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아이들도 설레는 마음인지 금새 일어났다. 5시 조금 못 되어 서울역에 도착해서 새벽추위를 녹이려 햄버거가게에 들어섰는데 KTX를 타려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커피를 들고 나오시는 박종천 박사님을 뵈었는데, 전문가 답게 카메라가 한꾸러미였다. 조억연 박사님에게 전화가 와서 KTX에서 합류했다. 벌써 라면에 소주 몇 잔을 하셨다고 했다. 전날 박현희 회장님이 SMS로 e-티켓을 발급해 주었는데, 중복이 되었는지 조억연 박사님 자리가 사라지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현명하신 박현희 회장님의 판단을 유추하여 사로 마주보는 자리에 모두 앉았고, 광명역에서 이흥재 박사님 가족(사모님과 따님)이 합류하여 총 9명이 되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조억연 박사님은 맥주를 2캔을 더 드셨다. 잠자는 척 듣고 있는데,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셨다. 중국 황산에 다녀오셨는데~ 송성 가무쇼에~ 장개석 별장이 있었던 항조우 서호에 주선(酒仙) 이태백이 달을 건지러 갔다는~ 또한 직접살림을 해보니 아내들의 설거지 위생상태는 기대의 50%이하라는 말씀까지~ 하물며 식당 설거지는 어떻겠느냐~ 직접 아버님 병간호를 해 보니~ 예전 어머니 병간호를 했던 아내의 마음을 이제 알겠더라~ 나이들어 교통비와 용돈벌이가 될지언정 자기만의 일이 있어야 한다~ 등등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
KTX 동대구-부산구간이 새로 생겨서, 신경주역을 지나서 2시간 30분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에서 조성제 박사님과 박현희 박사님 가족(동생분, 조카분)이 합류하여 총 13명이 되었고,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박문서 박사님과 아드님(찬웅)이 합류하여 총 15명이 되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9시 30분에 대마도 이즈하라 항으로 출발하는 SEAFLOWER II 에 모두 탑승하였다.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를 지나면서 부지런히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 겐트리크레인이 보였다. 잠시 컨테이너를 잔뜩 실은 화물선이 입항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련분야인 이유로 박문서 박사님과 나만 관심있게 보는 듯 했다.
아이들 배 멀미 걱정을 하였으나, 정작 내 머리가 멍멍해지는데, TV를 보면서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잘 넘겼다.
대마도는 남북이 80km 정도 되는 제주도의 0.4배 되는 섬인데, 부산에서 직선거리로 49km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배는 대마도 북단을 위로 지나 동쪽해안을 따라 내려갔다. 2시간 50분만에 대마도 동해남단 이즈하라 항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 항구에 도착을 해서 북쪽 히다카쯔항으로 관광하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부산으로 돌아갈 때는 1시간 5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온 조성제 박사님 말에 따르면, 어떤 한국분이 낚시 밥으로 살아있는 무언가(갯지렁이?)를 통에 담아왔는데, 일본 출입국관리인 살아있는 것이냐 라고 묻자 Yes / No 를 분명히 하지 않고, ‘어쩌면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 는 애매한 답변을 했는지 바로 끌려갔다한다. 검역/방역없이는 살아있는 동식물의 국가간 반입은 안된다는 거!! 무역을 전공하는 우리 박사회에선 상식이겠죠~^^*
한눈에 들어오는 대마도의 이즈하라 항의 풍경은 조그만 읍내 어촌마을이었다. 하늘에선 커다란 매가 먹이를 찾으러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바람의 등살에 못이긴 키 작은 활엽수가 보이는 저 산등성이 어던가엔 조억연 박사님이 들려주신 야생고양이 삵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곳! 맑고 깨끗한 곳! 읍내에 난 작은 길처럼, 양쪽 커다란 역사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아야 했던 작은 역사들의 흔적! 그렇지만 큰 역사의 단초이며, 커다란 역사의 실마리인 곳!
