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로 하천이 북으로 흐르는데, 이는 바로 함안의 남단에 위치한 여항산에서부터 비롯된다.
여항산(艅航山, 770.5)은 함안의 주산이자 진산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서낙동강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 한가운데 있다.
‘여항’이라는 지명은 천지개벽으로 물이 다 잠길 때 여항산 꼭대기에 배 한 척만큼 남았다고 불려진 이름.
곽(갓)데미산, 배넘기산, 필봉 등으로도 불려왔다.
‘곽(갓)데미산’은 정상의 마당바위를 가리키는 ‘곽’이나 ‘갓’에 큰 덩어리를 의미하는 ‘더미(데미)’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
또 ‘갓’을 ‘어미’로, ‘데미’를 ‘산’으로 보아 ‘어미산’ 또는 ‘모산’의 의미를 가진다고도 한다.
한국전쟁 때는 낙동강 방어선사수를 위해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데, 이 때 전쟁에 지친 미군들이 ‘갓뎀(goddamn)산’으로 불렀다.
미산봉(眉山峰)은 미산령(眉山嶺)을 중심으로 양 옆의 두 개의 봉우리를 지칭하고 있다.
지난 오곡재에서 오른 미산봉(약 635m)과 오늘 오르는 미산봉(약 745m)이다.
미산령을 미간(眉間)으로 보았을 때 양 옆으로 두 개의 눈썹이 있을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원점회귀를 이루는 미산마을의 이름도 이 예쁘게 생긴 눈썹에서 비롯된 것.
그래서 오늘 오르는 ‘745m미산봉’을 알기쉽게 ‘여항 미산봉’이라 적어 넣었다.
일부 지도에는 이 봉우리를 ‘여항산’이라 표기하기도 하였다.
여항산은 이리저리 여러번 오르내린 곳.
마땅히 갈곳없는 산나그네는 살레미를 잘라먹듯 여금야금 갉아 먹는다.
이번에는 미산마을을 원점회귀로 상대적 발길뜸한 미답의 산길로 올라 도로를 타고 내려올 계획이다.
이로서 남겨둔 나의 살레미는 모두 바닥이 나고 말았다.
코스: 항산재 주차장-미산마을회관-감밭-미산 0.7km이정표-돋을샘-너덜지재-여항산(U턴)-여항 미산봉-미산령-임도-도로-미산저수지-미산마을.
파란 실선이 오늘의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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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실선이 오늘의 트랙.
도로 포함 10km가 조금 넘는 길을 5시간 30분이 걸렸다.
고도표.
여항산과 미산봉 표지기. 미산봉(745)은 또다른 미산봉(약 635)과 구분하기 위하여 '여항 미산봉'이라 표기하였다.
네비엔 '함안 미산마을회관' 또는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165-2'를 입력하였다.
마을 앞 마을버스가 들어오는 지점 너른 터에 '함안파수곶감' 안내판과...
여항산 등산 안내도가 있다. 안내도의 작은 그림 '둘레길 안내도'는 아래에 있다.
여항산 둘레길 안내도.
동네복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고택 '항산재(航山齋)' 앞에 차를 댔다.
대문의 현판은 추앙문(追仰門).
대문은 잠겨있어 낮은 담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정면 4칸 팔작지붕 한옥 한 채와 그 우측 옆에 비석 한 기가 있다.
현판을 당겨보니 항산재(航山齋). 여항산에서 글귀를 가져왔나보다.
비석은 '贈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 은진임공추모비'다. '항산재'에 대해선 아무런 안내나 자료가 없어 알길이 없다.
차를 반듯하게 주차한 뒤...
동네를 되돌아 나와 '미산마을회관' 앞으로 나왔다.
마을회관 뒤로 내가 타고 갈 능선이 이어지지만 여항산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미산마을회관 앞에서 미산소류지 건너 과수원이 있는 낮은 산자락을 올려다 본다.
