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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깼다. 새벽 4시. 젠장 오늘도 이 시간이 아침이네. 일하는 시간에 닥칠 피로를 견뎌낼 생각을 하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일어나 책을 읽을까? 이렇게 하염없이 눈을 감고 궁상을 떨까? 그러다 일어났다. 포트로 끓인 물을 홍차 잎을 넣은 머그컵에 따랐다. 홍차를 한모금 마시니 정신이 좀 든다. 영국인이 좋아한다던 홍차. 습관이 안 되어 그러나 난 좀 별로다. 미우나 고우나 커피가 나은 것 같다. 홍차와 영연방제국의 역사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구체적 기억은 없고 감만 좀 있다. 기억의 흐려짐,망각의 프리즘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이면 기억력이 좋았으면 싶다. 아직은 그렇다. 언젠가는 잊는 날이 더 좋다고 할 때가 오겠지.
요새 내가 종사하는 업계는 수면 밑 폭풍이다. 의료민영화니 원격진료니 파업이니 하는 말이 오고가고 있다. 인터넷 투표는 진행형이고 투표율이 50%가 넘니 마니 말이 많다. 정부는 6개월동안 보복부,기재부,미래창조과학부등 실무진이 매주 만나 의료영역 제도개선안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정부는 작년 12월(?) 투자활성화 대책이라고 내 놓았다. 그것이 '원격진료허용과 의료법인의 영리사업활성화 대책'이다. 의협은 원격진료가 대면진료를 중심으로하는 환자의사관계를 왜곡할 수 있다고 반대한다. 원격진료로 인한 의료사고의 책임을 의사가 전적으로 질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원격진료만 하려는 비양심적인 의료인의 행태를 막을 수 없다고도 한다. 의료법인의 영리사업은 결국 의료의 민영화로 나가는 전단계이며 법인에 속한 의료인이 진료에 전념할 수 없게 되고 영리사업 분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협은 13년 12월에 2만의사가 여의도에 모여 '원격진료 반대 의료민영화반대'집회를 했다. 그 자리에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단체 회장이 연대사를 했다. 당시 철도파업과 관련하여 민영화정책이 이슈화되던 시기여서 국민의 반향이 컸고 모처럼 의사들의 주장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후 의협은 전국대표자 대회를 열어 '3월 3일 총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정부와 협상을 하였다. 의협 협상단과 정부는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대화를 하였고 그 결과가 나왔다. 내용의 핵심은 원격진료에 대한 정책은 시범사업을 통해 좀 더 검증해 보기로 하고, 의료법인의 영리사업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자는 것이었다. 또한 의협이 제기하는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논의해 나가자고 하였다. 합의안 내용을 들어다 보면, 사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원격진료는 뒤로 미룬거고, 영리사업은 축소시키긴 했으나 실행될 정책이다. 제도개선은 전례로 봐서 립씽크 혹은 공염불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일개 이익단체가 대등한 위치에서 협의해서 바꾼다? 그게 얼토당토한 일인가? 격이 안 맞다. 어찌됐든 의협집행부는 반발하고 시도의사회장단은 이 협상안에 대한 수용여부만을 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협상안에 대한 투표를 하게 되는데 만약 이것에 반대하게 되면 이 협상안은 거부가 되는 것이 된다. 이는 의협집행부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 되고 전국 의사총파업은 초읽기에 들어가게 된다.
KDI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의료개혁의 과제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 소비자 권한을 증대시켜 공급자 주도의 의료서비스를 소비자 지향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의료서비스 선진화의 당면과제이다." 소비자의 권한을 증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비대칭이 심한 의료영역에서 충분한 의료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의료자원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informed decision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의료기관의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질관리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3차 의료기관으로 몰리는 것은 '의료의 신뢰성'때문이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3차 의료기관이 1,2차 의료기관보다 나을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1,2차 병원에 대한 질관리는 해당 기관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울 병원도 2년전에 내시경파트 질관리를 받았다. 대학병원 교수 두 분이 직접 와서 내시경자료와 기기들을 점검했다. 돈을 주고 받아도 시원찮을 일을 무상으로 직접 와서 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내 입장에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좀 시험보는 느낌이 있어서 꺼림직한 마음이 있었지만 원래 시험의 목적이 틀린 거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이 어디인지 점검한 후 보완하려고 것이 아니겠는가? 일차 의료기관의 실정에 맞지 않는 엄격한 잣대로 심사하는 것이 문제지 원칙적으로는 옳은 지적이라고 본다.
