 신』이 현대 문학지에 추천 되어 시단에 등단했다. 1957년 시 동인지 『육석』으로 활동하고 1965년 현대문학 추천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팬클럽 한국 본부 자문 위원, 한국 시인 협회 이사, 충청 문인 협회 자문 위원이었고, 첫 시집 『始原에의 戀歌』, 1965년 『서울의 童話』,『고무신의 노래』가 1969년에 출간되었고, 1985년 『강이여 돌아가라』, 1996년 『겨울 햇살』, 2001년 『느낌표 하나』, 2003년 『꽃은 한 번 더 핀다』 등의 시집과, 1984년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고』, 『청마 평전』 등 그 외 다수의 시집이 있으며 문학 21문학상 본상, 충청문학상 본상, 지구 문학상 받았다.
김광회 선생은 교직에 오래 머무르면서 문인으로서의 작품 활동도 많이 하였다.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선생의 시에는 교훈적인 철학 지침서가 들어 있고, 종교적 의미를 떠나, 버림의 미학을 중요시 여김이 글에서 나타나 있다. 겸허한 자세로 세상과 사물을 보려는 태도, 정신적 기반을 시를 통해 엿 볼 수 있다. 겨울 햇살 시집에서 시는 ‘참회’ 시는 ‘어떤 고뇌’라고 한 선인들의 말을 서두에 남긴 선생은 실제로 삶과 문학의 길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답답함을 시를 통하여 소통하려 했고, 시적 표현을 보면 인생의 의미를 진솔한 삶에서 찾고자 하였다. 살아감에 대한 거리를 시로 표현했고, 마음을 비우고 살면서도 참회와 고뇌의 길에서의 목마름은 선생의 시에서 잘 나타나있다.
김광회 선생의 세 편의 시를 소개하겠다.
겨울 햇살 <1996년 11월 5일>
겨울 햇살에
미닫이 밖의 이듬해 봄은 안 보여도
잃어버린 이름들에 실눈을 두게 한다.
심심히 가라앉은 의자들에게
저마다 기다림의 아픔도 일깨우다가
어느 목로주점의 피고 싶은 조화에
한 번 더 젖 이슬을 주고
행상 할멈의 무너진 어깨에서도
모두 모여 맴을 돌다가
마지막 살아남은 세상의 일들을
하나의 높이 하나의 깊이로
골고루 어루만지며
끝도 없이 나눠 주는가
목이 마른 샘물 한 가닥
홀로 긴 겨울을 앓는다.
뒤따르란다.
느낌표 하나 <2001년 4월 15일>
별들은 남의 뜻으로
지구 둘레를 돌고
사람들은 제 뜻으로
꽃병 곁에 머무니
세상 만 가지
저마다 제 멋이지만
큰 테두리 안의
임자 중 임자는
이 느낌표 하나
꽃은 한 번 더 핀다. <2003년 8월 10일>
꽃은 처음 자기가 된다.
다음엔 저기 저 사람
저 사람의 가슴이 된다.
늘 마음의 미닫이 열고
가는 곳마다 빛을 더한다.
약손으로 피나는 아픔도 던다.
낮은 데에 엎디어
물과 햇살로 익음 다한 넉넉함
말마저 그만두니
어느새 향기로 뜨는 무지개
아직도 나를 못 재워
자주 시름겹고
미쁨이 없는 우리
세상은 덜 고와 보이나
스스로를 버리고
남이 되는 즐거움으로
꽃은 한 번 더 산다.
大東輿地圖
하늘에서 보면 점 하나
잠에 든 아득한 점 하나
가까이 보면 굵은 붓 자국 마다
목숨들의 숲
미신으로도 신앙으로도 못 찾아
다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남몰래 선잠 자는 긴 밤이더니
陰陽의 만남으로 줄줄이 낳은
金, 木, 水, 火, 土ㆍㆍㆍㆍㆍㆍ
마냥 골방에서 셈하더니
천 년 닫힌 사립문을 제치고
나선 짚신 신은 사내애
아니다! 아니다!
홀로 소리치며 거꾸로 가던
발자국마다 호롱이 펴나
미닫이 사이에 드러난 江山
잠에 든 아득한 점 하나,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등불이 될 날이 멀어
아직은 소문 없이 앓고 있더라.
가을비
네가 두고 간
빈자리에
돌아오는
내 발자국 소리-
다시 듣고 싶어
재청을 한다.
