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8일 걸린 행정망 먹통 원인 발표…관리 대수술 시급
중앙일보
입력 2023.11.27 00:32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가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정부 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와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열려 관람객들이 설명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바일 운전면허증 발급 부스 등을 살펴보고 있다. 2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박람회는 정부의 혁신성과와 디지털플랫폼정부로 달라질 대한민국 미래상을 제시하는 자리다. 그러나 디지털 정부 성과를 대내외에 홍보하는 행사를 앞두고 디지털 행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행정전산망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하면서 행사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람회에서는 100개에 가까운 정부와 민간 기관들이 '편리한 서비스', '똑똑한 정부', '안전한 사회'를 주제로 전시관을 연다. 전시관 주제를 놓고 보면 일련의 전산망 사태가 가져온 답답한 상황과 크게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전산망이 정상화하자마자 다시 국외 출장을 떠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처신을 두고도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송봉근 기자 20231123
대형사고 몇 번째인데 이제야 “대기업 참여 확대”
부실 눈감고 홍보에만 치중하다 ‘반면교사’ 될라
정부가 치명적인 행정전산망 장애의 원인을 그제 발표했다. 민원 업무 마비 사태가 발생한 지 8일 만이다.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시스템이 먹통 된 이후 벌어진 상황은 우리 정부가 공공 전산망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장비 하나 고장났을 뿐인데 즉각 복구하지 못해 온종일 민원 처리가 중단됐다.
해외 출장 중이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급거 귀국해 정상 복구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에도 에러가 속출했다. 조달청 시스템이 멈추고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중단됐다. 원인도 다양해 ‘시스템 과부하’ 같은 기본적인 리스크에 번번이 멈춰 섰다.
사전 경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21년 백신 예약 시스템 마비 사태부터 지난 6월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 오류까지 반복적으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때마다 정부는 철저한 대비를 공언했으나 말뿐이었다.
부실투성이 대국민 서비스를 방치한 채 정부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사고 당시 이 장관은 디지털 정부를 알린다며 포르투갈과 미국을 순방 중이었다. 전산망 마비 사태로 긴급 귀국한 이 장관은 시스템을 완벽히 복구했다며 다시 디지털 협력차 영국으로 떠났는데 국내에선 조달청 시스템에 탈이 났다.
그제는 부산 벡스코에서 디지털 민관 협력 행사를 열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 잘하는 정부와 더 편안한 국민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은다’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모바일 신분증 에러로 망신을 당했다. 국내외에서 홍보전을 벌이는 동안 정부 전산망은 여기저기서 비상벨이 울렸으니 속 빈 강정을 선전한 꼴이다. 정부는 잇따른 먹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엄격히 제한해 온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뒷북 행정의 전형이다. 이미 2년 전 백신 시스템 사고가 터졌을 때 대기업 참여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 전산망에 장애가 생기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우수 인력과 사고 대처 능력을 갖춘 업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에도 LG CNS 긴급대응팀이 투입돼서야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자 또 시간을 허비하다가 대형 사고 재발에 허둥대는 모습이다.
대기업 참여보다 시급한 사안은 정부의 대응 태세 강화다. 사고 직후 발표한 장애 원인부터 조사 결과와 어긋난다. 예방은 고사하고 사후 대응조차 엉성하다. 정부는 일련의 사태를 거울삼아 사고 대응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이번에도 미봉책으로 덮은 뒤 홍보에만 치중한다면 대한민국은 디지털 정부의 반면교사로 전락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