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성당만큼이나 횡하고 엄숙한 곳이었다. 단상의 커튼은 양 옆으로 당겨져 있었고, 그 곳엔 열 명의 남녀가 섞여 서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나이 또래로 어른이라고 하기엔 좀 어려 보이고, 학생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점잖아 보였다. 강당 안은 어두웠고, 열 명의 남녀를 비추는 조명도 희미했다. 계단에는 네 명의 양복을 입은 남자와, 정장을 한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콩쿠르를 관람하는 심사위원이었다. “이제 나오는 노래를 모두 함께 부르도록 하세요. 가사를 모르는 사람은 주어진 팸플릿에 있으니 보도록 하세요.” 맨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일어나 말했다. 마이크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강당 안에 크게 울렸다. 말이 끝나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즈음에 유행하는 R&B풍의 노래였다. 젊은 층 대부분이 가사를 외우고 있을 정도여서 열명의 남녀 중 단 한명만이 팸플릿을 힐끔힐끔 들여다보며 불렀다.―심사위원이 팸플릿을 보는 걸 허락했지만, 왠지 감점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은 젊은이는 보지 않는 척 하려 노력했지만 실내가 어두워서 잘 되지 않았다.―열명의 목소리는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잘 조화되어서 어느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 여섯 명은 서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그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다시 오른 쪽의 남자가 일어났다.
“이제 호명하는 두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왼쪽에서 세 번째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 분, 그리고 오른 쪽에서 두 번째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분 남아주세요.”
열명의 젊은이들은 심사위원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려가며 자기의 자리를 따져 보았다. 호명-이런 형식도 호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번호표나 이름표가 없었다-되지 않은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건 좀 불공평해요. 열명이 한꺼번에 노래를 불렀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단 말인가요.” 왼쪽의 첫 번째 자리에 서 있던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던 키가 좀 작은 여자가 자신이 떨어졌다는 걸 확인하고서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일곱 명-떨어진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목소리는 너무 저음이에요. 게다가 기교를 부리는데만 열중하더군요.” 한 심사위원이 말했다. 반박하던 여자는 실내가 어두워서-계단 쪽은 조명이 없어서 더 했다-그 목소리가 어떤 심사위원의 목소리인지 잘 판단할 수 없었다.
“이런 거 떨어져도 상관없어. 어쨌든 불공평하니까.” 여자는 화를 내고서는 커다란 걸음으로 커튼 뒤로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일곱 명도 양쪽 커튼 뒤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단상에는 두 명만이 남아있었다. 남자는 키는 작았지만 단단한 몸집에 안경을 썼으며, 여자는 남자보다 크고 깡말랐고, 갸름한 얼굴형에 미인이라고 할만했다.
“자, 이제 아까 불렀던 노래의 음률에 즉흥적으로 가사를 넣어 노래를 부르도록 하세요. 누가 먼저 하겠습니까. 상의를 해도 좋습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안경을 쓴 남자가 왼손을 가볍게 들고 말했다.
“좋습니다. 여자 분도 이의는 없으시겠죠.” 여자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걸 보고서 심사위원은 이어 말했다 “자, 그럼”
전주가 끝나고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네가 알고 있는 게 뭔지 말해봐. 지금은 21세기야.
네게도 꿈이 있었겠지. 좋아하는 걸 터놓고 말해봐.
사랑, 그 따위는 아냐. 컴퓨터, 전자오락 그쯤은 되겠지.
마약은 어때, 담배보다 근사하잖아.
네가 상상하는 게 뭔지 말해봐. 지금은 21세기야.
뭐든 다 이루어지지. 인간의 두뇌는 아직 조금밖에 쓰지 않았다고.
맘껏 유린해봐.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하지만, 편리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모르는 사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되지.
경계해야 해. 사고(思考)와 외계의 발전을, 그 모든 변화상을.
인식해야 해. 사고가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 걸.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잊어버리게 돼.
네가 느끼는 게 뭔지 말해봐. 지금은 21세기야.
가사는 랩에나 어울릴 것이었지만 묘하게 리듬에 들어맞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굵직하고 강약을 잘 조화시켜 뜻을 잘 전달했다. 심사위원들까지도 동요되었다. 남자는 노래를 부름으로써만 느낄 수 있는 유희로, 노래가 끝난 후까지 흥분되어 있었다. 반면 옆에서 듣고 있는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오랫동안 고뇌했다. 심사위원들은 여자가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한참 후에야 여자가 왼쪽 팔을 들었다. 이제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같은 전주가 흘렀다.
사랑이 아픔을 품고 있다면, 날 떠날 건가요.