왜 탔는지 모를 버스를 약 2분타고 다시 내려서 점심을 먹으러 걸어갔다. 밥과 미소된장국, 튀김, 돈까스, 단무지 2개 맛도 정갈하고 보기도 깔끔했다. 이흥재 박사님 따님(정소) 박문서 박사님 아들(찬웅)은 특히 많이 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젊은 피들!! ^^* 박현희 박사님 조카(윤수)와 우리 아이들(윤영,도영)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영 먹는게 시원치 않았다. 조억연, 박문서, 조성제, 이흥재 박사님은 식사 하시면서, 소맥(참이슬과 맥주)을 만들어 드셨다. 정말 대단하시다 ^^;
줄지어진 아치형 다리 옆으로 버드나무 가지가 겨울머리를 풀고 있는 깨끗한 개울을 따라 밀려오는 바닷물을 타고 작은 홍어 한 마리가 이내 다리 밑으로 사라졌다.
마을은 그 개울을 따라 위 아래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그 옆으로 난 작은 길을 타고 걸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사무라이 저택과 연한 녹색기운이 비치는 겨울담쟁이가 빼곡히 둘러쳐진 돌담을 돌아 이완용 친필 매국비가 있다는 절에 도착했다. 박종천 박사님은 돌담에서 느낌을 받으셨는지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백제 비구니가 지었다는 수선사라는 절에서 최익현선생의 순국비를 알현하고, 박현희 박사님과 조성제 박사님과 함께 대웅전을 들어가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에 삼배를 올렸다.
일본의 절은 개인 소유의 절이라고 했다. 따라서 개인이나 가족의 납골을 모셔주고 받는 관리비가 주요 수익원이라고 했다.
하치만구 신사에서 신사 정문 모양이 까마귀 날개라는 사실을 알았고, 신사를 지키고 있는 좌우 동물이 경주출신의 삽살개 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른쪽 입 벌린 수놈은 탄생 왼쪽 입 다문 암놈은 죽음을 뜻한다고 했다.
북쪽하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신들이 백마를 타고 왔다는 대마도의 탄생설화가 멸망 후 건너온 가야인들이라고 했다. 멸망한 가야왕의 한 왕자와 공주가 대마도에 정착해서 세력을 키워 본토까지 점령하고 초대 천황이 된 사실도 처음 들었다. 그 후에 멸망한 백제계가 가야계와 결혼을 통해 지금의 일본 천황家를 형성했다고 한다. 고대 일본인의 30%는 건너간 가야인과 백제계였고, 뛰어난 문화와 지식으로 일본 사회를 지배를 했다고 한다. 쓸데없거나 의미없는 행동을 일본에서는 ‘백제스럽지 못하다’ 라고 표현 한다고 한다.
고려문과 조선통신사 비석을 돌아보았다. 임진왜란 이후 200년간 12번의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모두 대마도를 거쳐서 대마도주 일행과 함께 본토로 갔다고 하는데 총 8개월의 일정이 소요되며, 1회 방문에 소요된 총비용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이라고 한다.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와 대마도 번주 아들과의 결혼을 기념하는 봉축비를 보면서 비운의 덕혜옹주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판단이 후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성제 박사님과 잠시 이야기했다.
야트막하게 둘러싼 아리아케산(유명산)과 내려보는 하늘이 너무 맑고 고와서 바라보는 마음이 활엽수 잎처럼 넓게 그리고 파란 하늘처럼 푸르게 물드는 것 같았다. 파란 겨울하늘을 보고 지었던 자작시를 적어본다.
나뭇가지 손을 뻗어 파란하늘에 닿을 듯
파란먹물 묻히려 두 팔을 뻗고
솟은 만큼 파란하늘에 대한 동경
고개들어 보는 만큼 물드는 마음
청량한 생명의 바다를 떠가는
따스한 한조각 햇살
풍덩빠져 뒹굴고픈 생명들의 잔치
파란 그리움, 파란 행복
오늘하루를 묵힌
파란 기다림
대아 호텔로 와서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가졌다. 언덕위 호텔뒤로 보이는 절벽밑에 바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탁 트이게 해 주었다. 고깃배 한 두 척이 바다위에 멈춘 듯 그물질을 하고 저무는 석양은 어두운 베일을 바다위에 한 겹 덮어주었다.