두번째로는 의료서비스의 공급자 부문의 질관리 개선과 성장을 위해 그 발목을 잡는 온갖 규제를 풀어주자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법인이 영리성을 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비영리법인으로 묶여 있는 모순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순이 의료법인의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논리는 미국식 의료 시스템으로 가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나름 공공성의 논리로 정부의 보호하에 있었던 의료영역에 자본 투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민간보험의 적극적 개입- 이 것을 통해 정부의 공적 의료비 지출을 줄여보자 할 것이다-을 통한 의료시스템의 개선,원격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IT기술과 인프라 구축에 자본의 잉여가 숨어 있다. 제어장치 없는 의료기관의 정보공개와 질관리는 의료기관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돈 되는 고가의 진료와 이를 소비하는 고소득 고객을 대상으로 의료인프라가 편중될 것이다. 소위 정부가 이야기 하는 '소비자중심'이라는 것의 실상은 의료자원의 불균등한 분배와 소비자간의 차별을 불러 일을킬 뿐이다.
물론 지금 이야기 하는 의료법인의 영리사업활성화는 의료의 영리법인화정책은 아니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하는 메이저 5대 병원이 있다. 서울아산병원,삼성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전국의 환자를 suctiion하듯이 몰아 가는 이 병원들이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 한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물론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그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저숫가 의료체계에 의한 적자가 핵심적인 이유라 생각한다. 건강보험급여체계를 충실히 따른다면.이들 병원도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저숫가를 해결하기 보다는 다른 쪽 이윤을 확보하도록 해 주는 꼼수를 썼다고 본다. 즉, 대형병원이 외부의 영리자본을 받아들여 영리자법인을 만들어 부대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참여정부도 의료법인의 영리사업을 허가해 준 적이 있다. 식당,주차장,매점,장례식장이 그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업은 의료법인과 별개로 운영되고, 그 규모와 폭도 크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에서 허용하는 영리사업은 '의약품,의료기기,화장품,건강기능식품등의 개발및 판매,의료기관임대,호텔업,목욕장,온천운영'등 다양하다. 이 정책은 의료의 민영화 논란을 떠나 현실적으로 직격탄을 받는 사람들을 발생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업종에 종사하는 중소영세상인들이다. 깡패들 싸움에서 날라온 돌에 지나가는 행인이 머리에 맞는 격이다. 중소영세상인의 몰락과 자본의 의료영역 진출이라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정책은 국민이, 시민이 반대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유럽식 공공의료정책과 미국식 자유시장의료정책의 혼합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성이 있다. 60년대 정부의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는 민간이 떠맡아 왔다. 그러나 독재정부는 이 민간부문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그리하여 87년에 시작된 건강보험체계라는 기본 골격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저숫가/저부담/저보장체계로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사입장에서는 저숫가. 환자입장에서는 저보장이 그렇다. 또한 국민과 국가의 부담이 될 저부담개선은 동의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저부담을 의료영리법인이라는 돌파구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통해 골치아픈 의료영역의 통제를 일부 떠넘기고, 자본의 투자 확대라는 정권의 치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가 싶다. 이러한 것들은 GDP(GNP)수치로 환원될 것이다. 총량으로서 부의 확대가 의료 영역에서의 국민행복지수까지 높일 수 있을까? 정녕 고민해 볼 문제다.
