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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트 : https://israelmyglory.org/article/the-facts-and-flaws-of-covenant-theology-part-1/
---> The Facts and Flaws of Covenant Theology Part One (언약신학의 사실들과 결함들 제 1편)
출처 사이트 : https://israelmyglory.org/wp-content/uploads/2020/04/Jim_Showers_180X180-150x150.jpg
Jim Showers is the president and CEO of The Friends of Israel Gospel Ministry. (미스터 '짐 샤워스'는
이스라엘 친구들 복음 사역의 회장과 최고 경영자이다.
Covenant Theology is the dominant theological system of most mainline Protestant churches.
It is a system of theology that interprets the Bible’s philosophy of history through
the lens of two or three covenants and is founded on Replacement Theology, which maintains that
God has replaced the Jewish people with the church and that Christians are now God’s chosen people.
As a systematic theology, it attempts to explain God’s purpose for history. Why are things
the way they are today? Why were they different in the past? Why was there a time when there was
no government on Earth? Why was there a time when God gave the Law to a particular group of people?
Why is that system of law not applied throughout the world today?
Systematic theology must make sense of the progress of revelation. Why didn’t God give the Epistles
to Old Testament Israel? Why did He wait to reveal those after the church began?
Theology must provide a unifying principle that connects these historical differences with
the progress of revelation, thus providing answers for the past, present, and future. Most important,
a valid philosophy of history will answer these questions: “Where did we come from? Why are we here?
Where are we going?”
언약신학은 대부분의 주류의 개신교 교회들에 있어 지배적인 신학체계이다. 둘 또는 세 개의 언약들의
시각을 통해 성경의 역사 철학을 이해하는 신학의 체계인 것인데 즉, 하나님께서 유대인 백성을 교회로
대체하시어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득시글 칼빈주의 이단들로서
주로 장로교단이라는 것들을 형성한 그따위 이단들의 대미혹, 잡홀림으로서) 대체신학에 기반을 둔
(이단) 신학체계인 것이다.
조직신학으로서, 그것은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왜 오늘 날 상황이
이 지경인가? 왜 상황이 과거와는 달라졌는가? 왜 지구상에는 정부가 없었던 그런 시기가 있었는가?
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백성의 그룹에게 율법을 주셨던 시기가 있었는가? 왜 율법의 체계는 오늘 날
전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조직신학은 계시의 진행을 이해해야만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서신서들을(미스터 바울, 베드로, 요한
사도 형제들에 의한 서신서들을 포함하여)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시지 않으셨던가? 왜 그 분께서는
교회가 시작된 후에 서신서들을 드러내기를 기다리셨던 것이었을까?
신학은 이러한 역사적 차이점들을 계시의 진행에 연결시키는 통합적(일관된) 원리를 제공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함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해답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역사의
타당한 철학은 이러한 질문들, 즉,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답을 할 것이다.
The Facts (사실들)
Covenant Theology’s basic premise is that, in eternity past, God determined to govern
all of history on the basis of three covenants. (Some combine two of the covenants into one.)
These are the covenants of works, redemption, and grace.
The Covenant of Works. According to Covenant theologians, the covenant of works was established
between the creation and Fall of Man. Covenants are formal, legally binding agreements in
which both parties have obligations.
The covenant of works supposedly was established between the triune God and Adam, in which
Adam is God’s representative head of the human race and acts for all his descendants.
Covenant theologians argue that Adam’s obligation was perfect obedience to God.
God’s obligation was to provide eternal life in exchange for perfect obedience. Adam’s
penalty for failing to keep his part of the covenant was death to both Adam and his descendants.
Where do we find this covenant in the Bible? We don’t. It is not in the Bible. Covenant
theologians infer these covenants based on certain Scriptures, including the threat of
death for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in Genesis 2. There must be a covenant, they say,
because God provided a warning and a penalty. That is the logic they use.1
The Covenant of Redemption. This covenant supposedly was established before creation in
eternity past between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in which the Father made His Son
the Head and Redeemer of the elect. The Son volunteered to take the place of those whom God
gave to Him - the elect here on Earth. The Son’s obligation was to become human under the Law,
live without sin, and willingly take the elect’s punishment on the cross. The Father’s
obligation was to resurrect the Son and give Him numerous seed, all power in heaven and
earth, and great glory.