김광회 선생의 세 번째 시집 『겨울 햇살』에 대해서 오양호 문학평론가는 이런 작품 평을 했다. 『겨울 햇살』은 역사적 상상력과 명상적이며 관조적 세계를 보여 준다. 그는 20-30년 걸친 시작 인생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문학사에 주목받는 시인이며, 우리의 따뜻한 삶의 숨결을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적 화자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거나 서두르지 않고, 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인간사를 담담하게 지켜 볼 따름이다. 그의 겸허한 삶의 자세는 자연에 가까운 발자국이 보인다. 삶의 진정한 가치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는 겸허함으로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불교적 가르침이기도 한 그의 사상, 철학이 엿보인다.
김광회 선생의 시집을 선생의 동생인 김장회 선생으로부터 3권을 선물을 받아보았다. 작품으로서 만나는 선생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글에서 느낀 것은 그가 성품이 온유하고, 따뜻하고, 양심적이고, 낮은 자세로 느린 걸음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선생의 깊이 있는 시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정신세계가 묻어 있었고, 자연과 소통하는 시적 표현은 맑은 영혼이 살아 숨쉬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2.시인 서창남(1906.7.1.~作故)
1906년 서울 출생. 시집에 『네잎클로버』,『비장의 거리』,『산장의 칡꽃』이 있다. 서창남 선생은 광시면 양조장 윤병의 회장의 부인이다. 선생은 대구 달성 서씨로 일제 강점기에 자신이 골양반으로 창덕 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을 중퇴한 것을 긍지로 살며, 40대 나이에 『네잎클로버』라는 시집을 상재하여 인근 촌동네 시인으로 불리었다. 이름이 자자한 현대식 여성으로 그는 아동 문학가 윤석중 평론가와 김욱한 스님과 평소 가까이하며, 당시 시집을 두권이나 내었다. 아들을 높이뛰기 국가 대표 선수로 키웠고, 자녀 교육도 남달랐다.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간 후 중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여류 문인이고, 마지막 예산 『육석』 5집 동인의 한사람이었다. 서창남 시인의 시 ‘산장의 칡꽃’을 소개하겠다.
산장의 칡꽃
태고적 밀어를 속삭여주는 저산
저 거무틱틱한 바위덩이의
믿음직한 자세
산새 푸르륵 날으고
이름없는 꽃 여기저기 피어
화려치 못한 자태이나마
보아달라 웃고 있는 곳
어허 저기 커어다란 줄기
엉키고 설키어
기엄기엄 높은 곳에
칡꽃 몇 송이 꽃피었네
입 벌려 푸른 하늘 삼키고 있네
샛파란 샛파란 쪽남색 하늘
꽃사슴
꽃그림자 수풀에 그늘진 호수
기인 一목을 늘이고 거울인 양
물속을 지켜보는 꽃사슴
어디서라도 자랑찬 뿔을
배암같은 눈으로 노리지 않는가
후광인 양 화 – 안히 빛나는 뿔
뿔이 장엄해 슬픈 꽃사슴
조용히 물속만 지켜보고
기인 一목을 꼬아보는 어진 그 양자.
日月이 장구해 꿈이 길어
千年이나 살고픈 꽃사슴
不老草 숲속에 꽃등을 누비며
덤쑥 한 잎. 따물은 향기 짙은 꽃술
百年도 길다는 인간들의 얄팍한 꿈을
설레설레 목 흔들어 웃어보는 千年
호수는 맑고 꽃바람 훈훈히
향기 어린 황혼은 다가오는데
내일도 같은 꿈을 그리는 꽃사슴
不如歸
어느 원혼의 꼭 맺힌 설움이나
밤새껏 피 되새겨 되새겨
짜르르 목청 터지게 울어
허허 天空에 날려 보내 보는
아- 저 불여귀
울어 울어 될 일이 된다면
이 한밤 으스름 달밤
비 개인 공산에 으스름 달밤
너보다 몇 굽이 더 흐느낄 줄도 알 건만
아-울어 못당할 소망
무량 억겹에
너 울어
나 울어
얼음꽃 같은 맑고 차디찬 의지
대기에 꽉차게 꽃피우면
울었던 보람이 되지 않느냐
뭇새들 잠적해 울제 우는
끊일 듯 이은 듯 원귀의 울음
뜻 있어 우는 뜻이 아니면
뜻 없이 우는 그게 뜻이냐
아-비인 공산을 더욱 비게하는 불어귀
아시의 미소
1.지혜의 계절
뼈와 피는 마르고
영원만 잠든 땅
무성한 잎사귀로 덮인 무지와 예지의 숲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죽어간다.
