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연수 기간에 가족과 2박 3일 일정으로 영주를 거쳐 강원도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서울에서 영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타다 하남에서 중부고속도로 갈아타고 경기도 광주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로 그리고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경북 풍기에서 빠져나가 국도로 이십 분 정도 달리면 영주 부석면이 나온다.
부석사 근처에 예약한 펜션을 찾아가 짐을 풀려고 방을 살펴보는데 가족이 머물기엔 좁아 보였다. 우리가 예약을 머뭇거리자 아주머니가 ‘부석사 가는 길에’ 큰 방이 있다며 다른 펜션을 안내해주었다. 아주머니에게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부석사 가는 길에’ 펜션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마침 가족이 머물만한 방이 있어 금낭화 방을 예약하고 차에서 짐을 꺼내와 풀었다.
펜션에서 잠시 쉬다가 차에 가족을 태우고 부석사를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고 일주문에 들어섰다. 부석사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자리 잡고 있다. 부석사 일주문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을 넘어서자 부석사는 한눈에 조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문을 지나 직각으로 꺾어진 굽은 길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니 일주문이 보이고 앞에는 은행나무가 커튼처럼 시야를 가려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천왕문은 은행나무 숲길을 한참 걸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천왕문을 만나려면 속세의 흩어진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오라는 것 같았다.
부석사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부터 산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가 세속의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구간이라면, 천왕문부터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올라가는 구간이다. 그만큼 무량수전을 만나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각오해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천왕문에 올라서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앞을 바라보자 무량수전을 둘러싼 산사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천왕문을 뒤로하고 천천히 올라가자 양쪽에 삼층석탑이 나오고 삼층석탑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자 범종루에 이르렀다. 부석사의 범종은 범종루 옆 범종각에 매달아 놓았다. 범종각에 가서 범종을 구경하고 다시 범종루로 돌아와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부석사 현판과 안양문 현판을 아래위로 같은 건물에 붙여 놓은 안양루가 바라보였다. 안양루는 무량수전을 찾아오는 속세의 대중들을 맞이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안양루에 이르면 그곳을 지나가는 자는 예외 없이 허리를 숙여야만 한다. 허리를 굽히지 않는 자는 누구도 안양루를 지나갈 수가 없다. 안양루는 무량수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속세의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왔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된 사람만 들어가게 하는 일종의 지킴이다. 안양루는 아파트의 필로티처럼 나무로만 골격을 세워 놓고 안양루를 떠받치고 있다. 필로티 공간을 허리와 머리를 숙이고 걸어가면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에 바짝 다가가 고개를 쳐들면 눈앞에 석등이 기다린다. 석등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면 드디어 넓은 마당에 세워진 무량수전이 나온다.
부석사는 일주문부터 무량수전까지 곳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해 두었다. 무량수전은 속세의 마음을 정리하고 추스른 뒤에야 만날 수 있다. 무량수전이 그만큼 만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속세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준비된 자만이 석가를 만나라는 의미다. 보통 절에서 부처님을 모신 곳이 대웅전인데 부석사에는 대웅전 대신 무량수전에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부석사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대개 산사에서 사진을 찍으면 산사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데 이곳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한계점이 존재한다. 마치 건물이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건물이나 혹은 나무에 가려 한 번에 산사를 조망해서 사진을 찍을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다.
무량수전은 사진을 정면이나 옆에서 찍어도 아름답게 나온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라는 책을 읽고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산 아래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보다 산자락에 들어선 산사와 드넓은 산 아래로 펼쳐진 풍광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산사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바라보였다. 여름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부석사를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영주 부석사가 자리한 산과 들녘을 바라보니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과 부석사 경내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부석사 입구에 자리한 ‘부석사 가는 길’에서 하룻밤을 유숙했다. 영주 부석사에서 하루를 유숙하는 것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다. 영주는 사과로 유명한데 명성 그대로 곳곳에 사과밭도 많고 펜션 앞 사과밭에도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홀로 부석사를 찾아갔다. 앞으로 영주에 다시 찾아오는 것도 힘들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무량수전을 보고 싶었다. 어제 보았던 매표소에 들어서자 들어가는 문은 닫혀 있고 다행히 샛길은 막지를 않았다. 어제 갔던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사진도 찍고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올라갔다.
새벽에 비가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부슬비를 맞아가며 부석사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산사에 구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부석사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가는 길,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 가는 길,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까지 가는 길이 어제와 같은 길이지만 고요함이 찾아든 산사에는 스님의 독경 소리만이 들려왔다.
어제 지나간 안양루를 지나 다시 무량수전 앞에 서자 건물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무량수전 앞에 서자 무량수전이 어제보다 더 크게 바라보였다. 무량수전은 앞에서 보든 옆 계단에 올라가 내려다보든 어디서나 아름답게 바라보였다. 부석사는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정감이 더 생기고 고요한 풍경에 젖어 들게 한다. 마치 절이 아닌 가정집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침 새벽에 홀로 부석사의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마치 산책하듯이 마음이 편안했다. 무량수전이 들어선 넓은 마당에 서서 저 멀리 산자락에 펼쳐진 풍광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개를 산허리에 걸치고 산봉우리만 빼꼼히 고개를 내민 자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부석사 경내에서 스님들이 두런거리는 소리를 엿들으며 이리저리 걷다 보니 내려갈 때가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부석사를 찾아왔는데 무량수전과 헤어지려니 아쉽고 섭섭한 마음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무량수전과 먼 훗날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보슬비를 맞아가며 터벅터벅 내려왔다.
첫댓글 보슬비 내리는 새벽에 부석사의 기승전결을 만끽하셨군요.
옛날 부석사에 들렀을 때 맞은편 저 멀리 꿈틀거리는 산맥의 장엄한 모습에 감탄한 적 있는데, 그 모습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부석사가 영주에 있군요.
개인적으로는 돌아다니지 않아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라요.
언젠가 만추에 다녀왔는데.
또 언젠가
새벽 산사의 고요를 느껴보고 싶네요.
같은 곳이라도 느낌이 다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