사슬처럼 엮인 인연을 물처럼 흘려보낼 건가요.
슬픔이 미련스럽게 날 붙잡아도, 미련스럽게 아파해도 괜찮아요.
난 이제 예전만큼 울지 않을 거니까.
그저 가끔 가슴이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를 느낄 뿐이죠.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란 제한된 것이니까.
그대의 따뜻한 손과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을 잊어야 하겠죠.
그대가 있어서 누릴 수 있었던 기쁨도, 지나가버린 시간처럼 묻어야 하겠죠.
그대가 더 이상 내 곁에 없으니 나 이제 강해져야 하겠죠.
쉽게 상처 받지 않도록 강해져야 하겠죠.
그대가 남긴 흔적이 너무 많아서 나 이렇게 또 한번 눈물 흘리지만,
그대가 주고 간 것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대가 내 젊음의 흔적이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내 젊음도 조금씩 잊혀지고 있으니.
그대도 그렇게 잊혀지겠죠.
내 삶 속으로, 내 오랜 사랑.
소린은 실제로 입을 떼어 노래를 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현실에서조차 입을 움직였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꿈은 이미 끝났는데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애조를 띈 노래였다는 느낌이 여운으로 남았다. 소린은 묘한 꿈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유쾌함은 이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할 정도로 희망적이 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천장에는 여러 모양의 조명이 질서 있으면서도 제각기 배열되어 있다. 정방형의 플라스틱 덮개 안에는 여섯 개의 긴 형광등이 나란히 들어서 빛을 밝히고 있고, 군데군데 작은 파스텔 톤의 색 조명이 박혀 있다. 소린의 머리 바로 위에는 옛 마이크 모양으로 생긴 조그마한 조명이 가느다란 선에 매달려 있었다. 우윳빛의 조명이 정장을 입은 소린의 모습을 한층 정중하게 보이도록 했다. 원통형 조명에서 내려 흐르는 불빛은 연한 화장을 한 소린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비추었다. 환풍기마다 달려 있는 가느다란 천은 유연하게 흔들리며 환풍이 제대로 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동그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흐르자, 쇼핑센터 안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소린은 이제 쇼핑센터의 직원이 됐다. 그녀가 구별하던 사람들과 자신이 동류가 된 것이다. 소린은 니스 칠이 된 교탁처럼 생긴 데스크 앞에 서서 제고 현황 표를 보며 주문해야 할 물량을 따져보고 있었다. 검정색 재킷 왼쪽 가슴에는 ‘진소린’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찰이 꼽혀져 있다. 그녀는 이제 숙녀복 코너 하나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인 것이다.
소린은 며칠 전 숙녀복 코너에 자리가 생겼으니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과장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동생은 대학에 합격했고, 자신은 이제 결혼을 생각할 나이였다. 그녀에겐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단지 돈이나 안정 때문은 아니었다. ‘회의’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무엇인지,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회의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어 버린 걸까. 하지만 그녀의 꿈이란 것은 지극히 불투명한 것이었다. 광범위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꿈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지 못한다. ‘멋있고 품위 있는 일을 갖는 다는 것.’ 마치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름꾼 같지 않은가. 그녀는 아직 이십대였지만 자신이 너무 늙어버렸다는 생각도 했다. ‘젊다는 건 분명 좋은 걸 텐데.’ 그녀는 ‘어른’이 된다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어야 옳은 나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구분이 단지 나이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하고, 타인을 원망하기엔 늦어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어른이 돼야 하는 것이다.
제고 현황표가 놓여져 있는 데스크에는 시계와, 생수 통을 개조한 어항이 놓여져 있다. 두 가지 모두 전임자의 것으로 두고 가버린 것이다. 어항은 쇼핑센터 안에 유행처럼 퍼져 있는 것으로 탁자마다 자리하고 있었는데, 1리터들이 생수통의 허리 부분에 구멍을 내서 가로로 놓고, 그 안에 물풀과 물고기를 키우는 형태였다. 풀과 물고기의 공존이라는 지극히 생산적인 구조였다. 물고기는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열대어로 세 마리가 들어 있었다. 공간이 작아서인지 그것들은 잘 움직이지 않아서, 미세하게 불뚝이는 아가미를 끈기 있게 보아야만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물통의 주둥이 부분에 처박혀 있는 물고기-그 물고기는 항상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는 더욱 생존을 확인하기가 힘이 들었다. 소린은 물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볼 때마다 공간이 작아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날마다 종잇장같이 얇은 조각의 물고기 밥을 주며 수다 떠는 걸 좋아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도 물통에 난 구멍으로 물고기 밥을 넣어 주었다. 결국 그 일은 자연스럽게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어항 옆에 놓여있는 시계는 평범한 탁상용 시계였는데 언제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소린은 약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시계는 9시에서 멈춰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초침만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린은 초치만 움직이고 있는 시계가 신기해서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고, 그 일은 즐겁게 느껴졌다. ‘마치 일만하는 개미처럼 움직이는 군. 하지만 넌 언제나 그 자리인거야.’ 소린은 장난스럽게 속으로 말했다. ‘내 젊은 시절도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군. 이제 기운이 좀 나는데.’
