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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신/앙/강/좌
아미타불의 기원과 사회 • 역사적 배경 4
정희수/ 위스콘신대 불교학 박사과정, 본지편집위원
1. 머릿글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信仰)은 엄한 불교의 우주론(宇宙論)과 민중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불교의 사상체계가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성불사상으로 촛점을 유지하여 왔으나 아미타불 신앙은 사뭇 인간적인 우주론적 상상력을 통하여 구성된 경건과 신앙 전통에 그 중심이 있어 보인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정토신앙을 보기에는 너무 제한 부분이 많다고 보여지는 이유는 미타불의 본질적 위상과 이미지 대한 진술이 그 한계를 충분히 뛰어 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인도의 전통종교, 우파니샤트, 힌두교, 자이냐교 등의 다양한 종교사상과 문현이 전승해 온 세계관의 일부가 정토신앙을 중심으로 제 부파에 크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성실하게 대승 경전 전반을 읽어 가노라면 경전 언어가 운행해 가는 세계관은 다양 다기하며 단순히 인간중심의 우주론이라고만 피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이든다. 시간과 공간, 운동과 입체적 우주의 존재 무한한 인간의 상상력을 통한 세계관의 묘사와 생생한 선인들의 이야기는 그 내용자체가 다이나믹하여 아름답기 그지 없으며 실재적인 구원론(Soteriology)의 차원을 불교경전이 풍부하게 전승하고 있다고 보게 된다. 이는 마치 고대 수학이나 천문학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형성해 온 것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 준다.
경전속에는 대략 세가지 부류의 우주론적 상징체계가 소개된다. 하나는 우주세계를 단일체(Single System) 로 보는 것이며, 두번째는 수 천개의 개체로서 우주를 관지하는 부류이며 , 세번째는 무한대의 수로 우주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것을 들 수있다.
정토신앙은 세번째의 우주관에 속하며 경전마다 무한한 우주적 존재들을 묘사한다.
그러나 문제는 불타의 초기 가르침은 이러한 우주론적 결정론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불타는 근본 가르침 속에서 세계의 기원과 종말, 공간의 본질에 대한 논쟁, 우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혼과 육체적 본질과 관계된 물음을 거론하는 것은 인간 구원에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였기에 앞으로 진술해보고자 하는 아미타불의 실체는 이러한 불타의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 하는 이슈가 대두하는 것이다.
다만 본인의 가설은 아미타불 신앙이 이러한 불타의 가르침과 견줄 수 없는 거리감과 간격을 계승한채 민중의 신심과 경전 전통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이며, 이런 신비적 우주론은 다분히 성불, 또는 깨달음의 전과정을 진술하는 상징체계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기원은 이러한 상징체계를 통한 구원체험의 우주론적 진술과 관련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아미타불의 기원과 그 성립
불타의 세계(Buddhaksera)는 원만하고 완전한 여래의 법이 편만하여 수 많은 중생들이 진리를 자유자재로 전수하는 세계이다. 이를 일반적으로 정(Visuddha), 부정( Avisuddha), 그리고 양자의 혼합 (Misraka)의 영역으로 나눈다. 정토는 이 중에서 가장 청결한 정 (Visuddha)의 세계를 가르치며 이 곳의 주체는 아미타불이 된다. 아미타불은 언어적으로 무한한 생명(Amitayus , 無量壽 )와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빛 (Amitabha,無量光) 이라는 두개의 상징적 형상을 내포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과 빛으로 상징된, 초월적이며 구원의 힘을 지닌 불타의 본질을 묘사하는 언어이다.
소위 대경(大經)으로 불리워지는 무량수경(Langer Sutra)은 무량광 (無量光, Amitabha) 에 강조가 있으되 무량수 (Amitayus)와 분리될 수 없는 실체로 아미타(Amita)를 기술하고 있으며 소경(小經)으로 불리워지는아미타경(阿彌陀經, Smaller sutra)에서는 무량수에 촛점을 두되 무량광 (Amitabha)과 분리가 불가능한 것으로의 아미타를 진술하고 있다는 것은 아미타불의 속성으로서 빛과 생명이 복합된 점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한문경전으로 사용할 때는 실제로 아미타가 중국의 도교적 영향, 다시 말하면 장수하는 생명에 촛점이 주어져서 일반적으로 무한한 생명인 아미타불로 자주 진술되었는데 이것 은 중국적인 배경일 뿐 역시 산스크릿어의 빛과 생명이 함께 전승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아미타는 자주 "축량이 불가능한 (immeasurable)"이라는 의미이기에 그저 "무량(無量)'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후지타 고타즈는 인도와 중앙아시 아에서 사용된 프릿크릿(Prkkrit)의 amrta가 아미타의 본래 어원일 수 있다는 설을 소개하고 있다. 아믈태( amrta)는 불사(不死), 또 영혼불멸( Immortal)을 뜻하는 말로서 불멸의 생명을 뜻한다. 주!)