거대한 암흑의 정원에는
대추야자와 소나무 사이에
쟈바의 박쥐가 광채를 맞는다.
무서운 밀림의 어린애들이
하늘을 보고 통곡한다.
인도산 비단폭에 그려진 관세음
아시아의 하늘에는 죽음과 탄생이
천만년 무심한 광명의 바다에
자애로운 인연으로 아이와 노인의 숨소리를 낸다.
3.소설가 이재인
광시면 운산리 출신으로 소설가이며 수필가. 경기대학교 국문과 교수. 월간 《예술계》 신인상 소설 당선으로 등단.
장편소설 『악어새』, 창작집 『씨앗과 놋요강』,『아우의 누드집』, 장편 『모딜리아니의 마을로 가는 날개』 등 10권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수필집으로는 『아름다운 이름』, 『황야의 아침』,『마디마디 비친 그리움,『고목 위에 까치집』 등 16권이 있다.
논저로써 『김남천 문학』,『한국의 소설 사상사』, 『북한문학의 이해』, 『오영수 문학 연구』,『현대 소설의 이해』,『현대 소설의 이론』,『우리 소설 50선』,『북한 문학 강독』,『한국의 기와』,『문화 한국의 에로스 문화』,『한국 문학인 인보』 등 60권이 있다. 다작가 이재인 선생은 한국 문학평론가 협회상, 민족 문학상, 조국 문학상, 인천 예술상, 농민 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경기대 학생처장, 교학처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문인협회 감사,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인권 옹호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한국 문인 인장 박물관 관장, 경기대 한국 문학 연구소 소장,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베스트셀러인 『악어새』와 『뱀삿골 오딧세이』,『소설 정중부』 등 다수가 있다. 산뜻한 일상이야기를 상큼하게 그려내는 맛깔스런 선생의 수필은 생명력이 살아있고, 깊이가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면서 집필한 수필에서는 삶의 통찰과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솔직 담백한 선생님의 수필집을 읽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수필의 대가인 피천득, 김진섭 선생의 글을 보는 듯 했다.
다음은 이재인 선생의 『예산 초당 수필』 중 ‘추억의 공간속으로’와 ‘유기농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중에서’의 일부이다.
‘추억의 공간 속으로’
…‘고향’이란 단어 속에는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추억들이 마음의 지문처럼 남아 있다. 개울이나 둠벙 속을 후리며 고기를 잡거나 동산에 올라 씨름판을 벌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정신적인 지표를 찾아 헤매던 청소년기 시절까지, 즐거웠든 고통스러웠든 모든 추억이란 무지갯빛을 띠고 일렁이기 마련이다….중략
‘유기농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중에서’
...혼 잎나무 새순 덤불 사이에 산 꿩이 운다. 짝이 그리운 산 꿩은 업벅산 위 산그늘을 바라본다. 슬픔에 고인 생각 또 한 번 깃을 차며, 오늘의 추억이자 가슴이 설레인다……. 중략
둥구나무 한 그루가 정정하게 서 있는 고향 마을의 언덕빼기에는 제법 큰 부잣집이 있었다. 어쩐 일인지 그 집 소녀가 중학교도 진학하지 않은 채 끝도 없는 신부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해맑은 얼굴처럼 순수한 순백의 목화를 따서 시집갈 이불솜을 마련하는지, 어쩌다 문인송이 가지를 드리운 산비탈에서 마주치게 되면 그녀는 이유없이 얼굴을 붉히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대학을 진학했을 즈음 그녀는 소식도 없이 등 너머 마을로 시집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아릿하고도 순정적인 그 어떤 성벽이 허물어진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첫사랑이었을 것이다…….중략
수필가 김학 선생은 이재인 선생은 발과 가슴으로 쓰는 수필가라고 평했다. 또한 장세진 문학평론가는 이재인 선생의 수필을 ‘산뜻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 선명한 기억을 갖게 하는 수필. 고향을 회억하거나 자연을 관조하되 대개는 공감을 불러 일으켜 어떤 깨달음과 울림을 남기는 일상성과 자연애를 바탕으로 삶의 원형 내지 인간성 회복을 추구한 긍정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평하였다.