잔잔한 바다는 무언가 끊임없이 말을 전해주는 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가 없다. 잔잔히 밀려오는 물결은 그들의 언어가 아닐까 싶었다. 한 무리의 일본학생들이 언덕위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라고 아는 체를 해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You!" 라고 했다. 어색하게 손을 짧게 흔들어 주었는데, 대마도 인들이 관광객을 대하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박종천 박사님은 석양을 배경으로 작품사진에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 후 돌아다보니 조억연 박사님과 조성제 박사님이 일본학생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한명이 외국인이었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아닐까 싶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청량한 그 느낌이 좋아서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저녁은 돌판 위에 해산물을 올려놓고 구워먹는 해산물 바비큐였다. 오징어, 소시지, 단호박, 새우, 소고기, 버섯, 두부 등등을 맛있게 구워먹었다. 잠시 밖에 나가 오리온 별자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고 돌아오니, 박문서 박사님과 이흥재 박사님, 조성제 박사님 그리고 조억연 박사님은 아사히 맥주와 소주를 또 드시면서, 나를 불러서 해병대기강이 나 때부터 헤이해졌다면서 술을 권하셨다. 맥주를 두잔 연거푸 마시고 사실은 ‘해변대’를 나왔다고 외쳤다. 강변대 옆에있는..ㅋ 군대이야기와 천안함 사건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슈퍼에 들러 먹을 것을 좀 샀다. 숙소로 돌아와서 세면을 한 후, 남자들과 박현희 회장님은 모두 다다미방에 모여서 술을 한잔 했다. 슈퍼에서 사온 회와 귤, 오징어포, 땅콩, 물 건너 온 참이슬, 단연 눈에 띄는 건 면세점에서 구입한 발렌타인 리미티드 양주였다. 얼음을 넣어서 한잔씩 돌렸다. 조억연 박사님이 안보여서 어디 가셨나 하고 둘러보니, 벌써 한잔하시고 뒤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한국-이란 전을 보기위해 채널 위성방송 2를 찾는데 도무지 잡히지가 않았다. 박문서 박사님이 리모컨을 만지며 한참을 고치셨지만, 결국, 박문서 박사님방에 있는 TV와 교체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지어졌다. 호주-요르단 전이 끝나고, 30분 동안 다시 고친결과 부산방송이 흐리게 잡혔다. 한국방송까지 접근한 것이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보름달을 망원렌즈 카메라로 잡고 계시던 박종천 박사님의 예전 대학원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었다. 정창근 교수님과 에피소드, 곽노성 교수님과 에피소드, 지금 들으면 다들 재미있지만, 당시엔 얼마나 고충이 컸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문서 박사님이 다음모임엔 재학당시 에피소드를 발표하는 자리를 갖자고 우스게 소리를 하셨다.
박사회 회장단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억연 박사님이 잠에서 깨셨다. 그리고, 또 술 한잔 하자고 하셨다. 조성제 박사님이 조역연 박사님에게 호를 붙여 주었다. “酒仙” 주객에도 등급이 있단다. 酒黨(주당) 위에 있는 최고 등급이 酒仙(주선)이라고 한다. 서호에 달빛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용궁까지 가버린 이태백 이후론 한명도 없었다나~^^ㅋ
일본은 슈퍼에도 신선한 회를 판다. 본토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흥재 박사님과 조억연 박사님이 광어회를 금새 다 드셨다.
드디어 한국-이란 축구가 시작되었고, 모두들 비몽사몽 상태에서 응원을 했다. 전반전 마치고, 후반전 보다가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잤다. 조성제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조억연 박사님이 대마도까지 와서 밤새 한국축구를 응원한 덕분에 연장전반에 극적인 골이 터졌다고 했다. ^^ 酒仙 조억연 박사님이 욕을 한마디 하시자마자 골이 터졌다고 했다.
다음날 너무도 청량한 붉은 일출을 보았다. 모두들 호텔 뒤에 아침언덕에 올라 일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을아침 날씨속에서 박현희 박사님 가족도, 박종천 박사님의 카메라도, 고기잡이 배도, 정철의 관동별곡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남쪽 겨울바다가 주는 조용한 환희를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을 했다. 잠을 자다가 내려서 보고, 또 자다가 내려서 보고를 남자들은 모두 반복했다.