아미타불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학자들 마다 여러가지 다양한 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학설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보면 인도내의 토속적인 종교들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내적 요인설과 인도 외의 다른 지역에서 파생한 종교적 이념이 이식되는 과 정에서 생성했을 것이라고 보는 학 설로 외적요인설을 들 수 있다.주 2)
외적요인설로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아미타불 (Amitabha)는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의 태양신 숭배사상에서 연류했을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무량한 빛 (無量光) 과 대비를 이룬다고 보는 설명이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즈르반 아카라나 ( Zrvan Akarana)는 그 의미가 무한한 시간 (Unlimited time)으로서 무량한 생명 (無量壽)와 관계된다고 보고 있다.
고대 근동지방과 열대지방에 속하는 기후지대에서는 태양신 숭배사상이 편재했던 것을 종교사적으로 더 듬어 볼때 이 태양신 숭배신앙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빛에 대한 종교적 형상화는 세계의 여러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점이므로 인상적인 현상으로 주목하게 된다.
내적요인설로서 지적되는 것은 베다의 범신론적 사상과 초기 불교의 신화들을 들 수 있다. 신빙성 있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의 토착신앙과 다신적 경건주의가 아미타불 신앙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불타론(Buddhalogy)의 진화과정을 주목해 볼 때 개념의 발전에 의해서 초래된 자연스런 결과이며, 초기의 전생담(前生談)은 충분히 아미타불의 개념적 발전에 영향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보겠다.
초기불교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불타의 생애와 깨달음의 질적인 진술이다.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을 무시간적이며 무공간적인 범주에서 대치하려고 노력한 초기 승가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불교경전마다 불타의 깨달음을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자주 빛의 상징주의적 요소가 불성의 특징으로 진술되고 있는 점이다. 빛의 장엄하고 어둠을 비추고, 모든 생명이 자유자재함을 경험케하는 속성은 불타의 이름으로 대치되었던 점들을 불타의 명호(名號)속에서 엿볼수 있는 것이다.
이 빛의 상징주의는 무량광(Amitabha)과 무량수 (Amitayus)의 개념을 발아시킬수 있는 충분한 토양이 된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불타의 깨달음은 모든 어둠을 샅샅히 밝히는 빛이며, 모든 약한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광명인 것이다. 이 무량한 빛을 불타의 깨달음의 상징으로서 모든 중생을 무지에서 묘각으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며 태양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초기불교의 불타에 대한 진술은 부파불교의 마하상기카학파(mahasarnghika, 대중부) 에 의하여 발전된 불타의 이미지 면에서 볼때 아미타불의 기원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됨직하다.
아미타불의 전생담 속에서 법장 (Dharmakara)의 신화는 불타의 역사적 이미지에서 추려지고, 대변된 전기적인 이야기이다. 이 아미타불의 전생담에서 보여주는 신화적이야기는 초기불교에서 부터 부파불교에 이르기까지의 불타에 대한 이해의 발전을 보여준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아미타불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발전,성숙하였다는 일면을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추론이 사실이라면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의 역사적 생애와 전기에 기초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가능케 한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의 상징적 형상화이며 본질적으로 하나의 불타인 것이다.
무량수는 석가모니불의 무시간적인 생명을 지시하며, 무량광은 석가모니불의 우주적 생명을 빛으로 상징화 한 것이다.
아미타불은 시간적인 차원과 공간적인 차원에서 역사적 불타의 초월적 특성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결론을 갖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성의 특징에 대한 논의와 불타의 삼신(三神) 사상, 즉 법신(法身,Dharmakaya), 보신( Sambhogokaya), 그리고 화신(化身, Nirmanakaya)의 관계속에서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대개 정토교에서는 아미타불은 보신(報神)이며 석가모니불은 화신의 입장으로 본다. 보신은 불타의 공덕에 의한 기쁨의 몸이며 예배의 대상이 되며, 보살로서 성취하는 중생구원의 자비를 대신하는 것이며, 화신은 구체적인 역사의 몸으로 육화(肉化)한 석가모니불을 지칭하는 것이다.