언약신학의 기본적 전제는,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언약들을(어떤 자들은 두 가지
언약들을 하나로 통힙한다) 바탕으로 하여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기를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행위언약, 구속언약, 은혜언약인 것이다.
행위언약 : 언약신학자들에 따르자면, 행위언약은 창조와 인간의 타락 사이에 세워졌다.
언약들은 쌍방(양 당사자)가 의무를 갖는 공식적이고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계약인 것이다.
행위언약은 아마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세워졌을 것인데 아담은 하나님에게 있어
인류와 그의 모든 후손들의 행위를 대표하는 머리(책임자)인 것이다. 언약 신학자들은 아담의
책임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책임은 완전한 순종의 댓가로
영생을 규정하는 것이었지. 언약에서 그의 책무를 지키는데 실패함으로 인한 아담의 형벌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 둘 다에게 죽음이었다.
우리가 성경 어디에서 이런 언약을 발견하는가? 발견하지 못한다. 그런건 성경에는 없어.
언약 신학자들은 창세기 2장에서 지식의 나무(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을 포함하여
특정한 성경들에 기반하여 이러한 언약을 추론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경고와 징벌을 규정하셨기
때문에 언약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인 것이야.
구속언약 : 이 언약은 아마도 영원 전의 창조 이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예수님) 사이에
세워졌을 것인데 아버지께서는 그 분의 아들을 선택받은 자들의 머리(책임자)이고 구원자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아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즉, 지구 상 이곳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주신 그들을 대신하려고
자원하셨다. 아들의 책임은 율법 아래에서 사람이 되시어 죄 없이 사시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택함받은
자들의 징벌을 받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책임은 아들을 부활시켜 그에게 수많은 씨와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 그리고 크나 큰 영광을 주시는 것이었다.
(영킹 역대하 20:7절 "Art not thou our God, who didst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this land before
thy people Israel, and gavest it to the seed of Abraham thy friend for ever?"
한킹 역대하 20:7절 "이 땅의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몰아내시고 그 땅을 주의 친구
아브라함의 씨에게 영원히 주신 주께서는 우리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즉, "아브라함의 씨"[the seed of Abraham]이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의
혈통적 유대인 백성들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주신 수많은 씨[numerous seed]라는 의미는 바로
칼빈주의 예정론이라는 이단교리에 근거해 영원 전에 선택받기로 예정된 자들로서 그들 칼빈주의
이단 무리들을 주로 형성하고 있는 득시글 장로교단 이단들에게 있어 장로교도 이단들로 대표되는
그 이단들 나름대로의 그리스도인 아니겠는가?)
Again we ask, “Where is this covenant in Scripture?” And again the answer is that it is
not there. It does not exist. Covenant theologians claim it is implied based on God’s
promises and the Son’s willingness to go to the cross.2
The Covenant of Grace. Some Covenant theologians combine the covenants of redemption and grace.
They are uncertain when the covenant of grace was established. Some argue it began with
the promise of redemption in Genesis 3:15 when God told the serpent He would bruise the serpent’s
head and that the serpent would bruise the Man-Child’s heel. Others argue it began with
the covenant God made with Abraham in Genesis 12.
In the covenant of grace, God, the offended, makes a covenant with the elect sinner,
the offender. The elect sinner’s obligation is to accept the promise of salvation willingly,
agree to be a part of God’s people, trust in Christ forever, and commit to a life of
obedience and dedication to God. God’s obligation is to provide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and eternal life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reference to this covenant in the Bible. Covenant theologians argue that it is
implied in the “I will be Your God” passages throughout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se three covenants constitute what is known as Covenant Theology. They define history’s
ultimate purpose as glorifying God through the redemption of elect man. The shortcoming of
this philosophy is that it presents a human-centered view of history: The glory of God is
summed up only through the redemption of man. The covenant of grace becomes the unifying
principle for history, in which history is understood in terms of God’s redemption of man.
If you want to understand what happened in the past, you turn to the covenant of grace.