대마도의 폭은 평균 12km인데 아래서 1/3지점인 곳이 리아스식 해안으로 가장 폭이 좁기때문에 운하를 2개 뚫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마도는 엄밀히 말하면 3개의 큰 섬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만관교는 수심이 5m인 두 번째 운하로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것으로 그 위에 세운 다리이다. 전깃줄에 앉은 매 한 마리가 인상적이다.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대마도 내에서 유일하게 360°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140여개 계단이 있는 대마도 1/3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서쪽으로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들 곳곳에 진주양식장이 눈에 띄었다. 날씨 맑은 날은 거제도가 바로 보인다고 했다.
와타즈미 신사는 쓰시마 중앙인 도요타마에 있다. 대마도의 대표적 신사로 바다의신을 모시는 곳 신사의 문이 경주를 향해 서쪽으로 나있으며 바다에 잠겨있다. 신사는 경주 삽살개 동상이 좌우로 지키고 있고, 용궁으로 통하는 문, 스모 씨름장, 제단, 삼나무 숲을 둘러보았다. 몇 백년 묵은 소나무가 참 인상적이었다. 애들이 왼쪽에 입다문 삽살개 동상 콧구멍을 하얀 돌로 막았는데, 잠시 숨쉬기 힘들었을 것 같다. _()()_
박종천 박사님이 예술로 승화시킨 단체사진을 삼각대를 놓고 찍어주셨다. 연세를 감안해서 자동셔터를 15초로 늘려야 할 것 같다. 인물사진은 취급하지 않지만 특별히 돌아가면서 인물사진도 찍어주셨다. 박사님! 꼭 보내주세요~^^ _()()_
점심으로 맛있는 우동을 먹고, 유부초밥 2개, 튀김 2개, 단무지 두 개(원칙같다!) 도 함께! 러일전쟁 기념탑을 보러갔다. 러시아 극동함대가 일본에 무너지고, 영국의 방해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돌아온 흑해함대가 역시 일본에 무너진 장소가 바로 대마도 북단이다. 5천여명의 러시아군과 1백여명의 일본군이 전사한 장소이다. 러일전쟁의 패배로 러시아제국은 몰락했다. 역사의 한 획이 그어진 장소! 만약에 러시아가 이겼다면, 우리는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성제 박사님의 날카로움에 두 번 베었다.
포카리스웨트 광고가 떠오르는 미우다 해수욕장의 비취색 바다는 허리깊이로 80m까지 완만하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그 청량함과 투명한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바라만 봐도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난~” 포카리스웨트 광고음악이 들려오는 곳! 꼭 다시 오고 싶은 장소다. 박종천 박사님과 박문서 교수님을 비롯 모두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새로운 사실은 코끼리밥통을 1980년대에 조성제 박사님이 중학교 때 청소년 대표단에 뽑혀 일본갔다오는 길에 사온 1세대라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뒤지는 것이 딱 하나 냉장고 인데, 냉장고는 작게 만들 수 없어서 그렇다는 조억연 박사님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다시 히타카츠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산항을 20분 앞두고 터진 휴대폰을 통해 들려온 소식은 서울에 대결특보가 내려졌다는 사실! 부산역 아리랑 호텔 골목에서 묵은지 김치지게를 먹고~ KTX를 타고 서울로 왔다. 아이들은 원숭이 떨어뜨리기, 원카드, 엄지올리기 게임으로 즐거웠지만, 나는 눈길걱정에 노심초사했다. 10시 20분에 도착했는데, 눈이 녹아 다행히 40분만에 집에 왔다.
부산항에서 헤어진 박문서 교수님과 아들 찬웅이, 부산역에서 헤어진 이흥재 박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딸 이정소, 서울역에서 헤어진, 조역연, 박종천, 조성제 박사님, 그리고 박현희 박사님과 바쁘신데도 참석해 주신 동생분, 15명을 채우기 위해 좁은문을 선택한 조카 윤수! 모두모두 즐거운 추억을 남긴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

첫댓글 하양구름님 후기 재밌네요ㅎㅎ 가지 않아도 충분시 상상이 돼요 무좀 걸린 족발이 없어서 이번에도 술은 많이 자제하셨나봐요ㅎㅎ
역시~~~
교수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이런걸 다 어덯게 외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