“좋은 아침이야, 소린씨.”
“안녕하세요.” 소린은 골프웨어 코너의 두 살 위인 여자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물고기들 밥은 줬어? 요것들 너무 살이 찐 것 같아. 밥을 좀 덜 줘야 할까봐.” 여자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돌았다.
소린은 밝은 표정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판매일은 이미 익숙했다. 익숙함은 편안함과 권태로움을 동반한다. 그녀의 생활은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애타게 기다렸던 일생일대의 변화 같은 그런 것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희망적이 되었다가 금세 가라앉아 버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항시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 대신 여유로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사실은 기쁜 일이라고도, 슬픈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린은 눈 내린 한강을 보면서 고비탄을 떠올렸다. 많지 않은 가로수 들이 모두 가지만 앙상했고,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엉성한 풀 몇 포기처럼 보였다. 굴곡을 그린 도로 위로 움직이고 있는 차들이 소린의 눈에는 잘 인식되지 않았다. 인식되었다면 기계적인 자동 움직임뿐이었다.
소린의 손톱에는 더 이상 씻겨지지 않을 만큼 떼가 끼지 않았다. 예전처럼 싸구려 옷을 잔뜩 쌓아놓고 팔지 않기 때문이다. 소린은 예전의 자신은 소실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의 지성도, 모든 건 소실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한 전율이 느껴졌다. 순간 빈혈을 느낄 때처럼 아찔해져서 눈에 힘을 주어 떴다. 어지럽게 뒤엉킨 야채튀김을 젓가락으로 조그맣게 떼어내면서 소린은 다리 아래로 얼어붙은 한강을 바라보았다. 봄이 오나 했지만 다시 한번 추위가 몰려와 있었다. 아마도 이번 눈은 이 겨울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소린은 환상을 갖게 해 주었던 식당에 앉아 창 밖을 보며 공허를 느꼈다. 지성은 어떻게 지독한 공허를 메우고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소린씨, 야채튀김 좋아하나보네. 내 것도 줄까?” 골프웨어 코너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언니 먹어요.” 소린은 젓가락에서 급히 눈을 떼며 말했다. 그녀는 세 명의 직원과 함께 식당에 온 참이었다. 점심을 함께 먹는 멤버는 고정적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같이 움직였다. 모두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어 이름을 잊어먹거나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보통 연장자들에겐 ‘언니’라는 호칭이면 그만이었다. 가끔 그들은 담당코너의 명칭으로 이름을 대신해 부르기도 했다.
“과장 말이야. 오늘 아침부터 괜히 심술이야. 부부싸움이라도 했나.” 속옷을 담당하고 있는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기분 나쁘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듯 거칠게 말했다.
“왜 또 뭐 걸고 넘어져?” 청바지코너의 여자가 흥미로운 얘기가 나오지나 않는지 기대하고 바로 반응했다. 자신의 얘기에 조금이라도 집중해 주지 않으면 입을 다물어 버려, 속 터지게 만드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는 궁금한 건 참지 못했다.
“아침부터 신발이 너무 높다는 둥, 머리를 좀 단정히 하라는 둥 잔소리잖아. 나이 먹어서 이 짓도 못해 먹겠어.” 속옷 코너의 여자는 식어버린 된장국을 벌컥벌컥 떠먹었다.
“언니는 뭐 하루 이틀이야.” 청바지 코너의 여자는 실망해서 말했다. 내심 과장의 말처럼 속옷 코너 여자의 치장이 맘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 보다 들었어? 잘난척하던 액세서리 코너 있잖아. 걔 남자한테 차였다고 하던데.” 여자는 다시 생기를 띄며 말했다.
“너도 들었구나. 회계산지 뭔지 만난다고 자랑하고 다니더니 잘됐지 뭐야.” 골프웨어 코너 여자도 끼어들었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도대체 어딜까. 자존심이 세서 스스로 그 말을 하고 다닐리는 없었다. 얼굴은 곱상하게 생기고 몸매도 좋은 편이어서, 남자 상사들도 여자에게는 항상 친절했다. 소린도 도도한 채 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저분한 호기심은 여자와 회계사의 후일담을 추궁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데.” 소린은 비밀 얘기를 할 때처럼 자그맣게 물었다.
