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전설의 수군大명장.
본관 : 덕수
별칭 : 자 여해. 시호 충무
활동분야 : 군사
출생지 : 서울
수군참전:23전 23승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
이순신 함대 1차 출전 전과
참전전함
조선 - 27척
일본 - 53척 (옥포 35척, 합포 5척, 적진포 13척 등)
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42척
전사자
조선 - 없음
일본 - 6920여 명
부상자
조선 - 2명
일본 - 멀쩡한 왜놈이 별루 없을 정도
이순신 함대 2차 출전 전과 (당항포 해전 및 율포해전)
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69척 (나포 3척은 보너스)
전사자
조선 - 11명
일본 - 10120여 명
부상자
조선 - 50여 명 (이순신 장군도 어깨를 다침)
일본 - 파악 불가능
이순신 함대 3차 출전 전과 (한산도 대첩)
격침
조선 - 역시 없음
일본 - 59척 (주력전함 35척 포함)
전사자
조선 - 약간 명
일본 - 8980여 명 (400여 명 한산도로 도망하였으나 결국 190명 만 살아서 돌아감)
부상자
조선 - 약간 명
일본 - 역시 세기 어렵다고 함
이순신 함대 4차 출전 전과 (연합함대)
격침
조선 - 없음
일본 - 100여 척
전사자
조선 - 6명
일본 - 3800명
부상자
조선 - 역대 가장 많은 25명
일본 - 역시 역대 가장 많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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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과 영국인이 본 이순신 장군
출점함대는 대략 〈조선 1 : 일본 7〉의 비율. 조선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남해안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임진년 5월 4일, 제 1차 출전 이래 총 4차에 걸쳐 17회의 크고 작은 해전을 전개하여 적선의 격침, 나포가 207척이었고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한 적선은 152척이었다. 또 왜병 33,780명을 격살 하였다.
이에 비해 조선 해군은 단 한 척의 전선 손실도 없었고, 인명 손실은 전상, 전사자를 모두 합하여 243명에 그쳤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의 어떤 전쟁에서도 특히 해전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었다.
적선 격침 및 대파 : 359 대 0
사상자 : 33,780 대 243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조선 해군의 대제독 이순신의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신화로 남을 것이다.
그는 36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일본의 군신, 도고 헤이아치로 제독이 보는 이순신 장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전쟁이 쓰시마 해전이다.
여기서 일본은 3배에 달하는 러시아 함대를 전멸시켰으며 결국 이 해전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구심점이 된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바로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제독이며 일본에서는 "군신"이라는 칭호를 받는 영웅이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전승축하연이 마련되었고 그 자리에서 한 기자가 영국의 넬슨[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해군제독. 영국의 영웅 - 해전사를 연구할 때 항상 거론되는 유명한 인물이다]과 도고 자신과 비교한다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도고는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가지고 싸워서 이겼다.(25 대 30 정도) 그러나 나와 나의 함대는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3분의 1 규모로써 이겼다."
라고 말해 자신이 넬슨보다 우위에 있다는 표현을 한다.
그러자 기자왈, 그렇다면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어떻느냐 하자,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러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도고는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 기원하는 의식을 갖기도 했으며 일제 때는 일본의 해군 사령부가 있던 경남 진해에서 약 40km 떨어진 통영 충렬사에 가 주기적으로 진혼제를 지내는 것이 일본 해군의 중요 행사 중 하나였다고 한다.
영국학자 발라드라는 사람은
"영국 사람으로서 넬슨[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영국 해군제독. 영국의 영웅]과 견줄만한 사람이 있다는걸 인정하긴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될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 인물은 바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위대한 동양의 해군 사령관 이순신 장군 뿐이다."
이렇게 쓰고 있다.
조선에 처들어왔던 일본의 유명한 명장 와키자카가 했던말을 일본역사책애서는
이렇게 표현하고있습니다...
한산도대첩패배이후 6일을 식음전폐하고 이렇게 얘기하였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와키자카-
이순신장군님에대한 외국인들의 평가
한민족은 항해술에 능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 2차 대전 연합군 사령관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A History of Warfare]
"영국인들에게 그 공적에 있어 넬슨과 필적할 만한 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항상 힘들다. 하지만 만약 그런 영예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적군 속에서 싸우다 죽은 이 동방의 해군 사령관일 것이다."
- 영국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 중장 G. A. Ballad, [Influence of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이순신은 불행히도 생을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용명도 지명도 서양에 전하지 않고 있지만, 실로 훌륭한 해군 장군이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장갑함을 창조한 사람이며, 300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써 싸운 전쟁 지휘관이었다.
- 일본해군준장 사토 데쓰타로, [제국 국방사론]
"이순신은 그 지휘 통솔력에서나 전술 능력에 있어서, 충성심과 용기에 있어서도, 실제로 기적과도 같은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는데 도리어 일본사람의 편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계승되었다…"
- 일본작가 시바 료타로, [언덕 위의 구름]
"사실 넬슨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정말로 군신(軍神)의 이름에 어울리는 제독이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이다. 이순신에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만큼도 못한 존재이다."
- 러시아 발틱 함대를 무찌른 도고 헤이치로 제독, [일조중 삼국인민연대의 역사와 이론]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
"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 와카자키 야스하루 脇坂安治 [1554~1626 ]-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튀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이순신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게 충(忠)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
-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이 황제에게 올린 상소 중 -
첫댓글 훌륭한 분인건 알았는데 통계수치로 보니까 진짜 군신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네요 .. 덴장할 ..가정이지만 이순신장군이 확 뒤집어버리고 조선 장악했으면 지금 일본아니라 태평양 전체를 다 차지했을수도 있었을텐데 ..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역사속의 이순신장군이 보여준 유비무환의자세와 위기관리능력,거북선을 개발한 창의성,난중일기를 남긴 철저한기록정신,뛰어난 정보수집과 활용능력등 오늘날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꼭 필요한 요소가 많기에 아직도 벤치마킹에 쓰이고 있습니다.