If you want to understand what is happening now or in the future, look at the covenants of
grace and redemption.3
우리가 다시 한 번 묻고자 하는데, "이런 언약이 성경 어디에 있냐고?" 그리고 다시 한 번의
대답은 그건 성경에는 없다라는 것이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언약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십자가로 가고자 하는 아들의 자원함에 근거하여 그런 언약이 암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은혜언약 : 어떤 언약 신학자들은 구속언약과 은혜언약을 통합한다. 그들은 은혜언약이 언제
세워졌는가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언약학자라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분이 뱀의 머리를 부수고
그 뱀은 그 남자 아이(예수님)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고 말씀하신 창세기 3:15절에서 구속의
약속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언약학자라는 자들은 하나님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언약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은혜의 언약에 있어, 피해를 입은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죄인들로서 범죄자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선택받은 죄인들의 책임은 기꺼이 구원의 약속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데 동의하여
영원히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순종과 헌신의 삶을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책임은 믿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성경에 이러한 언약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언약 신학자들은 신구약 성경들을 통털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에 은혜언약이 암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세 가지 언약들이 언약신학으로서 알려진 것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선택받은 사람들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철학의 결점은 그것이
역사에 있어 인간 중심의 견해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단지 인간의 구속을 통해
요약되어지는 것이다. 은혜의 언약이 역사의 통합원칙이 된 것인데 즉, 역사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는 그런 면으로 이해되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무엇이 발생되었는가를 이해하고자 원한다면, 당신은 은혜의 언약으로 돌아가라.
만약 당신이 지금 또는 미래에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자 원한다면 은혜와 구속의 언약들을
살펴 보시라.
The Flaws
There are a number of problems with Covenant Theology. First, its ultimate goal for history is
flawed because it only explains God’s purpose for elect man. It does not begin to touch on
all the other programs God is carrying out in history.
For example, if God is the one true and sovereign God of this universe, He will restore
the universe to its pre-fall condition (Mt. 19:28; Acts 3:18 - 21). Covenant theology
provides no explanation for this aspect of history. Nor does it provide reasons for God’s
dethroning of Satan as ruler of the earth (Rom. 16:20) or for reestablishing God’s
theocratic Kingdom on Earth (Rev. 19 - 20).
Second, it is a human-centered theological system with an inherent weakness for humanism.
Who is the god of humanism? It is man and the belief that, ultimately, all answers lie in man.
A theological system that believes the glory of God is centered in what God is doing with
man ultimately focuses on man. Add to that fact a hermeneutic that spiritualizes the words of
Scripture, reinterpreting the literal into something figurative, and you have created a platform
for humanism. History bears out that liberal, modernist movements have flourished in mainline
Protestant, Covenant churches.
A further problem is that the unifying principle of Covenant Theology is too narrow. It deals
solely with man’s redemption; it does not include God’s plan for the redemption of all
creation. Nor does it provide enough answers for what God is doing here on Earth. Furthermore,
it diminishes the true covenants recorded in Scripture: the Abrahamic, Mosaic, and
New Covenants - to mention three.
결점들 :
언약 신학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는데 역사에 있어 언약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그것이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으로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에 있어 하나님께서 수행하고 계시는 모든 다른 프로그램들을(즉, 인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목록들, 순서, 차례들로서...) 언급하기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유일하시고 참되신 주권자 하나님이시라면, 그 분께서는
우주를 타락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시킬 것이 아니겠냐고?
(한킹 마태복음 19:28절『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사도행전 3:18-21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하리라고 미리 선포하신 것들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주의 임재하심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때가 올 때 너희 죄들이 지워지리라. 또 하나님께서 전에
너희에게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라. 하늘은 실로 만물이 회복될 때까지 그 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니,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일에 관하여 그의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니라.")
언약신학은 이러한 역사의 측면을 설명하지 않는다. 언약신학은 또한 지상의 통치자로서( 로마서
16: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 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사탄의 권좌를 하나님께서 몰아내시는 이유들 또는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하나님의 신정왕국을 다시 세우시는(계시록 19-20장, 즉,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을 준엄하시게 수행하시면서 7년 대환란의 막바지인 후 3년 반의 그 전쟁을 통하여 적그리스도 짐승
세력들을 진멸하시는 가운데 지상재림하신 후에 지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 둥굴이 지구상에 주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통치하시는 1000년 기간의 지상 천년왕국의 그러한 앞으로 반드시 성취되고야말 주님의
신정왕국으로서...) 이유들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언약신학은 인본주의를 위하여 타고난 약점을 가진 인간 중심의 신학체계인 것이다.