“그래선 뭐가 그래서야. 헤어졌으니 끝이지. 어제 보니까 완전히 풀이 죽었던데.” 청바지 코너 여자가 밥을 달게 먹으면서 말했다. 이런 유의 얘기는 양념 같아서 식사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소린은 액세서리 코너 여자의 태도가 요즘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아무리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 그 일은 곧 잊어먹어 버렸다. 그들은 식사를 끝낸 후,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했다. 주로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얘기들이었는데, 대화가 중단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린은 티브이 화면에 눈을 두기도 하고 얘기에 끼어들기도 했다. 그러다 때때로 공허를 느꼈다. 소린은 그럴 때면 함께 앉아 있는 직원들의 얼굴을 처음 보는 얼굴인 양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낯설어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녀에겐 아무런 소속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차라리 추방당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
“소린씨, 오늘 바빠?” 골프웨어 코너 여자의 목소리가 기분과는 상관없이 청명하게 들렸다.
“아뇨. 근데 왜요?”
“음, 내가 끝내주게 잘 한다는 스파게티 전문점을 알아 놨거든. 소린씨 스파게티 좋아하잖아. 어때 갈래?”
“좋구나, 아가씨들은 저녁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으니.” 소린이 대답하기도 전에 청바지 코너 여자가 말했다.
“하루 저녁 쯤 괜찮지 않아요. 우리 다 같이 가요.” 소린은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그럴까. 에라, 모르겠다. 같이 가자.” 속옷 코너 여자가 흔쾌히 말했다. 그들은 휴게실을 빠져나와 다시 지하 쇼핑센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헤어졌다.
“어서 오세요.” 소린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손님을 맞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중년부인이었다.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정장 하나만 골라 줄래요.” 소린은 검정색 재킷과 바지를 보여 주었다. 어디서 입어도 튀지 않을 옷이었다.
“이건 어떠세요.” 소린은 그 옷 이외에도 두 가지를 더 보여 주었다.
“검정색이 좋군요. 그걸로 주세요.” 중년부인은 입어 보지도 않고 바로 선택했다. 이렇게 선택을 빨리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럴 수록 바꾸러 온다거나 하는 일도 드물었다.
“88사이즈로 드리면 될까요?”
“맞아요. 그걸로 주세요.”
소린은 옷을 쇼핑백에 담고 계산을 마쳤다.
“이거 한번 읽어 볼래요.” 중년부인은 인사를 하는 소린에게 뭔가를 건네고는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여자가 건네주고 간 종이에는 ‘우울한 사람을 위한 위로’라고 쓰여 있었다. 전도를 목적으로 주는 그런 유였다. 종이는 16절지 정도로 접혀있었는데 그 안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잔뜩 들어 있었다. 소린은 그 종이를 데스크 위에 올려놓고 곧 잊어 버렸다.
3시가 지나면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다 본 매장 안은 가격대가 높아서 통로 쪽보다 손님이 더 없었다. 소린은 옷을 정리하고 장부를 뒤적거리다 데스크 위에 놓아둔 종이를 발견했다. 지성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것을 읽어 주었을 것이다. 내용은 아무래도 좋았다. 소린은 쓸쓸한 기분이 되어 종이를 펴고 읽기 시작했다.
우울한 사람을 위한 위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느니라.]” (로마 8:22) 1900여 년 전에 이 말이 기록될 무렵, 인간은 커다란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울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데살로니가 전 5:14, 「신세」.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염려, 두려움, 슬픔 혹은 그 밖의 유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할 때 종종 우울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 실직 혹은 고질병은 우울증이나 극도의 슬픔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발전할 때,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이며 모든 사람을 실망시켰다는 느낌이 들 때 우울해 집니다. 누구나 압박감을 주는 상황으로 인해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절망감에 빠지고 나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중우울증에 걸리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신을 혹사하고 자신의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자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과를 따르기 때문에 우울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과 더불어, 스트레스는 분명히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뇌의 화학적 불균형의 원인이 되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비교 잠언 14:30.
우울한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
의심의 여지없이,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라’는 성서의 충고는 최상의 충고입니다. 우울증에 시달린 한 여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해합니다. 곧 좋아질 겁니다’라는 말을 듣기 원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종종 감정 이입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가 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솔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인 동시에 참을성이 매우 많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우울한 사람들에게 훈계나 비평조의 말, 이를테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혹은 ‘그건 나쁜 태도지요’ 등의 말을 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우울한 사람의 감정은 나약하며, 그와 같은 비평조의 말은 그 사람을 더욱 실망하게 만들 뿐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요나 4:3)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가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지 않’았지만,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진정한 가치를 변질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53:3)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십시오.―요한 3:16.
