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도심 속 번화가는 물론이고 주택지 인근의 이면도로나 골목길 구석구석까지도 심한 주차난으로 골치를 앓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주차할 자리 선점을 놓고 시시각각 시비가 끊이질 않는 형편이다. 심지어는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현장을 이따금씩 목격하곤 한다. 마치 생사가 걸린 싸움처럼 보이는 거친 판이다. 주차전쟁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전혀 어색치 않은 이유다.
그런 갈등의 중심에는 언제나 라바콘(원뿔형 주차금지 표식)이 꼭 버티고 서있다. 주차가 허용된 공공의 주차장 자리에 불법적인 라바콘을 세워둠으로서 선량한 사람의 주차 권리를 방해하는 뻔돌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네 집 담장 밑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엄연한 도로 위에 불법적인 라바콘을 번듯이 세워두는 뻔순이도 있다. 양쪽 모두 몰상식의 극치이다.
그런 현실에 비하면 내가 사는 동네는 아주 신사적인 형편에 속했던 셈이다.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불법적인 라바콘이 골목길에서 사라졌었다.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절이었다. 그런 밑바탕에는 높은 시민의식과 자치정신을 꼽을 수 있으리라. 이해와 양보, 역지사지의 미덕이 크게 발휘됐음을 긍정하는 일이었다.
주차문제야말로 관할관청의 입장에서도 늘 난제의 숙제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나마 이면도로 한 쪽 방향만이라도 합법적 주차를 허용한 덕분에 다소나마 주차난이 조금은 해소되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또다시 불법적 라바콘이 등장하고 말았다. 마치 자기만의 전용주차장인 것처럼 합법을 위장한 채 그럴듯하게 뻔뻔스럽게 버티고 선 라바콘의 민낯이라니, 이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무소불위다. 뻔뻔함의 극치다. 마치 자기만의 전용주차장인 것처럼 말이다.
자가용 차량만 2천만대 시대라고 한다. 영업용차와 관용차를 제외하고도 2천만대나 되는 차량이 현재 자가용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통계다. 1가구당 평균 1.5대의 자가용을 보유한 셈이니까 평균 2가구당 3대 꼴이다. 참고적으로 앞집은 4가구가 사는데 차량은 모두 4대이고, 뒷집은 2가구에 3대를 보유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동네는 평균에 미달된 자동차 빈촌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여섯 세대의 주차시설은 겨우 2대 뿐인 것을, 아무리 따져 봐도 주차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젯밤엔 골목 어귀에서부터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슬그머니 문밖을 살피자, 역시 주차시비였다. 빈 주차공간을 턱 차지하고 선 라바콘이 또 다시 문제였다. 거나하게 취한 그는 라바콘에게 요목조목 따지고 있었다.
공공의 주차시설이란 어느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거늘, 왜 불법적 라바콘으로 이를 가로막느냐는 얘기였다. 주차장이란 늘 차량이 '들었다 나왔다' 하면서 회전율을 높여야 하거늘, 왜 불법적 라바콘으로 그 기능을 죽이느냐는 얘기였다. 그동안 말없이 참아오던 감정들이 저토로 큰 불만으로 쌓였다는 걸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한 그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라바콘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동네방네가 크게 소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론 후련하기도 하였다. 공공의 도로를 마치 자기네 전용주차장처럼 생각하는 몇몇의 뻔뻔이들에게, 나도 꼭 말해주고 싶었던 내용이다. 그날의 주정뱅이는 공익의 대변자임에 틀림없었다.
사실상 자신의 대문 앞이나, 담장 밑, 또는 어느 주차구역이라고 할지라도, 도로 위에 놓인 라바콘은 거의가 불법물인 셈이다. 라바콘의 용도는 현재 공사 중임을 알리거나, 위험 또한 안전을 위한 표식용으로 쓰여야 하는 도구다. 공공의 도로를 불법 점령한 라바콘에게 주문한다. 이젠 그만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