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동새 울음소리
내 임이 그립사와 울며 사노니
접동새와 나와는 비슷한 신세.
나더러 그르단 말 거짓인 줄을
지새는 달 샛별만은 알 것입니다.
죽은 뒤 넋이라도 함께 갔으면.
임의 뜻 저버린 이 누구였나요?
잘못도 허물도 내겐 없나니
무리들 헐뜯는 말 듣지 마옵소.
슬픈 맘 둘 데 없네 죽고만 싶소.
임께서 저를 벌써 잊었나이까?
아서라 맘 돌리어 사랑하소서.
고려 때 정서라는 사람이 지은 정과정(鄭瓜亭)이라는 노래이다.
어리석은 의종이 뭇 사람들의 참소를 빌미 삼아, 영민한 신하인 정서를 고향인 동래로 귀향을 보내었다. 곧 불러 주마고 한 헛된 약속을 믿고, 정서는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끝내 소명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서는 이를 원망하지 않고 임금을 연모하면서, 그 억울함을 담아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리하여 후대 선비들은, 이 노래를 충신이 임금을 연모하여 지은 노래의 표본이라 하여 회자하였다고 한다.
70년대 중반쯤이라 기억되는데, 1년에 한 번씩 교육청 단위로 수업 공개 행사가 있었는데, 그해에 내가 지명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 국어 교과서에 이 정과정이 실려 있어서, 이를 다루는 수업을 발표하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수업안을 짜고 이에 따른 자료 제작에 들어갔는데, 그 중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접동새에 대해서는, 이 새에 얽힌 고사(故事)와 사진,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주기로 하였다.
고사와 사진은 구하기가 쉬워서 간단히 끝났는데, 접동새 소리를 녹음한 자료는 구하기가 힘들었다. 방송사마다 이에 대한 녹음 자료가 있을까 싶어 연락을 해 봤으나 그런 자료는 없다는 것이었다. 부득이 직접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성능이 좋은 휴대용 녹음기를 구하기 힘든 때라, 커다란 카셋트를 들고 접동새 우는 곳을 수소문하여, 찾아가 녹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헤맨 끝에, 접동새 우는 곳을 겨우 알아냈을 때의 그 기쁨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가 이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찾아낸 그 마을의 앞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오래 된 팽나무 숲에서 접동새는 초저녁부터 울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이 쉽지가 않았다. 녹음기를 들고 어둠 속으로 논둑 길을 돌아, 천신만고 끝에 나무 밑에 이르면, 이 놈의 새가 어떻게 알고 울음을 뚝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실패한 끝에, 작전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일치감치 밝을 때 그 나무 아래 숨어서, 인기척을 죽이고 울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계획은 적중하였다. 그날 밤에 드디어 접동새 소리를 녹음기에 담는데 성공하였다. 성공감에 도취된 채 의기양양하게 숙소로 돌아와 녹음기를 틀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변이랴?
접동새 소리는 와글와글하는 잡소리에 묻혀, 겨우 들릴락말락 가느다랗게 틈틈이 들리는 게 아닌가?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그 소리를 들으니, 그 와글와글 하는 소리는 못자리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접동새가 울 무렵은, 공교롭게도 벼 못자리를 만드는 시기와 일치하게 되어, 밤이면 못자리에 모인 개구리들이 힘차게 합창하는 것이다. 나무 밑에 서서 녹음을 하였으니, 가까이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는 크고,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우는 접동새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수업에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미리 학생들에게 잡음이 들어간 연유를 설명하고, 잡음 사이로 약하게 들리는 접동새 울음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주의 사항도 아울러 강조하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더니,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 때문에 더한층 흥미를 갖게 되고, 또 접동새 소리를 가려내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어, 수업의 효과는 더욱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업이 끝나고 수업 평가회에서도, 참석한 관내의 모든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여태까지 그 새 소리를 들어오긴 했지만, 정작 그것이 접동새 소리인 줄은 이 녹음을 듣고 오늘 처음 알았다고 하면서, 나의 노고를 극구 칭찬하여 주었다.
흠이 담긴 자료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학생들이나 참관자들에게 실감을 안겨 주고, 수업 효율도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겉만 번지르하게 꾸민 것보다는, 속이 알차고 거기에 진실과 정성이 담겨 있다면, 언젠가는 남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접동새 소리를 통하여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