선생과 필자와의 만남은 예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에 예산 문학관을 드나들면서 이루어졌다. 동인지 예산 문인 협회 14집 문집 발간 시 도움을 준 선생이 광시면 출신 문인이란 사실이 더욱 기뻤고 반가웠다. 해마다 한국 문인 인장 박물관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이재인 선생은 예산군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문인들을 초대 하여, 전국의 훌륭한 문사들과 만남과 교류를 주선해 주었다.
이재인 선생의 회고록인 『저 눈밭에 내 시간은』에서는 선생의 걸어온 길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내며, 몰래 숨어서 쌓은 독서를 통하여 작가의 꿈을 갖는다. 그러던 차에 책 한 권을 들고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하여 주경야독으로 경기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게 된다. 그의 문학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고되고 평탄치 않은 삶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맞서 나아갈 즈음 명문가의 제자 문학청년 선원빈, 박제천, 난계 오영수 소설가를 만나게 된다.
이재인 선생은 『현대문학』에 실린 오영수의 ‘기질’을 읽고 감동을 받은 후, 대학교 시절 가장 강렬한 스승이었던 그의 제자가 된다. 그 후 문단의 거목 미당 서정주를 만난다. 미당은 그의 첫 수필집에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오랜 시간 중고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였고, 우리나라 말과 글을 가르치는 국문과 대학교수로, 그리고 소설가로 살았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서 1975년 ‘동아사태’에 서명한 103인이기도 하며, 문단 데뷔 3년만에 소설 ‘악어새’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는 중앙 문단의 거목 정의홍, 문인수, 강희근, 김철진, 송유하, 문효치, 조정래, 손창배 등 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가지며 문학인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4.수필가 안흥준
광시면 운산리 출신으로 1997년 한국문인협회 예산 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98년 농민 신문 영농 수기 입상하였고, 2001년 2월 월간 조선문학 수필 『화투』로 신인상 수상되었다. 한국문인협회 충남 지부 회원으로서 예산 지부장 역임. 2004년 수필집 『농부의 행복』 간행. 순흥 안씨3파 예산 종회장, 대종회 자문 위원을 역임하였다.
농촌 생활을 솔직한 고백을 꾸밈없이 그려낸 선생의 작품 세계는 담백한 맛이 난다. 농부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시작 노트는 풍성하다. 농촌 삶이 어려워 한집 건너 한집 둥지를 떠난 잡초만이 무성한 빈집이 늘어나는 농촌에서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여러 남매를 훌륭히 키웠다. 고향을 지키고 살면서 꾸준히 글을 쓴 안흥준 선생과 자주 만나는 경기대 이재인 교수는 그분을 일컬어 평화주의자, 박애주의자, 한국 수필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 분이라 하였다. 선생의 사상과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수필집 『농부의 행복』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찌들지 않고 넉넉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선생의 마음씨와 농사 이야기 그리고 정겨운 농촌 풍경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농민들의 애환과 삶이 투영된 선생의 글은 선생의 삶의 전부요 생활의 고백서이다.
수필집 『농부의 행복』에서 ‘황금빛 은행잎’의 일부를 발췌하였다.
...은행나무 잎이 가을을 좋아하는 듯 황금빛 꽃을 피운 것처럼, 그 풍경이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더니 된서리가 함석지붕에 하얗게 내리던 날 싸늘한 바람에 여지없이 비참하게 땅바닥으로 소리 없이 떨어져 버렸다. 수북이 쌓인 은행잎, 죽었는지 쉬고 있는지, 멍하니 서서 바라보려니 왠지 서글퍼진다. …….중략
은행잎은 그렇게 은행 알을 완숙시켜 놓고 떨어지고 말았다. 은행잎은 나무를 키우고 은행을 결실 탄생시키고 책임 완수를 하였는지 수명이 다하였는지 그렇게 쓸쓸히 떨어지고 바람에 뒹굴어 어디로 갈려는지 날려가고 있다. 그렇다 : 부모님은 자손을 위하여 고생하고 가시는 날까지 걱정 근심하셨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자연의 섭리이니, 불가항력이라 어찌 할 수 없는가보다. 은행잎은 내년에 또 볼 수 있지만…….중략
황혼의 나이에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며 부모님을 그리는 선생은 효자이다. 자연을 벗하고 살면서 자연과 동화되고 생명의 존엄함을 귀히 여기며,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하고 깨끗한 선생의 모습이 엿보인다.