의료 민영화는 '병원의 영리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조치'를 의미한다.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다만 의료산업과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를 이야기 한다. 의료의 질관리와 정보공개,각종 규제를 풀어 의료법인의 경쟁력을 제고시키자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정부가 이야기 하는 이러한 정책이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면 의료 민영화로 가는 길을 열어줄 뿐이다. 지금은 오히려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 현재 민간의료보험에 모여 있는 돈-9조?-을 건강의료보험체계로 다 흡수하면 의료보장을 100%받을 수 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으로 갈까? 불안하기 때문일 거고 민간업자들의 빛나는 영업력이 가세했기 때문일거다. 그렇다면 의료보장을 국가가 100%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어떨까? 대신 민간의료보험에 돈을 내지 말고 세금으로 내 달라고 하면 어떨까? 역으로 이야기 해 보자. 보험료를 한껏-현재처럼 소득대비 누진율로 걷으면 부의 재분배라는 사회민주적 이념에도 부합된다-올리자. 조세저항이 생길 것이라고? 그런데 결국 부자들은 민간보험에 다 그만큼 돈을 내고 있지 않은가? 그 돈을 건강보험에 내고 대신 100% 보장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안 될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기여라고 뿌듯해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시골의사로 사는 내 입장에서는 원격의료나 영리법인 활성화가 되면 재앙이 된다. 의사도 자본에 종속화 될 수 밖에 없고 민간보험이 만약 주도하는 의료시스템이 되면 그들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의 부가적 패턴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주치의와 환자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긴밀한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임신성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일일이 병원에 오라고 하기 어려우니 며칠 혈당을 재서 전화로 연락하고 향후 진료지침을 이야기 해주는 정도다. 원격진료 자체가 메인이 된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처방전 발행 전문 병원이 생길 것이고 좋은게 좋다고 이를 이용하는 환자가 늘어날 수 있다. 사실 일부 환자 분들이 변경 없는 처방전을 떼가기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도 대면진료라는 주된 시스템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나마 그 정도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만약 정부도 원격진료가 그 정도의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굳이 의협이 반대하는 이 정책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 만약 강행한다면 이러한 명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 필요란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생김으로써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다.". 대체 누가 이익을 보자는 것인가? 이 정책을 만들어 낸 고위정부관료가 퇴직 후 IT기술업체 자문으로 가려는 것은 아닌가? 자 보라 한미FTA를 만든 전 김현종(?)통상장관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 보라. 또한 원격진료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몇 조가 든다고 하는데 결국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의사가 환자가 이익을 보겠는가? IT 자본이 이득을 볼 것인가?
파업은 결국 협상의 전제다. 협상은 주고받기다. 완벽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혁명 밖에 없다. 혁명이 안 되면 파멸 뿐이다. 그러나 자고로 보수적인 의사집단이 혁명을 하겠는가? 결국 협상의 장으로 가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얻고 줄 것인가? 싸움을 하기 전 이 부분이 명확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의료의 공공성을 의사가 동의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의사협회는 이익단체이기전에 공공성을 띠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반하는 행위는 파멸 뿐이다. 물론 개인 의사들이야 그럭저럭 매 맞지 않고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국민은 의사들에게 무엇을 허할 것인가? 그것은 공공성 시스템에서 나름 희생되는진료 숫가 부분을 적절하게 보상해 주어야 한다. 이에 따른 의료비 상승에 대해 세 부담을 감수해 줘야 한다. 그 세 부담은 국민으로서 의사들도 감당할 일이다. 내 경험도 그렇지만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시장질서에서 자영업자로서 의료인이 국가의 말을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내 돈으로 내 기술로- 그 기술도 내 돈 내고 10여년 이상을 투자하여 배운 것이다-4대 보험이나 퇴직금을 어느 누구에게 보장받지 않고 만들어 낸 것이 내 병원이다. 그러나 의료가 워낙 공공성이 강한 분야이고 의료인도 정부의 지원과 정책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측면이 있어 공조하는 것이다. 하여 이번 파업의 핵심은 의료민영화 반대와 공공성 확보와 동시에 저숫가 부담의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의 저숫가 해결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폄하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이러한 것이 안되면 의료법인은 결국 영리화로 가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소수의 의료독점자본만이 살아 남고 의사 개인은 종속화,파편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는 정부와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바로 통제다. 관치의료,교과서적 진료를 방해하는 국가의 횡포에 경계를 해야 하지만 불법의료나 관행의료에 대한 의구심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그 의구심에 기반한 정부의 통제는 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댓글 솔직하고 논점이 잘 정리된 글이네요.
내 것 주지 않고 받을려고만 한다면 협상은 성립될 수 가 없지요.
가진 자들에게 그 만큼 부담시키는게 사회정의!
정의를 외면하고 다른 해법을 찾다보니 답을 찾을 수 없는 거 아닐까?
유불리 따지지 않고 다 내놓고 찾아보면 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이런 전제하에 합의가 도출되면 승복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 한다고 생각해요. 원장님의 생각이 받아들여 진다면 좋겠네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