사실상, 중우울증에 걸려 자신의 약점과 결점에 압도된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인 요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는 경향이 있는 인간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정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로 그러한 사람들을 위로합니다.―요한3:19,20, 「새번역」.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인자하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와 잘못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보십니다. 그분은 참작할 만한 상황, 우리의 전체 인생행로, 우리의 동기와 의도를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와 질병과 죽음을 유전 받았으며, 따라서 제약이 되는 약점이 많이 있음을 아십니다. 우리가 슬퍼하고 자신에 대해 못마땅하게 느낀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가 죄 짓기를 원치 않으며 죄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성서는 우리가 자신의 뜻과 달리 “허무한데 굴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시며, 우리의 약함을 불쌍히 여겨 참작하십니다.―로마 5:12; 8:20.
우울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그리고 ‘그들의 짐을 그분께 맡겨 버리라’는 그분의 권유를 받아들일 때 옵니다. 그분은 참으로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시 55:22; 이사야 57:15, 「공동번역」)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 염려를 다 주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하면서 기도할 것을 권합니다. (베드로 전 5:7) 그렇습니다.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각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빌립보 4:6,7, 「신세」; 시 16:8,9.
생활 방식을 실용성 있게 조절하는 것 역시 우울한 기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신체 운동, 건전한 음식 섭취,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지나친 TV 시청을 삼가는 것은 모두 중요합니다. 한 여자는 우울한 사람들을 활발하게 걷게 함으로써 도왔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한 부인은 “산책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하지만 산책을 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6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돌아왔을 때, 부인은 피곤해 하였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활기찬 운동이 얼마나 유익한지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포함하여 온갖 방법을 시도한다 해도 우울증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우울증은 여전합니다”라고 한 중년 부인은 말하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재 맹인이나 청각 장애자나 지체 부자유자를 고치는 것이 흔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들이 인간의 모든 병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확실한 희망을 알려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음으로써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로마 12:12; 15:4.
소린은 여전히 신을 믿지 않았다. 천지창조에서부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투성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발전해도 수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소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일 수는 없다. 인간의 믿음은 하나하나 모여 커다란 빛이 되었다. ‘신(神)’이라고 하는 빛을 만들어낸 것이다. 소린도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한 소망은 아주 작은 듯 하면서도 실은 과분한 것이다. 우울증은 모든 사람들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다. 때때로 느껴지는 지독한 공허도 그 중 한 형태이다. 두려움, 나태함, 미움, 증오....... 인간의 속에 자리한 비뚤어진 영혼들.
“소린씨, 쉬러 가자.” 골프웨어 코너 여자가 점점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소린의 사고를 잘라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가요 언니.” 소린은 서랍에서 지갑과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자의 뒤를 따랐다.
“오늘 이상하게 피곤하네. 난 좀 잘 건데 어떻게 할래?” 소린이 온달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자는 의향을 물었다.
“나도 좀 잘래요.”
“별일이네. 그럼 얼른 들어가자.” 여자는 좀 의외라는 듯 얘기하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방안은 어두웠다. 소린이 방안을 들여다 본 건 처음이었다. 앉아서 먹는 식당처럼 신발을 벗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양 편으로 똑같은 검은 베개와 이불로 덮여진 사람들이 어둠 속에 주검처럼 누워 있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빈자리는 별로 없었다. 여자는 주저하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누웠다. 소린도 여자의 뒤를 따라 들어가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내어 누웠다. 생각보다 바닥이 따뜻하거나 하진 않았다. 소린은 온돌방이라는 소리만 듣고 바닥이 뜨거울 거라고 은연중에 단정 짓고 있었던 것이다.
“30분 있다 깨워 줄게.” 여자는 그 한마디를 하고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소린은 여자가 누운 반대편에 누워 있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잠자는 것이 죽음을 연습하는 거라는 말이 그 광경에는 꼭 들어맞았다. 우리는 매일 삶을 연습하고 죽음을 연습하는 걸까. 소린은 더 이상 생각 따위는 하기 싫다는 듯 왼쪽 팔로 눈을 가렸다. 아무리 오래 연습해도 완벽해지지 않는 삶과 죽음, 하지만 소린은 푹신하지 않은 떼가 묻은 베개를 베고 어느 때보다 편안한 잠을 이루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