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요13;34-35
예수님 이 지상사역을 행하실 때에 랍비들의 율법의 전통들은 수천개에 이르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편리하게 조절했다.
그들은 모든 규정과 법규를 비중이 큰 율법과 작은 율법으로 나누었다. 그들은 “비중이 큰 율법은 말한 그대로이며 ,구속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마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예수님은 37-4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대답 하셨다. 결국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사랑의 우월성을 말씀하셨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첫 번째 계명을 지기키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요21;2-7절에서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좋은예 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후 제자들은 어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지도자 였기에 다른 추종자들도 “ 우리는 무엇하지,,” 결국 베드로 따라 어부 생활로 돌아간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에 있는 바다에 있는 모든 물고기 들을 다른길오 보내셔서 물고기가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근처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밤새 수고 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밤새 고기을 못잡고, 새벽녘에 한 낯선사람이 “ 배의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세요,,그래서 그들은 그분의 제안에 초자연적으로 물고기를 낚아서 , 그물을 갑판으로 그물을 끌어오지 못할지경이 되었다.
“요한은 ”주님 이시다“ 말했고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물속으로 헤엄쳐 해변가로 나아갔다.
예수님과 아침식사을 할 때 베드로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 ”냉담하고, 불순종하고, 또 실폐하고, 베드로는 예수을 바라볼 때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찼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 그분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
베드로는 언제가 자신은 다른 제자 들보다 더 신실하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는 분명히 주님을 사랑 하는 마음이 다른 제자들 보다 훨씬 크다고 믿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
물을 실 때...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물으신다. 왜?
예수님이 찾는 베드로의 사랑은 어떤 것 일까?
감정적인 사랑일까?
요21; 18-9절 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치려야 할댓가가 있다는 것 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야,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냐? 그러면 나를 위해 죽으리라
이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면 자발적인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감정과 느낌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은 단순한 느낌과 감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사랑의 특성은 두 번째 순종입니다.
자신의 희생뿐 아니라 자기의 희생적인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요한1서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랑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사랑의 순종입니다.
둘째 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데살전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사랑을 “키워가야” [살전4;9-10]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 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뜨겁게”라는 낱말은“ 뻗다, 베풀다, 펼치다”는 뜻을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널리 타인에게 사랑을 펼쳐야 한다.
피넛츠 카톤에서 루시가 “ 나는 인류을 사랑해 하지만 나는 그을 생각하면 견딜수 없이 싫다. 라고 소리친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한사람이 그분을 너무 괴롭혔다... 그런데 그분이 하루는 목사님 나 밉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나는 감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섬김으로 사랑 합니다....그래서 사람을 행한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개인적인 희생을 통한 사랑으로 그 사람의 필요을 채움으로 사랑을 보여주기 원한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사람의 구원의 길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바로 희생을 통해서 자기사랑을 표현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 자신이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사람을 바르게 사랑할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감정을 바탕 으로 둔 것이다.
성경은 그 사랑이 아니다.
자기 희생적인 섬김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한다.
마치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을 치르는 것 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몸 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희생이다.
최고의 모범은 예수님 일 것이다.
요13;3-5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 몸을 구부리셔서 연약하고 죄짓는 제자들의 발을 씻시셨다. 이것이 사랑이다.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다.
놀라운 자기 비하의 본을 보이신후에 예수님은
“ 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사랑을 좋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희생할 때,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 이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