5. 시인 윤향기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한 몸이라는 것을 일직 개달은 오지 여행가 윤향기 선생은 생의 궁극적인 의문인 부동과 생기와 들끓는 열정의 의미를 찾아 세계 곳곳을 순례했다.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중략논문 『기생 문학에 나타난 성』으로 석사를 마쳤으며, 늦게 경기대 박사과정에서 게이샤와 기생의 비교 연구를 하고 있다. 인도와 티벳을 오가며 낸 시집 『굴참나무와 딱따구리』, 『엄나무 명상법』, 『욕망ㆍ의전의』와 2005년 문예 진흥 기금으로 출판된 『피어라, 플라멘코!』가 있고, 수필집으로는 『로시란테의 오막살이』, 『벤토벤의 키스』, 『아름다운 나이테』, 『인도의 마법에 빠지다』, 『아나무스의 오래된 변명』 등이 있다. 1998년부터 해마다 인사동 서경 갤러리에서 드로잉 『새로운 바람전』과 『흙사모』 도자기 그룹전을 열고 있으며, 2003년 3월에는 인사동 성보 갤러리에서 『흙, 바람을 채집하다』 도판화 개인전을 열어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경기 대학교 출강하며, 계간 『열린 시학』과 격월간 『정신과 표현』 편집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함초롬히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웃는 모습이 고우면서도 눈빛이 강렬한 윤향기 선생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선생이다. 나타내지 않는 후배들의 사랑은 잠시 머물다 간 자리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각 분야에 많은 이력을 가진 선생은 다양한 이력을 갖기까지 쉼 없이 바삐 살아온 발자취가 남아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여자, 꿈이 있는 여자, 향기 나는 여자, 윤향기 선생은 이 지역 출신 문인들 중에서 필자가 닮고 싶은 면이 많은 선배님이다.
선생의 수필집 『아니무스의 오래된 변명』 중 첫 장에 실린 작가의 말을 실어보겠다.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했던 여인, 하늘 높이 나는 갈매기를 사랑했던 여인, 감자꽃을 사랑했던 여인, 모과를 사랑했던 여인,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인,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여인, 죽음조차 사랑했던 여인, 시월에 아주 가버린 여인, 지금은 토지의 일부가 되어버린 여인, 그 여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모아 이 책을 바칩니다. 어.머.니!
윤향기 선생의 성찰이 담긴 따뜻한 이야기 『아니무스의 오래된 변명』에서 그녀의 지나온 발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두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녀의 풍성한 문장력은 두 어머니를 통해 온 것이 아닐까? 문맥 하나하나 시어같은 수필은 간결하면서도, 은은하고, 서정적이다. 이지엽 경기대학교 교수는 ‘윤향기 시인의 글에는 상큼하면서도 질료고운 색깔과 향기와 소리가 있다. 색깔은 강렬함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의 향기는 은은하다. 세심하게 듣지 않으면 놓쳐버릴 소리의 겹무늬. 이 세 가지의 조화가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 이것이 그녀의 글의 원천이자 생의 에너지다.’라고 평을 하였다.
윤향기 시인의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습니다.’라는 시를 소개한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습니다.
무성한 사랑으로 흔들리며 타오르던
여름이 지나고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제치는
가을이 왔습니다.
그리운 가슴을 그리운 가슴이 물들이는
가을이 왔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계절입니다
쏟아지는 사랑의 소나기에 온 몸을 적시던 여인이 혼신의 사랑이 지나간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두 어머니를 사랑 했던 여인, 드러내지 않는 사랑, 모후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한 글이다.
후배 문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여류 문인, 가슴이 따뜻하고 마음씨 고운. 웃는 모습이 예쁜 윤향기 선생은 현재 중앙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고향의 후배 문인들을 아끼는, 후배 사랑이 큰 선생이다. 열정의 작가, 생동감과 자연 그대로의 오지 여행가. 그녀는 인도 여행을 통한 자연과의 대화, 그 진솔한 이야기를 읽으며 49일간의 인도 여행을 통하여 얻은 것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표현하기에 벅찼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다 얻을 수도 없는, 가질 수도 없는 것을 가진 윤향기 시인은 소유를 통하여 무소유를 찾은 것일까?
