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2장 13-17절 죄인들을 부르러오신 예수님
지난 시간에는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에 대하여 들으셨습니다. 그런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보이셨고 이제는 그 동네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다니셨습니다. 그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곳으로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마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로마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원해 사용하던 히브리식 이름과 로마식으로 이름을 지어준 헬라식 이름, 이렇게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 역시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마태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자기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불렀는데 그 친구들이 대부분 세리들과 죄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흙탕물에서 놀고 있던 사람인데 예수님께서 그 흙탕물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들의 물을 하나님 나라 생명수로 바꾸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차려진 음식들을 잡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 자리에 같이 앉아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꼐 잡수시는 것을 보고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선생님은 어찌하여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먹느냐?” 그것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참으로 놀라운 비유입니다.
건강한 사람만 있는 동네에는 의사가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많이 있는 동네는 의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 보령시도 인구가 10만 명 정도가 되지만 거의 모든 병원들이 대천 시내에 모여들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자들이 대천시내에 많이 있고 모든 교통편이 대천시내를 향하여 집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산병원같이 큰 병원은 약간 인적이 드문 곳에 있지만 거기는 워낙 크고 유명한 병원이기 때문에 대천의 작은 병원에서는 잘 고치지 못하는 병을 가진 환자들로 북적입니다. 이처럼 잘 고치는 의사에게 환자들이 붐비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환자가 많은 곳에 의사들도 많이 모여듭니다.
물론 그들은 환자를 고쳐서 돈을 벌기 위해서 병원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하늘에서 모든 것을 누려보셨고 앞으로도 누릴 것을 아시는 분이 돈에 의해 마음이 움직일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일찍이 예수님이 오신다고 사람들을 미혹했던 다미선교회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놓고는 헌금을 하게 해서 자기들은 선물을 사고 땅을 샀습니다. 자기들은 이 땅에서 남아서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이들은 종교사기꾼들입니다.
진정으로 천국을 본 자는 이 땅의 것들에 대한 소유에 아무 이끌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이끌릴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살 천국에 마음이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천국을 보여주시는 역사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천국을 환상으로 보지 못해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은 천국을 증거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 땅의 썪어질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인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하고 그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죄사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이 땅에 마음이 묶여서 사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정죄를 한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처럼 인자는 의인이 아닌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의인들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많은 죄인들을 환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에 동참해서는 더욱 안됩니다. 죄인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하나님 나라의 참 모습이 드러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 가운데는 국가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연예인들, 착한 사람들이 많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보이고 싶어하시는 죄사함의 영광을 보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회개할 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극악한 죄인들이 몰려드는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가 많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착한 사람과 죄인이 동시에 교회에 들어온다면 누구를 먼저 환영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런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극진히 환영하면서 죄에서 떠나도록 도와주는 일은 교회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이 죄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도 매우 적습니다. 오늘날처럼 서로 우파냐 좌파냐를 따져가면서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을 정죄하는 세상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속한 사람들 뿐 아니라 중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조자 자기들과 생각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은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옳으냐 그르냐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것이 평화의 시대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이제 분란의 시대에 들어서자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정죄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만 의롭고 나를 지지하는 당이 의롭고, 또 내가 지지하는 당이 의롭다고 주장을 합니다.
얼마 전에 한 여자연예인이 꽃다운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예인이 살아있을 때 음주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를 냈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고 벌금을 냈지만 한 번 씌워진 오명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무언가 새롭게 출현하기만 하면 수많은 네티즌들이 벌떼처럼 들어가 갖은 바방과 욕을 글로 남깁니다. 그들은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쓴 글로 인해 심판을 하게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죽었습니다. 죽고나자 이재는 그녀가 교통사고를 낸 후에 피해자들 50여 명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를 했다는 둥, 소속사로부터 계약 위반으로 6억의 돈을 지불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왜 비난 받을 때는 잠잠하다가 죽고 나서야 그런 그 연예인을 대변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지 의아했습니다.
여러분 남들이 비난할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연예인들 뿐 아니라 죄인들의 죄가 드러날 때 그것을 어떻게 받고 계십니까? 또 예수님은 어떻게 받으실 것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그런 죄를 지고 그대로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모두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또다시 그런 죄를 지으면서 살겠습니까? 자기들의 숨겨진 죄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을 체험했는데 어떻게 옛 죄를 저지를 수가 있습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던 것을 잊어버린 채 옛날로 돌이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왕이나 여로보암왕이나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또한 사도 바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 역시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 바울과 주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런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6장 4-8절을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하고 있습니다.
회개케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합당한 채소를 공급하는 밭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참된 유익을 주는 일을 하며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는 복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죄사함을 받고도 옛날로 다시 돌아가 가시와 어겅퀴를 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아픔을 준다면 그는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회개가 안됩니다. 회개를 일으키시는 성령께서 사울왕을 떠나신 것처럼 다시 옛날로 돌아간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총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변화를 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사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삶의 능력이됩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오셨고 마태는 모든 사회적인 지위를 더 버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 속하여 사도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용서받은 자다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채 자신이 의인인줄로 착각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으로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교회의 머리로써 몸인 교회를 통해 죄인들을 만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죄인들을 환영하며, 그들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궁극적인 죄로부터 삶에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잘못한 죄들을 다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천국을 회복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생이 여러분들 모두의 것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남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