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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7일 금요일 묵상(요 5:19-29)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생명주신 하나님!]
1.본문 말씀(요 5:19-30)
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2.시작 기도
아버지, 사람의 존재됨이 만물 안에 썩어질 것에 있지 않고 만물 위의 썩지 아니할 영생에 있나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사람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비록 사람이 불의하여 하나님을 떠나 죽음 가운데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니 놀랍고도 놀랍습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구원과 새언약을 성취하셨나이다.
이제 누구든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연합될 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영생의 삶이 실재가 되어 새언약 백성으로 살게 하시나이다.
오늘도 아버지의 성실하심과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하루를 맞이하며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가오니 받아 주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말씀과 함께 동행하는 거룩한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본문 주해
예수께서 ‘자비의 집’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고치셨다.
그런데 그 일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그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고 그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갔기 때문이다.
이 일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며 안식일에 병고침은 당연함을 말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려 한다고 예수를 더욱더 죽이고자 하였다.
19-23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답변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은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진리’임을 선포한다.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하시는 ‘진리의 말씀’은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아들과 아버지를 계시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주장하며, 자신의 주장을 지지할 네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 아들은 정확히 아버지처럼 행하고 있다(19절).
둘째,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분의 계획들을 보여주신다(20절).
셋째, 아버지처럼 아들은 생명을 줄 권세를 소유하고 있다(21절).
넷째,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심판할 권세를 부여받았다(22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은 그 말을 듣는 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 함이며(21절), 그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그 아들을 존경하게 하려는 것이다(23절).
이 모든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다(20절,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그 사랑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모든 것을 계시하신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신다’는 확신(21절)은 구약과 랍비 문헌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
그 말은 육체의 부활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활도 의미한다.
24-29절의 말씀은 ‘들음과 믿음’을 연결시키며, 그 본질은 ‘영생’을 얻는 데에 있다.
‘영생’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현재성)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나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24절)
죽은 자들(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지금, 영원한 현재) 영생을 얻어 살아난다(25절).
25절은 ‘영생의 현재성’으로 ‘아들을 믿어 생명을 얻는 삶’이 오늘 현재에서 실현됨을 말한다.
그것은 삼위하나님이 자기부인을 통해 ‘상호내주, 상호침투’함으로써 연합하는 ‘하나 됨’을 누리는 것이다.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오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2-23)
이것을 위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26절).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한 ‘독생자’(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고 심판을 ‘인자’(참사람)로 오신 아들에게 맡기셨다(27절).
심판은 인간에 대해서 진정으로 아는 이, 참사람으로 오신 ‘인자’에 의해서 내려질 것이다.
놀라지 말 것은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28절).
그 ‘때’는 마지막 부활 때를 말한다.
그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주앞에 나올 것이다(29절).
그 심판은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과 전적으로 일치한다(30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선하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죄를 짓고 사망을 삯으로 받는다.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모든 행위는 ‘악한 일’이다.
그러므로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되는 복을 얻은 자는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 안에 있어 선한 일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았다(3:18).
그 심판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오며 심판을 통해 생명을 얻어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된다.
‘진리’는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말하며, 결국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다.
그 크신 사랑은 하나님이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그 생명이 아들 안에 있게 하셨다.
아들은 생명주신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께 온전히 복종함으로 아버지 품속에 거하였다.
아버지는 온전히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여 자기의 본질을 계시하는 ‘영광’을 주셨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아들 안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딛 1:2),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실 것을 정하셨다(벧전 1:20).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셔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아들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이는 아들을 사랑함같이 모든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심으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주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그 크신 사랑을 주시기 위함이다.
첫사람 아담이 비록 불의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죽음에 이르렀어도 그 사랑을 완성하시기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고 열심을 내신다.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그가 오신 목적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어 멸망하지 않게 하려함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악한 일을 행하여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구원이 성취되었다.
이제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영생을 얻어 구원의 실재, 곧 하나님나라를 오늘 현재에서 누리는 영생을 얻는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는 자는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는 영생을 오늘 현재에서 누리며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나아온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하심 같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을 통해 은혜와 진리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4.나의 묵상
나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였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현재로 살아가는 구원에 대하여 무지하였다.
다만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 안에 있으니 안전하다 여겼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영생을 현재로 누리는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야곱의 우물에서 힘을 다하여 밀을 길어 올려 마셔도 갈수록 갈증이 심해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자가 되었다.
생명의 실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었다.
말씀없이, 생명없이 사는 내안에 깊은 목마름이 가득하였다.
세상의 정상을 구하는 자, 만물 안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였다.
마치 애벌레가 남들이 올라가려는 정상을 향해 질주하듯이 나도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인생은 주어지지 않았다.
수고하고 고통하는 만물 안의 삶 속에서 ‘쨍하고 해뜰날’을 고대하였으나 세월이 갈수록 깊은 수렁으로 내려갔다.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수렁에서 신음하고 있는 나를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다.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복음을 계시하셨다.
창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여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여 내가 원하지 않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하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욱 더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였고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이 아니었다.
만물 안에서 썩을 양식이 아닌 만물위의 썩지 아니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시려고 나를 오래참고 기다리셨음을 알게 하셨다.
아들이 오셔서 그것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넓은지를 보게 하셨다.
날마다 아버지의 성실하심으로 말씀 앞에 나오게 하시고 복음을 듣게 하신다.
복음을 듣고 믿어 영생얻는 기쁨으로 하루를 살게 하신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날마다 아들 안에서 나를 부르시고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크신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며 결코 실패하실 수 없는 확고한 사랑이심을 알게 하신다.
그 크신 사랑이 오늘 나를 여기에 존재하게 하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보여주심같이 나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보여주신다.
창세전부터 현존하시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날마다 말씀으로 사는 감사와 감격과 기쁨으로 살게 하시니 그것으로 족하다.
더 원하는 것이 없는 만족함이 나를 배부르게 하며 아버지 품속에서 안식하게 하신다.
2020년을 맞이한 지 벌써 17일째이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임을 절감하며 오늘도 주안에서 말씀으로 서있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세네갈에서 행해지는 복음생명캠프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기를 기도한다.
5.묵상 기도
아버지,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으나 그것은 나의 인생을 얻기 위한 거짓된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인생은 결국 만물 안에서 썩어질 것이기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기까지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때가 되어 나의 힘이 다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믿음을 얻어 생명을 얻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은 창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여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시고 생명을 주신 이종사랑이었습니다.
그 크신 사랑으로 오늘 내가 여기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내가 무엇이기에 그리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로되 오직 영생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인함입니다.
그 사랑이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고,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명령대로 이땅에 오신 아들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나이다.
그 사랑 안에서 내가 온전함을 이루나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사랑 안에서 온전함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아버지, 세네갈 사역 가운데 함께하소서.
영혼을 사랑하여 파송된 선교사님들을 돌아보시고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영생의 삶을 현재에서 살아내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흘러가 그곳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복음전하는 사역자들과 동역자들을 기억하여 주사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힘을 주옵소서.
오늘도 생명 가운데 행하는 한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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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는 나의 인생을 구하던 자입니다.
그 인생은 결국 썩어 없어질 인생이건만,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끊임없이 야곱의 우물을 길어 마신 나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 은혜는 인자와 신실하심임을 믿습니다.
어두운 밤이요 칠흑같은 어두움이지만 그곳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나를 살렸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를 이끄셨습니다.
그렇게 인도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