책 『인도의 마법에 빠지다』의 본문 중 마지막 장의 일부분을 발췌하였다.
...살아오면서 내가 누린 모든 것에 감사했다. 이처럼 여행은 어디에 두고 오지도 못한 낡은 신발 속에 고인 어둠을, 어둠 속의 적요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적요 발이 연주하던 생의 음악을 펼쳐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때로는 자유로이, 때로는 무의식의 충동으로, 때로는 삶의 고뇌를 어루만지며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다닌 추억으로 집을 짓는다. 그 집에는 매혹, 재담, 신화, 충돌, 달관, 환희의 길이 금빛을 발한다. 때로는 예언자의 목소리로 환하게 말을 하고 때로는 연금술사의 시어로 모든 사물을 불러 주었다. 서슴없이 거침없이 …….중략
6. 시인 최선묘
충북 단양 출생. 동방 승가 대학 졸업
예산 문인 협회 회원. 가야 문인 협회 회원. 충남 문인 협회 회원. 쌍지암(광시면 대리) 주지 스님, 사후 종교 부처로 신도들에게 돌아갈 절을 짓다. 2004년 머리를 깎고 도반의 길로 들어서다. 스님이 된 후, 쌍지암 작은 암자를 짓고,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사비와 지인, 신도들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누각과 웅장한 큰 절을 짓다.
2002년 『문예운동』 신인상을 수상. 2003년 『수필 춘추』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1998년 서울 문예 대전 문인화 입선, 2006년 안견 미술 대전 특별상, 2007년 대한민국 고불 서예 대전 삼체장 특선을 수상하였다. 첫 번째 시집으로 『목어를 찾아서』를 내었고, 두 번째 시집으로 『부처 팔아 고기를 사먹을까』가 있다.
서리꽃
물은 차고
바람 매서운데
산천에
서리꽃 만발하네
부질없는 영욕
꿈꾸지 않으니
맑은 풍경 소리
바람 따라 가고 있네
부처를 팔아먹다
부처를 팔아 쇠머리 싸들고
진주로 병문안 가는 중읻가
소 머릿속에 든 것이
요긴한 약재라 하는데 구할 길 막연하다
부처님이 필요로 한다고 했더니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부처를 팔아 법당을 짓는 중이다
부처를 팔아 옷 한 벌 지어 입고
부처를 팔아 한 끼를 먹는다
도반이 어찌 그리 잘 먹고 잘사느냐 묻는다
내가 가진 것은 부처 뿐
오늘도 부처를 팔아먹는다.
발자국에 묻힌 여자, 최선묘 시인은 이미 세속의 사람이 아닌 듯하다. 수행과 도반을 통하여 모든 생명과 영혼 앞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자신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한다. 외롭고 고단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감싸 안으며, 그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보듬어 희망을 주고 있다. 시인의 순수한 세속인들에 대한 사랑은 바람에 날리는 풀씨 하나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땅에 심어 새싹이 돋으면 물주고 가꾸는 작은 사랑으로부터 시작인 것이다. 작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큰 사랑으로 우리 앞에 서있는 최선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부처 팔아 고기나 사먹을까』의 발문을 써준 박미란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시는 무엇인가? 시는 말씀의 집이다. 그것도 그냥 집이 아니고 사원이다. 절이다. 마음이 짐작할 수 있는 모든 고요와 정숙과 근엄함을 다 모아서 이루어진 집이다. 시인은 그 집을 짓는 데 영혼을 팔아버린 존재들이다. ……. 중략
가끔은 몸도 마음도 아프면서 사는 게 삶이려니 하지만 아픔을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또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시인은 빈 수수깡처럼 마른 몸을 어떻게든 잘 추슬러 훗날 어딘가의 불씨가 되겠단다. 대저 종교란 인간을 어디까지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7.수필가 하금수
충남 예산 광시리 출생.