정토신앙은 이런 불타의 뛰어난 성품들을 절대화하고 극화하여 하나의 단일체계로 묶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이며 내용적으로 역사적 불타와의 관계에서 진술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부분의 초기 부파불교의 대중들은 아미타불의 특징과 명호를 이런 역사적 불타의 연장, 또는 통합적인 종교적 승화라는 차원과는 달리 숭엄한 경건신앙으로 아미타신앙을 성숙시켜왔다는 점이다.
약한자들에게 역사적 불타는 오직 한분으로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는 신앙이 있었다면 동시에 서방세계의 아미타불은 지금 여기에 항상 현존 한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뉘앙스에 있어서 불타는 현재의 삶에서 가르침을 강조해 왔다면 아미타불은 다 차원, 특히 다른 종교적 형상화와 맞물려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미타신앙은 무엇보다도 적극적으로 보살(菩薩, Bothisattva)의 이미지와 통합되어서 대승불교의 이타적 전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표방하게 되며 민중화된다는 점이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 존재이다. 그 헌신은 자 신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이웃과 다른 존재들을 향한 열정으로 전환된다. 그것은 지극히 높은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게 되며 항상 자신과 이웃이라는 변경에 처하는 것이다. 보살의 이상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깨달음과 모든 존재들을 위한 깨달음"의 이중적 목표의 성취에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묘사되 는 불타의 한 특성이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 이러한 보살들의 기도와 그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일이 있는 한 이 세계에는 무한히 많은 불타들이 무량의 세계속에 존재하게 되는 결과이다.
이러한 보살의 이미지가 아미타불 신앙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며 개입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때 아미타불은 또한 보살의 이미지를 가장 원초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즉 아미타불은 원형적 보살의 의미인 것이다.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의하면 전생에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 모든 약한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서원하고, 그 모든 약한자들의 구원과 함께 자기의 깨달음을 동시적인 것으로 고백한 법장보살이었다.
무한한 시간을 통과하면, 종교적 수행과 영적인 훈련을 통하여 달마카라(Dharmakara)는 그 원을 성취하여 아미타불이 된것이다. 대승불교의 전통속에서 이 아미타불은 사바세계 (Samsaric World)에서 고통당하는 약한 자들을 위하여 현존하며 동시에 정토(淨土)에 머물면서 법을 설교하고 있는 분으로 고백된다.
아미타불은 이런 신화적 묘사와 함께 수없이 고통당하는 약한자들의 구원자가 된 것이며 그들의 신양의 대상이며 경건의 대상으로 예배되었던 것이다. 이 헤아릴 수 없는 구원 의 힘을 아미타불은 보살의 원형으 로서 역사에 현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주의 구원의 성취과정인 구원론(Sdicriology)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사회 •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빛과 생명의 우주적 언어를 상징체계로 발전시킨 아미타불 신앙은 그 어느 부파나 전통보다도 실제적인 종교체계이다. 이 종교체계의 이념은 역사적인 배경과 지리적인 위상, 그 리고 당시 사회적인 요청과 함께 부응하여 성숙되고 발전되게 마련이다. 그러면 이 정토신앙을 파생시킨 당시의 사회. 역사적 배경은 어떠하였는가?
역사적 증거가 빈약하긴 하지만 대승불교의 사상중에서 정토신앙이 초기적 문헌에 속한다는 문헌 연구의 결과로 대개 1세기말( A.D)로 그 발아의 시기를 추정한다. 학자들마다 대승불교의 태동기에 정토신앙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함께 동의하지만 1 세기 말경의 다른 종교 문헌속에 정토사상의 혼적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기원의 역사적 평가를 두고 계속 구구한 토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자료에서 찾는데 는 용이하지 않으나 대부분의 대승 경전속에는 정토사상이 상당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보게 된다.
반주삼매경,유마경,법화경 그리고 화엄경 등에 다양하게 산재되어있는 정토사상은 대승불교의 주류로 정토 신앙을 파악할 수 있는 전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대승불교 발아기인 1세기 B.C.에서 1세기 AD.를 역사적인 상황으로 보는 것이다. 주3)
179년 처음으로 중국에서 번역된 반주삼매경(pralyupanna samadhi sutra)에 이미 아미타불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인도 북부지역에서의 정토사상은 100년 A.D.에 이미 상존했으리란 것을 넉넉히 입증해준다.