인본주의의 신은 누굴까? 그건 인간이고 궁극적으로 모든 대답들이 인간에게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시고 계시는 것에 중심이 된다고 믿는 신학체계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에 첨가하여, 성경 말씀들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해석학으로서 문자 그대로를 무언가 비유적으로 재해석하여 인본주의를 위한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역사는 자유주의적이고 모더니스트인 운동들이 주류 프로테스탄트(개신교계)로서
언약 교회들에서 번창했음을 지지한다.
(기독교계에 침투한 언약신학으로만 주동적으로 날뛰는 이단들은 그야말로 그런 이단들의 정신머리
상태가 자유주의 날라리 성향의 모더니스트들로서 현대주의 날라리들로 주로 형성이 된 것들인데
그렇기에 성경 신구약 말씀들을 문자적으로 기록된 말씀 그대로 일단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교리적, 역사적, 영적인 그러한 세 부분의 측면으로 각각 해당되는 말씀을 잘 분별하면서 적용할 경우,
언약신학 이단들처럼 제멋대로 무천년주의 이단들과 대체신학 이단들로 전락해 그저 영적 해석 적용을
처대며 날뛰다가 그 지경으로 전락된 사실상 영적 까막눈에다 영적 청맹과니 머절들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들의 이성과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가운데 결국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개인주의 날라리들 이단들이
되어 그 결과 그것들 가운데 대부분이 무천년주의 이단들과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와 혈통적 유대인
백성들에 대한 조금도 거짓없으신 삼위가 일체되시고 일체로서 삼위의 '한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하심의
약속에 따른 마지막 때에 그들의 최종적인 회복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전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인 것처럼 그런 득시글 언약신학 이단들로서 주로 칼빈주의 이단들로 형성이 된 각종 잡다한
장로교단들이라는 이단집단에 속한 이단들이 감히 말이야...!
그런 언약신학 칼빈주의 이단들로서 장로교 집단 소속 이단들이 혈통적 이스라엘 나라와 혈통적 유대인
백성을 대체한 그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존재들인 것처럼 그런 가소롭고도 가공,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대체신학 마귀교리로까지 치달려가 자고나면 그런 섬뜩하기 그지없는 마귀교리들을 온, 오프라인에서
그저 주절거리며 궁극적으로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나불날름대면서 제 세상들 만난 것들처럼
점점 더 미쳐 날뛰고들 자빠졌다는 사실 앞에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면 당장에 그런 칼빈주의
이단들로서 언약신학에 침잠되어 허우적거리는 이단들과 성경적 분리를 단행해야만 한다 이겁니다!)
더욱 더 큰 문제점은 언약신학의 통합원칙이 너무 편협하다는 것이다. 그건 단지 인간의 구속만을
다루는 것이다 ; 언약신학은 만물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포함하지 않는다. 언약신학은
하나님께서 이곳 지상에서 하시고 계신 것에 대한 충분한 답변을 제공하지 않는다. 더욱 더, 그건
성경에 기록되어진 진정한 언약들을 폄하한다 : 세 가지를 언급하자면, 아브라함과의 언약, 모세와의
언약 그리고 새 언약 말이지.
Another of Covenant Theology’s serious flaws is that it denies the distinction between
Israel and the church. It redefines the church as all covenant people throughout history.
Therefore, the church begins with Abraham (Gen. 12), rather than in Acts 2; and Old Testament
Israel no longer refers to the physical descendants of Abraham, Isaac, and Jacob. Old Testament
Israel is redefined as the covenant people, the people of faith in the Old Testament.
No longer is it physical descent that makes one an Israelite; it is faith in God.
To accomplish its goals, Covenant Theology uses two methods, rather than one, to interpret
Scripture-another serious flaw. Bible-believing Covenant theologians use the historical-grammatical
-literal method of interpretation for most of Scripture, including all prophecy that has already
been fulfilled. However, when it comes to unfulfilled prophecy, they turn to a different method:
an allegorical-spiritual one that enables them to redefine Israel and make it the church,
rather than the Jewish people. They also change the Millennial Kingdom from a literal, future
1,000-year period into the current Church Age. This belief is referred to as Amillennialism or
Postmillennialism.4
Because it is built on Replacement Theology, to remove Replacement Theology from Covenant Theology
would collapse the entire system. It would force Covenant theologians to accept that God has
two distinct programs, one for Israel and one for the church. Covenant theologians would have to
define the church as beginning in Acts 2, with Israel being a separate entity. Further,
they would have to accept a literal, future Tribulation and the Millennium. To accept
this would turn them into dispensationalists.