과수원 아래에는 농장주의 가옥들이 출입을 막고 있어...
좌로 크게 둘러야만 했다.
아무래도 저 끄트머리로 올라야만 될 것.
더 돌아가려다가 꾀가 났다. 우측 과수원으로 들어가며...
내가 타고 갈 도드라진 능선을 올려다 본다.
임돈가? 과수원인가?
사유진 거 같은데, 주인이 보면 경을 치겠다. 얼른 능선으로 붙어야겠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과수원 농장주들의 집이 보이지만 출입을 할 수는 없었다.
능선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저쪽 끄트머리에서 이어진 능선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일이 열렸을 때는 자유로이 다닐 수 없는 사유지로 보인다.
나아갈 방향의 산세를 더듬어 보다...
과수원을 벗어나며 본격 산길.
유순한 산길은 대체로 사면을 에두르는 형세이다.
잘록한 안부에서...
지난번처럼 상수원보호구역 표식판이 있다.
그러다가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미산방향으로 몇발자국 내려가 보았더니 반듯한 산길이지만 어디에서 올라오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미산 0.7km를 가리키고 있다. 미산은 미산마을을 말하고, 내가 올라온 곳은 중산골 0.9km.
더욱 선명해진 산길에서...
얼마안가 날등을 피해 좌측 사면(편백림)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고도가 평이한 사면길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쳐들어 병풍처럼 펼쳐진 암릉을 올려다 본다.
사면길은 낙엽이 깔린 산짐승들의 길처럼 변하더니...
능선 끝자락 유인성주이씨 비석 앞에서 퍼질고 앉았다.
사면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쯤에서 능선으로 올라 붙어야할 것 같았기 때문.
우선 담금주에다 요깃꺼리를 집어 들어 30여분의 산중 즐거움을 누린 뒤 능선으로 치고 올랐다.
그렇게 능선으로 붙자 산길은 한결 수월해졌지만...
우측 어깨로 날등을 짊어지고 사면을 이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저 바위 위는 556.4m봉인 듯.
묵묘 2기를 지나자...
광산굴인 듯 깊은 구덩이가 보인다. 입구에 '위험'이라는 녹슨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굴은 아래쪽으로 뚫려 있었다.
10여분 진행하니 샘터. 이 가뭄에서도 대롱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돋을샘이다. '함안군 1-가' 안전 안내판과 표지목이 있고...
돋을샘 표식이 누워있다.
사면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몇차례의 너덜을 통과하지만...
미세먼지속에서도 골짜기 아래로 조망을 선물한다. 중산골 중산소류지다.
다시 너덜지대에서 보따리를 푼 뒤 망중한.
각종 소원들이 난무하는 작은 돌탑들이 있다.
날등을 우측 어깨에 짊어지고 사면으로 비스듬히 걷는 산길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미산령 갈림길로 나중에 내가 내려갈 지점이다.
이정표의 미산은 미산마을을 말한다.
무너진 성돌인가,
너덜인가?
다시 만난 이정표는 좌촌마을을 가리킨다.
벤치가 있는 곳엔...
헬기장이 있고 여항산 정상이 지척이다.
좌촌갈림길 2코스.
좌촌마을 봉성저수지와 봉화산에서 내려서는 능선.
온천지가 뿌옇다.
여항산 고스락의 위용.
여항산 정상에 올라서자 누군가의 배낭이 있다.
건너 봉화산. 멀린 무학산.
안내도를 참고.
역시 아래 조망안내도를 참고.
조망안내도.
카메라를 맡겨 기념사진을 얻었다.
산아 산아.
좌촌마을에서 올라온 단체팀.
표지기를 건 뒤...
아까 올라섰던 미산령 갈림길에 닿았다. 우측 미산과 돋을샘에서 올라왔고, 이제는 직진 미산령으로 내려갈 계획.
무슨 군사적 요새가 있었던 듯한 돌무더기.
돌탑들.
뿌연 산하.