경전의 언어적 배경, 또는 역경가의 배경을 통해서 볼 때 정토신앙은 주로 북부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했으리란 강한 인상을 준다. 승개의 번역본인 무량수경에는 간다리(Gandhari) 로부터 연유된 이름들이 소개된 점을 미루어서 정토사상은 인도의 북서부지역의 배경을 보여주며, 이는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그 신앙체계가 발전된다는 점을 강화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토사상은 인도의 쿠산나 시대에 파생했을 것이며, 경전에는, 쿠산나시대의 부수적인 용어가 많이 적재되어 있다. 이 시대는 밀접한 동서양의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인도와 로마, 헬레니즘 세계의 접촉은 상당히 활발하였고, 서구로부터 금이 넘쳐 흐르도록 유입되었고, 부유한 상인계급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정토경전에 아미타불 신앙을 형상화한 언어는 상당히 이 상인계급의 문화를 반영한다. 정토가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집합으로 묘사되고 온갖 보석과 희귀한 상품들로 진술될 정도로 이들의 사회적인 역할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상인계급의 등극은 고대 영주와 영주, 자본 독점과 그 확장을 경제활동의 요소로 유입해 옴으로서, 근기가 약한 민중의 가난한 생활이 편재하였으며, 상인들의 중심적 활동으로 인한 전통적인 계급사회의 붕괴에 대한 위협 또한 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변동의 요소가 미화된 채 불전에 수록되었지만, 또한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생존과 구원의 문제 역시 경전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의 경전이 대개의 같은 운동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지만 정토경전은 이런 사회 변동을 초월적인 아미타불의 구원원력으로 표상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겠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나 쿠산나 시대의 회합과의 교류라는 외적인 요인은 보다 가속적으로 아미타불 신앙을 초월적 구원과 약한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시혜되는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정토경전은 다른 대승경전과 같이 그 대상을 선남선녀"로 두고 있다.
이 호칭은 모든 선한 사람으로 출가자들과 재가자들을 포괄한 폭이 넓은 대상을 지칭한다. 특별히 이 그룹을 규정하지는 못하나 종종 보살중 (菩薩衆)으로 대상을 칭하는 것을 볼 때 아미타불 신앙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수행자 그룹으로서, 특별히 다른 이들의 구원에 관심을 갖는 보살들의 운동으로서 성숙하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4. 결어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언어가 근본적으로 신학적 구원론의 전개를 불식하는 것처럼 서술된 점을 피할 수 없는데, 이것은 깨달음을 통하여 성취하는 인간해방의 언어가 당시에 쏟아져 온 로마와 희랍계통의 유신론적 언어와의 조우를 통하여 진술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미타불의 보살성(菩薩性)은 사실상 철저하게 탈신학적 작업을 가능케하는 불교고유의 구원사상인 것을 주목한다. 정토신앙의 주체는 아미타불이며 동시에 우리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명제는 아미타불의 보살성으로서 연결지워진다.
아미타불의 속성이 빛과 생명이라고 볼 때 이것은 절대적으로 고정적인 실체가 아니며, 항상 운동과 과정의 산물이며 비실체적인 실체인 것이다. 아미타불은 상징적인 면에서 인간해방의 시혜자이며, 해방자이지만, 빛과 생명의 동적인 운동을 통하여 모든 약한자를 보살로 심기일전 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보살은 근본불교의 무아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한다. 자기가 부정되는 적극적인 겸혀와 비음의 작업에서 다른 이들의 구원을 창안해 나가는 무아(無我)는 바로 정토신앙에서 말하는 구원과 해방인 것이다. "시방세계를 통하여 진심으로 깨달은 이의 위대한 유성"주4)이라고 진술하는 무량수경의 귀절은 전체적인 자아를 우주적인 불로 불살아서 단지 지혜의 목소리만 남는 철저한 자기부정의 덕을 지칭한다고 보겠다. 이 면에서 정토신앙적 해방은 인간의 자기 능력으로서 성취하는 것이 아닌, 자기를 초월한 본원(本願)으로부터 보살의 철저한 무아실천에서 와지는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해방인 것이다.
달마카라가 자기 구원의 고상한 이상을 포기하고 모든 중생의 구원과 자기구원을 동시성으로 여기고 감행한 용기있는 삶이 정토신앙의 신화, 아미타불의 전생담이 된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요청되는 자기부정, 자기포기, 자기무화(自己無化)의 전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주
1) 藤田宏達 原始净土思想 研究 pp. 261-264
2) 상게서 pp. 264-286
3) 상게서 Pp.230-238,474-486
4) 무량수경, 신수대장경, Vol 12 p. 267, a 24
199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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