또 다른 언약신학의 심각한 결점은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분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언약신학은
역사를 통털어 교회를 모든 언약 백성으로서 재정립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도행전 2장에서 보다
오히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하고 구약의 이스라엘을 더 이상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육신적 혈통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으로, 구약에서 믿음의 백성으로
재정립 되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은 육신적 혈통이 아니다 ;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이다(바로, 언약신학 이단들이 집요하게 주절 속살나불날름거리며 대미혹,
잡홀림을 처대며 날뛰는 대체신학 마귀교리인 것이다!).
그것의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 언약신학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또 다른 중대한 결함으로서
하나 보다는 오히려 두 가지 방법들을 사용한다. 성경을 믿는 언약 신학자들은 이미 성취되어진
모든 예언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성경에 있어 역사적 - 문법적 -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취되지 않은 예언에 이를 경우,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돌아간다 : 즉, 이스라엘로 재정의
하여 유대인 백성 보다는 오히려 그걸 교회로 만들 수 있는 비유적이고 영적인 해석 방법으로 말이다.
그들은 또한 문자적인 미래의 1000년 기간으로서 지상 천년왕국을 오늘 날의 교회시대라고 (사기치며)
뱌꾸어버린다. 이러한 믿음이 무천년주의 또는 후천년주의로서 언급되어지는 것이다.
언약신학이 대체신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언약신학으로부터 대체신학을 제거하면 모든 체계가
붕괴가 될 것이다. 그것은 언약 신학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두 개의 구분된 프로그램들로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 그리고 교회를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계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이다. 언약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별개의 독립체로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하였음을
정의내려야만 할 것이다. 더 더욱 그들은 문자적이고 미래적인 대환란과 지상 천년왕국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그들 언약 신학자들은(이런 이단들에게 완전 홀림당해 덩달아 날뛰는
언약신악 이단들로서 해당되는 칼빈주의 이단들이며 장로교도 이단들 출신의 목사, 장로, 선교사,
강도사, 전도사, 집사, 신학생, 신학교수 등등 관련 단체, 조직 이단들인 그런 무천년주의 이단들,
대체신학 이단들로서 아무튼 언약신학이라는 대미혹, 잡홀림의 거짓 신학에 완전 세뇌, 장악된
이단들도 당연히 포함하여...!) 이런 것들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대결론 : 아무튼 언약신학 이단들로서 대미혹, 잡홀림의 인간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세상 철학에
불과한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서 '튜율립' 이단교리들에 완전 세뇌, 장악된 주로 득시글 장로교단들
이라는 것들을 형성한 채, 거대한 기득권을 구축하여 한국교계로 침투한 후 또아리 틀고 앉아
무천년주의라는 마귀교리와 대체신학이라는 마귀교리로 주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강하게 홀려대며 날뛰는 그런 이단들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뭐시라고?
그나마 성경적인 해석, 적용, 증거 신학으로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국내외 교회들과 소속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 기타 해당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단들이라며 그 더럽고 역겨운 세치
이바구 주댕이들은 물론 꼼지락 대미혹, 잡홀림의 열 손가락들로 온, 오프라인에서 거품을 물고,
끄적거리면서 증오심에 증오심을 거듭하여 드러내면서 미쳐 날뛴 채 달려들고 자빠졌다는 사실 앞에서
그런 언약신학 대미혹, 잡홀림 체계에 완전 물들어 날뛰는 것들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그 거룩하신 주님의 피로서 "하나님의 피"를 흘려주시면서 세워주신 그야말로 신실한 신약
지역교회들과 그러하니 신실한 청지기들이며 그리스도인들, 단체, 조직들이겠냐 이거야...!
그렇기는커녕 단지 거대한 기득권을 형성해 감히 정통이고 장자교단들이고 어쩌구 그저 제멋대로
나불날름거리면서 그따위로 자처하며 준동하는 한국 교계로 진작에 침투한 이단들인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여러분들의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