예산 문인 협회 회원. 충남여성포럼 선임 대표. 사단법인 한국여성농업인 충청남도 회장, 중앙 부회장. 충남 여성 정책 개발원 이사. 충남 행정 서비스 위원회 위원. 충남 농업 경영 지원 센터 이사. 농림부 농업 관측 위원회 위원. 충남 여성 발전 위원회 심의위원. 충남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 운영 위원. 민주 평화 통일 자문 위원. 국가 산업 화훼 부분 대통령 표창. 월간 스토리 문학 수필 부문 ‘뜰 안에서’로 신인상 수상. 예산군 교육청 모자 백일장 산문 부문으로 수상. 한서대학교 문예 창작과 2년 수료. 예산 문학지등 지역 문학지를 통해 활동 중. ‘여성 농업인의 삶과 전통문화’란 책을 발간 시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농업ㆍ농촌의 현실, 농업인의 삶과 애환을 글로써 언론 매체를 통해 알리기에 주력하였다. 한국여성농업인 중앙연합회의 정책브레인으로서 우리나라 여성 농업인 정택의 개선에 크게 기여하여 여성 농어인 육성법 제정을 위해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정책 제안한 2개의 문안이 법으로 제정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충청남도 여성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정책 개발 수립에 필요한 정책 대안 제시 및 자무 등 충남 여성의 지위 향상 및 사회적 역할을 제고를 위해 봉사하는 충남 여성 포럼 선임 대표로 활동 중이다.
하금수 수필가의 수필 중 ‘뜰 안에서’라는 작품이다.
뜰 안에서
뜰 안, 키 작은 앵두나무에 은빛 아침 햇살이 사뿐히 내린다. 해마다 앵두나무에 바삐 날아들던 까치는 어디로 갔나?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안마당, 시멘트 바닥 틈새로 비집고 나온 괭이밥을 뽑고 있노라니 굴뚝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앞에 앉는다. 작년 빈 둥지를 남기고 떠난 제비집에 굴뚝 제비 가족이 이사를 왔다. 물끄러미 굴뚝 제비를 바라보다가 부리를 살짝 건드리자 화들짝 놀란 굴뚝 제비는 키 큰 앵두나무 위로 숨어버린다.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마루와 토방에 똥을 누어 귀찮게 해도 내년에 다시 안 올까봐 그냥, 내버려둔 터였다.
전형적인 한옥에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지을 당시에는 오래된 소나무를 재료로 하여 제법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집은 ㄷ 자 형으로 덧문을 열은 후 장지문을 열어야 방에 들어설 수 있는 사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어지간한 집이면 집의 구조를 바꾸어 사용하는 입식 조건을 못 갖춘 집이다. 그래도 나의 삶 속에 자리를 잡은 이후 정서적으로 따뜻한 마음과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며, 나의 쉼터이다. 오늘같이 햇볕이 잘 들고 산들바람이 부는 날이면 풀을 쑤어 창호지로 문을 바른다. ……. 중략
가마솥에 소여물 끓이면서 아궁이 앞에 앉으면 몹시 추운 겨울날에도 추운 줄도 몰랐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 시간이 지나갈수록 농촌의 농업 소득이 점점 줄어들면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도시로 떠나가 버리고 낡은 빈 둥지 무성한 잡초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은 이웃들이 떠남으로 인해서 예전의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퇴색되어가고, 소멸되어 쓸쓸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하나 둘 씩 홀연히 떠난 빈자리에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생명의 씨앗이 날아들어 흙 속에 파묻히고 돋아난 야생초만이 바람에 나부낀다. 며느리 밑씻개, 닭의 덩굴(닭의장풀) 엉켜있고, 생명력이 강한 가시로 가득한 엉겅퀴를 닮은 여름 야생초, 바가지 똥과 강아지풀이 텅 빈 담자으 그늘에 번식하여 풀과 나무 꽃 등 온갖 식물이 색의 대비를 이루며 어우러지며 자연의 한 페이지를 그려가고 있다.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조금은 불편한 가난한 촌부의 삶이지만 자연 속에 어우러지면서 나누는 대화는 나를 언제나 행복하게 만든다. 코끝으로 스치는 흙냄새가 내 안의 갈증을 삭혀낼 수 있고, 생명력이 있는 초록빛 들풀, 푸른 산, 바람 소리, 도랑물 흘러내리는 소리, 새소리, 풀벌레 노래 소리, 넓은 들녘이 나에게 소박한 꿈과 풍요로움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니 무릉도원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며 매일 행복의 구슬을 꿰고 있다.
첫댓글 에효
부끄러운 제 글을 올리셨네요.
넘 준비 없이 쓴 면지에 올린 글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