날등을 타고 내려서는 길.
지척에 보이는 우측 봉우리가 '여항미산봉'이고, 아래 잘록이가 미산령.
건너에 또다른 미산봉(635)을 지나 높다란 봉우리가 전투산(661.8 상데미산)인 듯.
좌측은 중산소류지이고, 능선 우측엔 봉성저수지. 그리고 좌촌마을과 봉화산자락.
여항 미산봉의 이정표.
'艅航 眉山峰'이라 쓴 표지기를 걸었다.
어떤 지형도에는 이 봉우리를 여항산이라 표기하기도 하였다.
이는 아랫마을(미산)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먼저 눈에 들어차는 봉우리로 여항산을 가리고 있기 때문일 것.
소위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는 이성부 시인의 싯귀처럼 말이다.
실은 다산 정약용이 7살 때 지었다는 한시에 ‘소산폐대산 원근지부동’(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이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운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네"라는 뜻.
정면 중앙 가까이에 보이는 봉우리가 얼마전 내가 답사한 미산봉(635)이고, 그 좌측 능선이 오곡재에서 그날 내가 올라왔던 능선.
우측 두루뭉실한 봉우리가 전투산(661.8 상데미산)이고, 그 우측 능선으로 내려섰다 올라서면 미봉산.
희끄무레한 미세먼지가 시야를 방해하지만 새의 눈으로 고도감을 느끼며 호쾌한 조망을 즐긴다.
미산봉에서 좌로 휘어지는 낙남정맥은 오곡재를 지나 발산재로 뻗어나가고, 가까이엔 미산령을 넘나드는 도로가 보인다.
잘 놓여진 목계단따라 내리막을 내려서면...
미산령.
육군중위가 인솔하는 군인들 7~8명이 미산령에 모여있다.
삽과 장비들로 보아 유해발굴단인 듯하였고, 나중에 도로를 거슬러 올라오는 승합차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지난 '오곡재-미산봉' 산행 때 미산령에 걸어둔 표지기를 확인한 뒤 생태터널을 지나 눈인사를 나누는 군인들 뒤로...
이정표(미산마을 3.5km)를 확인한다.
도로를 따르면 빙 둘러가지만 이정표 뒤로 구불구불 임도가 질러가고 있었다.
잠깐 확인한 뒤 화살표 방향의 임도로 내려서서...
콘크리트 포장을 하였지만 풀숲이 웃자란 임도를 弓弓之之 내려섰더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랐다면 저쪽 산어귀를 돌아 비잉 둘러왔을 것.
차단기가 있는 곳에 여러 채의 빈집이 보인다. 귀농의 꿈을 일구다 무슨 변고가 생겼나보다.
미산저수지를 지나니...
길가엔 벌써 매화가 피었고...
산수유도 그 특유의 노란 꽃물을 내뿜는다.
미산저수지에 선 이정표.
곶감시설들이 있는 골목을 돌아드니...
항산재 앞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한옥 항산재(航山齋)의 귀품.
- - - 상 략 - - -
저 바위봉우리 올라도 그만 안 올라도 그만
가는 데까지 그냥 가다가
아무 데서나 퍼져 앉아 버려도 그만
바위에 드러누워 흰구름 따라 나도 흐르다가
그냥 내려와도 그만
친구여 자네 잘하는 풀피리소리 들려주게
골짜기 벌레들 기어 나와 춤이나 한바탕
이파리들 잠 깨워 눈 비비는 흔들거림
눈을 감고 물소리 피리소리 따라 나도 흐르다가
흐르다가 풀죽어 고개 숙이는 목숨
천천히 편안하게 산에 오른다
여기쯤에서
한번 드넓게 둘러보고 싶다
<이성부의 '서둘지 않게' 중에서...>
첫댓글 좋아요
건강하게 잘 계시죠?
어서빨리 좋은 시절 만나 좋은 사람들끼리 예전처럼 산다니고 싶어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