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 '청춘의 고전' 세 번째 시간,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장난스런 효과음과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강사로 나선 박영미 한양대학교 외래교수가 가져온 영화는 드림웍스의 코믹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였기 때문이다. '청춘의 고전'은 <프레시안>과 KT&G 상상마당,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공동 기획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동서양 고전의 현대적 의미를 파헤쳐보는 철학 강의다.
▲ 영화 <쿵푸팬더> ⓒnaver.com
<쿵푸팬더>는 아버지의 국수가게를 이어야 하는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쿵푸 마스터'라는 꿈에만 매달리던 팬더 '포'가 어둠의 감옥에서 탈출한 악당 '타이렁'을 막기 위해 나선다는 줄거리다. 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마을의 현인 우그웨이 대사부에게 용 문서의 전수자로 전수받고, 용 문서를 노리는 타이렁과 싸워 용의 전사로 거듭난다.
이 영화와 함께 읽을 고전은 바로 <장자>. 박영미 교수는 "<쿵푸팬더>는 어리숙한 포가 쿵푸 영웅이 되어 악당을 물리친다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포의 성장 속에서 장자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지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알지 못한다"
박영미 교수는 먼저 <장자>의 첫 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대붕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물고기 곤(鯤)이 등 너비가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새 붕(鵬)이 된다는 내용으로, "붕새가 두 날개로 수면을 후려치니 물보라가 삼천리를 치솟고" 등의 어마어마한 묘사도 등장한다.
그러나 곤을 지켜보던 매미와 산비둘기는 이렇게 비웃는다. "내가 훌쩍 날아 느릅나무, 박달나무로 솟구쳐 오르되 때로 그에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버리기도 하는데 무엇 때문에 구만리 높이 올라 남쪽으로 가고자 하는가?" 이는 사람들이 뚱뚱한 팬더 포가 용 문서의 전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응과 비슷하다.
박영미 교수는 우리가 이 거대한 스케일을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한된 경험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절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장자는 여러 이야기에 걸쳐 제한된 경험으로 획득한 지식은 매우 편협하거나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했다. 나아가 장자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 역시, 편협한 지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계했다.
▲ 박영미 한양대학교 외래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러한 장자의 철학은 '추수(秋水)' 편에 나오는 북해의 신, 약(若)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황하가 홍수로 불어나 거대해지자 황하의 신 하백(河伯)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해졌고, 마침내 북해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북해는 황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넓은 바다였던 것이다.
뉘우치는 하백 앞에서 약은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한 가지 재주뿐인 사람에게 도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그가 받은 교육에 묶여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장자 철학은 특정한 하나의 사상이나 이념을 따르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으며, 그런 소견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월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하는 인위적인 규제나 관습을 비판했으며, '인의예지' 등 윤리적 덕목을 주장한 유가 사상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박 교수는 "이웃집에 물 한 양동이로는 아무 해결도 할 수 없는 큰 불이 났다고 했을 때, 공자라면 무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물을 뿌렸겠지만 장자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장자가 활동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원전 3~4세기의 혼란의 시대도 장자에겐 그저 "자신만의 옳음과 또 다른 자신만의 옳음 간의 싸움"에 불과했다.
"완전히 옳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전판 허무주의?
실제로 장자는 이런 '사상의 전쟁' 속에서 관직과 재물을 거부하고 조용하게 살다 갔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많다.
<사기>를 보면 대국 초나라의 위왕이 장자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절을 보내 융숭한 폐물을 전하며 관직을 약속하지만, 그는 "수 년 동안 잘 먹이고 수놓은 옷까지 입혔으나, 결국엔 제사상에 올라간 소" 이야기를 하며 거절한다. 박영미 교수는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음으로써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장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나라 위왕 혹은 대개의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융숭한 폐물과 관직은 크나큰 선물이자 현인을 인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장자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나를 모독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게 하는 속박의 제안이었다. 이처럼 입장에 따라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장자 철학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지락(至樂)' 편에서는 바로 이런 테마를 보여주는 바닷새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바닷새 한 마리가 노나라 교외로 날아들자 노나라 임금은 그를 맞아 묘당 위에서 연회를 열어 구소를 연주하고 성찬을 베풀어 환대했다. 그러나 새는 도리어 눈이 어지럽고 마음이 슬퍼, 고기 한 점 먹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임금은 자신의 방법으로 새에게 잘 해 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새에게는 그게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라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인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떤 옳음도 상황을 바꾸면 그를 수 있다는 장자의 철학은 근대 이후 젊은이들을 허무주의로 이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중국의 근대에서 만난 수많은 모순들을 해결하기에 장자의 도(道)는 일종의 '처세술'로까지 여겨질 수 있었던 탓이다. 모순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필연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설정할 수밖에 없는데, 장자는 바로 그것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강의 뒤에도 장자 철학이 사회적 실천이란 면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많이 나왔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청중은 "친구들이 생계에 얽매여 선거 참여도 하지 않는데 나는 하라고 부추기고 있다"며 "내가 하는 가치 판단을 남에게 전할 수 있어야 그래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영미 교수는 "적어도 '옳고 그름'을 따질 때 폭넓은 반성을 하게 만든다"며 "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게 된다면 가장 좋은 장자 철학의 실천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요즘 자신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며, "내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내 경험에서 터득한 논리로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권유하는데, 되돌아보면 거기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학생들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자신에게 이런 고민을 계속하게 하는 장자의 가치는 읽는 사람에 따라 읽는 때에 따라 새로워질 수 있다며, 청중들에게 연구자들의 주석을 뛰어 넘는 자신만의 '고전 읽기'를 부탁했다.
<프레시안>과 상상마당,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함께 하는 '청춘의 고전' 네 번째 강의는 오는 토요일(18일) 6시,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열린다. 이번 강의에서는 헤겔의 <법철학>과 영화 <본 아이덴티티>가 만나며, 이정은 연세대학교 외래교수가 강단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